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157화 (157/227)

제 157 화 신우취왕

눈 깜짝할 사이, 단진풍과 여명홍은 보물을 깨끗이 가져가버렸다.

“단 사형, 저희 아무래도 너무 많이 가져간 것 같은데, 엽 사형에게도 좀 드릴까요?”

여명홍은 별안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는 듯 했다.

“그럴 필요 없어. 아까 이 놈이 보물을 세 개나 꺼내는 거 못 봤어? 얼마나 강하던지. 설마 아직도 이 녀석이 대묘에서 충분한 이득을 못 본 줄 아는거야?”

단진풍은 입을 삐죽이며 잽싸게 물건을 전부 거두어들였다.

“대묘에서....”

여명홍은 엽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부러움을 느꼈다.

엽운은 허공에 겹겹이 떠있던 구름이 점점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산봉우리의 주위에 다시 안개가 자욱하게 꼈다.

9개의 영패라면 세 사람이 시험 참가 자격을 얻고도 남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연기경을 돌파하기까지 했으니, 이제 신우취왕을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

취봉의 꼭대기에는 신우취왕의 영지가 있다.

수백 년 동안 외문 제자 몇이 그곳을 찾아가 신우취왕에게 도전했는데, 결국 다들 중상을 입고 도망가거나 죽음을 맞이했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오기 전, 란 장로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두어 마디 주의를 주고 만 것이다.

란 장로는 이 녀석들이 고작 이 정도 수위로 감히 신우취왕에게 도전해 죽음을 자초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험에 참가한 제자들이 모두 그렇게 어리석은 놈들이 아닌데, 어찌 스스로 신우취왕을 건드리겠는가.

하지만 엽운은 신우취왕을 건드릴 뿐만 아니라, 그 녀석을 죽여 요괴의 핵인 요핵을 빼앗을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신우취왕은 9급 정점에 요수인데, 실력은 연기경 5중에서 6중에 달하니, 그 녀석의 요핵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엽운은 신우취왕의 요핵을 위해 그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도전이었다.

수행 기간이 짧은 편에 속했기에 어려서 부터 수련을 시작한 제자들과는 사뭇 달랐고, 그게 어느 방면에서든 큰 차이가 있었는데, 특히 실전 경험의 방면에서 더욱 그러했다.

신우취왕은 9급 요수 중에서도 가장 강한 편이며 전투력도 몹시 강했다.

또한, 요수와의 전투는 수사와의 전투와 또 다른데, 만약 신우취왕을 죽일 수 있다면 요수와의 전투 경험은 그걸로 더 할 나위 없이 충분할 것이다.

“엽 사형, 말씀하신 신우취왕은 대체 어떤 녀석입니까?”

여명홍이 궁금한 듯 물었다.

“다들 그 녀석을 독취왕이라 부르는 거 못 들었어? 분명 대머리겠지. 사람을 때릴 때는 얼굴을 때리지 말도록 하고, 대머리 새를 때릴 때는 머리를 때리지 말아야 하는 법. 그래야 녀석이 좀 덜 창피할거 아니야.”

단진풍은 어깨를 으쓱이곤 웃으며 말했다.

엽운은 빙긋 웃었다.

세 사람을 오래 알수록, 또 함께 겪는 일이 많아질수록 조금씩 마음이 열렸다.

심지어는 가슴 깊은 곳의 진심이 조금씩 드러나는 것 같았다.

예전에 단진풍이 보여준 오만한 태도는 모두 위장이었다.

어쩌면 눈속임을 위해 일수도 있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 일수도 있고, 어쩌면 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이 그의 진짜 모습이다.

헛소리를 곧잘 하기도 하고, 어딘가 웃기기도 하지만 결코 의리는 지킨다.

여명홍은 대묘에서 돌아온 이후 마음속의 진심이 조금씩 드러나는 것 같았지만, 아직도 엽운의 눈에는 수줍고 예의바른 청년이었다.

게다가 그는 대진제국에서 왔기에 바깥 세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엽운은 머지않아 천검종이 그를 오래 붙잡아 둘 수 없게 될 것이라 믿었다.

진나라는 너무 작고, 대진제국 쯤은 되어야, 아니 교월왕조 쯤은 되어야 그가 있을 하늘이라 할 수 있다.

