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7 화 칠절마도
상품 영기 하나와, 9품 이상의 선기, 그리고 백개의 응기단.
곡일평의 요구는 단진풍 마저 귀를 의심케 만들었다.
단진풍 만큼 낯짝이 두꺼운 사람도 저런 요구는 감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상품영기가 얼마나 진귀한지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천검종의 정예 내문 제자라 중에서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게다가 8품 이상의 선기라면, 척 보기엔 별 것 아닌 듯하지만, 그는 분명 ‘8품 이상’ 이라고만 말했고, 정확히 몇 품의 선기인지 말하지 않았다.
만약 곡일평이 4품 선기를 하나 달라고 한다면, 천검종 내에서도 오직 종주만이 수행할 수 있는 선기를 어찌 그에게 주겠는가?
오히려 백 개의 온기단은 듣기에는 진귀할 것 같지만, 그저 진기를 회복시키는 단약일 뿐이고, 촉기경의 고수들에겐 이미 별 효과가 없기 때문에 그다지 희소성이 높지 않았다.
“곡일평, 이제 보니 낯짝은 나보다도 두껍고 속도 시커멓구나. 이때까지 내가 널 얕본 것 같은데.”
단진풍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곡사형, 농담이죠?”
여명홍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오히려 엽운과 소령의 얼굴에는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고, 그저 냉소를 지을 뿐이었다.
엽운과 일행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곡일평이 이런 요구를 한 것일까?
설마 머리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무엇일까,
이는 무영봉주를 데려와도 응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 역시 반드시 이것들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 곡일평 이라는 자는 주도면밀한 성격으로, 비록 단진풍을 마주할 때에는 늘 참지 못하고 화를 내지만, 평소의 그는 아주 이지적이며 득실을 확실히 따질 줄 알고 늘 최선의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이 요구로 어찌 이익을 챙기겠는가?
그의 수위가 아무리 높다 한들 엽운과 나머지를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엽운은 척 봐도 그의 수위를 따라 잡아 그와 똑같은 연체 7중 오기경에 도달했다.
엽운의 지금 수위는 연기경 중기의 수사도 대적할 수 없으며, 연기경 후기에 도달한 고수들만이 그를 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헛소리를 늘어놓는 곡일평의 자신감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곡일평, 지금은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엽운은 차가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곡일평의 얼굴에는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나는 장난 따위는 치지 않는다. 만약 오늘 소령 사매가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이 대묘 3층의 끝없는 바다가 너희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헛소리가 길다. 하룻강아지 녀석이 감이 짖어댄다면 죽여버리는 수밖에.”
단진풍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몸을 움직여 날아갔다.
손에서는 빛이 번쩍이며 두개의 하품 장갑이 튀어 나왔다.
찬란한 태양이 순식간에 나타나 하늘을 밝게 비추었다.
그러나 태양의 뒤에는 어두운 기운이 창을 만들어내 곡일평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대일황황, 유명암장? 또 이 두 기술이군. 단진풍 네놈의 쥐꼬리만한 재간마저 바닥이 난 것이냐?”
곡일평의 얼굴에는 전혀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그의 손에서 녹색 빛이 번쩍이더니 녹색의 군도 한 자루가 나타나 단진풍의 두 공격을 가볍게 내려베었다.
칠절마도는 칠절노마가 남긴 군도로, 당시에 연기경의 수위였던 칠절노마는 이 칼로 촉기경의 강자를 셀 수도 없이 베어 죽였다고 한다.
칠절마도는 곡일평이 대묘의 1층 산봉우리에서 얻은 것인데, 이 마도는 법문 하나를 익혀야만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 법문은 먼저 진기를 수련해야만 다룰 수 있고, 그래야 비로소 칠절마도의 상징적인 희, 노, 애, 락, 애, 악, 한 등의 공격을 쓸 수 있다.
녹색의 군도가 베어내리는 모습은 투박하기 그지없었지만, 위력만큼은 대단했다.
한 번 베는 것으로 대일황황의 빛을 모조리 잘라버렸고, 칠절마도가 떨어진 곳의 뒷편에 있던 유암의 창마저 금속이 잘려나가는 듯 한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녹색 군도는 엄청난 기세로 가볍게 두 공격을 베어내 단진풍의 면전에 떨어뜨렸다.
단진풍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곡일평이 이렇게 강력한 군도를 가지고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일격의 위력은 연체경의 범위를 완전히 벗어나는 수준이었고, 연기경 쯤은 되어야 이처럼 거대한 위세를 가진 공격을 할 수 있었다.
칠절마도에서 이상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단진풍의 몸에 닿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단진풍은 별안간 마음속에서 공포가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순간 몸을 벌벌 떨며 다가오는 마도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조차 잊고 말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엽운이 몸을 움직여 자리를 벗어났고, 곧 이어 단진풍의 허리 언저리에서 철권 하나가 나타나 그를 날려버렸다.
“쾅!”
칠절마도는 거세게 바다를 갈랐고, 수십 장 길이의 계곡을 만들어 냈다.
바다가 양 쪽으로 갈라져 미친 듯이 솟구쳤다.
“연기경? 곡일평 네가 몰래 연기경까지 수련했을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그걸 지금까지 숨겼다니.”
소령은 크게 놀랐다.
그녀는 뛰어난 안목으로 순식간에 곡일평의 진짜 수위를 알아봤다.
“칠절마도를 얻었을 때, 사실 나는 보물을 하나 더 얻었다. 바로 오기과다!”
곡일평은 손에 쥔 군도를 바라보며 웃기 시작했다.
