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4 화 무너진 대묘
수선의 길이 얼마나 잔혹한가.
영기 하나를 위해, 또 약간의 자원을 위해 싸움을 벌이고, 심지어는 사람을 죽여 피로 강을 이루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나문성은 1년 전에 이미 홍운예상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 보물을 처리하지 못했는데, 이처럼 특별한 보물을 처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 진나라 땅에서는 홍운예상의 그림자만 봐도 천검종이 달려와 그게 누구던 온갖 것들을 물어보며 추궁하고, 얻은 사람을 잡아낼 것이다.
나문성은 감히 이것을 처리할 수 없었고, 엽운과 나머지 사람들 역시 선뜻 상납하지 못했다.
지금 그들의 지위와 수위라면, 이것을 종문에 넘기고 받은 포상을 노리는 자들의 끝없는 정탐과 살기에 시달려야 한다.
따라서 엽운과 단진풍의 뜻은 분명했다.
소령이 홍운예상을 가지고 돌아가 소호에게 주는 것이다.
무형봉주의 신분을 가진 소호가 이것을 상납하면 분명 종문에서는 큰 공적으로 인정해 줄 것이고, 이 포상을 노리는 사람도 없을 것이며, 종문이 하사한 상 가운데 아주 일부분만 엽운과 나머지의 손에 떨어져도 훗날 수행에는 충분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만으로 십 년 동안 수련 자원 걱정은 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소령 역시 아주 총명하기에 금방 그들의 뜻을 이해했고, 홍운예상을 받은 뒤 조심스럽게 넣어두었다.
엽운은 허공에 우뚝 솟은 수운신전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화운대전의 7층에서 별의 길로 뛰어들고 이 바다로 전송 되어 곡일평과 소령 일행을 만난 뒤 나문성을 죽이는데 까지 대략 한 시진 정도의 시간을 소모했다.
만약 화운대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면, 일반적으로 이때쯤 되면 전부 무너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구양문천과 나머지 사람들은 왜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엽운은 구양문천 일행의 수위로 대전에 깔려 죽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소령, 이 3층에서 어떻게 나가지?”
엽운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소령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 3층에는 어떤 통로도 없었는데, 이 안에는 분명 숨겨진 공간 진법이 있을 것이다.
이 곳에서 떠나려면 그것을 파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여기는 공간 진법의 파동이 느껴지지 않아서 진안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
소령은 한 번 시도해 보고는 나즈막이 얘기했다.
“그럼 어떻게 하죠? 여기서 멍하니 기다려야 하나요? 빌어먹을.”
여명홍은 조급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여 사제, 뭐가 그리 급해. 혼자 갇힌 것도 아닌데.”
단진풍은 눈썹을 씰룩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
여명홍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평정을 되찾았다.
엽운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별안간 그는 고개를 돌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서두를 필요 없어. 금방 될거야.”
“무슨 뜻이지?”
여명홍과 소령이 동시에 물었다.
“통로를 찾을 수 있는 거냐?”
단진풍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엽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찾을 필요도 없어. 대묘는 곧 무너질거거든.”
세 사람은 모두 멍해졌다.
도무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바로 그때 저 너머의 바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대지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평선 위에 별안간 하얀 선 하나가 생기더니 점점 선명해졌다.
엽운은 크게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서 가자.”
소령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어디로 가자고? 대묘는 무너진다면서? 그럼 그냥 기다리면 되잖아.”
“그럴 수 없어. 저 흰색 선 보이지, 저건 거대한 파도야. 우리를 순식간에 날려 버릴 수 있는 거대한 파도라고.”
단진풍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멀리에서 다가오는 흰색 선을 보며 소리쳤다.
흰색의 선은 점점 굵어졌다.
처음엔 머리카락 같던 선은 이제 손가락 굵기와 비슷해졌다. 잠시 후 찰랑거리는 물소리가 귓가에 어렴풋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령과 여명홍은 당황한 표정으로 엽운을 바라봤다.
엽운은 단호하게 말했다.
“가자. 대묘가 붕괴될 때 까지만 버티면 나갈 수 있을 거야. 저 파도가 우릴 덮치기 전에 나가기만 하면 돼.”
“맞아. 우릴 죽이기에 충분한 위력의 파도지만 어쩌면 환각일 수도 있어. 묘지 안에서 어떻게 저렇게 거대한 파도가 일겠어. 적당히 시간을 끌면 괜찮을거야.”
단진풍은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말했다.
네 사람은 망설임 없이 파도가 밀려오는 반대 방향을 향해 질주했다.
그런데, 그들은 수백 장을 달려오다가 별안간 멈춰 섰다.
모든 방향에서 파도가 나타나 그들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지?”
단진풍은 엽운을 바라봤다.
엽운은 잔뜩 굳은 얼굴로 사방의 파도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오히려 진정 된 모습이었다.
“기다려!”
“기다리라고!?”
세 세람이 동시에 물었다.
“그래, 기다리면 돼.”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허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봐, 수운전이 곧 무너져 내릴거야.”
소령과 세 사람이 보니 8개의 물기둥으로 떠받쳐진 수운전이 격렬히 떨리고 있었는데, 물줄기가 요동치며 바다로 떨어져 내려오는 것을 선명히 볼 수 있었다.
“쾅!”
굉음이 울려 퍼지며 거대한 수운신전이 무너져 내렸다.
물줄기가 하늘을 가득 메우며 뿜어져 나가 족히 수백 장 너머에 떨어졌다.
