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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50화 (150/227)

제 150 화 먼 곳

밀림 속에는 엽운이 두 사람을 데리고 다급히 움직이고 있었다.

반 주향이 지나자 이미 수십 리를 지나 밀림의 깊은 곳에 들어왔다.

“푸웁!”

단진풍이 별안간 발걸음을 멈췄고, 목에서 피를 토해냈다.

보랏빛으로 질린 얼굴은 보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질 지경이었다.

“단 사형, 다치신 겁니까?”

여명홍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다급히 물었다.

“방금 진화성의 칼의 위력은 너무도 강했고, 그로써는 막아낼 수 없었을 거야. 우리 두 사람이 온 힘을 다했는데도 소현무의 방패에 금을 냈으니, 그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지.”

엽운은 모든 것을 예상한 듯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래서 엽 사형은 그걸 알아차리고 도망친 거군요?”

여명홍이 저도 모르게 물었다.

“맞아. 지금 당장 진화성과 정면으로 승부할 필요는 없어. 훗날 녀석과 싸울 기회가 분명 있을거야.”

엽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화성의 수위가 이미 연기경 4중의 정점에 올랐음에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구유정령의 거울과 열염폭운 등 몇 개의 중품 영기라면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후!”

단진풍은 긴 한숨을 내쉬었고, 천천히 기운을 차렸다.

고개를 들어 엽운을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했다.

“진화성의 실력은 확실히 예상을 벗어났어. 오늘 네가 없었다면 진짜로 죽었겠는걸.”

엽운은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우린 형제잖아. 그런 말은 할 필요도 없어. 진화성이 우리보다 강한 건 수위와 선기 뿐이니, 우리가 연기경을 돌파하기만 하면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을 거야.”

“연기경은 늦던 이르던 언젠가는 돌파하게 될테지. 하지만 당장 수위를 올리고 싶어도 계속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단 말이야. 진기를 완전히 연화시킬 수가 없어.”

단진풍은 미간을 찌푸리며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기를 연화시키게 되면 곧 연기경에 도달하는 것인데, 이것은 모든 연체경 정점의 제자들이 가장 갈망하는 바이다.

하지만 수선의 길은 너무 힘들어 한 걸음만 나아가면 수위를 올릴 수 있지만 연기경의 법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진기를 완전히 연화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괜찮아. 당연한 일이야. 언젠가 연기경을 돌파하는 날이 올거고, 그건 머지 않았을 거야.”

엽운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사실 필요한건 시간 이었고, 경계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연기경에 대한 갈망이 그다지 크지 않았는데, 선마지심의 이전 주인의 모습을 보고난 뒤로 그의 마음은 완벽히 평정을 찾았다.

“당연한 일이라니, 말은 쉽지. 하지만 막상 해내려면 어렵단 말이야.”

단진풍은 감개무량했다.

수선의 길에서 하늘의 싸움과 땅의 싸움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싸움으로,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남을 이기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자신의 속마음과 싸워 이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천백 년 동안 출중한 재능을 가진 소년들은 수행에서 하루에 천 리를 달려 종문의 관심을 독차지 했고, 군중의 위에 군림했다.

하지만 결국 마음의 집착을 이겨내지 못해 악마가 되었고,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엽운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웃었다.

모든 이에게는 자신만의 길이 있다.

자신의 길을 찾아내야만 비로소 수선의 길에서 승승장구해 지존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엽 사형, 어디에서 영패를 찾죠?”

여명홍이 물었다.

“서두를 것 없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단 사형이 부상을 회복하는 것이고, 우리가 모두 연기경을 돌파할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겠지.”

엽운은 고개를 저으며 나즈막이 대답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영패를 찾으러 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심사 참가 자격을 얻습니까? 설마 진짜로 동문끼리 죽이려는 겁니까? 그렇게 해서 영패를 빼앗으려고요?”

여명홍은 미간을 찌푸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과 단진풍은 서로를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빼앗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한테 그냥 주겠어? 여 사제, 수선의 길은 몹시 잔혹한 것임을 기억해.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거야. 진화성은 절대로 우릴 놔주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우린 그가 영패를 얻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빼앗으면 돼.”

“진화성 말고도 흑포 제자 종응과 그 일행들이 있는데, 뭐 별것도 아니지. 다른 놈들이라면 신경 쓸 것 없어. 우리의 상대가 못 되니까.”

단진풍은 콧방귀를 뀌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여명홍은 두 사람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수선이란 참 어렵네요. 아버지께서 저를 이곳에 보내지 않으셨다면..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엽운이 말했다.

“그러고보니 집이 어딘지 얘기한 적이 없네. 어디 사람이야?”

여명홍은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사실 저는 진나라 사람이 아닙니다. 진나라의 서쪽에서 약 만 리 정도 떨어진 대진제국 출신이고, 저희 집안은 대진제국 도성의 작은 가문입니다.”

“대진제국!”

단진풍이 별안간 놀라서 소리쳤다.

곧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여명홍을 바라보았다.

“대진제국은 무슨 역사가 있는데 그래?”

엽운은 변방의 작은 마을 출신이라 대진제국이라는 존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단진풍이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말했다.

“진나라의 백성들은 대부분 진나라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어서 진나라가 천하의 중심인 줄 알지만 사실은 진나라 밖에도 많은 나라들이 있어. 진나라는 그들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라 할 수 있지.”

