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1 화 외나무다리에서의 만남
신우취왕은 독취왕이라고도 불렸다.
제자들은 거의 건드릴 수도 없는 존재인데, 9급 요수 중에서도 정점의 힘을 가져 심지어는 연기경 5중의 실력과 비견 될 수 있었다.
게다가 머지않아 영지를 깨우치게 될 터, 그런 존재를 상대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했다.
피하기도 급급한 상대에게 어찌 주동적으로 공격을 한단 말인가.
신우취왕이 있는 곳은 취봉의 꼭대기이기도한데, 어느 방향에서든 고개를 들면 구름 속에 뒤덮인 산봉우리가 보였다.
일행이 있던 밀림에서 신우취왕이 있는 산봉우리까지는 약 십여 리 정도의 거리로 그들이라면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였다.
“엽 사형, 지금 바로 가는 겁니까?”
여명홍은 어딘가 조급해 보이는 듯 말했다.
“서두를 것 없다. 취봉 전체가 수십 리를 넘지 않는데, 당장 가서 신우취왕을 죽여봤자 이목만 끌 뿐이다. 일단 여기서 이틀 간 수행하고, 나머지 녀석들이 영패를 얻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놈들을 죽이고 나서 얘기하자.”
단진풍이 이어서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로 죽일 생각이십니까?”
여명홍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너 이 자식, 대진제국에서 왔다면서? 설마 사람 죽이는 걸 본 적이 없나? 대체 언제부터 그렇게 약해 빠진 생각을 한거냐? 우리와 진화성은 진작에 죽고 죽일 수밖에 없는 사이가 됐단 말이다.”
단진풍은 그의 머리를 때리며 호통쳤다.
“저는.....”
여명홍은 반박하려 했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됐어, 열흘 안에 우리는 신우취왕을 찾아 싸움을 거는거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릴 건드리지 않으면 우리도 나서지 않는 걸로 하자. 지금은 우선 안전한 곳을 찾아서 함께 수련과 회복에 매진해야 해.”
엽운은 손사레를 치곤 여명홍을 봤으나, 그 역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들 같은 외문 제자들에게 취봉에서 가장 위험한 곳은 신우취왕의 영지이며, 꼭 필요하지 않은 이상 멀리할수록 좋은 곳이었다.
엽운은 이를 역이용 한 것이다.
며칠 간 진화성의 일행은 신우취왕의 주위를 끌지 않으려 할 것이니, 먼저 다가가 이틀 동안 수행을 할 계획이었다.
연기경을 돌파할 수 있다면 진화성은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다.
취봉은 단지 요수골의 깊은 곳에 지나지 않았고, 사실 신우천왕이 지내고 있는 산봉우리 만을 취봉이라고 부르나, 근 백년동안 천촉봉은 이 곳을 신촉봉이라 불렀다.
신취봉은 마치 예리한 검이 하늘을 찌르는 것처럼 가파르며, 산봉우리의 상반신은 구름에 묻혀 보일 듯 말 듯 했다.
신취봉의 중턱, 구름이 시작되는 곳 언저리에 평평한 노대가 하나 박혀 있었는데, 산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었다.
노대 위에는 엽운을 포함한 세 사람이 조용히 반좌하고 있었다.
단진풍과 여명홍은 전력을 다해 수행하고 엽운은 두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살폈다.
신취봉은 신우취왕이 있는 곳이기에 세 사람은 감히 함께 수행할 수 없었다.
연기경을 돌파하는 것은 선기를 수련하는 것처럼 아무 때나 멈출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었다.
연기경을 돌파하는 과정 중 방해를 받으면 공든 탑이 한 번에 무너지게 된다.
그리하여 엽운은 먼저 단진풍과 여명홍이 연기경을 돌파하도록 한 것이다.
두 사람이 연기경을 돌파하는데 성공한다면 실력은 당연히 크게 향상될 것이고, 그렇다면 진화성을 만나더라도 두 사람이 손을 잡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다.
엽운도 연기경을 몹시 갈망하였으나, 그다지 급하지는 않았다.
지금 수위라면 연기경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진화성과 견줄만 했고, 영기를 잘 배합한다면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진화성의 수위가 아무리 높다한들 결국 나문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나문성은 연기경 7중의 내문 제자이며, 한 번의 실수로 구유정령에 사로잡혀 진기를 봉인 당했지만 그럼에도 꿋꿋이 신체의 힘으로 엽운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래도 결국 고전 끝에 엽운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만약 진화성이 구유정령에 당한다면 효과가 사라질때까지 버티지도 못할 것이라 믿었다.
진나라가 대진제국에 속한 왕국임을 알게 된 후로 그의 시야는 더욱 넓어졌다.
눈앞의 수많은 분쟁은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이번 내문 제자 시험 자격 쟁탈전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저 영패만 얻으면 그만이었다.
지금 수위라면 영패 하나를 얻는 것쯤은 손바닥을 뒤집는 일 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음속은 지극히 평화로웠다.
대묘에서 돌아혼 후로 사실 지금껏 쌓아온 수위를 견고히 다지지 않았다.
비록 체내의 영력은 이미 정점에 달했지만 경계가 아직 견고하지 못했기 때문에 빠르게 연기경을 돌파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세세히 돌이켜보았다.
수위가 한 걸음씩 높아지는 속도는 비록 그가 보기에는 빠르지 않았지만 사실은 이미 지극히 빠른 속도였다.
겨우 반년의 시간 만에 그의 수위는 연체경 5중에서 연체경 7중인 오기경의 정점까지 성장했다.
아무리 뛰어난 자질을 가진 제자라 해도 이만큼 빠른 속도로 수련할 수는 없었다.
빠르다. 너무도 빠르다!
