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146화 (146/227)

제 146 화 의외의 돌파

수십 가지 영약을 섞은 영수는 쇄선심법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고, 예전에 화운이 공들여 준비한 자양회복약 이었다.

화운은 금단경에 도달한 수사인데, 그가 만든 약은 당연히 높은 수준이었고, 육신의 회복을 돕는 신비한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가루가 된 영약이 물속으로 떨어지자 물통에서 기포가 올라오며 맑았던 물이 새카맣게 변했다.

엽운은 빙긋 웃으며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쇄선심법이 순식간에 시작됐다.

쇄선심법은 연기경 제자들에게 맞춰진 공법인데, 내부를 수련하는 방법은 진기의 정련을 통해 진기의 품질을 높이며 흡수의 속도를 조금 빠르게 만드는 것이다.

외부를 수련하는 방법은 당연히 육신을 단련하는 것이다.

지금의 수위는 아직 연기경에 달하지 못했기에 내부를 수련하는 방법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천촉봉 전체의 외문 제자들 중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자포 제자들을 제외하곤 그를 당해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단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기를 드러내길 그닥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특히 구유정령의 거울, 열염폭운과 빙백쇄혼 같이 품질이 극히 높은 중품 영기들은 더더욱 그러했다.

자영검 같은 것은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데, 자영검을 꺼내지 않으면 뇌운전광검의 위력이 발휘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엽운 정도의 수위라면 연기경 4중 쯤 되는 제자들도 두렵지 않았고, 분명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만약 육신을 단련하고 한 발 더 나아가 금강의 육체에 도달한다면 연기경 4중 이하의 수위로는 그에게 아무런 타격을 입힐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주먹과 자영검만 가지고도 간단히 30위 안에 들 수 있었다.

쇄선심법의 외부 단련이 천천히 시작되었는데, 체내의 영력에는 조금의 파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피부, 경맥, 그리고 골격과 피가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매우 신비로운 느낌이었는데, 놀랍게도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간지러웠으며 심지어 포근하고 상쾌했다.

“쇄선심법은 정말 불가사의 하군. 육체를 단련하는데 이렇게 상쾌할 줄이야. 나도 모르는 새에 육신이 단련 되는 것 같아. 충분한 자원만 있다면 쇄선심법은 육신의 내외를 동시에 단련할 수 있는 공법들 중 최고라고 할 수 있겠군.”

엽운은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 말았다.

몸이 찢기는 고통을 예상하고 이를 참아내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지금 같은 결과가 나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몸은 따듯한 감각에 젖어 편히 잠에 들 것 같았다.

막 잠에 든 순간, 느껴지던 간지러운 느낌이 별안간 뚝 끊겼고, 곧이어 근육이 부풀어 오르더니 순식간에 수십 갈래로 찢어졌다.

피 한 방울 한 방울마저 불에 타듯 열 배가 넘게 정련되었다.

뼈가 조여오다 별안간 커지며 이를 수백 번 반복하는 것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팽창과 수축이 한 번씩 반복 될 때마다 견딜 수 없는 쓰라린 아픔이 곳곳에 전해졌고, 금방이라도 혼절할 것 같았다.

엽운의 육신은 여러 차례 단련되었고, 선마지심 역시 단련되었다.

보라색의 그림자 또한 단련되었는데, 연마를 거듭함에 따라 고통을 견뎌내는 인내력은 연기경의 제자들을 아득히 넘어섰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지금 곳곳에서 전해져오는 고통은 도저히 그가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조금씩 의식이 흐려졌다.

천백 년 간 이 공법을 제대로 수련한 사람이 없고 내외의 수련을 동시에 이룬 사람도 없다더니, 그 이유가 알만했다.

이토록 흉악한 고통을 주는 심법인데, 심지어는 수련을 마친 후 경지의 상승이 얼마나 이루어질지 확실하지도 않다.

누구라도 이 정도 위험을 무릅쓰며 이런 공법을 수련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엽운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엄청난 고통 속에서 의식은 점점 희미해졌다.

의식이 빠져나가 통제를 잃게 되면 쇄선심법은 혼자서 날뛸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공법이 끝날 때쯤 이미 죽었거나, 수위가 모두 날아갔을 것이다.

“아니, 안돼. 버텨라.”

얼굴이 붉어지며 핏대가 섰다.

엽운은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여기서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저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할 뿐이었다.

지금 격렬한 파도 위의 작은 배 한 척 같이 오르락내리락 하며 언제라도 가라앉을 것 같았다.

뚝심을 보이며 끝까지 버텼다.

거대한 고통 아래에서 숨 한 번 쉬는 시간마저 길게 느껴진다.

아마 반 주향 정도의 시간이 지났지만 수 십년이 지난 것 같았다.

얼마인지도 모를 시간이 지나갔고, 거대한 파도 위의 쪽배 한 척 같던 엽운은 파도가 천천히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파도는 잠잠해졌고 조금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 몸에서 느껴지던 엄청난 고통도 천천히 물러갔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통제를 잃을 수도 있었다.

천천히 눈을 떴다.

조금 어두웠던 집 안이 환해진 것을 느꼈다.

눈을 들어 먼 곳을 보니 아주 작은 것들 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귀를 쫑긋 세워보니 문 밖의 마당에서 작은 개미가 기어가는 소리가 귓가에 전해졌다.

시력과 청력이 크게 상승한 것이다.

한참을 웃다가 몸을 일으켰다.

온 몸이 끈적끈적 했는데, 이는 아마도 수련이 극에 달해 온 몸의 불순물이 빠져나온 것 같았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몸에서 끈적임이 느껴지자 옷을 벗고 물통 속으로 들어갔다.

