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0 화 좋은 곳
엽운이 오자마자 자 장로를 만나려 한 까닭은, 오직 자 장로만이 살아 돌아온 자를 좋은 곳에 데려가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소호의 표정과 말투를 보면 자 장로는 결코 천촉봉 장무각을 지키는 장로 따위가 아니다.
만약 평범한 장무각의 장로였다면 어찌 소호의 눈에 들었겠는가?
참고로 소호는 엽운을 거두어 무영봉의 10대 제자 중 하나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그는 엽운이 자 장로를 찾아겠다고 말하자 즉시 생각을 거두었고, 오히려 엽운에게 마음대로 무영봉에 드나들 수 있는 영패를 주었다.
이를 통해 자 장로가 소호의 마음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알 수 있었다.
란 장로는 엽운을 한 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엽운은 여명홍과 단진풍을 향해 웃어 보이며 몸을 돌려 떠났다.
두 사람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의아해 했다.
그들은 자 장로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란 장로님, 엽운이 말한 자 장로님은 누구십니까?”
단진풍이 호기심에 물었다.
란 장로는 그를 한 번 쳐다봤다.
이 녀석은 경도 단가의 힘을 빌려 이 곳에 들어왔는데,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은 몰랐다.
화운비장에서 살아 돌아온 이상 평소와 같은 눈으로 그를 보기란 불가능 했다.
“자 장로는 우리 장무각의 선배 중 한 분으로 촉기경의 수위를 가지셨다. 평소에는 신룡 마냥 코빼기도 안 보이시는 분이라 만나뵙기가 극히 어렵지. 훗날 너희도 그 분을 만나게 되면 반드시 예의를 갖추도록.”
촉기경의 수위라니!
단진풍과 여명홍은 차가운 숨을 들이마셨다.
그들은 이미 촉기경의 수위를 가진 무영봉주 소호를 만났다.
하지만 그는 봉주이고, 자 장로라는 사람은 그저 천촉봉 장무각의 장로 중 한 사람일 뿐인데도 촉기경의 수위를 가진 것이다.
참고로 그들이 천촉봉에서 만난 이들 가운데 가장 수위가 높은 사람은 순우연과 란 장로였고, 두 사람은 모두 연기경의 정점에 달한 수위로 촉기경까지는 아직 반걸음 정도가 남아있었다.
하지만 촉기경에 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고, 두 사람은 연기경의 정점에 멈춘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고작 장무각을 지키는 장로 한 사람이 촉기경의 수위를 가졌다면, 분명 남다른 내력을 가지고 있을텐데, 엽운은 그를 어떻게 아는 것일까?
“엽 사형이 장무각에서 두 개의 선기를 골랐을 때 말입니다. 혹시 그 두 개의 선기가 뭔가 특별한 것이라 자 장로의 주의를 끌게 된 건 아닐까요?”
여명홍은 단진풍의 귓가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단진풍은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너나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니 돌아가서 푹 쉬며 내일 받을 포상이나 기다리자.”
여명홍은 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란 장로를 향해 인사를 올리더니 떠났다.
“란 장로님, 그동안 잘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훗날 제가 필요한 일이 있다면 부디 사양하지 마시고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단진풍은 평소의 오만방자한 모습에서 벗어나 미소를 지으며 란 장로에게 말했다.
란 장로는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늘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너의 근면함과 운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이후로 너는 우리 천촉봉의 내문 제자가 될 것이니, 하늘 높이 솟아올라 경동 왕실의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기를 바란다.”
단진풍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엽운은 살아서 돌아온다면 곧바로 장무각의 뒷산에서 그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마당에 들어오면 자 장로가 나타날 것이다.
앞에 펼쳐진 녹색을 보자 줄곧 긴장해왔던 마음이 다소 편안해졌다.
대묘에 있던 며칠간은 말 그대로 구사일생 이었기에, 지금은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무영봉에서도 소호를 만나 그의 강력한 위압에 심신이 흔들렸는데, 비록 그에게 악의는 없고 기꺼이 호의를 베풀었지만, 촉기경 강자의 위세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바로 여기, 자 장로가 있는 장무각의 뒷산은 눈을 들어 바라보면 온통 초록색 기운이 넘쳐나고 공기도 맑았기에, 한순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푹 쉬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살아서 돌아올 줄이야. 내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는걸.”
놀란 기색의 노쇠한 목소리가 대나무 숲, 깊은 곳에서 들리며 헝겊 옷을 입고 대나무 바구니를 들고 있는 노인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자 장로님, 엽운이 인사드립니다.”
엽운은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인사했다.
자 장로는 대나무 바구니와 작은 호미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바구니 안에는 죽순 몇 개가 너저분하게 놓여 있었다.
“화운비장은 어땠느냐? 위험이 도사리고 있진 않더냐?”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위 말하는 십사무생 이었습니다. 하마터면 돌아오지 못할 뻔 했어요.”
“그런데 돌아오지 않았느냐. 운이 좋다는 뜻이다. 수선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이다. 그 다음이 재능이고 또 그 다음은 자원이지. 너는 운이 좋으니 분명 화운비장에서 좋은 것들을 많이 얻었을테고, 그것들은 훗날 수행에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 장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만큼 냉엄하지 않았고, 미소를 띄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운이고, 그 다음이 재능, 그리고 그 다음이 자원이군요!”
눈을 가늘게 뜬 채 자 장로가 한 말을 곱씹었다.
운이란, 운세를 말한다.
한 사람의 운세는 타고 나는 것이고, 좋은 운세를 타고난 사람들은 일생 동안 위기를 마주할 일이 없이 순탄하게 흘러간다.
