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4 화 각자의 계략
엽운이 자영검을 쥔 손에 조금씩 힘을 주자, 화운의 목 위에 피가 맺혔다.
화운은 분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엽운은 자신을 죽이지 않기로 맹세했기에, 이를 어길 경우 천벌을 받게 될 것이고 수위가 모두 폐기되거나 성장이 멈추게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를 화나게 만들어 자신을 죽여 버린다면 또 어찌 하겠는가?
화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엽운, 너랑 나랑은 제법 인연이 깊다 할 수 있지 않느냐, 천 년 만에 만났는데 어찌 이렇게 까지 하려는 것이냐.”
엽운은 웃으며 말했다.
“화운 어르신, 하늘을 다시 보기를 그토록 바라셨잖아요? 당신의 능력과 수행 경험이라면, 이따위 보잘 것 없는 물건에 정신 팔리면 안 되죠. 수행에 전념하여 오직 금단만이 정도라는 것을 다시금 증명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화운은 하머터면 입에서 피를 뿜을 뻔했다.
그는 영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때 금단수사였지만 지금은 그저 연체경의 수위에 지나지 않았고 그저 보통의 사람보다 조금 강할 뿐이었다.
중생전혼탑의 영혼 날인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화운은 영력의 날인을 지우고 중생전혼탑의 사용법을 엽운에게 전수했다.
엽운이 사용법대로 시전하자 중생전혼탑이 순식간에 3촌 남짓한 크기로 축소되어 손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빙긋 웃으며 중생전혼탑을 뇌운화룡계에 집어넣었다.
“화운 어르신, 이제 대묘의 통로를 열어 주시죠.”
자영검은 날을 번쩍이며 여전히 화운의 목덜미에 놓여있었다.
“내가 만약 금단의 수위였다면, 대묘의 통로쯤은 물론 바로 열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의 실력으로는 너의 도움이 필요하고, 반나절 정도의 시간을 들여야 통로를 열 수 있다.”
화운은 자신의 목덜미 앞에 놓인 자영검을 바라보며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화운 어르신, 또 수작을 부리시면 안 됩니다.”
“통로를 열면 너랑 나는 각자 갈 길로 간다. 어쩌면 영영 보지 않게 될 수도 있지. 내가 바라는 것은 다시 하늘을 보는 것뿐인데, 널 속여서 무얼 하겠느냐?”
화운이 냉랭하게 말했다.
“그게 제일 좋겠지요.”
통로를 열기 위해서는 8개의 금제를 열어야 한다.
만약 화운이 아직도 금단의 수위를 가지고 있었다면 손 한 번 까딱하는 것으로 통로를 열 수 있었겠지만, 지금 그의 수위로는 하나를 열기도 벅차다.
그러나 엽운의 도움이 있다면 훨씬 쉬워진다.
엽운의 수위는 비록 연체경 7중인 오기경이지만, 그의 영력은 아주 거대해 일반적인 연기경의 제자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화운이 한 손으로 앞쪽의 허공을 몇 번 찌르자, 빛이 뿜어져 나와 각각의 점이 허공에서 물결처럼 일렁였고, 곧 알록달록한 빛의 구슬이 나타났다.
“영력을 이 곳에 주입시켜라. 하나를 뚫으면 금제 하나를 파괴할 수 있다.”
화운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엄숙하게 말했다.
엽운은 감히 대충 할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그가 두 손으로 빛의 구슬을 두들기자 영력이 손바닥에서 쏘아져 그 속으로 주입되었다.
“우지직!”
첫번째 알록달록한 구슬이 별안간 쪼개지더니 무수히 많은 빛이 되어 공중에 흩뿌려졌다.
몹시 아름다웠다.
화운은 쉬지 않고 점을 찍었고, 빛의 구슬이 하나씩 허공에 생겨났다.
“금제의 파괴는 한 번에 이루어져야 하며 중간에 끊겨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화운대전이 붕괴 될 것이고, 너와 나는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될 것이다.”
