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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38화 (138/227)

제 138 화 청색 영패

소호는 눈짓 한 번으로 세 사람을 얼음 속에 빠뜨렸다.

온몸이 차가웠고, 마음 깊은 곳에서 한기가 몰아치며 뼛속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참을 망설이다 말했다.

“이 보물은 제가 나문성에게서 빼앗은 것입니다.”

“나문성?”

소호는 순간 멍해졌다.

곧 그는 눈에서 살기를 번득이며 말했다.

“설마 네 놈이 령이의 친구라고 내가 널 못 죽일 것 같더냐? 나문성은 구양문천 휘하의 10대 제자 중 하나이며 연기경 7중의 수위를 가졌는데, 네가 어떻게 그의 손에서 홍운예상을 빼앗았다는 말이냐?”

“진짜에요, 제가 똑똑히 봤어요. 나문성은 엽운의 손에 죽었어요.”

소령이 나와 두 손을 벌리며 엽운의 앞을 가로막았다.

엽운은 방긋 웃으며 소령은 옆으로 끌어내고 말했다.

“나문성의 수위는 저보다 한참 높지만, 그게 어떻게 제가 그 자를 죽일 수 없는 이유가 되겠습니까? 그때 그는 중상을 입었고, 수위를 거의 발휘할 수 없는 상태였음에도 저희를 죽여 보물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저희들은 당연히 힘을 합쳐 반격했습니다.

“네 말은 그 녀석이 소령마저 죽이려 했다는 것이냐?”

소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맞아요. 그 녀석은 제가 아버지 딸인걸 알고도 전혀 개의치 않으며 저를 죽여 보물을 뺏으려 했어요. 심지어 화운비장에서 저를 죽이면, 제가 어떻게 죽었는지 누가 알겠냐고 말했어요.”

소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래서 저희는 힘을 합쳤고, 결국 그를 죽인 뒤 이 홍운예상을 얻은 것 입니다. 원래는 종문에 직접 상납하려 했으나, 그리하여 후한 포상을 받게 되면 누군가 그 포상을 노릴 수도 있기에 이 보물을 봉주 대인께서 처리해 주십사 전해드리는 겁니다.”

단진풍이 옆에서 기침을 한 번 하더니 말을 이어 받았다.

소호의 눈빛이 번개처럼 세 사람을 훑다 이내 소령의 얼굴에서 멈췄다.

“네 딸이 똑똑하긴 하지만, 어떤 아이인지는 내가 잘 알고 있지.”

엽운과 단진풍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소호의 말은 분명 소령이 이런 일을 벌일 리 없으니 두 사람의 말이 사실이 아닐 것 이라는 뜻이다.

“자, 아무쪼록 령이가 무사히 돌아왔고 홍운예상까지 우리 손에 들어왔으니 아무래도 상관 없잖아요. 엽운과 이 친구들 모두 악의는 없었던 것 같고, 오히려 령이를 화운대전에서 구해줬는데 어떻게 나문성을 죽여서 홍운여상을 빼앗았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요.”

수청훤의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퍼지며 귀를 사로잡았다.

소호는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하는지, 그녀의 말을 듣곤 싸늘하던 표정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가 엽운을 바라보다가 별안간 말했다.

“네가 가진 최강의 공격을 시전해보거라. 네 진짜 수위를 한 번 보여다오.”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소호의 뜻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러나 인정할 만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그때는 수청훤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어쨌든 나문성은 구양문천 수하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고, 종문의 정예 제자라고 할 수 있기에 분명 많은 수련 자원을 들여 양성했을 것이다.

죽이고 싶다고 함부로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소호와 구양문천은 친분이 두터웠기에, 이 일은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역시 나문성이 평소에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고 인간관계도 좋지 못하며, 근 몇 년 동안 구양문천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고 들었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엽운의 말 몇 마디는 먹히지도 않을 것이며, 수청훤이 아무리 사정해도 그를 죽이거나 잡아갈 것이다.

“숨길 생각 말고, 전력으로 공격해.”

별처럼 빛나는 수청훤의 두 눈은 엽운의 마음속 근심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엽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손에서 빛을 흘려보내자 자영검이 튀어나왔다.

소호는 영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의 안목이라면 이 보라색 빛을 뿜어대는 장검이 비범한 물건이며 적어도 중품영기 쯤은 된다는 것을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봉주 대인,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엽운은 나즈막이 소리쳤다.

