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3 화 절품영기
나문성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진기뇌농에 갇힌 엽운이 어떻게 우리를 베어낸 것인가.
이 모든 것은 그의 예상과 인식을 완벽히 벗어났다.
진기뇌농은 연기경 후기의 수사들만이 시전 할 수 있는 기술로, 공멸을 노리는 최후의 일격이다.
일반적으로 안에 갇히게 되면 수위가 촉기경에 달한 수사들이 아닌 이상 절대로 파괴할 수 없다.
그런데 엽운의 수위는 분명 연체경 7중 오기경인데, 단칼에 우리를 베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나문성은 크게 소리치며 최후의 저항을 하려했다.
하지만 진기는 이미 진기뇌농에 완전히 빼앗겨 조금도 남지 않았다.
자영검은 빛을 번쩍이며 그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곧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고, 피가 반 장 높이까지 뿜어져 나왔다.
다음 순간, 자신의 몸이 비스듬히 반으로 갈라져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문성의 두 눈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엽운은 반으로 갈라진 나문성을 바라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의 마음도 충격으로 요동쳤다.
조금 전 까지 죽음을 앞에 두고 있었는데, 조금만 늦었다면 진기뇌농이 폭발했을 것이고 그 충격을 당해내지 못해 순식간에 죽고 말았을 것이다.
“소흡성결, 도대체 어떤 공법인 것이냐? 이토록 신비할 수가..”
엽운은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위기의 순간에 소흡성결과 선마지심은 함께 힘을 합쳤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완벽히 이를 이용할 수 있다면 영기의 부족을 걱정할 일은 없지 않을까?
“진기를 흡수한 건가?”
엽운의 눈에서 빛이 번쩍였고, 입가에는 어렴풋이 웃음이 떠올랐다.
“엽운, 괜찮은 거야?”
초조함과 기쁨이 서린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 그윽한 향기가 밀려왔고, 엽운은 품에 누군가가 안기는 것이 느껴졌다.
“난 괜찮아!”
엽운은 품속의 소녀를 살짝 끌어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령은 그를 꽉 껴안았다.
옥처럼 새하얀 뺨에는 아직도 눈물이 맺혀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떠올랐다.
“깜짝 놀랬잖아. 놀래서 죽는 줄 알았단 말이야.”
엽운은 그녀를 가볍게 끌어안고 머리카락 사이로 전해져오는 그윽한 향기를 맡았다.
마음 속의 정이 더욱 깊어졌다.
“어이 소령 사매, 나도 한 번 안아보자.”
단진풍의 능글맞은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두 사람의 귓가에 들려왔다.
소령은 곧바로 엽운을 밀쳐내고 얼굴을 붉히며 단진풍을 노려봤다.
“너 한 번만 더 헛소리하면, 우리 아버지한테 얘기해서 무영봉에 가두어버릴 거야.”
단진풍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소령사매, 그러면 안 되지, 대우가 너무 다르네.”
소령은 다시 한 번 노려보며 콧방귀를 뀌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여명홍은 가까이 다가와 반으로 갈린 채 두 눈을 뜨고 죽은 나문성을 바라보며 크게 놀랬다.
그의 눈에서 이상한 기색이 스쳤고, 곧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엽운을 바라봤다.
“엽사형, 이 일격은 정말 엄청나네요.”
엽운은 살짝 웃으며 사제에 대한 호감을 드러냈다.
“너도 나쁘지 않아. 대묘의 3층에 들어가면 연기경이 눈앞에 있을거야.”
“제가 엽사형과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저 너무 멀리 뒤쳐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여명홍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멈췄다.
엽운은 아무렇지도 않게 나문성의 저물대와 손에 낀 저물 반지를 집어들고 곧바로 영력을 주입했다.
저물 영기에는 주인의 영력이 기록되어 타인이 쉽게 열 수 없게 돼있다.
