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7 화 생사불문
연무전의 광장에는 수천 명의 제자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었는데, 대련에 참가하지 않은 이들까지 구경을 하러 왔다.
엽운과 단진풍 그리고 여명홍 세 사람은 함께 서 있었다.
그들의 옆에 있는 자들은 거의 대부분 신입 외문 제자들과 입문한지 얼마 안 된 제자들 이었다.
“단 사형, 이번에 실력 발휘 제대로 해주셔야 합니다. 저 얼간이들이 정신 차리게끔 말입니다.”
청색 옷을 입은 외문 제자 한 명이 주먹을 감싸 쥐고 격려를 보냈다.
“맞습니다. 엽 사형, 단 사형. 두 분의 실력은 저희 제자들 중 최강이니 분명 저들에게 우리들의 무서움을 알려줄 수 있을겁니다.”
“엽 사형은 종문 시험에서 1등을 하고 살아 돌아와 중품 영기까지 받았잖아. 당연히 더 강해졌을거야.”
“단 사형의 실력도 엽 사형이랑 엇비슷할텐데, 두 사람이 결승까지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되면 우리처럼 입문한지 몇 년 안 된 제자들도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있지. 저 녀석들 늘 제멋대로 굴기나 하고, 지들이 우리보다 잘난 줄 안단 말이야.”
“사형, 사형들께서는 입문한지 3년이나 되지 않으셨습니까. 저희는 이제 갓 두 달이 되었습니다만, 사형들께서는 어찌 저 둘을 사형이라 칭하십니까.”
“이 녀석이 뭘 모르는군. 천검종에서 형제를 구분하는 것은 세월이 아니라 수위야. 수위가 높은 사람이 형이고, 강한 사람이 어른이라고. 엽운과 단진풍의 수위는 우리를 한참 넘어섰으니까 당연히 사형이지.”
“그렇군요. 그럼 엽 사형과 단 사형 께서는 저희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 우리는 엽 사형과 단 사형을 따라가면 되는거야.”
입문한지 3년이 채 안 된 외문 제자 백 명 남짓이 세 사람을 애워 싼 채 각자 의견이 분분했다.
단진풍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비록 요 며칠간 조금은 조용해졌지만 원래 뼛속부터 시건방진 인물이다.
대묘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세상이 넓음을 알려주었고, 자신의 수위가 하룻강아지 수준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해줬다.
강한 힘을 가진 자 만이 자신의 운명을 손에 쥘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어렸고, 나이는 열여섯 일곱 밖에는 되지 않았다.
마음속의 거만함은 사라진 적이 없었는데, 지금 군중의 추대를 들으니 저도 모르게 다시 스멀스멀 피어난 것이다.
“당연하지, 잘 봐두거라. 저 흑포 제자 녀석들은 수위가 얼마나 높던 대부분은 똥주머니에 지나지 않거든. 날 만나면 살려달라고 싹싹 빌게 만들어 줄테다.”
“맞습니다. 단 사형, 꼭 저희들의 한을 풀어주십시오.”
“누구 말하는 거냐? 저 황포 제자 놈들이 뭐 볼게 있다고. 한 놈당 주먹 한 대면 충분한데, 두들겨 패봐야 내 손이나 더럽히는 격이지.”
단진풍은 몇 사람의 시선이 황포 제자들에게 향하는 것을 보고 순간 눈썹을 치켜 올렸다.
“황포 제자는 당연히 사형의 상대가 될 수 없지요. 저기 저 두 명의 여 제자를 보고 있었던 겁니다. 꽤 예쁘게 생겨서 사형께 소개시켜드리고 싶네요.”
단진풍은 웃으며 욕했다.
“집어치워라!”
엽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의 성격은 단진풍과 전혀 달랐다.
변방의 가난한 마을 출신이고, 어려서부터 사는 게 쉽지 않음을 깨달았기에 행실이 진중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전 진화성에게 한 것처럼 입을 놀리거나 하는 일은 사실 본심이 아니었다.
