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6 화 무영봉
양청봉은 엽운과 나머지 일행들도 함께 떠나는 줄은 몰랐다.
고작 연체경 제자 몇 명이 대묘에서 무언가를 얻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는 제법 공정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었고, 처음 대묘에 들어간 외문 제자들이 살아서 돌아오면 어떤 보물을 얻었던 상납할 필요 없이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령 사매, 무영봉에 돌아가면 소봉주님께 안부 전해다오.”
양청봉은 소령을 바라보았다.
무영봉주의 딸과 알고 지낼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인맥이라 할 수 있다.
“양 사형도 참 겸손하십니다. 돌아가서 아버지께 꼭 전해드릴게요.”
소령은 기분이 썩 좋은 듯 방긋 웃었다.
양청봉은 네 사람을 데리고 전송진에 들어가 별 말 없이 손을 흔들며 보초를 서던 제자들에게 목적지를 설정하라고 지시했다.
“소령 사매, 엽사제, 너희들 모두 종문에 돌아가면 알아서 보고를 올리면 된다. 멀리 나가지 않으마.”
양청봉은 네 사람에게 공수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엽운도 주먹을 감싸 공수를 올리며 말했다.
“양 사형, 나중에 여유가 있다면 무영봉에 한 번 오시지요. 꼭 감사의 표시를 하겠습니다.”
양청봉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손을 흔들었다.
찰나의 순간에 전송진이 발동 되었다.
법진 안에 빛이 가득 찼고 별빛이 반짝이더니 네 사람을 흔적도 없이 전송시켰다.
양청봉은 떠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애송이들, 분명 좋은걸 많이 얻었으니 서둘러 떠나려 하는 것이겠지. 내가 해줄 수 있는건 여기까지다. 부디 종문에 돌아가서 너무 떠벌리고 다니지 않길 바라마.”
네 사람은 양청봉이 이미 그들이 보물을 얻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줄은 몰랐고, 전송진이 열리는 그 순간에야 팽팽한 긴장을 내려놓았다.
화운비장을 떠나기까지, 사실은 수일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짧은 며칠은 수십 년 같이 길었다.
천촉봉에서 무려 백 명의 외문 제자들이 들어왔는데, 결국 남은 건 세 사람과 스스로 뛰쳐나온 소령뿐이었다.
화운비장의 안에서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이상하리만치 위험했다.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실력이 아니라 운이었다.
대묘의 안에서는 누구도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엽운의 마음속에는 줄곧 두려움이 있었다.
만약 운이 따라주지 않았더라면, 만약 소령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만약 선마지심의 도움으로 몸이 개조되지 않았더라면, 또 만약... 이렇게 수 없이 많은 만약이 있었다.
문제가 하나라도 생겼다면 지금쯤 죽고 없었을 것이고, 영원히 대묘에 묻혔을 것이다.
자욱한 빛이 사라졌고, 시공의 감각이 돌아왔다.
엽운의 앞에 빛이 밝게 빛나고 있었는데, 보일듯 말듯 한 산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도착했어!”
소령의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엽운도 보니 구름에 파묻힌 산봉우리가 보일 듯 말 듯 했다.
“여기가 바로 무영봉인가?”
여명홍은 감격하며 물었다.
“그래, 여 사제. 여기가 내가 어렸을때부터 자라온 무영봉이야. 좀 이따 구경시켜줄게.”
소령은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말했다.
단진풍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어떻게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전송진을 지키는 사람이라도 이어야 하는 거 아니야?”
엽운과 일행들은 그제야 무영봉의 전송진을 지키고 있는 제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소령이 웃으며 말했다.
“이 전송진은 훔쳐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서 그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지킬 필요가 없어. 밖에서 연기경의 사형들 몇 명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구.”
소령은 전송진에서 폴짝 뛰어 내려가더니 몸을 돌려 손짓했다.
엽운을 포함한 세 사람은 그녀를 따라 전송진에서 뛰어 내려와 바깥으로 향했다.
“누구냐.”
