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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23화 (123/227)

제 123 화 조상을 협박하다

하늘을 가득 메운 번개는 공간을 가르며 7층 전체를 뒤덮었다.

화일성은 기뻐하던 와중 자신의 뒤에서 누군가가 기습을 해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번개가 번쩍이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는데, 이 소리가 엽운이 낸 소리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다급히 몸을 돌려 저도 모르게 오른팔로 몸을 막았다.

화일성은 오른팔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고, 곧 선혈이 튀는 것을 보았다.

핏방울이 번개 빛 속에서 꽃처럼 피어났는데, 몹시 아름다웠다.

하지만 조금의 통증도 느낄 수 없었다.

피가 철철 흐르며 잘려나간 오른팔에 보라색 번개까지 감돌며 완전히 마비되어, 순간 고통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천둥소리가 떨어져 번개가 완전히 사라졌다.

화일성은 그제야 “악” 하는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잘려나간 오른팔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

엽운이 화일성의 앞으로 가자 손에 쥔 자영검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보라색 빛은 마치 잔잔한 파도처럼 일렁였다.

“엽운, 어째서 7층에 있는 거냐.”

화일성은 고개를 들어 웃음을 짓고 있던 엽운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 차 마치 불이라도 뿜어낼 것 같았다.

“화형, 나를 7층에 데리고 온건 당신이잖아. 그 사이에 벌써 잊어 버린거야?”

엽운은 웃으며 말했다.

화일성은 잔뜩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곧이어 그의 눈에 한이 서렸다.

“내 목숨을 해하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어째서 또 나를 공격하는 것이냐!”

“팔 하나 잘랐을 뿐이야. 목숨을 해치진 않았다고.”

엽운은 손에서 자영을 번쩍이며 화일성의 다른 한 쪽 팔에 시선을 고정했다.

화일성은 화들짝 놀랐다.

오른팔에서는 계속 피가 흘러내리자 몸을 움직여 중생전혼탑의 반대편으로 숨었다.

엽운은 이어서 공격하지 않았다.

방금 전의 일격을 날리면서 화일성의 수위가 자신과 엇비슷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미친 듯 기뻐하다 팔을 하나 잃고 나서는 저항할 힘이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엽운? 어째서 저 녀석의 팔을 자른게냐?”

이때, 중생전혼탑에서 불만 가득한 화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일성은 깜짝 놀란 토끼처럼 펄쩍 뛰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광탑을 바라보았다.

“화형, 겁먹지 마. 이 광탑 안에는 너희 화가의 선조이자 대묘의 주인이신 화운 어르신이 계시니까.”

엽운이 배실배실 웃으며 말했다.

화일성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생전혼탑을 바라보았다.

좀 전의 그 목소리가 화가의 선조 화운이라고?

“네가 화씨 가문의 후인이냐? 어쩐지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더라니, 알고 보니 내 핏줄이었군.”

화운의 목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는데, 약간의 안도감이 느껴졌다.

화일성은 바닥으로 뛰어들어 중생전혼탑을 붙잡고 소리쳤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지? 화운께서는 이미 천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이 광탑 속에 있다는 말이냐?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천년을 산단 말이냐? 거짓말 치지 마라. 감히 우리 조상 행세를 하다니.”

“놀라지 마 화형. 화운 어르신은 영혼 한 가닥을 남겨두어 간신히 천 년간 불멸을 유지한 것이다. 천 년 동안 완전히 살아 있었던 게 아니라고.”

엽운이 옆에서 천천히 말했다.

화일성은 그제서야 놀란 기색을 거두고 나즈막이 물었다.

“어르신, 정말 조상님이십니까? 저는 화가의 당대 족장인 화일성이라고 합니다.”

“물론이다. 우리 화가의 자제로구나. 썩 나쁘지 않군. 너는 나의 핏줄을 이어 받았으니, 좋은 걸 주겠다.”

화운은 잠시 느릿느릿 읊조렸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화일성은 크게 기뻐했다.

영혼 한 가닥만으로 천 년간 살아남았다면, 이 금단대수사의 실력은 알 만 하다.

그가 주겠다는 좋은 것 역시 분명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물건일 것이다.

“우리 가족에게 전적을 남기고, 수많은 문제들을 남긴 것은 바로 오늘 너희들이 대묘를 열어 내가 다시 빛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화가의 자제로써 너의 공로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조금만 기다리거라. 내가 공법 2개를 줄테니, 자원만 있다면 분명 머지 않아 촉기경을 돌파하고 훗날 금단대도에 들어설 것이다.”