보라색 빛이 물 흐르듯 펼쳐지고 빛이 일렁이기 시작하자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뇌멸세!”

엽운은 번개처럼 몸을 날려 보라색 장검을 휘둘렀다.

순간 번개 소리가 울리며 전기가 마치 뱀처럼 춤을 췄다.

자영검에서 끊임없이 번개가 뿜어져 나왔고 공중에서 하나의 구름이 되어 우르릉 소리를 내었다.

“팍!”

보라색의 신뇌가 하늘에서 내려와 소호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졌다.

소호의 미간이 씰룩였다.

촉기경 6중의 강자였기에 곧바로 위력을 알아볼 수 있었는데, 이는 연체경의 수준을 아득히 벗어난 공격이었고, 연기경 3중에서 4중쯤 되는 수사들도 이 공격을 쉽게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뇌운전광검이라, 조금 재밌군.”

소호는 웃음을 지었다.

움직이지도 않고 그저 고개를 들어 한 번 바라볼 뿐이었다.

순간, 빠르게 떨어져 내려오던 보라색 번개가 별안간 공중에서 멈췄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허공에 떠 있었다.

“흩어져라!”

소호가 나즈막이 말했다.

뇌운전광검의 제 3식 신뇌멸세가 마치 연기처럼 공중에서 터져나가 수백 개의 보라색 물줄기로 변하며 천막처럼 드리워졌다.

몹시 화려했다.

엽운이 가진 최강의 공격은 놀랍게도 소호의 눈짓 한 번 과 말 한마디로 사라졌고, 신뢰는 연기가 되었다.

엽운은 차가운 숨을 들이마셨다.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천검종 4대 봉주의 실력이란 말인가!?

손 한 번 쓰지 않고 눈짓만으로 그의 최강의 공격을 날려버렸다.

“쓸만하네, 그런데 제 3식이 보기엔 그럴싸하지만, 아직 정수에 도달하지는 못했군. 그것만 빼면 훌륭하다.”

소호는 소매를 가볍게 흔들어 하늘을 가득 메운 빛을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게 만들었다.

“아버지, 이제 엽운이 대단하다는 걸 아시겠죠.”

소령은 박수를 치며 웃었다.

소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엽운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네가 번개의 영기를 깨우치고 심지어 뇌운전광검 까지 손에 넣었을 줄은 몰랐구나. 내 예상을 벗어났어. 게다가 네 수위가 연체경 7중인 것은 확실한데, 폭발하는 영력은 족히 연기경 3중의 수사와 맞먹는걸 보니 육신을 아주 강력히 수련한 모양이군. 쉽지 않은 일이다.”

엽운은 몸을 굽히며 겸손하게 말했다.

“과찬이십니다 봉주대인. 그저 남들보다 조금 운이 좋을 뿐입니다.”

“겸손할 필요 없다. 운도 실력이니 말이다. 사실 수선의 길에서 운이란 가장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지. 운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수련 환경이 좋아도 소용없다.”

소호는 손을 내저으며 이어서 말했다.

“나문성 일은 잠시 내려두고, 내가 구양과 잘 이야기 해 결정하도록 하겠다.”

“아빠, 어찌 도리를 지키지 않으세요. 엽운이 가진 최강의 공격이 나문성을 쓰러뜨리기 충분하다면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잖아요?”

소령은 입을 삐죽 내밀며 다급하게 말했다.

소호가 빙긋 웃었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게다가 엽운의 지금 수위는 역시 나문성을 꺾기엔 역부족이다. 그러나 나문성이 정말로 중상을 입어 수위를 발휘할 수 없었다면 엽운의 상대가 되겠지. 나문성의 일은 잠시 미뤄두고, 이 홍운예상을 너희가 직접 바치는 건 분명 좋지 않을 것 같으니, 내가 처리하마.”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봉주 대인.”

엽운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호가 그를 한 번 바라보더니 말했다.

“너희들은 천촉봉의 제자라고 했으니, 천촉봉으로 돌아가 마땅히 받아야 할 포상을 받거라. 이건 내가 잘 처리하여 나중에 너희들에게 보상하마.”

“감사합니다 봉주 대인.”

세 사람은 기쁜 표정으로 몸을 굽혀 인사했다.

소호의 말은 엽운과 일행이 떠날 수 있도록 배웅하는 말이었다.

소령이 다급히 말했다.

“아빠, 엽운과 친구들이 무영봉에 남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천촉봉에 돌아가면 뭐하겠어요?”

