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7 화 잔결검법
일반적으로,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낮은 경지에 있는 수사의 수준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상대가 움직이기도 전에 어떤 공법을 수련했는지, 또 어떤 영기를 가지고 있는지를 꿰뚫어 본 것이다.
당장 연체경의 수사인 엽운도 상대방이 수위를 감추는 희귀한 보물을 쓰지 않는 이상 한눈에 그들의 경지를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수련한 공법의 종류나, 사용하는 영기 따위는 결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부인은 단박에 엽운이 번개의 영기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봤고, 심지어 그가 소흡성결을 수행한 것까지 알아 본 것이다.
이는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깜짝 놀란 표정으로 수청훤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수청훤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번개의 영기는 극히 드물기 때문에 수련하기 몹시 까다롭거든. 아무나 수련하고 싶다고 수련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반드시 기회가 있어야만 가능하지. 천백 년 동안 번개의 영기를 수련한 수사는 손에 꼽을 수 있어.”
엽운은 숙연한 표정으로 옆에 조용히 서 있었다.
수청훤이 여기서 멈추지 않고 분명 번개의 영기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 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천검종의 선대 현인 중에 번개의 영기를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수위는 촉기경 7중에 지나지 않지만 금단수사를 만나도 굴하지 않았고, 칼을 한 번 휘두르면 천둥 번개가 요동을 치며 마치 하늘의 신병을 부리는 듯해 도무지 당해낼 수가 없었다고 해.”
수청훤은 손을 가볍게 들어 머리칼을 귀 뒤에 꽂으며 말했다.
촉기경 7중으로 금단 수사를 당해낼 수 있다고?
엽운과 일행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촉기와 금단은 비록 한 걸음이래도 둘은 하늘과 땅 차이였기에, 이는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멍하니 서 있던 여명홍이 말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없겠어? 우리 엄마가 말씀하시면 그냥 듣고 있어. 여명홍 너 진짜 예의 없구나.”
소령은 여명홍을 노려보곤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수청훤은 살며시 웃으며 이어서 말했다.
“엽운, 보아하니 요동치는 번개의 영기가 어지럽혀져 있지 않구나. 분명 기초적인 통제는 이미 끝냈고 번개와 관련된 기술을 익혔겠지.”
엽운은 공손히 말했다.
“아주머니, 저는 천촉봉의 장무각에서 뇌운전광검 이라는 9품 선기를 하나 수련했습니다.”
“뇌운전광검 말이니?”
수청훤의 두 눈에서 별안간 이상하다는 듯한 기색이 스쳤다.
“어째서 뇌운전광검이 9품 선기들 틈에 있었던 거니?”
엽운은 어리둥절해져 고개를 가로저었다.
“금방 번개의 영기를 가진 선조에 대해 이야기 했지. 그 분이 수련하신 게 바로 뇌운전광검이야. 단칼에 번개를 날려 금단경 초기의 강자도 어쩌지 못했지. 네가 보기엔 이 뇌운전광검이 9품 선기일 것 같니? 지금의 뇌운전광검법은 완전한 게 아니야.”
수청훤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암울한 표정을 지었다.
엽운은 눈에서 빛을 번쩍이며 다급히 물었다.
“진짜 뇌운전광검은 어디에 있습니까?”
전에 뇌운전광검을 시전 했을 때 앞의 두 기술인 뇌운초현과 뇌정만곡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3번째 기술인 신뇌멸세는 줄곧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딘가 조금 모자라 최대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금 수청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연 부족함이 있는 게 맞았다.
지금 이 뇌운전광검은 완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이 검법이 완성 된다면 도대체 어떤 위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일까?
순간 엽운은 수청훤이 말한 ‘단칼에 번개를 날렸다’ 는 장면을 본 것 같았다.
