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122화 (122/227)

제 122 화 한 발 늦었다

엽운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손에서 눈부신 빛을 뿜었다.

흑백 빛이 물밀듯 쏟아졌고 순식간에 광탑 전체를 뒤덮었다.

별안간 빛이 응집되어 실체를 이루며 중생전혼탑을 휘감았는데, 멀리서 보니 흑백 빛이 교차하고 있었다.

“올라가라!”

엽운이 손을 휘두르자 놀랍게도 중생전혼탑이 들어 올려졌다.

흑백의 빛은 중생전혼탑의 아래까지 뒤덮어 바닥에 닿았다.

순간 화운은 중생전혼탑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봉인되는 것을 느꼈고, 외부의 세계와 그 어떤 연결도 할 수 없게 되었다.

탑에 붙어있던 엽운의 오른손에서는 어떠한 영력도 전해지지 않았다.

“이럴수가..”

화운은 경악했다.

자신이 모든 것을 계산했다고 생각했고, 엽운은 분명 영력과 생명력을 전부 흡수당해 몸을 빼앗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엽운의 존재조차 느낄 수 없었고 그의 영혼은 도무지 흑백 빛의 봉인을 뚫을 수가 없었다.

엽운은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얼굴에 기쁨이 가득 서렸다.

사실 좀 전의 위기 상황에 그는 크게 놀랐고, 자신이 너무 물러 터졌음을 후회하였다.

화운에게 시간을 내주어 법진을 배치하게끔 만들었고, 이상한 열매들에 혹해 다시금 자신의 힘을 흡수하게 만들었다.

정말 골치 아프게 된 것이다.

다시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바로 그때, 선마지심으로 부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을 느꼈고, 일순간에 흑백 빛을 완벽히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어째서인지 이 흑백의 빛이 중생전혼탑을 봉인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엽운은 이유를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고,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위험에서 벗어나고 화운을 다시 조종하는 것뿐이다.

흑백 빛은 중생전혼탑에 머물렀고, 화운은 그 속에 갇혀있었다.

화운이 배치한 공간진법은 긴 시간 동안 흑백 빛의 침입을 막을 수 없었다.

그로서도 급조하여 배치한 금제였기에 그가 엽운의 몸을 빼앗을 때까지 약간의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흑백의 빛이 터져 나와 공간진법을 봉인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반주향의 시간 만에, 중생전혼탑 외부의 공간진법은 흑백 빛에게 완전히 삼켜져 전부 파괴되었다.

흑백 빛이 순식간에 쏟아져 나오며 그대로 화운을 향했다.

“멈춰. 보물을 전부 네게 주마. 멈춰라!.”

화운은 소리쳤다.

처참한 목소리였다.

“화운 어르신,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유치하지 않습니까?”

엽운은 냉소했다.

화운이 다급히 말했다.

“하늘에 맹세하지 않았느냐. 넌 날 죽일 수 없다. 만약 맹세를 어기게 되면 하늘의 천벌을 받아 죽거나 일평생 성장을 멈추게 된다.”

엽운은 냉소하며 말했다.

“죽인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영혼을 조금씩 집어삼키고 마지막 한 가닥만 남겨 다시는 회복하지 못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부터 중생전혼탑에서 회복을 시작해도 아마 천년쯤은 지나야 정신을 되찾게 되겠지요.”

흑백 빛이 엽운의 통제하에 전부 중생전혼탑 속으로 주입되자 탑 내부가 혼돈으로 가득 차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중간에 놓인 제단 위에서 은은하게 빛을 뿜고 있던 작은 사람의 형체는 덩실덩실 춤을 추며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럴 수 없을게다. 네가 내 영혼을 빼앗는다면, 너는 이 화운대전에서 떠날 수 없게 된다. 나가는 방법은 나만이 알고 있기 때문이지.”

화운이 소리쳤다.

흑백 빛은 이미 그를 단단히 애워싸고 있었는데, 표면을 뒤덮은 투명하고 은은한 빛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만약 화운의 말이 사실이라면, 영 귀찮게 된다.

흑백 빛이 그의 머릿속에서 멈췄고, 제단 위에서 화운을 붙잡아 두고 있을 뿐이었다.

