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9 화 자포의 치욕
장무각에서 진화성과 충돌했을 당시 엽운과 단진풍은 확실히 그가 보라색 도포를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만 해도 훗날 종문의 걸출한 인재가 될 자포 제자가 장무각에서의 수행에 전념하고 있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잠깐 사이에 녀석이 자포 제자에서 흑포 제자가 되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 몹시 굴욕적인 일일 것이다.’
한때 자포 제자로써 최고의 영광을 누리던 진화성은 이제 다시 흑포 제자로 떨어졌고, 두 명의 갓 입문한 청포 제자에게 조롱과 도발을 받고 있으니 화가 극에 달했을 것이다.
“죽고 싶다면 내가 소원을 들어주마.”
진화성은 분노에 차 소리치며 얇은 군도를 꺼냈다.
순간 벽록색의 칼날이 마치 푸른색의 전기뱀 처럼 단진풍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단진풍은 진작에 준비가 돼 있었다.
칼날이 날아오는 순간 이미 몸을 수십 장 뒤로 움직여 간단히 피해버렸다.
“감히 피하다니.”
진화성은 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단진풍이 공격을 맞받아치지 않고 피하는 선택을 할 줄은 몰랐다.
“멍청이. 왜 자포 제자에서 다시 흑포 제자로 돌아왔는지 알만하군. 전투에서 맞받아치는 방법 밖에 없는 줄 아느냐?”
단진풍은 조롱이 가득한 얼굴로 연신 비웃었다.
단진풍은 영력을 뿜어 사방에 퍼뜨렸다.
그 순간, 앞의 이 흑포 제자가 자포 제자에서 떨어져 내려왔음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얼마나 굴욕적인가!
상상할 수도 없는 수모를 면전에서 당한 것이다.
진화성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fl고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거의 실체를 이룰 수준이었다.
한 발 내딛으며 손에 쥔 군도를 들어 올렸다.
비록 지금은 흑포 제자이지만 한때 자포 제자였던 사람이다.
자포 제자가 되려면 재능과 잠재력이 뛰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운 수행을 견뎌내야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련에 전념해야 한다.
자포 제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거의 확실히 내문 제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상을 통해 곧장 승급한 내문 제자가 아니라 실제로 수위와 스스로의 깨우침만으로 시험을 통과한 내문 제자 말이다.
따라서 자포 제자는 수백 년 동안 평범한 외문 제자들이 꿈꾸는 목표였다.
그러나 지금, 높디 높은 자포 제자는 신단에서 떨어져 다시 흑포 제자가 됐고, 심지어 갓 들어온 청포 제자에게 치욕을 당했다.
순간 거의 모든 이들은 자포 제자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죽는 길을 택하다니. 그럼 죽여주는 수밖에.”
진화성은 손에 든 군도를 흔들었다.
찰나의 순간 품질을 알 수 없는 군도가 쪼개져 무수히 많은 빛 조각이 되어 날아왔다.
한 조각 한 조각의 빛은 모두 한 자루의 칼이 되었고, 한 데 모여 물결을 이루며 단진풍을 향해 쏟아졌다.
“죽어라! 일도화만, 홍류입해!”
믿을 수 없는 위력을 가지고 있는 칼날의 물결이 쏟아져 단진풍을 향해 날아왔다.
단진풍은 말할 것도 없고 엽운마저 놀라게 할 만한 위력이었는데, 어렴풋이 연기경 4중을 뛰어넘는 것 같았다.
이 일격은 엽운도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단진풍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저 녀석의 수위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단 한 번의 참격이 이 정도 위력이라니.
“잘 왔다!”
그는 크게 소리치며 백일창을 꺼내 내질렀다.
“무리하지 말고 전력을 다해서 방어해.”
별안간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엽운이 옆에 나타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여사제, 소현무의 방패로 우릴 보호해줘. 단사형은 여사제를 도와주고, 이 일격은 내가 받아낼게.”
엽운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에 울렸다.
세 사람은 갓 외문 제자가 됐을 무렵부터 붙어 다녔고, 대묘에서의 여행을 통해 더더욱 호흡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여명홍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연기경 3중 이하의 공격을 세 번 막아낼 수 있다는 소현무의 방패를 꺼냈고, 단진풍은 온 몸에서 금색 빛을 번쩍이며 세 사람을 빛으로 뒤덮었다.
엽운은 눈에서 불을 켜며 자영검을 꺼냈다.
순간 천둥소리가 울렸고 보라색 번개가 소현무의 방패 사이로 뿜어져 나가 진화성이 날린 군도의 물결을 찔렀다.
치직!
번개가 날아가며 공기와 마찰되어 치직 거리는 소리를 냈다.
한 가닥의 번개는 군도의 물결 앞에 서니 천 백분의 일정도 크기로 보였고, 단숨에 물결에 집어삼켜졌다.
“쾅!”
별 볼 일없어 보이던 번개는 군도의 물결 속에서 폭발음을 내기 시작해, 칼날로 이루어진 물결에 구멍이 숭숭 뚫리며 칼날이 사방을 향해 터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번개의 위력은 충분하지 않았고, 군도의 물결을 완전히 베어내지 못했다.
물결은 잠시 머뭇거리다 계속해서 쏘아져 날아왔고 단진풍의 황금빛 방어막을 거세게 때렸다.