화운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다행히 엽운의 영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만약 그가 아닌 다른 오기경의 수사라면 잘해봐야 금제 3개 정도를 파괴하고 영력이 바닥나고 말 것이다.
엽운은 두 손을 재빨리 움직여 영력을 손바닥에 응집시킨 뒤, 빛의 구슬을 향해 주입했다.
팍! 팍! 팍!
빛의 구슬은 엽운의 손에 연달아 부서졌다.
엽운은 체내의 영력이 엄청나게 소모되었음을 느꼈는데, 더 이상 이어나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8개의 구슬 중 6개가 파괴 되자 엽운은 숨을 들이마시며 멈췄다.
“멈춰선 안 된다. 반드시 한 번에 끝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귀찮게 된다.”
화운은 엽운이 멈추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호통 쳤다.
엽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체내 영력은 거의 바닥났기에, 남은 2개의 구슬을 파괴할 방법이 없었다.
“이 두 개는 어르신이 하시죠. 저는 잠시 쉬겠습니다.”
“난 이제 막 부활했지 않느냐. 아직 이 몸을 완벽히 제어할 수 없는데다 영력도 아주 미약하기 때문에 아마도 안 될 것이다.”
화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급히 말했다.
엽운이 인상을 쓰며 앞으로 걸어가던 중, 별안간 무언가를 떠올리고 눈에서 빛을 번쩍이며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제 영력은 거의 바닥났습니다. 금제를 파괴하기는커녕 주먹 한 번 휘두를 힘도 없습니다.”
화운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안 되겠느냐?”
엽운은 고개를 저었다.
화운이 별안간 웃기 시작하더니 말했다.
“고작 연체경 7중 오기경의 수위로 금제를 6개나 파괴한 것은 정말이지 예상을 벗어난 일이다. 네가 만약 8개의 금제를 모두 파괴한다면 우린 바로 이 대묘를 떠날 수 있지. 헌데 이래서야 원, 그냥 여기 남는 수밖에 없겠구나.”
엽운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가 화운의 뜻을 이해한 것이다.
“이것도 계략이군요. 제가 영력을 전부 소진하게 만든 뒤, 저를 죽여 보물을 모두 빼앗으려는 속셈이겠죠.”
“천검종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제자답게 눈치가 빠르구나.”
화운은 웃기 시작했다.
엽운이 빼앗아간 중생전혼탑과 그 많은 보물들을 어찌 쉽게 포기하겠는가,
그는 대묘를 떠나기 위해 파괴해야 하는 8개의 금제를 이용해 엽운을 꾀려 한 것이다.
엽운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천검종에서 훈련을 받았다 한들, 화운의 눈에는 그저 온실 속 화초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의 계략이 어찌 금단대수사와 비교가 되겠는가.
게다가 이 화운비장은 그가 직접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 속의 수많은 금제를 이용하여 엽운을 속이는 것쯤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네가 중생전혼탑을 빼앗지만 않았어도 살려주려 했거늘, 이제는 이 곳에 묻히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어차피 이 곳은 무덤이지 않느냐, 뼈를 묻기에는 딱 좋겠구나.”
화운이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조롱이 가득했다.
“육신을 완벽히 제어하지 못한다느니, 영력이 회복되지 않았다느니 하는 소리들은 다 내 경계를 늦추려 한 말인 겁니까.”
엽운이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이다. 화일성은 내 혈육이기 때문에 몸을 빼앗은 즉시 융합할 수 있는데, 제어할 수 없다는 게 웬말이냐.”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화운이 손을 검처럼 만들어 엽운의 가슴을 찔렀다.
지금의 화운에게 수위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한때 금단수사였던 만큼, 영력이 바닥나 허약해진 엽운의 상태쯤은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영력의 소모가 너무도 컸기에, 온기단을 사용해 봤자 영력의 2할 밖에는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2할의 영력으로 어찌 화운을 상대하겠는가.
때문에 화운은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몇 마디만 더 했으면 엽운이 싸울 힘조차 남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검 모양의 손끝이 엽운을 향했다.
