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9 화 다시 만난 장로
엽운은 작은 검처럼 생긴 청색 영패를 바라보며 의혹을 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영패를 집어넣었다.
곧 흰 옷 입은 제자 한 명이 나타나 엽운을 데리고 떠났다.
“소흡성결을 수련할 수 있다니, 생각지도 못했군.”
소호는 엽운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즈막이 속삭였다.
“당신이 생각지도 못한 게 참 많아요.”
수청훤은 빙긋 웃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또 뭘 알아냈소?”
소호는 검 같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기대를 품었다.
수청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아이의 몸에는 이상한 영기가 하나 있는데, 제 능력을 막아 볼 수 없었어요. 단지 번개의 영기와 소흡성결만 보였죠. 하지만 계속 뭔가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아 자세히 들여다보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어요.”
“당신의 관찰 능력을 막을 수 있다니, 그게 가능한가? 당신은 금단수사의 수위마저도 단박에 꿰뚫어 볼 수 있는데 말이오. 영생을 이룩한 수준은 되어야 당신의 능력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을 터인데.”
소호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수청훤은 수위가 없었지만 그녀의 특별한 능력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어쩌면 이 아이는 뇌 장로 이후 처음으로 번개의 영기를 깨우친 제자일 수도 있어요. 훗날 무한한 성취를 이루게 될지도 모르죠.”
수청훤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눈 가득 기대를 품었다.
“바로 무영봉의 내문에 데려와 전심전력을 다해 키워보면 좋겠는데, 분명 머지않아 연기경을 돌파하고 곧바로 7중에 도달 할 것이오. 아쉽게 됐군, 아무튼 자 장로의 눈에 들었으니 복이 있는 셈이지.”
소호의 말에는 설명할 수 없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자 장로님의 수위는 당신과 비슷하니까, 두 사람 중 누가 가르쳐도 똑같을 거에요. 하지만 자 장로님의 성격이라면, 분명 직접 가르치려 하지 않으실 테니 결국 당신을 추천하시겠죠. 축하드립니다. 무영봉 10대 제자를 드디어 모을 수 있게 되었군요.”
수청훤은 입을 가리고 미소를 지으며 남편의 부드러운 눈빛을 바라보았다.
소호는 아내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나도 마침 그런 생각을 하여 그냥 돌려보낸 것이오. 게다가 영패까지 하나 쥐어줬으니, 이르던 늦던 돌아와 내 제자가 되겠지.”
“어찌 그 나이를 드시고 아직까지 허구헛날 후배 제자들을 상대로 계산을 하십니까. 부끄러운 줄도 모르시고.”
수청훤은 그를 바라보며 물처럼 부드러운 감정을 느꼈다.
소호는 하늘을 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마음이 아주 상쾌했다.
엽운은 흰 옷의 제자의 안내 하에 몹시 허름한 전송진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천촉봉으로 돌아왔다.
엽운의 그림자가 천촉봉의 전송진에서 나타나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엽 사형,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말했지, 저 녀석은 혼자 무영봉에 남지는 않을 거라고.”
엽운은 전송진에서 나오자마자 여명홍과 단진풍 두 사람이 웃으며 오는 것을 보았다.
“우린 이미 대묘에서부터 함께 왔는데, 어떻게 혼자 무영봉에 남겠어?”
엽운은 웃으며 두 사람을 맞았다.
세 사람은 천촉봉을 바라보았다.
비록 이 곳을 떠난 지 불과 며칠 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마치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것 같았다.
“세 제자분들, 돌아오셨으면 외문제자의 구역으로 가서 란 장로님을 찾으시오.”
전송진을 지키고 있던 제자는 그들을 보고 질투가 섞인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엽운과 나머지 일행이 어떻게 종문의 시험에 참가하게 됐는지 알지 못했고, 그저 살아 돌아온다면 후한 보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엄청난 자원이라면 내문 제자들조차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이다.