하지만 주인인 나문성이 죽었기에 그 안의 영력 기록이 사라졌고, 엽운의 영력이 쉽사리 들어갈 수 있었다.
나문성은 절검봉의 10대 제자 중 하나인 만큼, 평범한 제자들과는 사뭇 달랐다.
저물대와 저물 반지 속의 물건들을 본 엽운은 깜짝 놀라 어리둥절해졌다.
저물대 속에는 오직 상품영석 밖에 없었는데, 족히 오천 개가 넘었다.
그런데 저물 반지 속에는 붉은 영기 하나가 엽운의 주의를 끌었다.
저물 반지 속에는 붉은 안개같은 영기가 있었다.
엽운이 손을 뻗어 잡아보니 손에서는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았고, 자세히 만져봐야 비로소 매끄러운 느낌이 전해졌다.
엽운이 이를 펼쳐보니 그것은 여성용 상의였다.
온통 선홍빛으로 되어 있었는데 어렴풋이 영기가 느껴졌고,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 있는 것 같았다.
“홍운예상? 이건 홍운예상 이잖아. 나문성의 손에 있을 줄이야.”
엽운이 묻기도 전에 옆에 서있던 소령이 깜짝 놀라며 입을 가리고 소리쳤다.
“홍운예상? 이게 뭔지 아는 거야?”
엽운이 물었다.
소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홍운예상은 천검종의 지보야. 절품 영기라고 할 수 있지. 일 년 전에 갑자기 사라졌는데 다시는 찾지 못했고, 종주님은 화가 많이 나셨지. 하마터면 보물을 지키는 사형들을 전부 죽일 뻔 했어.”
“절품 영기?”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그가 알기로는 상품영기도 엄청난 물건이고, 절품영기는 말로만 들어봤을 뿐, 한 동안 모든 영기는 상중하 세 개의 등급으로 나뉘며 절품영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래, 절품영기. 이 홍운예상은 천검종이 세워진 이래 처음으로 제작된 절품 영기라고 전해지는데, 2대째의 아주 아름다운 여제자에게 하사 되었다고 해. 이 여제자는 바로 훗날 3대 종주가 되는 단목금 선배이시지.”
소령이 천천히 말했다.
“단목금 선배..!”
엽운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 분은 천검종 천 백년의 역사 이래 다섯 명 밖에 없다는 금단 수사 중 한 명이다.
게다가 소문에 의하면 이미 금단경의 7중까지 올라갔고, 영생을 누리게 되는 원영경 까지 반 걸음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전까지 엽운은 금단이 최고로 높은 등급이며 그 위로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래, 바로 그 단목금이야. 그녀는 당시에 이미 영생에 가까워졌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실패해 평생의 한을 풀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가셨어.”
소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이 어이, 단목금 얘기는 그만하고, 난 이 절품 영기인 홍운예상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데 말이야. 도대체 어떤 효과와 위력을 가진 건지 말해줘.”
단진풍의 목소리가 엽운과 소령의 말을 끊고 들려왔다.
엽운과 소령은 서로를 한 번 마주보더니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홍운예상은 절품 방어 영기야. 너희도 알다시피 방어 영기는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절품으로 만드는 것은 더더욱 어려워. 이 홍운예상은 여자만 입을 수 있어. 이것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여자만 가지고 있는 음기의 영력이 필요하거든. 연기경에 도달하지 못한 제자도 이것을 입으면 촉기경 수사의 공격 한 번을 막아낼 수 있다고 하니, 연기경에 도달한 수사라면, 다치게 할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
소령은 웃으며 말했다.
엽운과 단진풍 그리고 여명홍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촉기경 수사의 공격을 한 번 막아낸다고? 촉기경 중에서도 어느 경지 인지는 상관 없는건가?”
단진풍이 기가 막힌다는 듯 물어왔다.
