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6 화 다시 만나다
허공에서 들려오던 늙은 목소리는 별안간 터질듯한 굉음을 울렸다.
이어서 7층 전체가 마치 거대한 힘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 돌무더기가 날아다니고 강풍이 불며 무너져 내렸다.
구양문천과 나머지 사람들은 크게 놀라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목소리는 마치 허무한 우주의 별들 사이에서 들려온 것 같이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나의 비장이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갔다 할 수 있는 곳인 줄 아느냐?
구양문천의 일행들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화운비장의 주인인 금단수사 화운은 이미 천 년 전에 죽은 인물인데, 설마 아직 죽지 않고 이 대묘 속에서 천 년 동안 살아 있었던 것인가?
그런 일이 가능키나 한가?
하지만 하늘에서 돌무더기가 날아다니며 무너져 내리는 이 화운대전은 그들을 믿을 수밖에 없게끔 만들었다.
대묘의 주인 화운은 살아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그의 음모 일텐데, 분명 자신들처럼 수위가 높고 재능이 출중한 수사들을 이리로 불러들여 무슨 일을 꾸미려는 속셈일 것이다.
구양문천은 엽운과 달랐다.
그가 얼마나 식견이 뛰어난 인물인가,
정신을 잃어가는 와중에 한 가지 가능성을 점치고 저도 모르게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몸을 빼앗으려는 것인가?
설마 이 화운비장의 주인이 이들처럼 높은 수위를 가진 천재들을 대묘로 유인하고 그들의 몸을 빼앗아 부활하려는 것인가?
이론적으로, 수위가 촉기 6경 천인경에 도달하면, 수명이 9백 9십 9년까지 늘어난다.
하지만 금단을 깨고 원영에 달하지 않으면 결코 천 년이 넘게 살 수 없다.
그 말인 즉슨 만약 이 목소리가 정말로 대묘의 주인인 화운이 맞다면, 그의 육신은 분명 소멸하였을 것이고, 어떠한 비법을 이용해 영혼을 보존한 뒤 몸을 빼앗아 다시 태어나려는 셈일 것이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나를 따라 통로로 되돌아갑시다.”
구양문천은 천검종의 한 봉주답게 몹시 결단력이 있었다.
큰 소리로 외쳤다.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란을 피우던 사람들은 곧 바로 조용해졌고. 모두들 구양문천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아직 무너지지 않은 별의 길을 향해 뛰어갔다.
아주 짧은 순간, 모든 이들이 별의 길로 들어섰고, 재빠르게 6층을 향해 날아갔다.
방금 전 까지 들려오던 화운의 목소리는 어느새 잠잠해졌고, 금제를 충돌시켜 화운대전을 무너뜨린 뒤로 사라졌다.
아무래도 이 많은 사람들이 별의 길로 들어가는 것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구양문천과 사람들은 빠르게 별의 길을 통과해 6층으로 들어갔다.
6층은 아직 무너져 내리지 않았지만 벽 위에 금이 가있었고, 언제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별안간 별의 길의 제일 뒤에 서 있던 사람의 그림자가 멈춰섰고, 곧 별의 길 속 깊은 곳을 향해 뛰어 올랐다.
“두검음, 뭐하느냐? 돌아 오거라.”
놀라움과 분노가 뒤섞인 두건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전에 별의 길을 통해 도망친 그 녀석에게는 분명 금단수사의 검도 전적이 있을 겁니다. 쫓아가서 찾아봐야겠습니다.”
두검음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메아리쳤고, 한 자루 검 같은 그의 모습은 별의 길 깊숙한 곳을 향해 날아가 사라져 버렸다.
두건명은 크게 분노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이 화운비장에서 큰 이득을 보지 못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두건명이 죽게 된다면 돌아가 반드시 그 책임을 물게 될 것이다.
두건명이 말한 것처럼 그는 이번 세대 두가의 제자들 가운데 최고로 걸출하며, 가장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훗날 어떤 존재가 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어쩌면 금단 대도에 오르는 것도 꿈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일이 이 지경으로 돌아가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최대한 빨리 대묘를 떠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묘 전체가 붕괴되어 모든 이가 깔려 죽고 말 것이다.