“보물을 전부 내놓고 통로를 열어주시죠. 그럼 살 수 있습니다.”

엽운의 목소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만약 화운이 하늘의 맹세나 천벌을 운운하지 않았더라면, 저 늙은이를 죽여버릴 셈이었다.

저물 반지 하나가 제단 위에서 튀어나와 엽운의 앞에 떨어졌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은 그 안에 있다. 흑백 빛을 거두어 내가 외부와 교류할 수 있게 해준다면 통로를 열어주마.”

화운의 목소리에 절망이 가득했다.

엽운이 마음을 움직이자 흑백 빛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나가는 통로를 열기 위해는 공간 진법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내 영혼이 중생전혼탑에서 나가야만 한다.”

화운의 목소리가 탑의 내부에서 들려왔다.

“그럼 나오시지요.”

엽운은 그가 어떤 계략을 품던 두렵지 않았다.

흑백 빛을 제어할 수 만 있다면 화운은 독안에 든 쥐였다.

화운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난 영혼 한 가닥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중생전혼탑을 떠날 수가 없다. 일단 탑에서 나가게 되면 영혼이 소멸 될 것이야.”

잠시 멍해진 엽운은 곧 냉소하며 말했다.

“화운 어르신, 여기까지 와서 장난질을 하십니까?”

화운은 다급히 말했다.

“절대 아니야, 어찌 감히 그러겠느냐. 내가 한 말은 전부 사실이다. 내 영혼이 쉽사리 중생전혼탑을 떠날 수 있었다면 이런 대묘를 지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그냥 재능이 뛰어난 제자 한 놈을 잡아다 부활했겠지.”

엽운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지금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내가 몸을 빌릴 수 있는 인간을 하나 데려와라. 피와 살로 이루어진 몸이 있어야만 영력과 진기를 쓸 수 있고, 그래야만 공간 진법을 만들어 대묘를 떠날 수 있다.”

화운은 나즈막이 얘기했다.

스스로도 엽운이 누군가를 데려올 것이라 믿지 않는 눈치였다.

엽운은 크게 웃었다.

“어디에 가서 사람을 데려오란 말입니까?”

화운은 한참 대답을 하지 않았고, 족히 반 주향의 시간이 흐른 뒤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이 7층과 6층의 공간 안에 애송이가 하나 더 있는 것 같다.”

“누구 말입니까?”

엽운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그가 화운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선마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당장 수위가 연기경 중기를 넘어선 수사를 만난다면, 그는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서 그렇게 엄청난 수위가 느껴지지는 않으니, 몸을 빼앗기 쉬울 것이다.”

화운이 대답했다.

엽운의 마음속에서 수많은 가능성들이 스쳐지나 갔고, 별안간 한 사람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6층과 7층의 사이에 독자적인 공간에 있다면, 아마 화일성이 아닐까?

화일성의 수위는 연기경 4중 밖에 되지 않는다.

만약 그가 맞다면 두려울 게 없었다.

단지 화운은 이미 좀 전에 꾀를 부렸는데, 만약 그가 부활한 뒤 수위마저 자신을 넘어서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화운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라도 한 듯, 입을 열었다.

“내게 남은 것이라곤 영혼 한 가닥뿐이니, 몸을 빼앗더라도 육체는 일반적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봐야 진기가 조금 남아있으면 다행이고, 애초에 처음부터 수련해야 한다. 너같은 명문 출신이라면, 분명 알고 있을텐데.”

엽운은 고작 이 정도 수위로 단박에 7층까지 올라왔고, 게다가 선마지심이라는 특별한 보물까지 가지고 있으니, 화운은 자연스럽게 엽운이 거대한 세력에서 양성하는 정예 제자일 것이라 추측한 것이다.

이런 인물이라면 몸을 빌려 부활하는 방법에 대해 수련해보지 않았더라도 분명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문파에서 중점적으로 양성하는 정예 제자라면 만명 중 한명 도 안 될 테니. 누군가에게 몸을 빼앗기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며 남 좋은 일만 해주는 격이기 때문이다.

엽운은 마음을 다잡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제가 위험을 감수하고 그 자의 몸을 빌릴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리죠.”