소호는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종문에는 규칙이라는 게 있다. 저들은 천촉봉의 제자이니 돌아가서 보상을 받으면 된다. 그리고 천촉봉에서 연말 순위를 정할 때도 일정한 점수를 받게 되겠지.”

엽운과 단진풍은 서로를 바라보다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말했다.

“소령 사매, 훗날 우리를 만나고 싶으면 천촉봉에 오면 돼. 다들 똑같이 봉주 대인들의 통솔 아래에 있는데, 귀찮을 일이 뭐가 있겠어. 봉주 대인, 그리고 아주머니,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세 사람은 말을 마치며 인사를 올리고 몸을 돌려 떠났다.

소호의 시선이 엽운을 향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이 마당을 나서는 순간 수청훤이 소호의 앞으로 다가가 나즈막이 한 마디 했다.

“엽운은 소흡성결을 수련했어요.”

소호는 순간 멍해졌다.

곧 그는 눈을 번쩍이며 낮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령아, 아이들을 데리고 천촉봉으로 가라. 엽운, 너는 여기 남거라.”

엽운은 어리둥절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소호가 어째서 남으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진풍와 여명홍은 어찌 할 바를 몰라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 동안 그들은 진작 엽운을 대오의 중심으로 여겼다.

“먼저들 가, 걱정할 것 없어. 만약 봉주 어르신께서 나를 죽이실 셈이라면 어차피 식은 죽 먹기 아니겠어.”

잠시 멍하니 있던 엽운은 곧 무언가를 알아 차렸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 어차피 소호는 그에게 살의를 품지 않고 있었다.

소령은 사실 엽운을 보내기 아쉬워서 남으라 한 것인데, 엽운이 남는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신나서 방방 뛰었다.

그리고는 웃으며 단진풍과 여명홍을 향해 손짓했다.

“엽운, 아버지한테 말대꾸하면 안 돼. 말씀을 잘하시는 것 같이 보여도, 사실은 억척스럽기 그지없으신 분이거든.”

소령은 엽운의 옆을 지나가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엽운은 빙긋 웃으며 뒤돌아 마당으로 걸어갔다.

소령은 단진풍과 여명홍을 데리고 이내 먼 곳으로 사라졌다.

“소흡성결을 수련했다고?”

소호의 표정이 많이 온화해졌고, 목소리는 담담해졌다.

“봉주 대인께 아뢰오니, 그렇습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예의 차릴 것 없다. 령이의 친구이니 청훤은 아주머니라 부르고 나는 아저씨라고 부르면 된다.”

소호의 태도가 별안간 바뀌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소호가 어째서 격식을 안차리는지 알 수 없어 말조차 잇지 못했다.

소호는 한참 동안 엽운을 바라보다 천천히 말했다.

“네가 소흡성결을 수련했다면, 분명 자 장로를 만났겠지.”

엽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너는 화운비장에서 살아 돌아왔으니, 훗날 천촉봉의 내문 제자가 되겠지. 만약 네가 원한다면 바로 우리 무영봉으로 와도 좋다.”

엽운을 바라보다 갑작스레 말했다.

엽운은 이 곳에 오기 전 부터 무영봉에 남을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영봉의 수련 자원은 천촉봉과 비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대묘에서 화운의 보물을 얻었기에 수련 자원이 부족하지도 않고, 만약 지금 무영봉에 남겠다고 하면 오히려 다른 이들의 주의를 끌기 쉽상이다.

“저는 돌아가고 싶습니다. 자 장로님께서 제가 살아 돌아오면 저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엽운은 순간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자 장로를 이용해 소호의 초대를 완곡히 거절했다.

“그것도 좋다. 자 장로의 가르침이 있다면 안심할 수 있겠지. 가거라. 무슨 일이 있거든 령이를 통해 나를 찾도록.”

소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그를 만류하지 않았고, 그저 뒷짐을 지고 있었다.

엽운은 그를 한 번 바라보고 몸을 굽혀 인사를 올렸다.

“봉주 대인, 그리고 아주머니, 이 제자는 먼저 물러가겠습니다.”

소호가 한 손을 가볍게 움직이자 빛이 번쩍이며 엽운에게 날아왔다.

“내 영패를 가지고 있거든 훗날 마음대로 무영봉에 드나들 수 있다. 가라!”

엽운은 손을 뻗어 이를 받았다.

작은 검처럼 생긴 청색의 영패가 조용히 손바닥 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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