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141화 (141/227)

제 141 화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엽운은 좋은 곳이 어디인지 몹시 궁금했다.

자 장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너는 천촉봉에 남고 싶으냐,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으냐. 무영봉이 아닌 다른 곳도 괜찮다.”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무영봉이 아닌 다른 곳에도 그를 보낼 수 있다니, 자 장로의 능력은 분명 엄청날 것이다.

“저는 아무래도 무영봉에 가고 싶습니다. 물론 천촉봉에 남는 것도 아주 좋을 것 같구요.” 엽운은 당장 많은 자원이 필요하지 않았고, 숨어서 수련할 곳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쉽다. 내가 좋은 곳을 하나 알고 있으니, 어떤지 보거라.”

자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영봉주 소호는 내가 잘 알고 있다. 만약 네가 원한다면 무영봉의 제자로 추천해 줄 수도 있다.”

엽운은 순간 멍해졌고, 그의 머릿속에 많은 가능성이 떠올랐다.

어쩌면 천검종의 고위층에서 거두어 갈 수도 있고, 또 어쩌면 자신이 천검종의 촉기경 강자 한 명을 골라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또 어쩌면 자 장로가 친히 가르칠 수도 있는데, 결국 소흡성결은 자 장로의 선조인 진화도가 수련했던 공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엽운은 자 장로가 말한 좋은 곳이 소호의 무영봉일 줄은 몰랐다.

무영봉이라면 분명 훌륭한 거처가 될 것이다.

천촉봉 자체도 무영봉 휘하의 분당일 뿐이고, 무영봉의 아래로는 이런 곳들이 적지 않았다.

무영봉인 소호는 촉기경의 강자이고 무영봉 전체를 다스리고 있는데, 제자가 된다면 분명 엄청난 성장을 이룩할 것이다.

심지어는 훗날 자리를 이어받아 무영봉의 통치자가 될 수도 있다.

자 장로는 엽운이 이미 무영봉의 소호를 만났다는 것을 몰랐다.

더구나 직접 엽운에게 자신의 제자가 될 것을 제안했고 엽운이 고개만 한 번 끄덕이면 그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 됐을 것이며, 그렇게 됐다면 곧장 신분이 상승하여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당장 신분 따위는 필요 없고, 자원도 필요 없었다.

심지어 너무 강력한 공법도 원하지 않았는데, 소흡성결과 선마지심, 그리고 충분한 자원만 있으면 수위의 발전 속도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믿을 수 없을 만큼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데, 천촉봉 전체의 진귀한 재료들을 끌어 모아도 지금 가진 것들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수많은 보물들과 영석이 있었기에 족히 십년간은 수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게다가 진귀한 재료들 역시 아주 많이 가지고 있는데, 엽운은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었다.

아는 것이라곤 화운이 육신을 빼앗아 부활하기 위해 모아둔 재료라는 것뿐이다.

만약 엽운이 천검종을 떠나 진나라의 왕가에 들어갈 기회가 생긴다면 이 재료들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련 경험이 아주 풍부한 사부의 지도였다.

또한 사부는 지나치게 엄격하고 세심하게 교육하는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많은 시간을 투자해 스스로 수련하는 것이었기에, 그저 수련을 하다가 문제가 생길 때 사부에게 해답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까다롭지 않다면 까다롭지 않은 조건이겠지만, 이 같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사실 몹시 어려운 일이다.

“저는.......”

엽운은 할 말이 있었지만, 말문이 막혔다.

“뭐냐?”

자 장로는 미간을 씰룩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내가 말한 좋은 곳으로 가기 싫은 것이냐? 잘 들어라. 만약 내가 너를 소호의 문하에 보낸다면 너는 그의 10대 제자 중 마지막 한 사람이 될 것인데, 그게 얼마나 큰 영예인지 아느냐?

엽운은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 장로님, 제가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돌아오기 전에 무영봉에 들렀고 그 곳에서 봉주대인도 뵈었습니다. 그런데 봉주 어르신께서 장로님과 똑같은 제안을 하셨지요. 저를 거두어 들이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거절했느냐?”

자 장로는 어리둥절해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잠시 기다렸다.

자 장로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듯 했다.

다른 제자들은 소호의 문하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것을 위해서 머리가 깨지도록 고민을 할 것이다.

하지만 엽운은 무영봉에서 소호가 어떤 신분인지를 충분히 알면서도 제의를 거절한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엽운, 그게 정말이냐?”

자 장로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거절했습니다.”

자 장로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엽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 그가 유유히 말했다.

“설마 내 밑으로 들어오고 싶은 것이냐?”

엽운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곧 그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만약 자 장로님께서 원하신다면, 저는 당연히 좋습니다.”

자 장로는 어찌나 대단한 인물인지 소호조차 그를 공경할 정도였다.

또 수청훤을 몹시 친숙하게 이름으로 부르는데다 총애까지 느껴졌으니, 소호 부부와 사이가 몹시 좋고 심지어 깊은 관계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소흡성결은 근 수백년간 자 장로의 선조인 금단수사 진화도와 엽운 두 사람 만이 수련해 낸 공법이니 마침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고, 더 할 나위 없이 적합한 스승일 것이다.

자 장로는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정 그렇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지. 하지만 내 핏줄은 나 밖에 남지 않았고, 아무도 없다. 게다가 중요한 일을 하나 해야 하기 때문에 너를 직접 가르쳐 줄 수도 없으니, 내 문하에 들어오는 것은 너에게도 적합하지 않을게다.”