화운은 천천히 이야기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금단대도라는 말은 꼭 별 것 아닌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조상님! 감사합니다 어르신!”

화일성은 별안간 기쁨에 완전히 빠져 땅바닥에 엎드렸다.

“그래, 일단 일어나도록 하고, 내게 화가의 근황을 좀 얘기해다오.”

화운이 느릿느릿 말했다.

“네!”

화일성이 땅에서 일어났다.

그는 별안간 오른 팔로 땅을 짚으려다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말했다.

“어르신, 이 엽운이라는 자가 거듭하여 제자들을 계략에 빠뜨렸으니, 조상님께서 죽여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화일성은 조롱이 담긴 눈으로 엽운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마치 ‘이제 화가의 어르신이 계시니 네까짓 놈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엽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말했다.

“화형, 제 걱정이나 하셔. 나까지 생각해 줄 필요 없으니까.”

화일성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엽운 네놈이 내 팔을 잘랐으니, 나도 너를 죽이지 않겠다. 네 사지를 자르고 수위를 모두 폐기시켜 범인으로 살게 해줄테다. 아니지, 범인도 못되겠지. 매일매일을 개돼지처럼 살게 될 것이다.”

엽운이 말했다.

“그래? 그런 날이 오더라도 뭐 상관없어. 난 그저 화형의 말로가 그보다 열배는 비참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되네.”

“입만 살은 녀석, 때가 되면 두려움을 알게 될 것이다.”

화일성은 중생전혼탑에 기대어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너희 둘이 입씨름 할 것 없다. 엽운 네가 내 후인의 팔을 자른 것은 분명 잘못 된 일이지. 하지만 괜찮다. 훗날 수위가 촉기경 후기에 달하면 다시 자라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화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어딘가 다급하고 불만이 가득한 말투였다.

물론 엽운은 그의 뜻을 이해했다.

화운은 엽운이 그에게 몸을 빼앗는 것에 대해 발설할까 두려운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화일성은 죽어도 가까이 오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럼 환생 하겠다는 화운의 염원을 실현할 방법이 없어진다.

“어르신, 저는 너무도 한스럽습니다. 꼭 저 자의 목숨을 빼앗아 주십시오.”

화일성은 분노하여 소리쳤다.

“일단 이리로 와 손바닥을 광탑에 대거라. 먼저 두 개의 공법과 수련에 쓸만한 보물을 몇개 주마.”

화운은 평정심을 되찾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화일성은 잠시 머뭇거리다 엽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 녀석이 바로 옆에 있는데, 어르신께서 지금 공법을 전수해 주시면 저 놈은 어떻게 합니까?”

“괜찮다. 엽운은 나와 약속을 했으니, 다시 공격해오는 일은 없을게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이 대묘에 영원히 갇히게 된다. 아무도 나가지 못해 이 늙은이를 모시고 살게 되는 거지.”

화운의 목소리가 광탑에서 들려왔다.

“저 자는 교활하고 변덕스러우니, 쉽게 믿어서는 안 됩니다.”

화일성은 엽운을 매섭게 노려봤다.

만약 공법을 전수받는 사이에 공격해오면, 화일성은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엽운은 웃으며 말했다.

“화형은 참 의심도 많네, 난 하늘에 맹세했으니까 다시 당신을 공격하는 일은 없을거야. 안심해. 당신이 공법을 전수 받을 때 까지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면, 훗날 적이 되든 벗이 되든 그건 나중에 걱정할 문제지.”

“맞다. 어서 이리 오너라. 내 영혼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곧 스스로를 봉인해 휴면에 들 것이다.”

화운의 목소리에서 참을 수 없는 짜증이 묻어났다.

화일성은 그제야 안심하고 무릎을 꿇은 채 왼손을 가볍게 중생전혼탑에 가져다 댔다.

순간, 흡입렵이 그의 손을 빨아들였다.

“숨을 죽인 채 정신을 집중하고 자신을 비워라. 내 정신이 네 속에 들어가면 신통력으로 그 영혼을 새기고, 공법을 너의 영혼 한 가운데에 새겨 영원히 잃지 않도록 하여라.”

화운이 나즈막이 말했다.

그의 영혼은 순식간에 중생전혼탑에서 흘러나와 화일성의 손바닥을 통해 들어갔다.

화일성은 그의 의식을 전수받는 줄로만 알고 모든 방어를 풀어 화운의 정신이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하였다.

순간, 화일성은 그의 온 몸이 통제를 벗어나고 감각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청량한 기운이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와 영혼을 집어삼켰다.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소리쳤다.