목소리가 앞쪽에서 들려왔는데, 모퉁이를 돌자 흰 옷을 입은 제자 세 명이 나타났다.
“구 사형, 저 왔어요.”
소령은 펄쩍 뛰며 앞으로 다가가 방실방실 웃으며 말했다.
지키고 있던 사람은 얼추 스물일고여덟 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흰 옷을 입고 수려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어딘가 위엄이 느껴졌다.
무영봉 전송진의 수호자인 관천항 이었다.
“사매? 이제 돌아왔다고? 사숙께서는 이미 화가 많이 나셨어. 돌아오면 너를 가두겠다고 하셨다.”
관천항은 어리둥절해 하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매번 그렇게 말씀하셨지만 저를 가두지는 않으셨죠.”
소령은 혀를 내밀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관천항은 곁눈질로 세 사람을 바라보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셋은 누구냐?”
“관사형, 이 사람들은 제 친구예요. 화운비장에서 이 세 사람이 전력을 다해 저를 지켜주지 않았다면 아마 사형께서는 저를 만나지 못하셨을 걸요.”
소령은 고개를 돌려 한 쪽 눈을 깜빡였다.
엽운은 살며시 웃어 보이곤 주먹을 감싸 쥐며 인사를 올렸다.
“저희 셋은 천촉봉에서 종문시험에 참가한 외문 제자들입니다. 제 이름은 엽운이고, 이 쪽은 단진풍과 여명홍입니다.”
“화운비장의 1층이 정말 열릴 줄이야. 너희 외문 제자들이 도움이 안될거 했는데... 이번에 천촉봉에서 백명을 보냈다는데, 몇 명이나 돌아왔나?”
관천항은 여유로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엽운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 셋만 남았습니다. 소령 사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저희도 이미 죽었을 겁니다.”
관천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화운비장은 분명 위험하지. 그건 종문에서도 예상했던 일이야. 너희는 살아서 돌아왔으니 그것만으로 큰 공을 올린 셈이다. 사 사제는 세 사람을 임무전으로 데려가 포상을 받게 하도록, 사매는 나를 따라 사숙을 뵈러 간다.”
소령은 펄쩍 뛰며 말했다.
“기다려요. 관 사형, 이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뵈러 갈 거에요.”
관천항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미천한 신분으로 어떻게 봉주이신 대인을 뵌단 말이냐?”
“저희가 아버지께 긴히 말씀드릴 일이 있어요. 이야기가 끝나고 포상을 받으러 가도 늦지 않잖아요.”
관천항은 냉랭한 눈빛으로 세 사람을 보고,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좋다. 데려가거라.”
소령은 그제야 일행들에게 손짓했다.
그리고는 관천항에게 인사를 올리고 나왔다.
관천항은 떠나는 소령과 세 사람을 바라보며 눈에서 빛을 번쩍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옆에 있던 제자 한 명이 한 걸음 나와 나즈막이 말했다.
“관사형, 사매와 저 버러지들을...”
“잔말 말고 본분에나 충실해라.”
관천항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끊었다.
제자는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물러났다.
무영봉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이 산봉우리가 늘 구름 속에 숨어있어 멀리서 보면 보일듯 말듯 하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바로 앞에 있는 것 같지만 안개 속으로 들어가면 그렇지 않았다.
산발치에 왔다고 생각할 때 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때로는 저 먼 곳에 있는 것 같아도 몇 걸음 걸어가면 산의 중턱에 도달하기도 헀다.
구름 속에 숨어있는 이 봉우리는 잘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위치가 오락가락 하기라도 하는 듯 했다.
그러나 여기서 자라온 소령은 눈을 감고도 무영봉에 올라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소령이 안내를 따라 엽운을 포함한 세 사람은 마침내 천검종의 4대 봉 가운데 하나인 무영봉에 발을 들였다.
참고로 그들은 무영봉 아래의 천검종 조차 다 돌아보지 못했고, 천촉봉 산발치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곧장 무영봉에 들어왔고, 저도 모르게 마음속에서 감격이 밀려왔다.