“지금의 뇌운전광검은 3식 밖에는 남지 않았지. 게다가 제 3식인 신뇌멸세는 후대에서 만들어진 것이지 진짜 수련법이 아니란다. 진짜 검법은 그 선조가 실종 되면서 완전히 소실된지 4백 년이 넘었어.”
엽운의 얼굴에는 실망이 가득했다.
그의 수위는 언제든 연기경을 돌파할 수 있으니, 진기를 이용해 뇌운전광검을 부리면 그 위력은 족히 열 배는 강해질 것이다.
완벽한 검법까지 더해지면 도대체 어떤 공격을 펼칠 수 있을지 자신도 상상할 수 없었다.
“말 하느라 정신이 팔려 앉으라는 이야기도 못했구나. 령아, 친구들을 데리고 들어오렴.”
수청훤이 살며시 웃으며 아담한 몸을 돌리자 치맛자락이 가볍게 흩날렸는데, 말로 할 수 없는 우아함이 느껴졌다.
소령은 웃으며 엽운의 옆으로 걸어가더니 팔을 붙잡고 나즈막이 말했다.
“우리 엄마 대단하지? 너희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아버지조차 한 눈에 다 꿰뚫어 보신다니까.”
세 사람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설마 수청훤의 실력이 소호를 넘어선 것인가?
“그러니까, 얌전히 있어. 우리 엄마 앞에서 잔꾀 부릴 생각은 말고.”
소령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령이가 떠는 허풍은 듣지 말거라. 그 아이 말대로 너희 정도의 수위는 한 눈에 꿰뚫어 볼 수 있지만, 내 수위가 너희보다 높아서 그런 게 아니란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천성이라 설명할 수가 없구나. 그리고 나는 아무 수위도 없어서 수행 같은 건 할 수도 없단다.”
수청훤은 고개를 살짝 젖힌 채 일행을 바라보며 나긋나긋 이야기했다.
세 사람은 멍하니 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의 수위를 한 눈에 꿰뚫어 보고 엽운이 번개의 영기를 수련했다는 것 마저 아는데 평범한 사람이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이 같은 능력은 보통 사람으로써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들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수행도 하지 않은 평범한 여인이 수선자의 경지를 알아보고, 소호 같은 촉기경 수사마저 이를 숨길 수 없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맨날 이런 식이야. 아직 자랑도 다 못했는데 폭로해버리다니, 김샌다니까. 이따 아빠한테 가서 놀 거에요.”
소령은 입을 삐쭉 내밀고 중얼거렸다.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왔다.”
순간 목소리 하나가 공간 곳곳에서 들려오며 허공에서 울려펴졌다.
멍하니 있던 소령은 크게 소리 지르며 수청훤의 뒤로 숨었다.
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한 명의 중년 남성이 뜰에 나타났다.
약 삼사십대 정도 되어 보였는데, 훤칠한 용모에 칼 같은 눈썹을 가지고 있었다.
흰색의 옷이 바람을 따라 움직였고,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세 사람은 엄청난 위세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느꼈는데, 이는 결코 의도한 것아 아니라 자연히 풍기는 것이었다.
아무도 겨냥하지 않았지만, 위세만으로 그들을 두려움에 떨어 경외심을 느끼게 만들었다.
“아..아버지.”
소령은 수청훤의 뒤에 숨어 나즈막이 속삭였다.
“흥, 돌아오긴 했구나.”
중년 남성은 콧방귀를 뀌었다.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바로 소령의 아버지인 무영봉주 소호였다.
“그냥 나가서 이틀 놀다 온 거에요. 지금은 돌아왔잖아요.”
소령은 입을 삐쭉 내밀고 응석을 부리며 말했다.
“나가서 이틀 놀다 왔다고? 네가 간 곳이 어디인 줄은 아느냐? 화운비장이다. 그곳이 네가 갈만한 곳이냐? 거긴 이 아비가 들어가도 무사히 돌아온다 보장할 수 없는 곳이다.”
화가 난 소호의 목소리가 별안간 높아졌다.