“그럼 아무래도 자 장로님께서 좋은 곳에 보내주시는 편이 좋겠네요.”

엽운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내가 한 번 고민해보도록 하마. 내일 포상을 받고나서 다시 나를 찾아 오거라.”

자 장로는 바닥에 내려놓은 대나무 바구니를 들고 손을 흔들었다.

엽운은 몸을 굽혀 인사를 했다.

“맞다, 꼭 기억하거라. 수행은 하루아침에 빠른 성장을 이룩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기초를 더 단단히 다지면 훗날 폭발적인 위력을 낼 수 있을게다. 또 소흡성결은 결코 자주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여려가지 영기들을 지나치게 흡수하게 되어 마음속에 마귀가 들게 된다.”

자 장로는 엽운을 불러 세우고 숙연한 표정으로 당부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 장로님의 말씀, 한 구절 한 구절 잘 새겨 듣겠습니다.”

그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 없었다.

수선의 길은 잔혹하기 그지없다.

만약 오직 수위를 올리겠다는 생각만 하고 그것을 견고하게 다지지 않는다면 마가 끼기 쉽상이고, 중요한 순간에 마귀가 나와 그를 조종하며, 영혼과 육신을 모두 빼앗기게 된다.

“좋다. 난 이만 가보도록 하마. 내일 다시 오거라.”

자 장로는 손을 흔들며 대나무 바구니와 호미를 들고 대나무 숲 속으로 들어갔다.

엽운은 뒷모습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천촉봉에서 도합 백 명의 외문 제자들이 화운비장에 들어갔고, 살아서 돌아온 것은 그와 단진풍 그리고 여명홍 뿐이었다.

이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가 천촉봉의 모든 제자들의 귀에 들어갔다.

제자들 중에는 존경을 표하는 이들도 있었고,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었고, 질투를 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전혀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종문의 시험에서 살아 돌아왔으니, 분명 20개의 상품영석과 중품영기 하나를 받겠지? 이번 기회에 세 사람은 분명 크게 발전할거야.”

“영석이 뭐 대수라고, 열심히 임무를 수행하기만 하면 언젠가 상품영석 20개쯤은 모을 수 있어. 그런데 중품영기는 우리가 상상이나 해볼 수 있을까? 그건 고려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고. 수위가 높은 천촉봉 내문의 정예 제자들도 모두 중품영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텐데.”

“맞습니다 사형. 세 사람이 확실히 한 건 올렸죠.”

“방금 들은 소식인데, 듣자하니 이번 시련에서 고작 세 사람밖에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에 종문에서 그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해준다고 하더군.”

“에이, 고작 엽운이나 단진풍 정도의 수위로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걸 진작에 알았더라면 그 보상을 받는 건 나 였을텐데.”

“하하, 꿈 깨라. 수선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운이라고. 네가 어디가 운이 좋냐? 운이 좋았다면 10년 동안 천촉봉에서 시간 낭비나 하고 있지는 않았겠지.”

“저는 그저 사형을 생각해서 애쓰는 것뿐입니다. 아쉽군요.”

“그러고 보니, 만약 다음에 종문의 시험이 열리면 우리도 참가를 고민해봐야겠군.”

천촉봉의 외원의 모든 외문 제자들은 소곤거리며 왈가왈부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 사람에게 질투 이외에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이번에 그들에게 하사되는 보상은 너무도 후했기에, 평범한 외문 제자라도 그 정도의 상을 받으면 3년에서 5년 동안은 수련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중품영기를 손에 쥔다면 더 높은 등급을 도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땡!”

다음 날 아침 해가 대지 전체를 밝힌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모든 외문 제자들의 귓가에 들려왔다.

한 무리의 외문 제자들이 빠르게 나타나 연무전을 향해 달려갔다.

엽운은 마당을 나서자마자 걸어가던 단진풍과 여명홍을 발견했다.

“엽 사형, 저와 단 사형은 준비가 끝났습니다. 듣자하니 이번에는 사망률이 너무도 높아서 종문에서 특별히 추가로 포상을 한다 하더군요. 영석과 중품 영기 외에도 다시 연무전에 들어가 8품 선기를 하나 고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여명홍은 어디서 이런 소문을 들었는지, 엽운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말했다.

미간을 씰룩이던 단진풍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여 사제,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은 거야?”

엽운의 입가에 웃음기가 서렸다.

여명홍이 들은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번에는 그에게 꼭 맞는 공법을 고를 수 있다.

이전에 뇌운전광검과 소흡성결을 고르기 위해 다른 공법을 선택해 수행하지 못했고 여전히 기초심법 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엽 사형, 단 사형, 드디어 우리 형제들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연기경을 돌파하는 것 정도는 식은 죽 먹기가 되겠죠. 그 다음엔 분명 내문 제자로 승급 될 겁니다.”

여명홍은 빙긋 웃었다.

목소리에는 감격이 가득했다.

“됐어. 나중 일은 나중에 얘기하고, 다들 마음의 준비가 됐으면 그만 인거야.”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자. 이번에 모두를 소집한 건 분명 우리 때문 일거야. 란 장로님과 순우연 장로님을 오래 기다리게 해서는 안되겠지.”

말이 끝나자마자 앞장서서 연무전이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단진풍은 재빨리 따라붙었다.

기쁨이 서린 눈으로 여명홍과 엽운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쏜살같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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