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143화 (143/227)

제 143 화 베어 죽인다

내문 제자!

이것은 모든 외문 제자들이 가장 간절히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다.

그들이 부지런히 수련하고 임무를 완수하며 경지와 학식을 높이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내문 제자 심사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였다.

수천수만의 외문 제자들 가운데 내문 제자 심사를 볼 수 있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는데, 매년 3천명정도가 시험을 한 번 치루어 볼 수 있었고, 그 정원은 수십 명 밖에는 되지 않았다.

외문 제자들에게 내문 제자 심사란 천군만마가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치열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문 제자 심사는 수위만 보는 것이 아닌 나이와 수위, 잠재력과 성격등 여러 방면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종합 승부에서 이기는 제자만이 내문 제자가 될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심사의 정원이 이렇게나 적음에도 엽운을 포함한 세 사람은 곧장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자격을 얻었고, 이는 무대 아래의 제자들이 격앙하며 불만을 터뜨리기 충분한 일이었다.

“저 셋은 이제 갓 들어온 신입 제자들인데, 어찌 내문 제자 심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주시는 겁니까?”

황색 도포를 입은 제자 한 명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

“맞습니다. 저희들은 종문을 위해 수년간 고생하며 공로를 세웠음에도 그 자격을 얻지 못했는데, 어찌 저들에게 주시는 겁니까?”

“설마 아흔 명이 넘게 죽었다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 선심을 베푸는 겁니까? 종문의 규율은 언제나 냉정하며 인정이라곤 없지 않았습니까?”

어떤 이는 비웃기 시작했다.

“만약 이번에 저들에게 이런 식으로 심사를 받을 자격을 쥐어준다면, 훗날 신입 제자들이 더 들어오면 어떨까? 그때 가서는 종문의 법 따위는 소용도 없겠지. 종률전에서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군.”

광장 위 수천 명의 외문 제자들이 격앙된 목소리로 반대했다.

란 장로는 미간을 찌푸리며 곧바로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아하니 너희들 모두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감히 종문의 결정에 반박을 하다니. 정 그렇다면 반대하는 녀석들은 시험에 참가할 필요 없다.”

대장로 순우연 역시 이를 예상하지 못한 듯 화가 잔뜩 난 표정을 지었다.

“대장로님, 저들은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질투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저 세 명의 사제들은 종문의 시련에서 돌아왔고, 그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니 후한 포상을 받아 마땅하지요. 앞서 주신 중품영기만 해도 저희들은 만져 볼 수도 없는 보물입니다. 이렇게 후한 상을 하사하셨는데 거기다 내문 제자 심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까지 주신다 하니 다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종응의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퍼졌다.

그는 검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종 사형의 말씀대로 입니다.”

“내문 제자 시험의 정원은 줄곧 대련을 통해 정해지곤 했는데, 어찌 그리 쉽게 주실 수 있습니까?”

“맞습니다. 아니면 그들에게 법대로 대련을 진행하게 해주십시오. 만약 그들이 이길 수 있다면 저희도 할 말이 없지 않겠습니까.”

종응의 말에 외문 제자들은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란 장로의 미간이 다시 한 번 펄떡이며 발작을 일으켰다.

그때 엽운이 앞으로 나가 광장 위 수천 명의 외문 제자들을 향해 빙긋 웃으며 천천히 말했다.

“사형들께서 저희가 대련을 통해 내문 제자 시험에 참가할 자격을 얻기를 이토록 원하시는데, 저희가 거절하는 것도 말이 안 되겠지요. 이렇게 된 이상 저희 세 사람은 대련에 참가하겠습니다. 나중에 사형들을 적으로 만나도 봐주지 않을겁니다.”

엽운의 목소리는 전혀 우렁차지 않았지만, 그의 말은 공간 구석구석을 가득 채우며 모든 이의 귓가에 맴돌았다.

종응과 다른 제자들의 안색이 변했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이제 갓 연체경의 정점에 오른 외문 제자의 목소리가 수천 명이 떠들고 있는 시끄러운 공간을 뚫고 선명하게 울려 퍼진 것이다.