그것이 수선인이라면 기이한 만남이 거듭되고 자원이 끊이지 않으며. 제 마음대로 모든 것을 손에 넣어 성공가도를 달린다.
재능이란, 말 그대로 타고난 재능을 뜻한다.
이 역시 타고 나는 것이라 나중에 고치기 어렵다.
각각 종문에는 놀라운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강을 채울 만큼 많았지만, 대도에 들어선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았고, 종종 요절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것은 바로 운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원은 수선 종문들이 서로 다투어 쟁취하거나, 혹은 실력에 따라 약육강식으로 배분 되는 자원을 뜻한다.
문하의 정예 제자들이나 천재 제자들은 수련 자원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엽운처럼 변두리의 작은 마을에서 온 평범한 재능을 가친 사람이라면 애써 자원을 구해야 했고, 때로는 하나도 얻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엽운은 최소한 당분간의 자원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화운비장과 나문성의 수중에서 얻은 자원은 적어도 연기경 중기까지 수련하기에 충분했고, 심지어는 후기까지도 걱정이 없었다.
“운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수련할 수 없는 위험한 공법들마저 무사히 수행할 수 있지.”
자 장로는 별안간 목소리를 바꾸어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예를 들어 소흡성결이라던지.”
“소흡성결!”
표정이 엄숙해졌다.
머릿속에서 저도 모르게 나문성이 시전한 진기뇌농이 떠올랐다.
소흡성결과 선마지심의 완벽한 조화가 아니었다면 그는 진기뇌농의 강력한 폭발에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자 장로님, 그날 근 몇백 년간 저 말고도 소흡성결을 수련한 사람이 한 명 더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혹시 그게 누군지 아십니까?”
자 장로의 얼굴에 굳샌 의지가 드러났고, 어딘가 격양된 듯 보였다.
“우리 핏줄의 선조이자, 금단대수사인 진화도 사조이시다.”
“진화도 사조?”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천검종 천년 이래 모든 금단수사는 책에 기록되었고, 고작 수십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그 중 진화도라는 이름을 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 진화도 사조이시지. 그 분의 수위는 금단의 정점까지 반걸음 정도 남았었고, 곧 영생을 누리게 되어 원영경에 도달하실 분이었지.”
자 장로는 어딘가 모양이 빠지게 몹시 격양 된 것 같았다.
엽운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천검종에 기록 된 금단수사들 가운데 어찌 그분은 안 계십니까?”
“흥! 네가 알 필요는 없다. 어떤 것들은 너무 많이 알아서 좋을 게 없지. 넌 그저 수백 년 동안 단 한 사람만이 소흡성결을 수련하는데 성공하여 금단경에 도달했다는 것만 알면 된다.” 자 장로의 싸늘한 얼굴에는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비록 자 장로는 몇 마디 하지 않았지만, 그 속에는 중요한 정보가 하나 있었다.
바로 소흡성결을 수련하는데 성공하면 금단대도에 들어 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금단대도란, 얼마나 많은 수사들의 꿈이던가.
천검종 전체의 모든 제자들의 최종 목표가 금단이 아니던가?
“완성 된 소흡성결은 흉포하기 그지없다. 빠르게 천지의 영기를 흡수할 수 있고, 심지어 다른 이들은 연화시킬 수 없는 특이한 영기들마저 흡수해버리기에 당시에 무수히 많은 종문에서 환영을 받았지. 하지만, 머지않아 그들은 소흡성결이 수련하기 몹시 어려운 공법이며 자칫하면 진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순식간에 몸이 터져버린다는 것을 깨달았지. 게다가 일단 수행에 성공하면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천지의 영기를 흡수하게 되어 기초가 부족하거나 심성이 못 된 사람들은 광란의 살육에 빠져 본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근 수백 년 동안 소흡성결은 봉인 되었고 심지어는 요사스러운 기술 취급을 받았다.”
자 장로는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빠르게 걸어왔다.
“진화도 선조께서는 소흡성결 때문에 종문에서 쫓겨나신 겁니까?”
엽운은 무언가를 떠올리고 호기심에 물었다.
자 장로의 눈빛은 마치 두 자루의 날카로운 검 같았다.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말했지. 어떤 것들은 너무 많이 알아서 좋을 게 없다고.”
엽운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기억하겠습니다.”
“네가 살아서 돌아왔으니, 소흡성결의 비밀을 알려주마. 가능하면 소흡성결을 수련했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말거라. 그렇지 않으면 귀찮은 일이 생길 것이다.”
다소 화가 누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당부했다.
엽운은 갸우뚱했다.
“이 소흡성결은 장무각에 있었는데, 제가 가지고 나가며 경비를 서던 사형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제 친구들 중 몇 명도 알고 있는데, 이를 어찌 숨깁니까?”
“그렇다면, 누가 묻거든 수련에 실패해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 말하거라.”
자 장로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요. 이를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습니다.”
“그게 누구지?”
자 장로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무영봉주 소호의 아내 수청훤 이십니다.”
엽운이 천천히 말했다.
순간 자 장로가 멍해졌다.
곧 얼굴에서 싸늘한 기운이 사라졌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훤이를 만났을 줄은 몰랐구나. 정말 예상 밖이야. 그러나 훤이가 아는 것은 괜찮다.”
엽운은 자 장로가 수청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의 표정에서 총애를 느꼈다.
“자 장로님, 제가 살아 돌아오면 좋은 곳에 데려다 주겠다 하신 걸로 기억합니다.”
자 장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엽운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눈에는 기대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