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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62화 (162/227)

제 162 화 항복

두 사람은 더 이상 엽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녀석은 말도 안 되는 괴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젠가 엽운을 따라잡아 한 판 붙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그런 생각 따윈 사라져버렸다.

이 녀석은 일행 중 연기경에 가장 늦게 도달했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멀어진 것이다.

엽운은 자운단을 조심스럽게 집어넣었다.

이 단약은 너무도 귀한 것이었는데, 화운이 천백 년 동안 만든 것이 열 알 남짓이었고, 그중 이미 두 알을 썼으니 남은 건 고작 여덟 알 뿐이다.

화운은 천 년 동안 많은 것을 준비했는데, 연기경부터 촉기경까지 사용할 수 있는 보물과 약초, 그리고 각종 단약과 영석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것들이 전부 중생전혼탑 안에 들어있었다.

이 보물들을 전부 꺼내 놓았다면 진나라 전체에 피바람이 불 것이다.

엽운은 대부분의 보물에 대해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

그는 살면서 이토록 많은 보물을 접해본 일이 없이 때문인데 그 중 알고 있는 보물 몇개와 영석의 가치만 해도 천촉봉 전체 자원의 절반에 가까웠다.

거기다 알지 못하는 보물들까지 포함하면 가치는 어느 정도일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너희는 잠시 쉬고 있어. 난 신우취왕을 좀 보고 올게.”

엽운은 두 사람을 지나쳐 신우취왕에게 걸어갔다.

취왕의 홀딱 벗겨진 몸에 조금씩 금색 깃털이 자라나기 시작해 머리 위 금색 깃털은 점점 찬란해졌고 깃털은 불시에 금색 빛을 뿜어댔다.

몸에 깃털이 자라나는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빨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자라난 깃털이 조금 더 커졌고, 반 주향의 시간이 지나자 그의 온 몸이 깃털로 화려하게 뒤덮였다.

한 시진이 지나자 온 몸에 깃털이 빽빽하게 자라나 몹시 아름다웠다.

금색 깃털은 태양에 비쳐 빛을 반사했고, 멀리서 보아도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취왕이 꼭 감았던 두 눈을 천천히 뜨자 눈에서 빛이 쏘아져 나왔고, 빛은 실체를 이루며 공중에서 폭발음을 내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우우!”

긴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낮은 소리로 시작 된 울음은 점점 높아졌고, 울음소리는 하늘 위로 치솟아 백리 너머까지 울려 퍼졌다.

취봉 전체에 하늘 찌를 듯한 소리가 울렸고, 이내 조금씩 사라졌다.

대회에 참가한 모든 제자들은 그 자리에 멈춰서 일제히 취봉을 바라보았다.

취봉의 꼭대기에 황금색 빛 고리가 마치 물결처럼 퍼지는 것만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지?”

황색 도포를 입은 제자 한 명이 대경실색했다.

금빛 고리는 엄청난 위세를 품고 있는데, 보기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설마 독취왕인가? 소문에 의하면 녀석은 9급 요수의 정점이라는데, 이 정도 실력인 건가.”

“독취왕 같은 요수 한 마리가 이 정도 위세를 가졌다면, 더 강력하다는 영수들은 도대체 어느 정도인 거야?”

“너무 무섭군. 빨리 적당한 곳을 찾아서 숨자. 어차피 이미 영패를 두 개나 얻었으니 이걸로 시험 자격을 얻으면 그만이잖아.”

“혹시 독취왕이 영화되어 영수가 된 건 아닐까?”

거의 모든 제자들이 산봉우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 고리를 보며 일제히 감탄했다.

취봉에서 약 이십 리 가량 떨어진 곳에서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진화성이 잔뜩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 사형, 왜 그러십니까?”

흑포 제자 한 명이 진화성의 심각한 표정을 보더니 물어왔다.

진화성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말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가버렸다.