오기과란, 이름 그대로 연체경의 수사가 진기의 사용법을 깨닫게 해주는 열매이다.
이 오기과는 근 수천 년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진귀한 약재로 쓰이거나 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천 년 전부터 오기과의 대부분이 갑작스래 말라 죽었고, 옮겨 심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더 이상 남아있는 종자가 없었고, 그로부터 천 년이 더 지난 지금 오기과는 몹시 진귀해져 한 알 한 알이 발견 될 때마다 수많은 세력의 관심을 받았다.
곡일평의 원래 수위는 오기경으로, 비록 오랜 시간은 아니었지만 거의 마지막 단계까지 왔다.
그는 오기과를 발견하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복용했는데, 수위가 연기경에 달해야만 칠절마도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칠절마도의 칠수를 시전 할 수만 있다면, 연기경 3중의 제자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곡일평은 엽운을 잘 알고 있었다.
엽운은 그들보다 먼저 대묘에 들어왔고, 그의 성격과 머리라면 분명 여러 보물들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두 사람이 만났을때 엽운이 굳이 자신도 금방 3층에 들어왔다는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
엽운은 보물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곡일평이 제일 먼저 떠올린 생각이다.
원래 소령은 그들에게 엽운을 찾는 것을 도와주면 한 사람당 응기단 한 개씩을 주기로 약속했고, 또 무영봉에 들어와 8품 선기 하나 씩을 고르게 해준다고 했다.
세 사람의 수위와 재능이라면, 응기단이 없어도 금방 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만약 응기단이 한 알 있다면, 그 시간은 아주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이는 수위를 숨기고 있던 곡일평에게는 그다지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 아니었다.
무영봉에 들어가 아주 강력한 위력을 가진데다 자신과 아주 잘 맞는 8품 선기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갑자기 요 몇 일간 단진풍 같은 녀석에게 받은 치욕을 돌려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층에 들어온 순간 이 곳에는 아주 많은 천지의 영기가 흐르고 있고, 숨을 한 번 쉴 때마다 진기를 조금씩 쌓을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루 남짓한 시간 동안, 놀랍게도 곡일평은 체내의 영기를 모두 없애고 순수한 진기를 만들어내 바로 연기경에 도달했다.
네 사람 중 그의 수위가 가장 높으니, 모두가 얻은 보물이나 약초는 모두 그가 분배하는 것이 옳다.
사실 방금 전 그의 말은 소령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엽운에게 하는 말 이었고, 여기서 얻은 보물은 전부 내놓으라는 뜻이었다.
“소령 사매도 눈썰미가 제법 좋군, 참격 한 번에 내 수위를 알아보다니 말이야.”
곡일평은 웃음을 지었다.
손에 쥔 녹색 군도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
소령은 눈살을 찌푸렸다.
만약 곡일평이 정말 연기경에 도달한 것이라면, 칠절마도의 진정한 위력을 낼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녀와 엽운을 포함한 네 사람의 힘으론 천지를 종횡무진 누비던 칠절마도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좀 전의 일격은 네놈에게 공포를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일격으론 절망과 비애를 느끼게 만들어주마.”
곡일평은 모두를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고,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단진풍은 여전히 몸을 덜덜 떨고 있었는데, 얼굴에서는 두려움이 천천히 가시고 있었다.
곡일평은 칠절마도의 진수를 다룰 수 있게 된지 얼마 안됐고, 진기 역시 완벽히 조종할 수 없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공포 공격으로 전투력을 5할은 줄어들게 만들었을 것이며, 마음속의 공포감은 한 시진 내내 지속되었을 것이다.
여명홍은 분노가 가득한 표정으로 곡일평을 노려봤다.
“가끔은, 누군가에게 절망이라던지 슬픔이라던지 이런 감정들을 느끼게 만들고 싶겠지. 사실 최후의 결말은 반대가 될 수도 있어. 스스로 이미 더 할 나위없는 슬픔과 절망을 느끼게 될거야.”
엽운은 별안간 웃기 시작하더니 곡일평을 향해서 한 걸음 걸어갔다.
곡일평은 눈을 부릅뜨고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 네 수위가 제법이라는 것도, 강력한 육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연체경은 결국 연체경일 뿐, 진기의 무서움을 아직 모른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곡일평의 왼 주먹을 살짝 휘두르는 것이 보였고, 연한 녹색의 진기가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와 주먹의 그림자를 만들어 열 장 밖의 바다를 매섭게 때렸다.
“쾅!”
바다 위에 손 하나가 생겨나 근방 수십 장을 뒤덮었으며 파도가 사방으로 솟구쳤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거대한 손바닥이 수면의 높이를 한 척 가량 짓눌러 놓은 것이 보였다.
진기를 밖으로 뿜어내면, 백 걸음 너머에서도 쉽사리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곡일평의 예상과는 달리 엽운의 표정에 놀라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절망이나 공포는 더더욱 없었다.
“쉬익!”
엽운의 손에서 별안간 칼 한자루가 튀어 나왔는데, 은은한 보라색 빛을 뿜는 장검이었다.
“이 검은 바로 이 곳 3층에서 얻은 것으로, 이름은 자영이라고 한다. 지금 가르쳐주마. 네가 말한 연기경 따위, 아무도 필적할 수 없는 검도 앞에서는 우스갯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곡일평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단박에 이 자영검이 진귀한 보물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엽운의 손바닥 안에서 파도처럼 일렁이는 모습은 반드시 저 검을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칠절마도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곡일평의 눈에서 온갖 이상한 기운이 맴돌더니, 이윽고 전부 자취를 감추고 흉악한 기운만이 남았다.
“칠절마도, 사악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