이는 결코 연체경 정점의 수위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종응과 제자들은 서로를 한 번씩 바라보더니 아랑곳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렇게 나온다면 인정하지.”

광장 위 수천 명의 제자들은 일제히 어안이 벙벙해졌고, 곧 함성이 터져 나왔다.

엽운의 태도는 분명 그들의 요구에 부합했는데, 내문 제자 시험은 도합 수십 명 밖에는 볼 수 없기에 그 가운데 엽운 일행이 세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당연히 탐탁치 않을 것이다.

“어이, 너희 세 놈이 감히 대련에 참가해 시험을 볼 자격을 얻으려 한다니, 정말이지 주제넘는구나.”

조롱이 가득 담긴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검은 옷을 입은 제자 한 명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엽운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뭐지? 날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냉소를 지으며 엽운을 바라보았다.

엽운은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시덥지 않은 사람을 기억하는 데에 기력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너 이 자식.....”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어안이 벙벙해졌고, 곧 눈에 분노가 가득 찼다.

“좋아. 아주 좋아. 감히 내문 제자 심사 자격을 위한 대련에 참가하겠다하니, 나 진화성을 맞닥뜨리지 않기를 빌어라.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나온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줄테니.”

“어, 이름이 진화성 이군요. 죄송하지만 아직도 기억이 안나는 걸요.”

엽운은 일부러 놀라는 척을 하며 고개를 돌려 말했다.

“단 사형, 어쩜 대묘에서 만난 건방진 녀석들이나 이 녀석들이나 하나같이 입을 놀리는 수련만 제대로 했을까요.”

“누가 아니래. 아무래도 주둥이의 수위는 17중에서 18중 쯤 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상대도 안 되겠군.”

단진풍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근데 난 보통 이런 놈들을 만나면 살수를 꺼내거든. 두들겨 패서 무릎 꿇리고 목숨을 구걸하게 만들지.”

엽운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갈수록 마음이 잘 맞는 것 같네. 생각하는 게 비슷하잖아.”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웃기도 하였는데, 온통 비웃음이 가득했다.

진화성은 3년 전에 이미 흑포 제자가 되었고, 수위는 이미 연기경 3중에 도달했다.

근 2년 간, 그보다 수위가 낮은 제자들 중 그 누구도 감히 이처럼 말하지 못했다.

엽운과 단진풍의 비웃음을 들은 그는 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닥쳐라! 네 놈들은 겁도 없군. 감히 내 앞에서 서로 비아냥대기나 하고 말이야. 나와 대장로님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구나.”

란 장로가 크게 노하며 말했다.

눈빛은 날카로운 검처럼 그들을 향해 쏘아졌다.

진화성은 콧방귀를 뀌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엽운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엽운 네가 먼저 심사를 받을 자격을 포기했으니, 그렇다면 규칙대로 내일 열리는 자격 쟁탈 대회에 참가 하거라. 너희 세 사람의 수위는 이미 연기경에 가까워졌으니 분명 승산이 있을 것이다.”

“란 장로님께 감히 여쭙건데, 대회의 규칙이 어찌 됩니까?”

엽운은 몸을 굽히며 말했다.

란 장로는 곧바로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군중을 훑어본 뒤 말했다.

“이번 심사 자격 쟁탈전은 예전과 다르다. 예전에는 경지, 선기, 단약, 그리고 재능 등 다방면에서 종합적으로 심사하여 마지막 30명을 뽑았다. 이번 대회에서는 수위와 자신의 경계에 대한 깨달음만을 기준으로 두 사람이 겨루어 점수를 매기게 되고 그것이 너의 등수가 된다.”

순간 어리둥절해진 한 제자가 곧 큰 소리로 외쳤다.

“이건 불공평 합니다. 저는 근 2년간 단약만을 연구해왔는데 그게 전부 헛수고가 되는 겁니까.”