취봉의 정상에는 엽운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신우취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애송이, 뭘 봐?”

신우취왕은 어두운 표정을 하고 소리쳤다.

엽운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취왕, 좀 전에 한 맹세를 잊은 건 아니겠지? 설마 천겁의 무서움을 한 번 더 느끼고 싶은 건가?”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있던 신우취왕은 이내 맥을 못 추며 말했다.

“어떤 것 같나? 좀 전에 너에게 복종하겠다 하늘에 맹세하긴 했지만, 완전히 너에게 복종하는 영수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

“그럼, 천겁이 두렵지 않은 거야?”

엽운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 정도 밖에 안 될 것 같아? 천 년 넘게 사는 독수리를 본 적이나 있나?”

신우취왕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어서 말했다.

“나는 보통 독수리 일족이 아닌 금시대붕에서 갈라져 나온 존재다. 금시대붕이 뭔지는 아느냐? 금시대붕은 영수의 일족으로 아주 존귀한 존재이지. 그런데 고작 연기경의 제자가 금시대붕의 주인이 된다고? 하늘이 노하여 널 벌하실 게다.”

엽운은 그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우취왕, 네가 아무리 존귀한 영수 금시대붕의 일족이라 한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건 창피한 일 아닌가.”

여명홍은 보다 못해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명홍의 말이 맞아. 저 대머리 새 좀 봐, 곡일평 녀석보다 괘씸한 놈이야. 조금의 신용도 없군.”

단진풍은 콧방귀를 뀌었다.

취왕이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살기를 뿜으며 말했다.

“너희 두 녀석, 무슨 말을 하는 게냐? 내가 너희들을 못 죽일 줄 아는거냐?”

“손 대보시지, 어차피 네놈이 우릴 죽이면 엽운이 분명 복수할 텐데, 그렇게 되어 천겁이 강림하면 넌 그 털이 다시 다 벗겨져 시체조차 남지 않고 죽어버릴 걸.”

단진풍은 어깨를 으쓱이며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너.....”

신우취왕이 분노에 가득 차 날개를 펄럭이자 먼지가 날렸다.

“됐어. 신우취왕, 화낼 필요 없어. 단진풍이 말한대로 네가 저들을 죽인다면 내가 반드시 천겁을 일으켜 널 죽게 만들거니까.”

엽운은 손사래를 치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애송이...네가 감히...”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내게 복종하는 게 싫다면, 뭐 상관없어. 맹세를 없던 일로 해줄게. 하지만 너도 우리한테 좋은 걸 줘야 할 거야.”

신우취왕은 눈을 반짝이며 다급하게 말했다.

“좋은 게 뭐지?”

“예를 들어, 수백만 개의 상품영석을 준다던지, 아니면 천년 묵은 약초나 보물을 준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야. 그것도 아니면 3급 공법이라던지 2급 선기라던지, 뭐 구체적인 건 아직 생각해본 적 없지만.”

엽운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신우취왕은 천겁을 통해 영수가 되기 전 부터 이미 인류의 수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제 영지력까지 얻게 된 그는 엽운의 말을 듣고 하마터면 놀라 자빠질 뻔했다.

상품영석이라면 그래도 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천년 이 넘은 약초나 보물도 못 찾을 건 없다.

그런데 3급 공법이나 2급 선기는 웬 말인가?

그 정도 등급의 공법이 천검종 같은 작은 종문에 있기는 한가?

아마 천검종 전체에서 가장 강한 공법도 4품 선기가 고작일 것이다.

비록 신우취왕이 취봉에 들어 온지 족히 천년이나 됐다지만, 천검종에 3급이나 2급 선기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애송이, 날 놀리는 거냐?”

엽운은 또 다시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안 되려나? 그럼 됐어. 안심하고 내 명령에 복종하면 되겠네.”

“애송이, 장난이 너무 지나치구나.”

신우취왕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

곧 그는 다시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다른 방법은 없느냐?”