몸이 조금 전에 거의 찢어질 뻔 했는데, 가만히 내버려 둔다면 적어도 회복하는데 열흘은 걸릴 것이다.

그러나 화운이 만든 약수는 달랐다.

육신의 손상을 빠르게 회복시킬 수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상쾌한 기분이 모공 하나하나에서 전해져왔고, 순수한 약의 기운이 천천히 들어와 온 몸 구석구석을 회복시켰다.

눈을 감고 나무통에 몸을 기댔다.

경맥, 골격, 혈액, 근육, 그리고 오장육부 까지 천천히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모든 상처는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온 몸이 더욱 견고해졌음을 느꼈다.

마음만 먹으면 온 몸에 조금의 허점도 없게 만들어 강철과도 같이, 말 그대로 금강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쇄선심법 체외 수련의 첫번째 단계인 금강의 육체인가!

엽운은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잠시 후, 이것이 금강 육체의 힘임을 깨달았다.

곧 그는 크게 기뻐했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 내일의 시합을 위해서 그저 육신의 강도를 한 단계 끌어 올리는 것 정도를 기대했다.

그러나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느끼고 난 후, 생각지도 못하게 쇄선심법의 첫 단계인 금각의 육체를 돌파한 것이다.

금강의 육체는 연기경 4중 이하의 어떤 공격이라도 견뎌낼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비록 공격을 무한히 막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니지만, 고수들의 대전에서 공격을 두어 번 막는 것은 승부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방어의 힘이다.

절대적인 방어는 상대방을 곧바로 이길 수 있게 만들어 주지는 않지만, 곧바로 자신이 패배하게끔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물통 속의 새카만 약수는 천천히 맑아지기 시작했다.

모든 약 기운이 엽운의 몸으로 조금씩 흡수되었다.

약수가 완전히 맑은 물로 돌아오자 엽운은 몸을 일으켰다.

온 몸에 힘이 넘치는 것이 느껴졌고, 그 강력한 느낌은 언제든 다음 경지를 돌파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해주었다.

육신의 수련은 이미 극에 달했고, 체내의 영력 또한 일찍이 극한에 도달했다.

다음 단계를 돌파할 생각이라면, 대량의 영기를 흡수하는 것으로 충분히 가능했다.

단지 시간이 조금 필요할 뿐이다.

엽운은 육신의 강력함을 느끼며 체내의 영력을 물밀듯 쏟아냈다.

영력은 이미 더 이상 압축 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조금만 시간이 있으면 전부 진기로 연화되어 단박에 연기경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엽운은 창 밖을 바라보았다.

동쪽의 하늘에서 한 줄기 아침 햇살이 나타나 고요한 밤을 깨뜨렸다.

“시간이 부족하군. 일단 내려놓고 내일 돌파하면 돼.”

이미 적합한 시기임을 깨달았기에, 언제든 그가 원한다면 연기경을 돌파할 수 있었다.

“땡!”

은은한 종소리가 아침 햇살이 밤하늘을 가르고 지평선을 넘어오는 그 순간 울려 퍼졌다.

종소리는 모두를 소집하는 신호이다.

엽운은 웃음을 머금고 천천히 마당으로 나갔다.

연무전으로 향하는 길 위에는 이미 수십 명의 외문 제자들이 분주히 달려가고 있었다.

마치 먼저 도착한 사람이 내문 제자 심사의 참가 자격을 얻기라도 하는 듯 했다.

엽운은 연무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실력을 한 층 더 끌어올린 자신을 대견해했다.

“그렇게나 한가로이 돌아다니다니. 사리분별이 안되는 모양이군. 혹시 내문 제자 시험 자격이 아무나 따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 게냐?”

음흉한 목소리가 엽운의 뒤에서 울려 퍼졌다.

눈을 돌려 바라보니 두 명의 흑포 제자들이 뒷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한 명은 일전에 언쟁을 벌였던 진화성 이었다.

“당신한테는 대단한 일일지도 모르지. 근데 나한테는 분명 아무나 따낼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걸.”

엽운의 눈가에는 시큰둥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화성은 분명 이렇게 대답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는 저도 모르게 멍해졌다.

“하하. 말은 잘 하는군. 내 평생 들었던 이야기 중에 제일 웃기는구나. 설마 이번 쟁탈전이 종문 시험 참가 자격을 두고 벌였던 저번 시합이랑 똑같을 줄 아느냐? 저번 대련이 그저 시험이었다면 이번엔 생사를 걸고 벌이는 사투다.”

“생사를 건다고?”

엽운은 일부러 놀라는 척 소리를 지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죽고 내가 산다는거지?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은데.”

“입만 살은 녀석. 날 만나지 않게 기도나 열심히 해라. 그렇지 않으면 죽는 것 보다 못한 삶이 무엇인지 똑똑히 알려 줄테니.”

진화성의 눈에서 분노가 느껴졌다.

그가 보기에 엽운은 그저 보잘것없는 신입 외문 제자인데, 수위는 연기경에 도달하지도 못했으면서 오만 방자하게 굴며 함부로 행동하는 녀석이었다.

엽운은 큰 소리로 웃으며 앞을 향해 걸어갔다.

“진화성, 너나 날 만나지 않게 기도하라고. 날 만나면 말이야, 죽는 것 보다 못한 삶이고 나발이고 그냥 바로 죽음을 경험하게 해줄 테니까.”

진화성은 뒷쪽에서 엽운을 바라보았다.

싸늘한 시선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