‘아마 상품영석을 주겠지. 족히 스무 개는 될거야. 거기다 중품 영기도 하나 주지 않을까. 중품 영기라면 품질이 어떻든 상관없어. 중품이라는 이름이 붙는다면 분명 진귀한 물건일 거야. 어쩌면 나는 시전도 못하고 백 개의 상품영석과 바꿔버릴지도 몰라.’
세 사람은 경비 제자의 눈에서 질투와 부러움을 보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공수를 올린 뒤 아래로 내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은 천촉봉의 끝자락에 도착해 시련전에 발을 들였다.
“사형, 실례지만 란 장로님께서는 어디에 계십니까?”
세 사람은 시련전에 들어가 단상 뒤에 있는 제자 한 명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검은 옷을 입은 제자는 고개를 들어 쳐다보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갓 들어온 외문 제자 녀석들이 감히 여기까지 와서 행패를 부리다니.”
이 자는 놀랍게도 세 사람이 시합에서 8위 안에 들어 종문 시험에 참가한 사실을 몰랐다.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분명 그와 단진풍은 요 며칠간 소문이 자자 했을터, 두 사람은 천촉봉 전체가 그들을 알아볼까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에 이 흑포 제자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믿어지지 않았다.
“어라? 흑포 씩이나 입고 있는걸 보니 대단하신 분 같은데, 자기가 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겠지.”
단진풍은 콧방귀를 뀌며 냉랭하게 말했다.
흑포를 입은 제자가 벌떡 일어나 눈에서 불을 켜며 말했다.
“고작 연체경 7중에 불과한 외문 제자 녀석이 감히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걸 보니 죽고싶은 모양이구나. 좋다. 내가 오늘 너를 저승으로 보내주마.”
단진풍은 큰 소리로 웃으며 조롱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오세요. 빨리 빨리 덤비시죠. 뭐 할아버지 만나기가 무서운 거라면 그냥 돌아가고.”
같은 외문 제자지만 옷의 색깔에 따라 청, 황, 흑, 자 로 계급이 나뉜다.
세 사람은 청색 옷을 입었으니 낮은 등급의 청포 제자임이 분명했는데, 놀랍게도 감히 흑포 제자에게 이 같은 말을 한 것이다.
흑포 제자는 어리둥절했다.
곧 그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고, 하마터면 눈물까지 날 뻔했다.
세 사람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연민이 가득했는데, 청포 제자가 감히 흑포 제자의 미움을 사서 어찌 천촉봉에서 살아가겠는가?
목숨을 부지하더라도 개처럼 처참하게 두들겨 맞아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
“좋아 좋아. 재미있군. 나 손명곤은 천촉봉에 들어온지 15년 동안 안 만나본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오늘 이렇게 건방진 외문 제자를 만나게 됐군. 심지어 갓 들어온 청포 제자라니.”
흑포 제자는 연신 웃음을 터뜨렸고, 단상의 뒤에서 걸어 나왔다.
손명곤은 한 걸음씩 다가왔고, 나름대로 기세를 뽐냈다.
그의 수위는 이미 연기경 2중에 달해 내문 제자 시험에 한 차례 참가했으나 통과하지 못했다.
외문 제자들 사이에서 그의 수위는 제법 괜찮은 편이었기에 재능이 부족하지만 않았더라면 이미 내문 제자가 되었을 것이다.
외문 제자로써 잔뼈가 굵은 그에게 감히 이런 소리를 지껄이는 사람은 요 몇 년간 없었다.
세 사람은 얼빠진 사람처럼 싸늘하게 그를 바라봤다.
“오늘 기분이 좀 안 좋았거든. 이제 갓 연기경에 도달한 남성 녀석이 고위층의 부름을 받고 상층부로 옮겼더군. 그 녀석보다 수위가 높은 나는 여기에서 너희같은 하룻강아지 녀석들에게 임무나 주고 있는데 말이야. 정말 분통이 터진다니까. 잘됐군. 때마침 네놈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내 화를 돋구는이상, 정성껏 환영해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손명곤은 세 사람을 바라보며 흉악한 웃음을 지었다.