안개가 걷히고 태양이 내리쬐니 마치 은은한 금색 실이 구름을 꿰뚫고 산봉우리를 때리는 것 같았다.
금색 빛이 사방에 총총 널려있어 몹시 아름다웠다.
“예쁘지. 이건 무영봉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라구. 햇살이 안개를 꿇고 금색 선을 이루어 몹시 아름답지.”
소령은 내리쬐는 금색 빛을 가리키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런 절경이 있다니, 정말 믿어지지가 않아요.”
여명홍은 땅을 가득 메운 금색 빛을 보며 흥분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여 사제, 어째 대묘에서 나오고부터 이상하단 말이야. 왜 이렇게 쉽게 흥분 하는거야.”
소령은 그를 바라보며 호기심에 물었다.
여명홍은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그런가요? 대묘에서 구사일생으로 나오니 너무 기쁜가 봐요.”
소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참 못났어. 고작 대묘에서 빠져나왔다고 이렇게 기뻐하고 말이야.”
엽운과 단진풍은 서로를 바라봤는데, 그들의 눈에서 의혹이 느껴졌다.
소령의 말대로 여명홍은 지나치게 기뻐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곡일평이 죽고 난 이후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고, 어딘가 성급해졌다.
여명홍은 아직 어린 아이다.
열다섯살의 나이로 대묘의 잔혹함을 마주했고, 어렵사리 도망쳐 나왔으니 기뻐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소령은 무영봉의 주전으로 들어가지 않고, 작은 오솔길을 따라 두 바퀴 돌더니 멋들어진 뜰 앞에 멈췄다.
전부 대나무로 이루어진 작은 뜰에는 대나무로 된 2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었고, 사람 키의 반만한 대나무 울타리가 정원을 애워싸고 있었다.
“엄마, 저 왔어요.”
소령은 단숨에 정원의 대다무 문을 밀어 재끼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무영봉에 가서 소호를 만나는게 아니라 어머니를 먼저 찾아온 것이다.
“삐걱!”
대나무 집의 문이 슬며시 열리더니 흰색 치마를 입은 중년 여성이 문 밖으로 나왔다.
청초한 얼굴에 어딘가 우아하고 의젓한 자태를 하고 있었는데, 뒤로 가볍게 늘어뜨린 머리는 파란색 끈으로 묶여 있었다.
“돌아올 줄도 아는구나.”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자애로움이 느껴졌다.
“어머니,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를 뵈러 온 거에요.”
소령은 달려가 품에 안겼다.
중년 여성은 살며시 웃어 보이곤 손으로 소령의 이마를 찌르며 말했다.
“몰래 나간 일로 아버지에게 혼이 날까봐 무서워서 나한테 먼저 온 거겠지.”
소령은 활짝 웃으며 반달 같은 눈을 하고 응석을 부렸다.
“역시 엄마가 나를 제일 잘 안다니까.”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들을 데려와 놓고 엄마한테 소개도 안해 주는구나.”
소령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세 사람에게 손짓했다.
“이 쪽은 엽운, 단진풍 그리고 여명홍 이에요. 천촉봉의 외문 제자들 인데, 화운비장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에요.”
소령은 세 사람을 가리키더니 방긋 웃으며 말했다.
“이쪽은 우리 어머니 수청훤이셔. 소부인이라고 부르던 사숙이라 부르던 마음대로 해.”
“처음 뵙겠습니다 부인!”
세 사람은 즉시 몸을 굽혀 인사를 올렸다.
“너무 예의 차리지 말거라. 령이의 친구들이니, 다음부터는 아줌마라고 부르렴.”
수청훤은 소령을 한 번 쳐다보더니 몸을 돌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 사람은 서로를 한 번 바라보더니 다시 인사를 올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주머님!”
수청훤은 아름다운 눈으로 세 사람을 바라보다가 엽운을 보며 말했다.
“번개의 영기를 수련했구나. 게다가 소흡성결도 있고, 정말 보기 드문 일인데...”
엽운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