구양문천과 나머지 사람들이 황급히 퇴각하는 동안, 별의 길로 들어간 엽운은 자신의 몸이 정말 별이 가득한 하늘에 떠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공간은 마치 화운이 예전에 배치해 둔 공간환진으로, 끝을 가늠할 수도 없이 방대하게 펼쳐져 있었는데, 공간진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수사라면 길을 잃고 영원히 빠져 나가지 못해 이 곳에서 죽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하늘을 가득 메운 별의 깊은 곳에서 엽운은 작은 균열이 생기는 것을 보았고, 작은 실금이 퍼져나가며 점점 커지는 것을 보았다.
반 주향의 시간 만에 실금이 사방으로 퍼졌고, 마치 허공을 찢는 번개같은 천 장이 넘는 길이의 균열이 나타났다.
쾅!
마침내 폭발음이 울렸고, 하늘 전체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이 흡사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려와 엽운의 앞에 나타났다.
몹시 아름다웠다.
엽운은 깜짝 놀랐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유성우의 빛은 길게 늘어져 있었는데, 그 안에는 엄청난 힘이 담겨 있었다.
한 대라도 맞으면 엽운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그는 이 별들이 그의 몸을 뚫고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고, 이내 모든 것이 환각임을 깨달았다.
모든 것은 공간의 환각이 만들어 낸 것이고, 아무런 살상력도 없었다.
끝도 없는 하늘은 그저 하나의 환진이자, 난진일 뿐이었다.
풍덩!
엽운은 그의 몸이 떨어져 내려와 차가운 바닷물에 빠지는 것을 느꼈다.
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벽록색의 바다였다.
“누구냐?”
그가 떨어져 내려온 순간 누군가가 소리쳤고, 곧 빛이 번쩍이며 왼쪽에서 공격이 날아왔다.
엽운은 바닥물의 부력을 빌어 침착하게 공격을 피했고, 몸을 뒤집어 공격을 날리려 했다.
별안간 그가 내지르던 오른쪽 주먹을 급히 멈췄다.
익숙한 얼굴을 본 것이다.
곡일평, 그의 앞에 나타난 얼굴은 곡일평이었다.
곡일평 역시 그제야 엽운을 발견하고 놀라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엽운?”
엽운은 웃으며 말했다.
“곡일평, 이 3층의 끝도 없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곡일평의 안색이 변했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엽운은 순간 곡일평의 표정이 변하는 것 따윈 개의치 않았다.
그의 마음 어딘가에서 감격이 몰려왔다.
3층에 들어온 후로, 비록 고작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위태로웠고, 발 한번 잘못 딛으면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오늘 하루는 꼭 한 세기처럼 길었다.
“곡사형, 혼자 들어온 겁니까? 아니면 단진풍과 나머지 사람들과 같이 온건가요?”
엽운은 웃으며 물었다.
곡일평은 입가를 실룩이더니 되물었다.
“엽운, 어째서 이제야 온 거야? 우리가 3층에 들어 온지도 하루가 다 되어 가는데, 이 곳에는 망망대해 말고는 아무것도 없고 보물 같은 건 있지도 않았어.”
“저는 좀 전에...”
대답을 하려던 엽운은 별안간 말을 멈추고 이어서 말했다.
“저는 좀 전까지 2층에서 쫓기고 있었거든요, 간신히 그 녀석을 따돌리고 3층으로 오는 입구를 찾은 겁니다.”
엽운은 하마터면 자신이 일찍이 3층에 들어와 무수히 많은 보물을 얻었다는 사실을 말할 뻔했지만, 경각심을 느끼고 입을 닫았다.
곡일평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곡사형, 누굴 만난 겁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백 장 너머에서 들려왔다.
곧 바다 위에 세 사람의 모습이 모였는데,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호리호리한 체형에 치맛자락을 펄럭이고 있는 사람이었다.
소령?
엽운은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더니 곧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령 저 녀석은 진작 이 대묘를 떠났어야 하는데? 어째서 3층까지 들어 온 거지?
게다가 그녀의 옆에 있는 두 사람은 단진풍과 여명홍이다.