“괜찮아요. 이번에는 엽운과 친구들이 도와줘서 쉽게 빠져 나왔다구요.”
소령은 웃으며 애교를 떨었다.
세 사람을 훑어본 소호의 얼굴에서 화가 조금 누그러들었다.
세 사람은 깜짝 놀라 몸을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봉주 대인.”
“예의 차릴 것 없네. 이번에는 령이를 데리고 돌아왔으니 다행이군. 그렇지 않았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났을텐데.”
소호가 이어서 말했다.
“천항의 이야기를 들었다. 너희 세 사람은 이번에 화운비장의 시험에 참가한 천촉봉의 제자들이겠지. 돌아왔으니 잘 되었구나.”
세 사람은 손을 떨구고 조용히 서서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령아. 오늘부터 세 달 동안 뒷산에서 지내라. 나가면 안된다.”
소호는 몸을 돌려 수청훤의 어깨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소령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
“엄마......”
소령은 우는 얼굴을 하고 수청훤의 팔을 흔들었다.
수청훤은 슬며시 웃으며 손을 들어 소령의 이마를 콕 찔렀다.
이어서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우리 딸은 이미 집에 왔으니, 그렇게 화내지 마시고 그냥 이대로 두세요. 다음부터는 제가 잘 지켜볼게요.”
소호의 호된 눈빛이 별안간 흔들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매번 이런 식이라니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령이가 응석받이가 된 건 다 당신 때문이오. 이대로 가다간 머지않아 사고를 칠거요.”
수청원은 웃음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호는 그녀를 한 번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그래, 마음대로 하시오.”
“예!”
소령이 별안간 펄쩍 뛰었다.
그리고는 달려와 소호의 어깨에 매달렸다.
“아빠가 저를 아끼는 걸 알고 있었어요.”
“흥, 또 마음대로 돌아다니면 다리 몽둥이를 부러뜨릴테다.”
소호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안돼 안돼~”
소령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별안간 무언가 생각난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지. 화운비장에서 뭘 하나 발견했는데요, 한 번 보세요.”
소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뭔데? 꺼내 보거라.”
소령은 바로 물건을 꺼내지 않고 고개를 돌려 엽운을 보았는데, 엽운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을 보더니 그제야 웃으며 저물 반지에서 빨간 물건을 하나 꺼냈다.
소호는 이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곧 그의 두 눈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홍운예상? 이건 홍운예상이 아니더냐?”
소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아연실색하며 소리쳤다.
담담하던 수청훤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이 가득했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수청훤 역시 두 눈을 믿지 못하는 듯 경악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봐봐, 놀라실 줄 알았다니까.”
소령은 웃으며 말했다.
“진짜 홍운예상이 맞나보네, 모조품일까 봐 걱정했는데.”
소호는 단박에 홍운예상을 잡아채더니 자세히 살펴봤다.
잠시 후 그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너희들, 화운비장의 어디서 이걸 얻은 것이냐? 자세히 보니 의심의 여지가 없구나.”
소령은 어리둥절해져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얻은 게 아니에요. 엽운에게 물어보세요.”
소호의 눈빛이 마치 두 자루의 날카로운 검처럼 그를 향했다.
엽운은 발아래에서 부터 싸늘한 한기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촉기경 수사의 위세에는 도무지 저항할 수 없었다.
“봉주 대인께 아뢰오니, 이 홍운예상은 화운비장 3층의 바다 깊은 곳에서 발견했습니다. 소령이 아니었다면 저는 이것이 종문의 잃어버린 보물인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이 보물이 중문에서 사라진지 고작 1년이 좀 넘었는데, 어떻게 화운비장에 있었던 거지?” 어리둥절하던 소호의 눈빛이 별안간 싸늘하게 변했다.
“사실대로 말하거라. 조금의 거짓도 없이.”
엽운은 소호의 눈에 살기가 맺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대답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