“가자, 신우취왕을 죽이러.”

엽운은 호기롭게 손을 흔들었다.

세 사람의 시선이 산꼭대기를 향했다.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곤 곧바로 위를 향해 달렸다.

신우취왕은 이미 9급 요수중에서도 정점에 달한 녀석이고, 몇 년 간 줄곧 영수가 되기 위해 수련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짜증나게 만든 건, 근 오십 년 동안 매 년 마다 천검종의 내문 제자들이 한두 번씩 나타나 그에게 도전을 해온 것이다.

그들은 이기던 지던, 결국 훌쩍 떠나갔고, 아무리 그들을 붙잡으려고 애를 써도 한 줄기 그림자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최근 들어 신우취왕은 자신이 영수가 되는 순간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 어렴풋이 느꼈다.

지금 천검종의 제자들이 온다면, 뒷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만약 올해도 누군가가 훼방을 놓는다면, 그 무지한 녀석들을 전부 죽여버릴 셈이었다.

신우취왕은 거대한 돌산 위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수백 마리의 각종 요수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을 지나갈 때면 전부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엽운 일행은 정상으로 가는 길에서 어떤 방해물도 만나지 않았다.

어쩌면 요수들은 세 사람이 노리는 것이 신우취왕일 것이라곤 생각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신우취왕은 분명 이곳에 요수들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허락하기는 했지만, 서로 공격을 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엽운은 펄쩍 뛰어올라 먼 곳을 바라봤다.

눈에 열 장 높이의 거대한 돌산이 들어왔다.

그리고 돌산의 위에는 은은한 금색 빛이 감돌았다.

“신우취왕? 저게 신우취왕인가요?”

따라온 여명홍은 돌산 위의 큰 새를 보고 저도 모르게 놀라서 물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저 놈의 머리를 봐. 털이 하나도 없고 완전히 벗겨졌잖아. 당연히 저게 사람들이 말하던 대머리 독취왕, 즉 신우취왕 이겠지.”

단진풍은 웃으며 말했다.

신우취왕을 마주하고도 전혀 겁먹지 않았다.

“맞아. 분명 신우취왕이 맞을거야.”

엽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의외라 생각했다.

신우취왕의 앞에 오기까지 아무것도 그들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럼 시작하자. 저 녀석을 죽이면 구워 먹을 수도 있겠군.”

단진풍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좋아. 그럼 네가 먼저 시작해봐.”

엽운은 빙긋 웃으며 청하는 손짓을 했다.

“내가 해야 한다면, 먼저 시작하지.”

잠시 어리둥절해진 단진풍은 곧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작은 돌맹이 하나를 주워들고 매섭게 던졌다.

돌맹이가 신우취왕의 아래에 있는 돌산에 맞았다.

“먼저 하겠다는 게 그거야?”

엽운과 여명홍은 어이가 없었다.

“그냥 해본거야. 못 맞춘 것 같네.”

단진풍이 머쓱한듯 머리를 긁적였다.

별안간 돌산 위에 앉아있던 신우취왕이 눈을 부릅떴다.

마치 실체가 존재하는 것 같은 그의 시선은 엽운 일행이 있는 곳을 향했다.

“봤지, 공격은 크고 작은 게 중요한 게 아니야. 효과가 있으면 된거지.”

단진풍이 소리치며 손에서 빛을 번쩍였다.

엽운과 여명홍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소문에 의하면 신우취왕은 아직 영수가 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요수들 중에서는 상대할 자가 없는 경지였다.

세 사람의 수위가 연기경을 돌파하긴 해도 연기경 5중에서 6중에 해당하는 실력의 신우취왕은 그들에게 아직까지 크나 큰 위험이었다.

엽운은 대묘에서 연기경 7중의 나문성과 싸워 이긴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문성이 이미 대량의 진기를 소모한 뒤에 치러진 것이었고, 어쩌면 그가 부상을 입은 상태였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나문성은 적을 너무 얕잡아봤기에, 구유정령의 거울에 당해 진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그리하여 엽운의 강대한 육신에 격파당한 것이다.

나문성은 중상을 입었음에도 진기를 회복하였고 하마터면 엽운을 죽일 뻔했다.