소령의 시선이 백 장 너머를 향했고, 별안간 몸을 한 번 떨고 그 자리에서 굳었다.
“소령!”
엽운은 감격하며 크게 소리치고 번개처럼 몸을 움직여 소령을 향해 날아갔다.
소령은 멍하니 서서 날아오는 엽운을 바라보았다.
별안간 그녀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뜨렸고, “와” 하는 소리와 함께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눈물이 새하얀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리고는 다급히 날아와 엽운의 품에 안겼다.
엽운은 품속의 소녀를 꽉 안은 채 그녀의 몸에서 풍기는 향기를 맡으며 진심을 다해 그녀를 안았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왜 3층에 들어 온 거야. 대체 왜!”
소령은 엽운의 품에 얼굴을 묻고 두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흐느꼈다.
엽운은 그저 그녀를 꼭 안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찾았다. 엽운 사형을 찾았다.”
바로 그때 기뻐하는 목소리가 엽운과 소령을 감격 속에서 끌어냈다.
여명홍의 목소리에도 감격이 가득했다.
엽운은 품에 안고 있던 소녀를 놓았다.
고개를 들어 단진풍과 여명홍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단사형, 여사제, 너희들도 3층에 들어왔구나.”
“맞아요 맞아요. 저희도 2층에서 소령 사저를 만났는데, 그녀가 이곳에 데려다 주셨어요.”
여명홍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잔뜩 감동한 표정이었다.
“엽운, 듣자하니 우리보다 먼저 들어온 것 같구나. 보물은 좀 얻었느냐?”
단진풍이 웃으며 말했다.
엽운은 눈썹을 씰룩이더니 웃으며 말했다.
“나도 금방 들어왔어. 그래봐야 너희들 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을거야.”
엽운은 단진풍을 마주하고도 썩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자신이 먼저 3층에 들어왔단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를 뒤따라오던 곡일평의 안색이 어두워졌고, 눈에서 차가운 빛을 내뿜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 이 자식, 우리보다 먼저 3층에 들어왔으면 분명 18개의 물기둥이 받치고 있던 물의 신전을 봤을텐데, 들어가서 무슨 보물을 얻었느냐? 꺼내서 우리랑 나누자.”
단진풍은 웃음 띈 얼굴로 기대를 가득 품고 말했다.
엽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가 들어왔을 때 수운전의 앞에는 이미 구양봉주의 일행들이 자리를 잡았지. 내 수위는 고작 연체경인데 어찌 그들에게 다가가겠어. 한 마디만 잘못해도 그들에게 죽임을 당할 텐데.”
“그럼 엽사형은 어디에 가셨던 겁니까?”
여명홍이 호기심에 물었다.
엽운은 발 아래의 바다를 보며 말했다.
“바닷 속을 살펴봤지. 그런데 보물 같은 건 없었어. 보아하니 화운비장 3층의 보물은 죄다 수운전 안에 있나봐.”
“흥, 엽사제. 설마 수신통을 수련하여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간 것인가?”
곡일평의 목소리가 차갑게 울려 퍼졌다.
엽운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 곡일평 정도는 손 한 번 움직여 없애버릴 수 있기에, 그와 실력을 겨루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이었다.
“벽안정수의 가죽으로 만든 옷이 하나 있어서, 아무리 깊은 바다라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벽안정수? 바다 깊은 곳에 산다는 8급 요수를 말하는 거냐?”
순간 어리둥절해진 단진풍은 곧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바다 깊은 곳에 들어갈 수 있다면, 적지 않은 보물을 얻었을텐데, 어찌 능청스럽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말을 하는 거냐.”
곡일평은 콧방귀를 뀌더니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네가 아무도 얻지 못한 것은 상관없다만, 소령 사매가 우리에게 너를 찾는 것을 도와주면 요구를 하나씩 들어주겠다 했거든.”
줄곧 아무 말없이 조용히 엽운의 옆에 서 있던 소령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뭘 원하는데요?”
곡일평이 웃으며 말했다.
“상품영기 하나와, 8품 이상의 선기, 그리고 온기단 백 알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