엽운이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말했다.

“신우취왕, 욕심도 많구나. 그렇다면 다른 선택지를 하나 더 주지.”

“말해봐라!”

“딱 천년 간 나에게 복종하되, 종으로 부려먹거나 하진 않고 그냥 평범한 고용 관계로 지내는 거야. 그리고 훗날 네 태도가 괜찮으면, 그때는 네 마음대로 하게 해줄게. 떠나기 싫으면 말고.”

엽운이 느릿느릿 말했다.

신우취왕은 흉악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천년은 너무 길다. 게다가 난 널 위해 모든 걸 할 수는 없어.”

“그럼 됐어. 그냥 천겁을 기다리던지.”

신우취왕은 크게 분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딱 천년 동안이다. 어차피 금치대붕족에게 천년은 아주 짧은 시간일 뿐이니까. 하지만 아무때나 내가 나설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네가 우리 동족과 싸운다면, 내가 어찌 하겠어?”

“그럴 필요 없어. 이렇게 하자. 매년 반드시 나를 위해 열 번을 싸워야 하는 걸로. 그걸 제외하면 네가 나서고 싶을 때만 나서고, 달갑지 않을 때는 그냥 옆에서 지켜보면 돼.”

엽운은 별안간 무언가 생각난 듯 웃음을 터뜨리곤 말했다.

“하지만 네가 영수가 되고 나랑 천년 동안 함께 하기로 약속 한 이상, 지금부터 천 년 동안 우리는 동료가 되는 것이고, 내 적이나 그의 전우에게 등을 내어줘선 안 돼. 오직 나만 탈 수 있는 영수가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도망칠 때건, 추격할 때건, 아니면 서둘러 길을 나서야 할 때건 시간을 크게 아낄 수 있게 되겠지.”

신우취왕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머리는 더 이상 민둥민둥하지 않았고, 은은한 금색 빛 사이로 엿보이는 황금색 깃털이 눈에 띄었다.

“좋다. 승낙하마.”

“그럼 좋아. 지금부터 우리는 동료야. 반드시 서로를 도와줘야 해.”

엽운이 크게 웃었다.

원래 전투 경험을 쌓으려는 속셈이었고, 그래봐야 그를 죽이고 요핵을 뺏는 것 정도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신우취왕이 자신의 소유가 되어 천년 동안 자신에게 복종하게 되었다.

비록 매년 열 번 밖에는 사용할 수 없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무엇보다, 신우취왕은 엽운의 탈것이 되었다.

이 금치대붕의 후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니, 어쩌면 짧은 시일 안에 영수의 정점에 도달할 수도 있다.

“흥! 기억하거라. 나는 매년 딱 열 번만 너를 위해 싸우는 거다.”

신우취왕은 이미 천년이 넘게 살았지만, 금치대붕에게 천살의 나이는 인간으로 치면 갓난 아기와 다를 바 없는 나이이며, 성체가 된 금치대붕은 적어도 십만 살이 넘는다.

금치대붕의 종족은 이미 거의 남지 않았고, 천백년 동안 대륙 전체에서 한 마리를 찾아보기도 힘들었으니, 진나라 같은 작은 곳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신우취왕은 비록 금치대붕의 후예이긴 하지만,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엽운 일행도 금치대붕에 대해서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고만 생각했을 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래그래, 알겠어. 녀석, 말 진짜 많네. 이제 막 영수가 되었으니 우선 수련이나 잘 해둬. 헛소리는 그만하고.”

엽운은 손사레를 치며 취봉 아래를 바라보았다.

이번 시험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웠다.

종응이 죽었으니, 진화성을 제외한 다른 제자들은 그들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약 며칠 안에 진화성을 만난다 해도, 가늠도 할 수 없을 만큼 시야가 넓어진 지금의 그라면 고작 자포 제자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이번 시험은 정말 재미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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