엽운은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원래 줄곧 수행의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그 속도는 너무도 빨라 경계를 견고히 다지기도 전에 바로 다음 경계로 넘어가게 되었다.
순간 엽운의 마음이 완벽히 평화로워졌고, 조금의 조급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져 텅텅 비어버린 것 같았고, 몸은 천지와 맞닿아 하나가 된 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체내의 영력이 천천히 솟구쳤고, 곧 이어 조금씩 변화가 시작됐다.
이미 극에 달해 더 이상 응축 될 수 없을 것 같던 영력은 놀랍게도 조금씩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허무해졌다.
두 눈을 감은지 한 주향의 시간이 지나고, 일 장 너머에 있던 단진풍이 별안간 두 눈을 떴다.
곧 한 줄기 빛이 눈에서 뿜어져 나오며 앞쪽의 소나무에 꽂혔다.
“탁” 하는 소리가 들리며 소나무는 두 동강이 났고, 절단 된 면은 거울처럼 매끈했다.
연기경이다!
단진풍은 어안이 벙벙해져 두 동강이 난 소나무를 쳐다봤다.
그렇게 넋이 나간 채 반 주향의 시간이 다시 흘렀고, 곧 환호를 내질렀다.
그의 소리는 공간을 가르고 날아가 저 멀리 들판을 뒤흔들었다.
곧이어 흥분된 얼굴로 아직까지 두 눈을 감은 채 수련 중이던 엽운과 여명홍을 바라봤다.
“엽운 이 자식아, 망을 본다며? 어째서 수련을 하고 있는 거야? 순 엉터리구만.”
단진풍은 한 번 중얼거리고는 몸을 돌렸다.
얼굴에 흥분이 가득했다.
손을 가볍게 들어 살며시 허공을 가리켰다.
한 줄기 투명한 빛이 쏘아져 나가 앞쪽의 돌산을 맞췄다.
“푸욱!”
맑은 소리가 울려퍼지며 자갈이 사방으로 튀었다.
돌산 위에 반 척 크기의 구멍이 생긴 것이 보였다.
진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 힘은 세 장이나 날아갔다.
연기경,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연기경이다!
단진풍은 몹시 흥분했고, 체내에서 진기가 솟구쳤다.
지금껏 이 정도로 강력한 힘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실력이 거의 열 배는 상승했어. 연기경이라는 것, 정말 불가사의하네. 지금 진화성을 만난다면 녀석을 쥐새끼마냥 도망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군.”
오만함이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보니까 여 사제도 제법 빠른 것 같은데, 엽운 이 자식은 우리 중에 제일 강하면서 연기경을 돌파할 기미가 안보이네.”
단진풍은 뒤에서 수련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엽운의 실력은 분명 잘 알고 있었다.
대묘에서 놀랍게도 연기경 7중의 나문성과 정면으로 결투를 벌였다.
게다가 보물 하나를 이용하여 쌍방의 진기를 봉인하였고 결국에는 강력한 육신으로 상대에게 중상까지 입혔다.
그러나 보기에 엽운은 연기경을 돌파할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여명홍은 얼굴에서 푸른 빛이 이따금씩 번쩍이며 힘이 조금씩 몸 밖으로 뿜어져 나왔고, 곧 연기경을 돌파할 조짐이 보였다.
“엽운 녀석의 수위는 정말이지 괴상하단 말이야. 연기경을 돌파한 나와 명홍의 힘을 합쳐도 저 녀석의 상대가 되질 않아.”
단진풍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별안간 다급히 고개를 돌렸고, 눈에서 빛을 번쩍이며 안개 넘어 산봉우리 아래를 보았다.
단진풍은 구름 너머로 약 일곱 여덟 명의 제자가 정상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저 녀석들은 누구지? 낯이 익는데.”
단진풍은 어리둥절해하며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곧 얼굴에 오만함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종응인 것 같군. 듣자하니 저 녀석의 수위는 이미 연기경 4중에 달했다는데, 실제 전투력은 어느 정도인지 한 번 봐야겠어.”
종응은 여덟 명을 거느리고 있었다.
비록 등반하는 속도는 느렸지만, 일반인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속도였다.
수백 장의 거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뛰어 넘어 안개 속에 가려진 노대 위로 올라왔다.
“어라, 누가 우리보다 먼저 와 있었잖아.”
흑포를 입은 제자 한 명이 깜짝 놀라 말했다.
“누구냐?”
종응은 눈살을 찌푸리며 싸늘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단진풍은 천천히 나가 여덟 명의 흑포 제자들을 바라보곤 웃으며 말했다.
“꼭대기에 올라가 독취왕을 건드리려는 거냐?”
“단진풍? 그리고 엽운에다 여명홍까지 있군. 너희들이 여기에 숨어 수련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종응은 즉시 세 사람을 훑어보았다.
이틀 간 세 사람은 마치 사라진 것처럼 줄곧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종응은 이들이 산 중턱의 안개 속에 숨어서 수련을 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 종응 사형, 당신들의 수위가 그렇게나 높은 신데 우리 형제 셋이 어떻게 당신들이랑 정면으로 싸워 영패를 빼앗겠습니까. 당연히 숨어서 수련을 하고 수위를 돌파해야 싸울만 하겠지요!”
종응이 어떤 인물이던가,
곧바로 비아냥거리는 것임을 알고 저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보아하니 너희 셋은 하늘이 높은 줄을 모르는 모양이구나. 정말 진절머리가 나는군. 이렇게 된 이상 여기서 내보내주마!”
종응은 싸늘한 목소리로 손을 휘둘렀다.
뒤에 서 있던 7명의 제자들이 재빨리 세 사람을 애워쌌다.
단진풍은 그들을 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