연기경 7중의 수위는 엽운같은 자들이 정면으로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결코 아니었다.

지금 엽운의 실력으로 연기경 5중의 제자들과 겨룬다면 그래도 승산이 조금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기경 6중이라면 분명 패배할 것이다.

“엽 사형, 만약 이 녀석을 쓰러뜨릴 수 없으면 어떡하죠?”

여명홍이 별안간 나즈막이 물었다.

“어떻게 못 이기겠어. 겁먹지 마라 명홍.”

단진풍은 손바닥으로 그의 뒷통수를 한 대 때리고 노려봤다.

“못 이기면 도망가면 돼.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어. 보호 부적을 깨뜨리는 건 안되지. 그렇게 되면 우리가 영패를 가지고 있다한들 내문 제자 시험에 참가할 자격을 박탈 당할테니까.”

엽운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는 진작에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다.

“그럼 해보자고.”

단진풍은 어깨를 으쓱이곤 손에서 빛을 번쩍이며 파일창을 꺼냈다.

신우취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싸늘하게 세 사람을 바라봤다.

눈빛에서 조롱이 느껴졌고, 어딘가 비웃는 것 같았다.

“가자. 저 놈을 죽이고 요핵을 빼앗는거다.”

단진풍이 크게 소리치며 달려갔다.

여명홍도 추월참혼도를 꺼내고 뒤따라갔다.

“기다려!”

엽운이 별안간 소리치며 두 사람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단진풍과 여명홍은 연기경을 돌파한 뒤 실력이 크게 향상됐고, 속도 역시 더 할 나위 없이 빨라졌기에 순식간에 수십 장을 달려가 신우취왕에게 덤벼들었다.

엽운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위험한 느낌이 끊이지 않았다.

두 사람을 말리기엔 이미 한 발 늦었으니 이를 악물고 따라가야만 했다.

그의 자영검에서 물결이 일렁이며 보라색 빛이 번쩍였다.

신우취왕은 덤벼드는 세 사람을 보곤 두 날개를 맹렬이 흔들었다.

순간, 엄청난 바람이 불었고, 먼지가 하늘을 가득 메워 천지를 가려버린 듯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세 개의 은은한 금색 빛이 튀어나와 바람을 타고 세 사람에게 날아왔다.

금색의 빛이 그들의 몸에 닿을 무렵, 엽운은 그제야 번쩍이는 금색 빛을 발견했다.

마음속에서 줄곧 느껴지던 위험한 느낌이 정점에 달했다.

그는 곧 금색 빛이 신우취왕이 바람 속에 감춰둔 살인적인 공격임을 눈치챘다.

“저 금색 빛을 조심해!”

엽운은 다급히 두 사람에게 주의를 주었다.

금색 빛은 이미 그들의 몸 앞에서 한 척도 안 되는 거리까지 다가왔다.

그는 몸을 비틀어 비스듬히 날아가며 간신히 금빛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나 단진풍과 여명홍은 그렇게 운이 좋지 않았다.

신우취왕의 두 날개가 흩날리는 강풍은 두 사람을 서 있기도 힘들게 만들었고, 어둠 속에서는 흙먼지가 날리고 풀이 나부꼈다.

엽운의 말을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직여 피했지만, 어깨에서 푹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금색 빛이 순식간에 견갑골을 뚫고 등 뒤로 빠져 나왔다.

금색 빛은 몸을 꿰뚫었을 뿐 아니라, 몸을 뚫고 난 뒤에도 엄청난 힘이 밀려왔다.

그들의 오른쪽 어깨가 부서질 것 같았고, 피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9급 요수의 첫번째 공격은 이 정도로 강했다!

엄청난 강풍이 사그라들었고, 천지가 다시금 맑아졌다.

엽운의 온 몸은 흙먼지로 뒤덮여 볼품없었다.

단진풍과 여명홍은 땅 위로 떨어졌는데, 오른쪽 어깨가 박살나 피투성이가 된 비참한 모습이었다.

엽운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신우취왕의 실력은 그의 예상을 한참 벗어났다.

재빨리 몸을 움직여 단진풍과 여명홍의 앞에 다가섰다.

손에 쥔 자영검에서 보라색 빛이 물결처럼 일렁였다.

싸울까? 아니면 도망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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