“퍽!”
잠시 동안 공격을 버텨내던 금색의 방어막은 곧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군도의 물결은 멈추지 않고 여명홍의 소현무 방패에 부딪혔다.
“우지직!”
소현무의 방패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 사람이 흩어지며 뒤로 다급히 물러났다.
군도의 물결은 단칼에 지면을 갈라 수십 장의 길이와 세 척의 깊이를 가진 계곡을 만들어냈다.
진화성이 날린 일격의 위력은 강력했다..
조금 전까지 자포 제자가 별것 아니라 생각하던 제자들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 일격은 너무도 강력해 그들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수준이었다.
엽운과 몇 사람을 제외하고 쟁탈전에 참여한 대부분의 제자들은 이 정도 위력을 가진 공격을 본 적이 없었고, 저도 모르게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곧 그들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차올랐다.
지금의 일격에 당한다면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세 사람은 놀랍게도 힘을 합쳐 군도의 일격을 막아냈고, 게다가 몸을 피해 도망가기까지 했다.
그것만 해도 이미 모두의 예상을 벗어난 일이고, 진화성 조차 예상치 못했다.
“과연 실력이 조금은 있구나. 감히 나를 도발 할 만하군.”
진화성은 수십 장 너머로 물러난 세 사람을 바라보곤 한 걸음 내딛으며 이어서 말했다.
“그래도 소용없다. 너희는 오늘 전부 죽을 테니까. 한 놈도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
여명홍은 잠시 마음이 아픈 듯 소현무의 방패를 바라보다 이내 정신을 차렸다.
단진풍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진화성의 실력은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요 며칠간 조용히 지내다 잠깐 건방을 떨자 마자 이리도 강한 상대를 맞닥뜨리니 저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엽운은 여전히 담담한 모습이었다.
조금의 놀라움도 없었고, 두려움은 더욱이 없었다.
“자포 제자의 수위는 고작 이정도군. 한 방에 우릴 죽이지 못했으니 다시 기회가 없을 거다. 오늘 이 일격은 훗날 반드시 돌려주지. 그때까지 살아있길 바라마.”
진화성은 자신의 귀를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가 방금 뭐라 지껄인 것인가?
그야말로 오만함의 극치다.
“설마 이 일격이 전부라 생각하는 건가? 그렇다면 이것도 보여줘야겠군.”
한 발 내딛으며 손을 흔들었다.
한 줄기 빛이 그가 만든 계곡에서 솟아 손바닥 위로 떨어지자, 얇고 긴 군도가 다시 한 번 나타났다.
“그럴 필요 없다. 영패나 잘 모아두어라. 시합이 끝나는 날이 네가 죽는 날이 될테니.”
엽운은 냉소를 지어 보이곤 단진풍과 여명홍을 데리고 밀림 속으로 다급히 달려가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진화성은 세 사람이 한 마디 경고를 내뱉고 떠나버릴 줄은 몰랐다.
두 번 째 검은 꺼낼 수 없게 됐고, 그는 저도 모르게 어안이 벙벙해졌다.
곧 정신을 되찾았고 싸늘한 시선으로 주위를 훑어보았다.
모두들 그와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방금 보여준 실력은 모두 공포에 떨게 만들었고, 일격의 위력은 이미 머릿속에 깊이 각인 되었다.
“흥, 가자!”
진화성은 콧방귀를 뀌며 함께 온 제자 몇 명을 데리고 몸을 돌려 떠나버렸다.
떠나자마자 같은 흑포를 입은 제자인 종응이 군중 사이에서 나왔고, 엽운 일행이 사라진 밀림을 향해 걸어갔다.
“보아하니 이번 시험의 상대는 진화성이다. 자포 제자에서 떨어져 내려왔을 줄은 몰랐군. 수위를 한 층 빼앗겼는데도 이 정도라니, 모두들 나중에 그를 만나면 조심하도록.”
“방금 전의 그 칼, 너희들 중 누가 막아낼 수 있지?”
종응은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다시 물었다.
뒤에 있던 몇 명의 흑포 제자들은 멍하니 서있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일격의 위력은 너무도 놀라웠고 감히 당해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괜히 물어봤군. 너희들은 연기경 1중에서 2중 정도인데, 방금 그 칼을 막아낸다는 건 확실히 불가능하겠구나.”
종응의 눈에서 음산한 기운이 스쳤다.
그의 수위는 연기경 4중으로 수위를 한 단계 빼앗겨 흑포 제자로 돌아온 진화성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진화성이 수위를 빼앗겼어도 아직 연기경 5중인 인왕경임을 알고 있었다.
인왕과 연기 4중 벽곡경은 한 단계의 차이지만 경계의 깨달음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만약 그가 진화성과 맞붙는다면 결코 승산이 없을 것이다.
“진화성과 엽운 일행은 이미 숙적이 됐으니, 이번 대회에서 분명 둘 중 하나는 탈락할 것이다. 물론 둘이 싸우다 죽으면 어부지리가 될 것이고.”
종응은 밀림을 보며 입가에 음산한 미소를 띄었다.
“우린 남은 날 동안 놈들을 찾지 않고, 먼저 머저리같은 놈들을 잡아 놈들이 찾은 영패를 빼앗으면 되겠군.”
종응은 연신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