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1 화 요괴의 극치
엽운은 끝없는 번개 속에 조용히 서 있었다.
아무런 부상도 입지 않은 것 같았다.
비록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단진풍과 여명홍은 그의 그림자를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이럴 수가...”
두 사람은 멍하니 서로를 쳐다봤다.
그들은 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마치 거칠고 사나운 파도가 가슴 속에서 요동치는 것 같았다.
천겁이 몸에 닿았는데 아무 일도 없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번개 속에서 엽운은 두 눈을 부릅뜨고 천겁을 보고 있었다.
번개가 손바닥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오더니 홍수처럼 미친 듯이 밀려들었다.
몸에 들어온 번개는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을 만큼 강력했고, 심지어 취봉 전체를 박살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천겁은 역시 천겁인지, 강력한 그 힘은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았다.
천겁의 힘은 둘로 나뉘어 엽운과 신우취왕의 몸으로 떨어졌다.
엽운은 거대한 번개의 힘이 몸으로 들어오는 것만을 느꼈을 뿐,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경악을 금치 못하며 몸속의 변화를 자세히 관찰했고, 곧 자신에게 들어온 번개의 힘이 빠르게 번개의 영기와 융합되며 압축되고 또 정제되어 더욱 강력해졌음을 발견했다.
“어떻게 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장면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9급 요수를 영수로 만드는 천겁은 너무도 강력했다.
더구나 신우취왕은 평범한 9급 영수도 아니고, 무려 천칠백팔십삼 년을 살아온 9급 요수 중 정점에 선 요수였다.
영수가 되면 실력은 몇 곱절이 높아져 분명 최강의 영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신우취왕을 영수로 만드는 천겁은 유달리 강력했고, 엽운과 함께 천겁을 반으로 나누어 막아내지 않았으면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엽운은 번개의 힘이 빠르게 몸속으로 들어와 자신의 번개 영기와 하나가 되는 것을 세세히 느꼈다.
잠깐 사이 번개의 영기가 몇 배는 강해졌는데, 만약 이 번개의 영기로 뇌운전광검을 펼친다면 그 위력은 이전의 다섯 곱절은 강할 것이다.
“이게 영수를 만드는 천겁인가? 이런 건 줄은 몰랐는데.”
엽운은 몸과 마음을 열어 천겁의 힘이 몸속에서 번개의 영기로 바뀌도록 두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번개가 끊임없이 번쩍였는데, 몸속에 들어온 뒤로도 전혀 약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기승을 부렸다.
여명홍과 단진풍은 엽운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찬란한 번개가 그들의 시야를 가렸기 때문이다.
다만 신우취왕의 천겁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에, 아마 잠시 후면 번개 속에서 살아 나온 엽운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번개가 공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춤을 추었고, 천둥소리가 산봉우리 전체에 울려 퍼졌다.
별안간 단진풍과 여명홍은 끝없는 번개 속에서 한 사람이 천천히 나오는 것을 보았다.
마치 번개를 몸에 두른 전쟁의 신 같은 모습이었는데, 몸에는 여전히 번개가 번쩍이며 타닥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신우취왕은 멍하니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번개 속에서 나온 그림자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바로 엽운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어떻게 연기경 1중의 수위를 가진 자가 천겁의 힘을 견뎌내고 아무런 상처도 없이 나올 수 있는가?
엽운은 번개 속에서 한 걸음씩 나왔는데, 뒤에서는 번개가 아름답게 번쩍이고 있었다.
두 사람과 한 마리 영수는 넋이 나가 번개 속에서 걸어오는 엽운을 계속 바라보았다.
이미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천겁 속에서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의 예상을 한참 벗어난 일로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한 걸음씩 나오는 모습이 마치 번개 속에서 태어난 전신 같아 모두가 우러러보게 만들었다.
“엽 사형...괜..괜찮으신 겁니까?”
여명홍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는 듯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여명홍 이 멍청아. 대진제국에서 왔다는 녀석이 말이야, 척 보면 멀쩡한 거 모르겠어? 오히려 뭔가 좋은걸 얻은 것 같은데.”
단진풍은 그의 머리를 한 대 치며 콧방귀를 뀌었다.
여명홍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대묘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엽운의 수위가 단진풍과 비슷했고, 그 강함에도 한계가 존재했음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의 수위는 이미 두 사람이 우러러보기 충분한 수준이 되었다.
종응같은 연기경 4중의 수위는 말할 것도 없었다.
참고로 대묘에서 만난 나문성의 수위는 연기경의 정점에 가까웠는데, 그럼에도 엽운의 함정에 빠져 구유정령의 거울에 진기를 봉인 당하고 결국 터져 죽었다.
그런데 지금 이 녀석은 천겁에서 아무런 부상도 없이 유유히 걸어 나올 뿐 아니라 수위가 더 높아진 것 같았다.
몸에서 끊임없이 번쩍이는 번개를 보니 무언가 좋은 것을 얻은 게 분명했다.
여명홍과 단진풍은 서로를 바라봤다.
엽운을 더 잘 알게 될 수록 이 녀석에게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일들에 점점 무감각해졌다.
하늘에 천둥번개가 천천히 물러갔고, 이리저리 춤을 추던 번개도 자연히 종적을 감추었다.
천지가 다시 맑아졌다.
