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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25화 (125/227)

제 125 화 빼앗긴 길

빛의 기둥은 지반에서 위를 향해 솟아올랐고, 사람의 모습이 보이기도 전에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보십시오 구양봉주님, 7층의 통로가 열린 것 같습니다.”

마치 징 소리 같은 목소리가 빛의 기둥을 따라 울려 퍼졌다.

“과연 7층이 맞군. 6층에 진귀한 보물이 그렇게나 많았으니, 이 7층의 보물은 안봐도 뻔하지.”

구양문천이 잔뜩 기대하며 말했다.

보아하니 6층에서 얻은 보물은 촉기경 6중에 달한 봉주마저 만족스러울 정도인 것 같았다.

“통로가 완전히 열리면 한 번에 들어가지.”

“두건명 너는 두가의 남은 제자들마저 여기서 잃고 싶은게냐?”

구양문천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울려 퍼졌다.

“구양문천, 건방 떨지 말아라.”

한 무리 사람들의 목소리가 빛줄기에서부터 흘러나와 엽운의 귓가에 들려왔다.

엽운의 안색이 크게 변했고,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 7층에 남은 것이라곤 돌벽 4개 밖에는 없었고, 출구도 없었다.

화일성의 몸을 빼앗은 화운을 아직 꺾지 못했는데, 지금 구양문천과 나머지 사람들이 들어와 버리면 그는 죽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지?’

엽운은 마음이 급해졌다.

화운대전의 마지막 층에 구양문천 일행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화운에게서 받은 모든 보물과 영단은 저들이 탐내기에 충분했고, 전부 내놓는다 한들 죽음을 면하기 힘들다.

저들이 자신들 보다 앞서간 엽운을 가만히 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2층에는 아무런 출구도 없었기에, 그저 두 눈을 부릅뜨고 지반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기둥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목소리가 점점 더 또렷해졌고, 빛의 기둥이 점점 선명해졌다.

빛기둥이 완전히 선명해지면 분명 통로가 전부 열릴 것이고, 구양문천과 나머지 사람들이 7층에 들어와 엽운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엽운의 마음은 더 할 나위 없이 급했지만, 도무지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순간, 그의 시선이 빛의 기둥에 멈췄다.

빛의 기둥은 지반에서 곧장 위로 쏘아져 지름이 약 반 장 정도 되는 원형을 만들어냈다.

비록 구양문천과 나머지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빛의 기둥은 여전히 7층의 지면에 있었다.

“이건 분명 공간의 문인데, 그렇다면 내가 지금 저 안으로 들어가면 6층으로 전송되지 않을까?”

엽운의 마음속에서 별안간 이런 황당무계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빛의 기둥을 거슬러 올라가 6층으로 들어간 뒤 혼란을 틈 타 도망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바로 고개를 저으며 이 계획을 접었다.

만약 빛의 기둥을 거슬러 올라가 6층으로 갈 수 있다면, 반드시 구양문천과 나머지 일행들을 마주치게 될 것이고, 만약 자신이 7층에서 내려 왔다는 걸 알게 된다면 분명 그를 죽일 것이다.

엽운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한참을 생각해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별안간 마음속에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7층에는 통로가 없고, 보아하니 저 기둥이 유일한 출구가 될 것 같은데, 7층에서 구양문천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다 빼도박도 못 하게 되느니, 한 발 먼저 움직여 빛기둥 속으로 들어간 뒤 6층에 나타나 자신이 4층이나 5층에서 올라왔다고 둘러대는 편이 훨씬 간단하다.

만약 구양문천과 일행들이 자신을 의심하더라도 7층에서 마주치는 것 보다는 살기를 덜 품을 것이다.

빛의 기둥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통로가 곧 열리려는 것 같았다.

엽운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뛰어올라 빛이 응집된 공간의 통로 위에 떨어졌다.

그의 모습이 통로에 나타나는 순간, 빛의 기둥이 완전히 또렷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명히 두 눈에 보이던 지면은 어느새 물결처럼 일렁이며 갈라졌고 곧 별이 총총한 하늘의 길이 되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푸른빛이 반짝이는 하늘의 길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의 몸이 떨어지는 순간 전방의 별들 사이에서 몇 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구양봉주, 저길 보시오!”

별안간 손일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누군가가 우리보다 먼저 들어온 것 같군.”

엽운은 몇 사람의 시선이 번개처럼 자신을 향하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도 엽운은 진작 대비를 해두었고, 소매를 들어 얼굴을 가린 채 별빛의 깊은 곳을 향해 달려갔다.

“저 자를 잡아라. 이미 7층에 들어가 보물을 모두 가져가는 것 일수도 있다.”

구양문천은 떨어져 내려오는 엽운의 그림자를 보고 소리쳤다.

그의 손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엽운을 향해 재빨리 날아왔다.

하지만, 이 별의 통로는 화운이 최상의 상태일 때에 만든 것으로, 별 속에 들어가는 순간 천리 밖에 떨어져 있는 사람도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은은한 금색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금색 빛은 엽운의 몸에 떨어지지 않았고, 엽운이 별들 사이에서 점점 작아지더니 검은 점이 되어 사라지는 것만 보였다.

“모두들 저 자의 얼굴을 기억하십니까? 대묘를 떠난 후 근방 백리를 모두 봉쇄하여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구양문천이 말했다.

그는 7층의 보물이 어쩌면 이미 모두 빼앗겨 저 별 속으로 사라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엽운은 소매로 얼굴을 가렸기에 그들의 기억 속에 남은 것은 그의 뒷모습뿐인데, 어찌 한단 말인가?

빛의 기둥은 또렷해졌고, 별의 길은 훤하게 뚫려 있었다.

구양문천과 나머지 사람들이 마침내 별의 길을 향해 걸어가 7층에 들어왔다.