그저 수위를 높인 것에 들떠 자신만만한 상태였고, 결국 어린 소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비아냥거리고 만 것이다.
먼 곳을 보던 엽운의 시선은 흑포 제자들에게 멈췄다.
한 번 훑어 보았는데, 위험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인물이 전혀 없었다.
어쩌면 실력을 꽁꽁 숨기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아직 느끼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정말 아무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금강의 육체를 완성했기에 연기경 4중 이하의 공격은 몇 번 쯤은 막아낼 수 있는데, 적어도 두 세번 정도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번 시합은 재미가 없을 수도 있겠군.”
엽운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연무전의 입구를 바라봤다.
그의 마음은 어딘가 변했는데, 그동안 자신보다 지위와 수위가 모두 높다 생각했던 흑포 제자들을 열흘도 안 돼서 추월해 버린 것이다.
“엽운, 뭔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냐?’
단진풍은 가만히 서 있는 엽운을 보더니 물었다.
엽운은 그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우리의 상대가 누구일거라 생각해? 진정한 상대 말이야.”
단진풍은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흑포 제자들이 아니겠어? 어쨌든 저들 중 상당수가 연기경의 수위를 가지고 있으니까 아무래도 조심해야겠지.”
“저들은?”
엽운은 시선을 돌리며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누구 말하는거야? 설마 어젯밤 사이 중품 영기를 연화하는데 성공한거야?”
단진풍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젓곤 이어서 말했다.
“아니지, 그 중품영기는 너한테 아무 것도 아니잖아. 설마 수위를 또 올린거야? 근데 아직도 연체경 7중인 오기경으로 보이는데 말이야.”
엽운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단 사형, 너와 나 정도 수위와 재능이라면 머지않아 연기경을 돌파하겠지. 기초도 탄탄하고 영력도 많이 모았기 때문에 일단 돌파하면 연기경 초기는 단박에 건너 뛸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시야를 너무 제한해서는 안 돼. 저 흑포 제자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단진풍의 얼굴에서 오만한 표정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는 잘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설마, 자포 제자들을 상대할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우리가 이 곳에 온 이후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던 자포 제자를?”
“아니, 만난 적 있어.”
엽운이 천천히 말했다.
단진풍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혹을 품었다.
그가 입문한 이래 그는 분명 자포를 입은 제자를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소문에 의하면 자포 제자들은 평소에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으며, 그들의 임무는 오직 수련을 통해 빠르게 수위를 올리는 것뿐이라고 한다.
엽운은 먼 곳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이야기했다.
“군약란, 모용무흔, 분명 그들은 전부 자포 제자였지. 심지어 내문 제자들 중에서도 특출난 인재로 뽑혀 종문의 정예 제자나 수제자가 되었을 수도 있어.”
“군약란? 모용무흔?”
단진풍은 어안이 벙벙했다.
곧 표정이 심각해지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엽운의 뜻을 이해한 듯 오만방자한 기색이 남김없이 사라졌다.
그렇다. 그와 엽운은 대묘에서 살아 돌아올 만큼 운이 좋은 제자들이니, 훗날 분명 끝도 없는 성취를 이루게 될 것인데, 어찌 이곳의 외문 제자들과 교전을 벌여 힘을 낭비하겠는가?
순간 단진풍의 수련 목표마저 변했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자포 제자들이 있는 곳이었다.
여러 제자들은 잔뜩 격앙되어 엽운과 단진풍을 응원했다.
여명홍은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는데,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단지 눈에서 이따금 빛이 번쩍였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곤 했다.
연무전의 바깥에서 란 장로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 옆에는 여전히 천촉봉의 외문 대장로 순우연이 함께했다.
“조용!”
순우연의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퍼졌다.
아주 온화한 목소리였지만 귀에 선명히 들려왔다.