엽운은 별안간 뒤를 향해 뛰어올라 휘청거리며 공격을 피했다.
화운은 얼이 빠졌다.
아직도 그의 공격을 피할 힘이 남아있을 줄은 몰랐고, 이 일격으로 엽운을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서두를 필요 없다.
저 상태로 얼마나 더 버티겠는가?
바로 그때, 그의 코끝으로 은은한 술냄새가 풍겨왔는데, 술냄새에는 진한 약냄새가 배어 있었다.
별안간 화운은 얼굴색이 변하며 몸을 돌렸다.
엽운의 손에 청목단병 하나가 쥐어져 있었고, 입을 향해 맑은 액체를 두 방울 떨어뜨리는 것이 보였다.
“연기응신주?”
화운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엽운은 청목단병을 뇌음화룡계에 집어넣으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화운 어르신, 천 년이나 사셨는데 어찌 이랬다저랬다 하십니까. 신용이라곤 하나도 없군요. 이렇게 된 이상 진짜로 이 대묘에 묻어드리겠습니다.”
엽운의 온 몸에서 맹렬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손에서는 자영검이 번쩍이며 천둥이 치고 번개가 나타나 허공에서 기승을 부렸다.
크게 놀란 화운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뒤로 물러났다.
동시에 남은 한 쪽 팔로 허공에 끊임없이 법인을 찍었다.
순간, 그의 몸 앞의 공기가 물결처럼 일렁이며 그를 갈랐다.
“뇌정만곡!”
동시에 엽운이 자영검을 휘두르자, 천지에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였다.
한 줄기 번개가 응집 된 칼날이 자영검에서 쏘아져 순식간에 허공을 가르고 화운을 향해 날아갔다.
“쾅!”
보라색 칼날이 물결처럼 일렁이는 공기를 때리며 폭발했다.
빛의 터져 나오며 일렁이던 공간이 붕괴되었는데, 보라색 칼날의 기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화운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쉭!”
보라색 칼날은 번개가 치듯 순식간에 화운의 몸을 갈랐다.
피가 하늘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이 일격은 화운의 오른쪽 팔을 뿌리째 잘라냈고, 바닥에는 온통 피가 흩뿌려졌다.
원래 칼날은 화운의 가슴을 향했으나, 그는 역시나 금단수사 답게 경험이 풍부했기에 순간적으로 이 일격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이미 반 잘려나간 오른팔로 막아낸 것이다.
그의 반응 속도가 빠른 덕에 일격은 오른팔을 잘라낸 후 잠깐 멈춰섰고, 그에게 피할 시간을 준 것이다.
결국 그의 오른팔을 완전히 잘라내긴 했지만 일격에 죽이지는 못했다.
“엽운, 이 검은 내가 훗날 반드시 돌려주마.”
화운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분노가 가득했다.
그의 몸과 여섯 번째 금제가 부딪히더니 눈부신 빛을 뿜어내 공간을 밝히는 것이 보였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손에 쥔 자영검이 여섯 번째 금제를 향해 날아갔다.
화운을 확실하게 죽일 셈이었다.
하지만 자영검은 여섯 번째 금제가 뿜어내는 빛을 뚫고 날아가 석벽에 거세게 부딪혀 밝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빛이 흩어졌고 마지막 하나 남은 금제가 만들어낸 빛의 구슬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었지만 화운의 모습은 더 이상 7층에서 보이지 않았다.
놀랍게도 화운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공간금제를 이용해 검을 피한 것이다.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었다.
엽운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자영검을 회수하고 손바닥으로 8번째 금제를 때렸다.
이 금제를 파괴하면 문이 열리고 대묘를 떠날 수 있을지 두고 보려했다.
영력이 8번째 금제에 주입되는 순간, 엽운의 뒷쪽 멀지 않은 곳에서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그는 빛의 기둥 하나가 솟아 올라오는 것이 보였고, 귓가에는 놀라서 고함치는 소리와 기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