단진풍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덤벼라. 네가 시련전에서 감히 싸움을 걸지 궁금하던 참이었어.”
“내가 공격하지 못할 줄 알았냐? 고작 청포 제자 세 놈일 뿐이다. 너희들을 싸그리 죽인다 한들 그래봐야 징계를 조금 받고 말겠지. 뭐 어쩌겠어? 청포 제자는 이 곳에서 가장 비천한 존재인데. 설마 종문이 너희를 지켜줄 줄 알았느냐? 웃기는군.”
손명곤 역시 냉소를 지으며 손바닥에서 희미한 빛을 번쩍였다.
“그럼 한 번 덤벼보던가.”
단진풍은 조금도 두렵지 않은 듯 했고, 마치 이제 갓 들어온 연체경 제자를 상대하듯 조금의 경외심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죽어라!”
손명손이 눈에서 살기를 번득이며 소리쳤다.
손명곤은 진기를 응집시킨 손바닥을 내질렀다.
“멈춰라!”
바로 그때, 노기를 띈 노쇠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손명곤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곧 냉소하며 말했다.
“버러지들 주제에, 무릎 꿇어 란 장로님을 맞이하지 않고 뭐하는 거냐.”
말이 떨어지자마자 란 장로의 그림자가 입구에 드리웠다.
“란 장로님. 어찌 오셨습니까?”
손명곤은 얼굴이 바뀌기라도 한 듯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내가 오지 않았으면, 무법천지가 되지 않았겠느냐. 종문의 법칙은 안중에도 없나보구나.”
란 장로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맞습니다. 너희들 모두 들었지. 고작 청포 제자가 위아래도 없이 날뛰다니. 란 장로님이 오셨으니 감히 덤비지도 못하겠구나.”
손명곤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고 세 사람을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란 장로는 미간을 씰룩이며 고개를 돌려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법천지는 너를 말하는 게다. 꺼져라.”
손명곤은 순간 어리둥절해졌다.
란 장로가 자신에게 이야기 하는 줄은 꿈에도 몰라 저도 모르게 넋이 나갔다.
“안 꺼지고 뭐 하느냐? 내가 상대해줄까?”
란 장로의 차가운 목소리는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손명곤은 입가를 실룩거리며 세 사람을 노려보고는 허둥지둥 시련전의 대문을 빠져나갔다.
“돌아왔구나. 제법이군!”
란 장로가 다소 완만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 사람은 란 장로에게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저희 세 사람은 다행히 명령대로 시련전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백 명의 제자들 가운데 돌아온 것은 너희 셋 뿐인가?”
란 장로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비록 종문에서는 죽은 제자의 수만큼 보상을 해줄 것이고, 란 장로 같은 이들은 이를 통해 적지 않은 이득을 볼 수 있지만, 장장 백 명이 나가서 고작 세 사람이 돌아온 것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백명의 외문 제자들은, 비록 흑포나 자포를 입은 정예 제자는 아니었지만, 하나같이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훗날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내문 제자가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토록 큰 잠재력을 가진 제자들은 영원히 종문의 시험 속에 잠들어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엽운은 란 장로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대답하지 않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란 장로는 천천히 숨을 내쉬곤 세 사람을 보더니 말했다.
“돌아왔으면 됐다. 아무튼 우선 돌아가서 쉬거라. 내일 내가 주변에 이를 알리면 순우연 장로께서 직접 너희에게 포상을 내리실 게다. 또한 수위와 심성을 측정하여 내문 제자가 될 것이다.”
여명홍과 단진풍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고, 일제히 몸을 굽혀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란 장로님.”
엽운은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살며시 몸을 굽히며 말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너는 어디로 가느냐?”
란 장로가 궁금한 듯 물었다.
“장무각에 자 장로님께서 종문 시험에 참가하기 전에 몇 마디 말씀을 남기셨는데, 살아서 돌아오거든 찾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엽운이 천천히 말했다.
란 장로는 멍하니 있다가 이내 복잡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