순간 광장 전체가 조용해져 시끄러운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던 새들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와 몹시 듣기 좋았다.
“어제 참가를 신청한 사람은 총 347명이다.”
순우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살을 에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대장로님, 구체적인 절차는 저희들 모두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씩 붙어서 마지막의 30명을 뽑는 것이지요.”
약간 흥분한 듯한 종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응은 어제 두 명의 세상 물정 모르는 제자들이 함부로 말을 꺼냈다가 란 장로에게 죽임을 당한 것을 그제야 떠올렸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너희들 중 수십 명은 이미 적어도 한 번, 심지어 두 번 까지 내문 제자 시험에 참가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단지 탈락했을 뿐이지. 그러니 참가 자격 쟁탈전은 더욱이 익숙할 것이라 생각한다. 너희들이 말했듯 작년까지는 두 명씩 붙어서 최후의 승자를 가리는 방식이었지.”
순우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잠시 멈추더니 제자들을 천천히 훑어봤다.
“하지만 이번 쟁탈전은 이전과 다르다. 전에는 두 명씩 짝을 지어 싸웠지만 이는 너무도 단조로워 너희들의 수위를 시험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사실 특별할 것도 없었지. 따라서 종문은 임시적으로 이번 시험에서 너희들을 무영봉의 뒷산인 취봉에 열흘 간 보낸 뒤, 열흘 후에 30명을 뽑기로 결정했다.”
연무장에 서 있던 제자들은 일제히 넋이 나갔다.
“이번 시험은 수위와 깨달음을 본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어째서 또 바뀐 것입니까?”
종응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순우연은 빙긋 웃었고, 조금도 화를 내지 않으며 말했다.
“말 그대로 수위와 깨달음만을 평가하기 때문에 너희를 취봉에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취봉은 고등급 요수들이 있는 곳이고 그 곳의 독취왕은 9급 요수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녀석인데, 저희가 어찌 당해냅니까?”
종응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9급 요수가 뭐 어쨌다는 거냐? 연기경 4중의 수위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종응 너도 연기경 4중인데 어찌 9급 요수를 두려워하는 게냐. 부끄럽지도 않으냐?”
란 장로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 짐승은 9급 중에서도 정점이니 연기경 5중은 되는 힘을 가졌고, 심지어 6중 까지도 넘볼 수 있는데, 저희가 어떻게 맞서겠습니까?”
종응은 란 장로의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좋다. 구체적인 규칙은 내가 말해주마.”
란 장로가 이어서 말했다.
“모든 이들은 잠시 후 취봉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취봉에는 30개의 영패가 숨겨져 있는데, 이 30개의 영패를 얻고 열흘간 다른 이에게 빼앗기지 않은 제자는 내문 제자 시험을 볼 자격을 얻게 된다. 이 열흘 안에 너희들은 서로 싸워도 좋으며, 생사와 상관없이 승부를 벌여도 좋다.”
생사와 상관없이 승부를 벌인다니!
연무전 광장의 제자들은 일제히 숨을 들이마셨다.
시험의 규칙은 너무도 혹독했다.
하지만, 수선의 길은 원래 이토록 잔혹한 것이고, 종문을 떠나는 순간 열 배, 아니 백 배는 더 잔혹해진다.
만약 종문 안에서 벌어지는 혹독한 수련을 견디지 못한다면 종문을 떠나봤자 수위밖에 없는 햇병아리일 뿐이기에 타인에게 이용만 당한다.
“그러나 너희들은 목숨을 지켜주는 부적을 하나 씩 받게 될 것이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부적을 깨뜨리면 즉시 취봉 밖으로 전송된다. 만약 한 발 늦게 부적을 깨뜨린다면, 그땐 정말로 생사를 장담할 수 없겠지!”
순우연은 놀라 굳어진 제자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무거운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대부분의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엽운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눈에서 빛을 번뜩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