“좋다, 좋아. 그럼 난 여기서 그 자를 혼돈의 공간으로 부터 빠져 나오게 만들 방법을 생각해보마.”

어리둥절하던 화운은 곧 크게 기뻐했다.

엽운이 이렇게 대답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엽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화운이 내던진 반지를 어루만졌다.

영력을 주입시켜보니 아무런 저항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 안의 물건들이 한 눈에 보였다.

화운의 말대로 그는 환생을 위해 어떤 영기도 준비하지 않았고, 대부분 이상한 약초나, 육신과 정신을 수련하는 영약 밖에는 없었다.

심지어 공법 하나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저물 반지 속 새하얀 옥으로 만든 표주 하나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백색 빛이 뿜어져 나왔고, 옥으로 만들어진 표주박이 그의 손바닥에서 튀어나왔는데, 마개를 열어보니 상쾌한 향이 그의 코를 찔렀다.

“화운 어르신, 이 박에는 무슨 단약이 들어있는 겁니까. 향이 코를 찌르는군요. 족히 10알은 되는 것 같은데.”

“호기양혼단을 말하는거냐? 촉기경의 수사가 정신력을 키우는데 쓰이는 영단이니, 너는 당분간 쓸 일이 없을게다.”

화운의 목소리가 탑에서 들려왔는데, 몹시 불편한 목소리였다.

엽운의 눈이 반짝였다.

호기양혼단. 촉기경 수사가 정신을 회복하는데 쓰이는 약이라 하니, 얼마나 진귀한지 알 수 있었다.

“어떤 효과가 있습니까?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말씀해보시지요.”

“호기양혼단은 천지의 호연지기를 끌어 모은 뒤 거기에 진귀한 보물들을 더해 만든 것으로 한 알 한 알이 극히 진귀하다. 촉기 7중부터는, 1중을 넘어가기가 아주 어렵지. 영혼의 수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호기양혼단만 있으면, 정신의 힘을 크게 향상시키고 응집시킬 수 있게 되지. 특히 촉기 6중을 천인경을 돌파할 때에는 그 확률을 3할 이상 올려준다.” 화운의 목소리에서 고통이 느껴졌다.

점점 마음이 불편해지는 듯 했다.

“과연 신비롭네요. 금단 대능이 되어 천년 동안 준비하실 만도 합니다.”

엽운은 큰 소리로 웃으며 새하얀 옥으로 만든 박을 저물 반지에 넣었다.

바로 그때, 허공에서 가벼운 파동이 느껴졌다.

“그가 나왔다.”

화운이 나즈막이 말했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재빠르게 움직여 어두운 곳에 몸을 숨겼다.

손에서 보라색 빛을 번쩍이자 자영검이 나타났다.

중생전혼탑 앞쪽의 공간이 일그러져 마치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이윽고 공간의 잔잔한 물결은 일그러진 호문을 만들어 냈고, 한 사람의 그림자가 문 밖으로 걸어 나와 7층에 발을 들이는 것이 보였다.

“7층? 여기가 7층인가?”

그는 어리둥절해하며 눈앞의 중생전혼탑을 바라보더니, 별안간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의 웃음소리에는 미칠 듯한 기쁨이 서려있었다.

엽운과 함께 공간의 문을 통해 들어와 6층과 7층 사이 혼란의 공간에 떨어진 화일성이었다.

그는 잔뜩 상기 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앞에서 은은하게 부드러운 빛을 뿜고 있는 이 보탑은 바로 가족의 전적에 기록 되어있는 중생전혼탑이다.

소문에 의하면 화운비장에서 가장 진귀한 보물은 모두 그 안에 숨겨져 있다고 한다.

화일성은 마치 자신이 보물을 얻고 일취월장하여 금단이 되는 그 순간을 두 눈으로 본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뒤에 드리운 그림자 속에 누군가가 숨어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화일성이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기뻐하는 사이, 어둠 속에 숨어있던 엽운이 마치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표범처럼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한 발 늦었다!”

엽운의 목소리가 7층의 허공에서 울려퍼졌고, 동시에 보라색 빛이 번쩍였다.

천둥소리가 울리며 번개가 춤을 췄다.

7층 전체가 온통 번개로 뒤덮였다.

뇌운전광검 제 2식, 뇌정만곡!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