개미 새끼 한 마리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과연, 아까 그 녀석이 선수를 친 모양이군.”

구양문천은 어두운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에게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누가 가져갔다고 어떻게 확신하는거지?”

두건명이 반박했다.

“두삼족장께서도 잘 보십시오. 바닥에 보이는 저 붉은 것은 피가 분명합니다.”

은파파는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용머리 모양의 지팡이를 짚고 나즈막이 말했다.

이 화운대전의 7층은 족히 천 년은 된 곳이다.

천 년 전의 혈흔이 아직도 남아 있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가능성은 단 한 가지, 누군가가 이미 들어왔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싸우다 한 사람이 죽었고 모든 보물은 방금 전에 별의 길을 통해 도망친 사람이 가져간 것이다.

구양문천과 나머지 가주들이 다 어떤 인물들이던가,

그들은 곧바로 은파파의 뜻을 이해하고 표정이 어두워지며 살기를 뿜어댔다.

“녀석의 얼굴을 본 사람이 있습니까?”

구양문천이 냉랭하게 물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별의 길이 열리는 그 순간 모두들 기대와 기쁨으로 가득 차 엽운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얼굴을 가린 채 그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별의 길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자의 뒷모습은 기억합니다. 나중에 만나게 되면 제가 분명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별안간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금방 칼집에서 뽑아낸 날카로운 검처럼 뼛속까지 얼어붙을 만큼 싸늘했다.

젊은 청년 한 명이 마치 한 자루의 신검같은 모습으로 사람들 틈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너는 누구냐?”

구양문천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청년의 몸에서 왜인지 모르게 검에 대한 집착이 느껴졌다.

“두검음 입니다. 두가의 이번 세대 최강이지요.”

청년은 싸늘하게 대답했다.

구양문천을 마주하고도 조금도 겁먹지 않았다.

구양문천은 되려 어안이 벙벙했다.

두가 일대의 최강자라고? 그는 두건명을 향해 눈을 돌렸다.

문득, 이 두검음이라는 청년의 뜻은 두가의 젊은 세대 중 제일이라는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음, 너는 뭐하러 여기까지 나왔느냐.”

두건명은 몹시 화가 난 듯 버럭 소리 질렀다.

“삼촌, 그저 사실대로 말 할 뿐입니다. 저는 별들 속에 있던 그 자의 뒷모습과 옆모습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으니, 만약 다시 만난다면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 녀석이 7층의 보물을 얻었다면, 금단수사의 검도전적을 가지고 있는지 제가 한 번 봐야겠습니다. 한 두 개쯤은 배울게 있겠지요.”

두검음은 여전히 냉랭한 모습이었고, 두건명의 지위에도 전혀 공손하게 굴지 않았다.

“흥, 가면 갈수록 버르장머리가 없어지는구나. 내 명령도 듣지 않고.”

두건명은 콧방귀를 끼며 화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별들 속으로 사라진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 두검음 밖에 없는 이상, 굳이 이 곳에서 그 얘기를 꺼낼 필요는 없다.

나중에 두가에 돌아가서 그들끼리만 이야기해도 되지 않는가.

만약 별 속으로 도망친 그 자가 대묘를 떠났다면, 근방 오백 리를 이 잡듯이 뒤져야 간신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두검음이 여기서 이들에게 말을 꺼낸 이상, 원래는 두가가 독식해야 하는 보물이 전부 사람들에게 까발려지게 될 것이고, 그 자를 찾아내는 사람이 화운비장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을 얻는 사람이 된다.

구양문천은 두검음을 바라보더니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만약 그 자를 찾아낸다면 전부 네 공로다.”

“공로고 나발이고, 듣자하니 구양봉주께서는 검도에 조예가 깊고 수위도 높다더군요. 3년 후 제가 반드시 도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구양봉주의 검이 저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두검음의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

“헉!”

주위의 모든 이가 깜짝 놀라 차가운 숨을 들이마셨다.

방금 저 녀석 뭐라고 한 거야?

3년 후 절검봉에 찾아가 구양문천에게 도전하겠다고? 고작 그의 검도를 한 번 보기 위해서? 죽고 싶은 것인가?

웃음을 띄고 있던 구양문천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두검음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3년 후에 도전하겠다는 이 말 자체가 도전이라 할 수 있다.

“무지한 녀석!”

정신을 차린 구양문천은 잔뜩 화가난 표정을 지었다

“하하, 검음이 너 말 잘했다. 너 정도로 검에 대한 깨달음을 가지고 있다면, 3년 후에 분명 구양문천 녀석에게 진정한 검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있을게다.”

두건명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두검음이 한 말이 너무도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구양문천의 표정을 보니 속이 다 후련해졌다.

두검음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고,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손에 쥔 검을 바라보더니 뒤로 물러나 자리로 돌아갔다.

구양문천은 당연히 그와는 차원이 다른 식견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의 수위는 도대체 몇 배 인지 가늠도 되지 않을 만큼 큰 차이가 있는데, 지금 그가 두검음을 훈육해봤자 자신의 격만 떨어뜨리는 꼴이 될 것이다.

“이 7층의 보물은 이미 그 놈이 전부 가져간 듯하니, 다시 돌아가야겠군요.”

구양문천은 침울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별안간 목소리 하나가 허공에서 들려왔다.

“하늘이 높은 줄도 모르는 애송이들아. 나의 비장이 네놈들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갔다 할 수 있는 곳인 줄 아느냐?”

노련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사방팔방에서 들려와 모든 이들의 귀에 선명히 전해졌다.

구양문천과 나머지 사람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들의 발아래 지면이 별안간 폭발하여 부서졌다.

곧 대전 전체가 펑펑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려 바위가 사방으로 튀고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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