“어르신, 뭘 하시는 겁니까?”

“진정하거라. 육체의 수련도 제법 잘 된 것 같고, 또 우리 화가의 핏줄이니 나와 완벽히 융합할 수 있겠구나. 안심하고 떠나도 된다. 화가는 내 손 안에서 다시 영광을 되찾을테니.”

화운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비록 엽운의 육신이 더 좋긴 하지만, 결국엔 다른 핏줄이니 훗날 완벽한 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고민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화일성은 다르다.

머지않아 융합을 이루어 수행을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화일성이 아무리 우둔해도 알 수 있었다.

화운은 자신의 몸을 빼앗는 것이다.

일단 성공하고 나면 그 뒤로 화일성은 사라진다.

그저 그의 몸을 차지한 화운만이 남게 된다.

“이 영감탱이가, 감히 내게 이런 짓을 하다니, 가만두지 않겠다.”

화일성은 분노에 차 소리치며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가 영혼을 수련하지 않아서 화운에게 저항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제아무리 촉기경의 수위에 달한 영혼이라 할 지언정, 금단수사의 한 줄기 영혼에 비할 수는 없었다.

“화가의 자손이여, 너희들 평생의 신념은 조상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설마 내가 남긴 고전에서 그 뜻을 읽어내지 못한 것이냐?”

화운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서려있었다.

그는 화일성의 영혼에 자신의 정신을 주입했다.

화일성은 영혼의 깊은 곳에서 격렬한 통증이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분노한 와중에도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그는 그저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자신의 육신이 조금씩 빼앗기고 영혼이 삼켜지며 의식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별안간, 분노로 가득 차있던 그의 두 눈이 어두워졌고, 생기를 잃어 조금의 빛도 남지 않게 되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엽운은 손에서 자영검을 살짝 움직였다.

그는 만약 상황이 잘못되면 언제라도 반응할 준비를 하였다.

비록 몸을 빼앗고 나면 수위를 모두 잃어 처음부터 다시 수련해야 하지만, 어떤 변수가 생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일단 화운이 부활에 성공하고 자신의 수위를 아득히 뛰어넘게 되면, 팔이 한 쪽 없다고 해도 그를 멸하기에 충분했다.

엽운이 한 발짝 내딛자 뇌운이 그의 옆에서 천천히 나타나 반짝였다.

화일성의 안색은 창백해졌고 조금의 혈기도 없었다.

억울함이 가득하던 두 눈은 완벽히 생기를 잃었다.

별안간 그의 눈동자가 움직였고, 천천히 빛을 내기 시작했다.

“하하하!”

흥분과 기쁨이 가득찬 무기력한 웃음소리가 화일성의 마지막 모습에서 터져나왔다.

엽운은 손에 쥔 자영검에서 빛을 번쩍이며 화일성의 목에 가져다 댔다.

“엽운 네 이놈, 무얼 하는게냐?”

화일성의 목소리는 조금 더 나이 들고 우렁찬 목소리로 변했다.

“화운 어르신,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수위는 얼마나 회복 되셨는지요.”

“설마 모르는 것이냐. 몸을 빼앗게 되면 진기는 모두 사라지고 육신의 힘만이 남아 체내의 영력을 받아들이는 게 고작이니, 연체경 정도의 수준 밖에는 되지 않는다, 걱정할 것 없다.”

화운이 어떤 인물이던가,

그는 단박에 엽운의 생각을 읽었다.

엽운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저도 안심하지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가 왼손을 들자, 반 장 높이의 중생전혼탑이 떠올라 그의 손바닥 위에 멈췄다.

“뭐 하는 거지?”

잠시 어리둥절해진 화운은 곧 화를 내며 말했다.

“화운 어르신께서 육신을 빼앗는데 성공하여 용혼이 머무를 곳을 찾으셨으니, 이 중생전혼탑은 자연히 제 것이 되겠지요.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모든 보물을 제게 넘기면 살려 드리겠다고 말입니다.”

엽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화운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그가 어찌 모든 보물을 엽운에게 넘겨줄 수 있겠는가.

사실 가장 진귀한 보물은 이 중생전혼탑인데, 이 탑의 도움만 있으면 그가 금단의 수위를 회복하기까지 거의 백년의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중생전혼탑이 없다면 적어도 오십년의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엽운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영검이 조금씩 떨려와 날카로운 칼날이 자칫하면 화운의 목을 벨 뻔했다.

“중생전혼탑의 영혼 날인을 지우고, 다루는 방법도 알려주시지요!”

엽운의 목소리는 마치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온 악마 같았지만, 웃음기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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