취봉의 윗쪽에 자욱했던 안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수백 리 너머의 길도 선명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정말로 천겁을 버텨낸 거냐?”
단진풍은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엽운은 그를 한 번 쳐다보곤 말했다.
“아닌 것 같아? 아니면 네가 한 번 맞아볼래?”
“괴물 녀석!”
단진풍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여명홍의 눈에는 경외가 가득했는데, 이따금 뭔가 이상하다는 기색이었다.
수십 장 너머에서는 신우취왕이 끝도 없는 번개 속에서 나온 엽운을 보다 이내 두 눈을 감았다.
머릿꼭대기에 난 금색 깃털 한 가닥이 다시 한 번 은은하고 부드러운 금색 빛을 뿜어 곧 그를 뒤덮었다.
순간, 금색의 깃털이 온 몸 여기저기에서 자라나와 빠르게 가득 덮었다.
천칠백삼십팔 년을 산 신우취왕은, 마침내 최후의 천겁을 견뎌내고 영수가 되었다.
세 사람은 기대를 품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영수가 되지도 않았으면서 사람의 말을 하는 녀석이 영수가 된다면 그 영지력은 도대체 얼마나 강해질까?
“두 사람, 부상은 좀 어때?”
신우취왕은 영수가 되는 마지막 단계에 들어섰는데, 엽운은 이를 방해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보았다.
“엽 사형, 저는 괜찮습니다.”
여명홍은 피로 물든 저고리의 가슴 부근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더럽게 아프구만. 엽운, 독취왕이 완전히 진화하기 전에 놈을 구워서 먹어버리자.”
단진풍은 오른쪽 어깨를 감싸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엽운은 그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하며 옥병에서 단약 한 알을 꺼냈다.
단약은 옥처럼 하얀 색으로 보였는데, 그 표면에는 어렴풋한 보라색 빛이 보였다.
“이건 자운단이야. 부상의 치료에는 최고지. 여 사제, 이걸 하나 먹으면 반나절 만에 상처가 거의 다 나을거야.”
여명홍은 엽운의 손바닥을 바라보더니 별안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게 자운단 입니까? 백골에 생기를 불어넣고 죽은 사람도 되살린다는 그 자운단이요?”
“아마 그럴거야.”
여명홍은 떨리는 오른손으로 단약을 건네받았다.
그리고는 엽운에게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엽 사형.”
그는 자운단을 쪼개어 절반은 삼키고 절반은 오른쪽 가슴의 상처에 뿌렸다.
순간, 파편에 맞아 피부가 찢어진 곳이 육안으로 보일만큼 빠른 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비록 부러진 뼈가 저절로 붙진 않았지만, 외부의 상처는 삽시간에 거의 다 아물었다.
또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피부는 완전히 회복되어 흉터 하나 남지 않았다.
“이건 무슨 단약이냐? 신비롭군.”
단진풍은 이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단 사형, 이건 자운단 입니다. 우리 대진제국에서도 아주 귀한 물건이죠.”
여명홍은 상처가 많이 괜찮아진 듯 가볍게 오른팔을 움직였다.
“자운단?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단진풍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곧 엽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엽운 너 이 자식 너무 야속한 거 아니야. 쟤는 주고 난 안 줘?”
“단 사형은 진나라 왕족 출신인데. 설마 상처를 치료하는 약이 없겠어?”
단진풍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있긴 있지. 근데 너도 있잖아. 그럼 네 걸 먼저 쓰고 내 건 나중을 위해 아껴둬야지.”
엽운은 말문이 막혔다.
이렇게 뻔뻔하게 나올 줄은 몰랐고, 어쩔 수 없이 한 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단진풍은 큰 소리로 웃으며 마찬가지로 반은 삼키고 반은 상처에 발랐다.
순간 청량한 기운이 어깨에서 전해져왔고, 곧이어 부서진 어깨뼈가 천천히 재구성 되는 것이 느껴졌다.
“과연 신기하군. 하늘 아래 이렇게 신기한 단약이 있을 줄이야.”
“당연하죠. 대진제국에서도 자운단을 제련할 수 있는 세력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제련자의 수위는 반드시 촉기경 7중에 달해야하고, 또 제련하기도 몹시 까다롭기 때문에 한 알의 가치는 상품영석 만 개에 해당하죠.”
여명홍이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렇게나 귀한 물건이라고?”
단진풍이 미간을 씰룩였다.
별안간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이 자운단의 다른 이름이 자급신단인가?”
“자급신단이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 자운단은 분명 천백 년 동안 자급문이라는 종문에서만 만들어졌으니까요. 그런데 그 제조법이라는게 그다지 비밀스러운 건 아니라 세상에 널리 퍼졌고, 몇몇 세력에서 이를 배워서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여명홍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자급신단이었군. 진나라의 왕궁에도 3알 밖에는 없는 진귀한 물건이지. 상품영석 따위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야.”
단진풍은 크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은 서로를 한 번 쳐다보더니 엽운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부러움과 놀라움으로 가득찼다.
엽운 이 녀석은 도대체 대묘에서 얼마나 큰 이득을 본 것인가?
자운단같은 치료성약까지 가지고 있다니, 거기다 몇 알도 아니고 한 병 씩이나.
요사스러운 녀석, 이 놈은 분명 요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