“그건 나도 알아. 천검종의 전적에서 본 적이 있거든.”

엽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엽 사형께서는 모르시는 건가요. 사실 나라의 국력에 따라 상하로 나뉘거든요. 천검종처럼 위아래가 분명하게 말입니다.”

여명홍은 말을 이어갔다.

“무슨 뜻이야?”

엽운은 호기심에 물었다.

“위아래가 나뉜다니?”

단진풍 역시 궁금한지 물었다.

그도 진나라 밖에 다른 나라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각각 나라들 마다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여명홍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만약 대진제국을 무영봉에 비유한다면, 진나라는 천촉봉입니다. 진나라가 대진제국의 통치 아래에 있는 거죠. 매 십년 마다 대진제국에게 각종 자원과 희귀한 보물들을 상납해 향후 10년의 평화를 약속받는 겁니다.”

엽운과 단진풍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진나라가 대진제국 휘하의 왕국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엄격한 구분이 존재합니다. 진나라는 하나의 왕국이고, 그 위로는 제국이 있는데 그게 바로 대진제국 입니다. 그리고 그 대진제국은 교월왕조의 통치 하에 있는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아래로 열 개의 제국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각각의 제국 아래에는 적어도 수십 개의 왕국이 있고요.”

여명홍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엽운과 단진풍의 귀에는 그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진나라는 대진제국의 휘하에 있는 작은 왕국일 뿐이고, 대진제국의 아래로는 수십개의 왕국이 있으며 각각의 왕국은 진나라와 비슷했다.

강대한 대진제국마저 강대한 국가라 할 수 없었고 그 위로 또 교월왕조가 있다고 하니, 이는 그들의 상상을 완전히 벗어난 일이다.

“왕국, 제국, 그리고 왕조, 그 위로는 또 뭐가 있지?”

단진풍은 불가사의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저도 몰라요.”

여명홍은 고개를 저었다.

엽운은 별안간 시야가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더 이상 눈앞에 국한되지 않고 광활히 펼쳐진 천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디작은 진나라 중에서 천검종은 큰 손이라 할 수 있었으며, 진나라를 마음대로 누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진제국은 어떨까? 분명 천검종 같은 세력이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천검종 수백 년 이래 금단 수사는 고작 몇 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세대에는 아직까지 금단 수사의 존재 여부조차 불확실했고, 공간 진법과 같은 것들은 촉기경 후기의 고수들이 만들어 내는 것들이었는데, 이는 진정한 금단경의 수사와 거리가 멀었다.

분명 대진제국에는 금단 수사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어찌 수십 개의 왕국을 통치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교월왕조는 그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존재다.

어쩌면 금단 수사는 교월왕조에서 별 것 아닐지도 모른다.

엽운은 조용히 먼 곳을 바라봤다.

눈앞의 득실은 더 이상 상관없었다.

마음속에 자리한 유일한 갈망은 최대한 수위를 끌어올려 진나라를 떠나 대진제국과 교월왕조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었다.

“엽운, 거의 다 회복 된 것 같다.”

단진풍은 몸을 일으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목소리가 엽운의 사색을 깨뜨렸다.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우린 마지막에 싸우기로 결정했으니까, 요 며칠 동안은 얌전히 수련에 집중해서 연기경을 돌파하자고.”

“여기서 수련을 하자고?”

단진풍과 여명홍은 어리둥절했다.

두 사람이 동시에 물어왔다.

밀림은 비록 광활하지만 딱히 안락한 곳은 아니었기에 쉽게 발각 될 수 있었다.

이런 곳에서 수련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의 경계와 축적된 영력은 이미 충분하고 마지막 돌파만이 남았어. 만약 빠르게 돌파하고 싶다면 자기 자신에게 큰 압박감을 주는 수밖에 없어.”

엽운은 웃으며 말했다.

“그 압박은 어디에서 오는데요?’

여명홍이 저도 모르게 물었다.

엽운은 몸을 돌려 웃으며 천천히 말했다.

“독취왕, 아니 신우취왕이 있는 곳이라면 엄청난 압박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거야. 그 녀석을 죽일 수 있다면 분명 연기경도 물 흐르듯 뚫을 수 있겠지.”

“독취왕이라고?”

단진풍과 여명홍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곧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신우취왕은 수백 년간 존재해왔던 9급 요수이며, 영지를 깨우쳐 영수가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의 힘만 해도 진화성보다 강할 텐데, 세 사람이 신우취왕을 찾아 건드린다는 것은 죽고싶어 안달이 난 것 아닌가?’

“왜? 두 사람 혹시 무서운거야? 고작 요수 한 마리인데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 만약 너희들이 9급 요수 한 마리도 이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시험을 통과하고 내문 제자가 되겠어?”

엽운은 냉소를 지었다.

눈에는 조롱이 담겨 있었다.

단진풍이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바로 그런 눈빛이었다.

그는 덜컥 화를 내며 말했다.

“고작 9급 요수 한 마리? 아니, 못이길 리가 없어.”

여명홍의 눈에서도 마찬가지로 뜨거운 불길이 일었다.

피가 솟구치는 듯 얼굴이 온통 붉어져서 소리쳤다.

“두 사형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는 함께 가겠습니다.”

엽운은 두 사람을 보더니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래야지. 우리의 눈은 더 먼 곳을 봐야해. 대진제국을 향해, 그리고 교월왕조를 향해. 더 먼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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