“맞습니다. 요 몇년간 선기만을 연마해온 저는 선기와 공법을 극한으로 수련했습니다. 만약 이런 방식으로 대회가 열리게 되면 이 또한 헛수고가 아닙니까?”

또 다른 제자가 큰 소리로 반대했다.

란 장로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눈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옷깃이 흔들리더니 두 줄기 빛이 소매에서 나와 순식간에 두 사람의 가슴을 때렸다.

두 제자는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고개를 떨구어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는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붉은 피가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고, 이어서 격렬한 통증이 이어졌다.

순식간에 눈앞이 캄캄해져 광장 위에 쓰러졌고 더 이상 기척이 없었다.

“보아하니 내가 너무 너희들에게 관대했나 보구나. 종문의 규칙은 까맣게 잊고 나와 대 장로에게 말대꾸를 하다니, 오늘 너희를 벌하지 않으면 훗날 더 큰 일을 저지르겠구나.”

란 장로의 싸늘한 말소리가 연무전에 울려퍼졌다.

손 한번 까딱하는 사이 두 명의 황포 제자들이 죽어버렸고, 이는 수천 명의 외문 제자들의 마음을 뒤 흔들었다.

그제야 자신들이 천촉봉의 소속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란 장로와 순우연이 그들의 삶과 죽음을 결정한다는 것을 기억했다.

이렇게나 연거푸 명령에 불복한 자에 대한 처벌은 종률전에서도 두둔하지 않는다.

순간 연무전 전체가 조용해지며 적막이 흘렀다.

기온이 순식간에 떨어진 것 같았고, 제자들은 찬바람을 맞기라도 하는 듯 몸을 떨었다.

“잘 하셨습니다. 감히 장로님의 권위에 도전하다니, 죽어 마땅하지요.”

종응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며 조용한 허공에서 메아리 쳤다.

“맞습니다. 잘 죽이셨습니다! 뭐하는 녀석들인지 원, 종문의 규율도 다 잊어버리고 말이야.”

“몇 년 동안 장로님들이 용인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저희가 이토록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겠습니까.”

“이번 대회는 분명 장로님들께서 정하신 게 아닌 종문의 고위층에서 내려온 결정인 것 같다. 감히 반대했다간 생사를 장담할 수 없을거야.”

순간 무수히 많은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그들은 바닥 위에 널부러져 있는 두 구의 시신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듯 란 장로의 결정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단상 위에서 눈을 부릅뜬 채 입을 벌리고 있었다.

몇 년 째 천촉봉에 숨어있던 이 교활한 늙은이들은 전부 낯가죽이 두꺼운지, 일순간에 얼굴을 갈아치웠다.

“좋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결정하는 것으로 하지.”

란 장로는 뒷짐을 진 채 사람들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엽운이 호기심에 물었다.

“란 장로님, 대회는 수위와 경지에 대한 깨달음만 가지고 평가한다 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수위를 비교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누구의 수위가 더 높은지 겨루거나, 경기장에서 떨어지면 탈락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경계에 대한 깨달음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결국 경계란 허무맹랑한 것으로 말로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위를 가지고 대회를 벌인다는 것은 수위를 논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지. 경기장에서 한 바탕 겨루고, 승자는 본선에 진출하며 패자는 탈락한다. 그리고 경계의 깨달음이란, 자연히 너희들의 경지에 대해 깨닫는 부분이 있을터이니, 때가 되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것이다.”

란 장로는 엉뚱하게도 관용이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엽운은 감사의 인사를 올린 후 눈을 가늘게 뜬 채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경계를 깨닫는다는 것은, 설마 그들이 법진으로 가득한 공간에 들어가 연기경을 깨우치는 것인가? 아니면 어떤 기묘한 법칙이라도 있는 것인가? 먼저 깨닫는 자가 승리하는 것인가?

엽운의 실력이라면 수위를 겨루어 30명 안에 드는 것쯤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경계의 깨달음이라는 말은 그를 호기심과 기대로 충만하게 만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