“그러게 말이야. 아무래도 그건 좀 말이 안되지. 연체경의 제자가 홍운예상을 입으면 촉기경의 공격을 한 번 막아낼 수 있다지만, 그 공격에서 나오는 반동만으로도 죽음에 이를거야.” 엽운 역시 믿기지가 않았다.
소령은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너희가 뭘 알겠어. 이 홍운예상의 가장 신기한 점은 촉기경 강자의 공격도 전부 없애버린다는 점이야. 그냥 평범하게 쓰다듬는 것처럼 말이야. 단지 촉기경에 이른 고수의 공격은 너무도 강해 연속으로 막아낼 수 없을 뿐.”
엽운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촉기경 고수의 공격을 연속으로 막아낼 수 있으면 그건 절품 영기가 아니라 선기겠지.”
“물론이지, 그런데 연기경 제자의 공격은 간단히 막을 수 있어. 이 나문성 같은 수위를 가진 자가 전력으로 공격해도 홍운예상의 방어는 뚫지 못해.”
소령은 흥분 가득한 눈으로 엽운의 손에서 희미하게 요동치는 홍운예상을 보았다.
엽운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럼 이 홍운예상은 네가 입어.”
소령은 어안이 벙벙했다.
도무지 믿을 수 없었던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야. 입을 수 없어. 종문에서 발견하면 우리 무영봉의 봉주이신 우리 아버지도 나를 지켜주지 못 하실거야.”
엽운은 눈썹을 씰룩이며 말했다.
“네가 못 입는다면, 우리가 입어봐야 아무런 쓸모도 없을 것이고, 그럼 어떻게 처리하지?”
“종문에 넘기죠!”
여명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종문에 넘기자고?”
엽운은 그를 바라봤다.
“네. 무덤에서 우연히 발견했는데 범상치 않은 물건인 것 같다고 얘기하면서 종문에 넘기면 분명 엄청나게 많은 포상을 줄 거에요. 심지어 어쩌면 우릴 정예 제자로 만들어 줄지도 모르죠.”
여명홍의 눈에서 기대와 흥분이 보였다.
엽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홍운예상은 아주 진귀한 보물이잖아, 우리가 종문에 직접 넘기면, 종주께서 우리가 다른 보물을 발견 했을거라 의심하지 않는 이상 분명 많은 상을 주시겠지. 그런데 우리 수위라면 분명 다른 사람들이 그 상을 노릴거야. 그렇게 되면 평화롭게 보물들을 지키면서 수련에 매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래, 엽운 말이 맞아. 만약 우리가 직접 전달하면 종문에서도 분명 우리를 의심할텐데, 그렇게 되면 귀찮아 질거야. 그러니까 실력과 신분이 충분한 사람이 전달해야해. 그리고 우리는 그냥 얌전히 일을 처리한 뒤 마음 놓고 수련하면 된다고.”
단진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과는 달리 오만한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누가 전달하면 되지?”
여명홍과 소령이 입을 모아 말했다.
엽운과 단진풍은 서로를 보며 한 번 웃더니, 역시나 동시에 말했다.
“소령의 아버지, 무영봉주 소호!”
소령은 어리둥절했다.
“우리 아버지?”
“그래. 네가 이 홍운예상을 가지고 돌아가서 아버지께 대묘에서 얻은 보물이라고 말씀 드린 다음 종문에 전달해달라고 부탁드려. 그렇게 되면 종문에서는 포상을 내릴 것이고 아무도 그 상을 탐내지 못 할거야. 감히 너희 아버지와 맞서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테고, 너희 아버지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고수라면 그런 포상 따위를 노릴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소호 대인께서 적임자라고 할 수 있어.”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말했다.
“소호 대인께서 종문의 포상을 받으시면 분명 그 중 대부분을 너에게 주시겠지. 아니 심지어는 전부 다 주실 수도 있어. 그럼 나중에 우리끼리 나눠 갖는 거야.”
단진풍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기 시작했다.
소령은 반짝이는 두 눈으로 엽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