“우지직!”
별안간 하늘 위에 무수히 많은 균열이 생겼고, 엽운과 일행들이 눈치 채기도 전에 점점 커져 거미줄처럼 빽빽하게 하늘을 메웠다.
엽운은 기쁜 얼굴로 미친 듯이 밀려드는 파도를 바라보며 기대를 품었다.
“쾅!”
하늘에서 거대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그 틈으로 한 줄기 햇살이 들어와 세차게 일렁이는 바다 위에 쏟아졌다.
순간, 일렁이던 바다가 얌전해지며 햇살이 잔잔한 물결처럼 사방을 향해 퍼져나갔다.
바다 위, 햇빛이 닿는 곳은 마치 거울처럼 고요해졌고, 짧은 시간 동안 햇빛은 이미 근방 수천 장을 채웠다.
“어떻게 된거야?”
단진풍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하늘의 균열은 아직도 커지고 있어. 분명 대묘가 곧 무너져 내릴거야.”
엽운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미줄 같은 균열은 공간을 가득 채웠고, 심지어 그들 근처의 공간에도 균열이 생겼다.
“내가 단칼에 이 공간을 베어주마.”
단진풍이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빛이 번쩍이더니 얼음처럼 시퍼런 빛을 내는 칼날이 튀어나와 앞쪽의 균열을 매섭게 베었다.
“안 돼!”
별안간 소령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엽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단박에 소령을 품에 안고 몸을 피했다.
“쾅!”
단진풍의 검은 그대로 균열 위에 있었는데, 한 덩어리의 빛이 폭발하며 거대한 기운이 터져나와 단진풍의 손에 쥔 시퍼런 장검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여러개의 푸른빛이 단진풍의 몸을 뚫고 지나가 거울처럼 평온한 바다 위로 떨어졌다.
단진풍의 몸이 거꾸로 날아갔고 입에서는 피가 미친 듯이 뿜어져 공중에서 꽃을 피웠다.
옆에 서 있던 여명홍은 거대한 기운에 휘말려 수 십장 너머로 날아가 반쯤 꿇어앉아 있었다.
안색이 온통 창백했다.
“공간 장벽이 얼마나 큰 힘을 지니고 있는데, 저 녀석이 감히 공격할 줄이야.”
소령은 창백해진 얼굴로 거꾸로 날아가는 단진풍을 보며 겁에 질린 듯 말했다.
엽운은 마음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방금 그 반동은 엄청난 위력을 가졌는데, 단진풍이 아니라 자신이었어도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엽운은 몸을 움직여 단진풍의 옆으로 다가가 그를 부축하며 오른손을 뒤집어 단약 한 알을 입에 집어넣었다.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해. 곧 치료 될거야.”
단진풍의 얼굴은 피투성이였다.
겁에 질린 눈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엽운은 몸을 일으켜 단진풍이 베어낸 공간을 바라보았다.
눈에 기쁨이 서렸다.
여러 개의 미세한 금으로 이루어져 있던 수정벽에는 거미줄처럼 빽빽하게 균열이 생겼다.
엽운은 한 걸음 다가가 오른손을 가볍게 뻗었다.
“엽운, 손 때.”
소령이 놀라서 소리쳤다.
그녀는 공간장벽이 파괴되는 순간 터져 나오는 힘이 엽운을 조각내버릴까 두려운 것 같았다.
엽운이 손이 잠시 멈추는 듯 하더니, 계속해서 뻗어 나갔다.
“철컥!”
맑은 소리가 울리며 공간장벽의 수정이 조각나기 시작했다.
엽운은 이상한 영기가 공간장벽의 파편에서 뿜어져 나와 자신을 향하는 것을 느꼈다.
이 영기는 너무도 빨라 엽운의 수위가 지금의 보다 두 배 높아도 피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엽운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생각을 바꿔 가슴속에서 흑백 빛을 번쩍이자 선마지심이 나타났다.
“흡수해!”
나즈막이 소리치자 소흡성결이 즉시 발동되어 영기에 접촉했다.
순간 공간장벽의 깊은 곳에서 전해지는 기이한 영기가 엽운을 향해 쏘아져 나왔다.
엽운은 가슴을 살짝 펴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영기는 순식간에 그의 피부를 뚫고 들어갔다.
선마지심이 만들어낸 소용돌이는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기이한 영기를 흡수했다.
엽운은 엄청난 영기가 순식간에 들어와 선마지심에게 빠르게 흡수되는 것을 느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장벽의 영기는 조금도 남김없이 사라졌다.
“됐다!”
엽운은 고개를 돌리고 웃으며 소령에게 손을 흔들었다.
소령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엽운이 공간장벽이 파괴되는 순간 터져나오는 반동에 맞아 죽거나 단진풍처럼 될 줄 알았다.
소령은 크게 기뻐하며 다급히 달려갔다.
여명홍 역시 기쁜 표정으로 곧장 달려갔다.
“여사제, 단사형을 등에 업어. 여기서 나가자.”
엽운은 소령을 붙잡고 고개를 돌려 말했다.
여명홍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 없이 간신히 상처를 회복 중이던 단진풍을 등에 업고 흥분한 표정으로 공간장벽의 부서진 곳을 바라보았다.
공간이 부서진 곳에는 새카만 구멍이 나 있었는데, 어디로 향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까만 구멍을 들여다보던 엽운은 소령의 손을 잡고 태연하게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