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1 화 못된 장난
엽운의 영혼이 지워지는 순간, 선마지심이 드디어 나타났다.
흑백 빛은 마치 선계의 신령으로부터 온 듯, 순식간에 공간 전체를 훑었다.
엽운은 머릿속에서 빛이 번쩍이며 의식의 통제권을 완벽히 되찾았음을 느꼈다.
선마지심의 빛이 기세를 타고 내려와 화운이 조종하던 총량한 기운을 마주했다.
빛은 마치 하룻강아지를 만난 왕처럼 아무런 지체도 없이 쭉 뻗어 내려왔다.
청량한 기운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선마지심이 뿜는 흑백의 빛에 삼켜졌다.
흑백 빛이 파죽지세로 흘러내렸다.
눈 깜짝할 사이 엽운의 가슴 속으로 들어왔고, 잠시도 멈추지 않고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청량한 기운은 수십 번의 호흡만에 엽운의 몸을 차지했지만,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 전부 집어 삼켜진 것이다.
“아!”
중생전혼탑에서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고, 화운의 영혼은 깊은 상처를 입은 듯 처량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냐? 이 흑백 빛은 대체 무엇이지? 내 영혼의 힘을 집어삼키다니.”
엽운은 모든 것이 원래대로 되돌아오며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 되었음을 느꼈다.
단지 오른손이 아직 중생전혼탑에 붙어 있었는데, 미약한 흡입력만이 남아 언제라도 뗄 수 있을 것 같았다.
흑백 빛은 엽운이 손을 움직이려 하는 것을 눈치챈 듯, 별안간 그의 손바닥에서 튀어나와 중생전혼탑을 뚫고 들어갔다.
엽운의 심장이 두근거렸고, 오른손을 더욱 밀착시켰다.
“이게 뭐냐? 대체 무슨 물건이냐. 당장 꺼져라!”
화운은 귀신을 만난듯 고함을 질렀다.
“손을 떼거라, 당장 손을 뗀다면 목숨은 살려주마. 그렇지 않으면 네 녀석을 죽여 버릴테다.”
화운의 목소리는 겁에 질려 있었다.
단박에 나약함을 느낄 수 있었고 목소리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화운 어르신, 제 손을 붙잡아두신건 당신입니다. 제 육체를 빼앗으려 하시더니, 지금은 어찌 또 놔주신다는 말씀입니까? 그리고, 손을 이렇게 빨아들이면 제가 어찌 손을 떼겠습니까?”
엽운은 마음속으로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흥! 설마 금단 대능이신 이 몸이 이깟 흑백 빛 하나 못 잡을 줄 아는게냐?”
화운의 목소리가 별안간 평정을 되찾은 듯 했다.
엽운은 마음이 조금씩 흔들렸지만 곧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제안을 하나 할테니, 화운 어르신께서 들어 보시고 어떤지 말씀해 보시지요. 어차피 이미 중생전혼탑에서 천년이나 버티셨으니, 천년 쯤 더 있어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 화운비장의 모든 보물을 제게 넘겨주신다면 살려는 드릴테니, 며칠 더 있다가 환생하십시오.”
“애송이, 욕심도 많구나. 만약 내가 모든 보물을 넘겨준다 한들, 살 수 있겠느냐?”
화운은 냉소하였다.
그는 흑백 빛을 막아내며 대답했다.
“저는 본디 뱉은 말은 지킵니다. 화운 어르신께서도 보물을 남겨두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분명 그것들을 이 암담한 대묘 속에 너무 오래 숨겨둘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엽운은 안도하며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좀 전의 말은 그저 화운을 떠본 것일 뿐, 천 년을 산 여우라는 화운이 이렇게 대답할 줄은 몰랐다.
이 7층에는 확실히 보물이 있다.
게다가 그는 흑백 빛에 대해 잘 모르는 듯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어찌 이 귀중한 보배들과 목숨을 맞바꾸려 하겠는가.
“내 수중에 보물이 아직 좀 남긴 했으니, 네 녀석에게 줘도 무방하다. 하지만 절대로 내 목숨을 헤하지 않겠다고 하늘에 맹세 하거라.”
화운은 한참 고민하다 마침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은 크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저는 원래부터 원한이 없는데, 당신을 죽여서 뭐하겠습니까. 서로 웃으면서 털어버려야 훗날 강호에서 기분 좋게 만나지요.”
“그럼, 먼저 맹세하거라. 내가 바로 보물을 넘겨 줄테니.”
화운은 유감스러운 목소리로 낮게 탄식했다.
천년간 계획을 세웠는데, 육신이 아직 완벽히 사라지기 전 화가의 서전에 기록을 남겨 치밀한 계획을 짜 드디어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한 것이다.
중생전혼탑에서 영혼의 3할을 회복하여 부활하는 공을 세웠다.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던 와중 엽운이 그의 앞에 나타났는데, 훌륭한 자질을 지녔으며 육신과 수위 모두 딱 맞는 그릇이었다.
하지만, 엽운의 체내에 이 정도로 강력한 힘을 숨겨두어 중생전혼탑까지 들어와 자신마저 집어 삼키려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엽운은 즉시 하늘에 대묘에서 절대로 화운에게 해를 가하지도, 데리고 가지도 않겠다고 맹세했다.
화운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나즈막이 말했다.
“이 흑백 빛을 거두고 손을 떼거라.”
엽운이 생각을 움직이자 선마지심이 내뿜던 흑백의 빛은 그의 팔다리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며 즉시 되돌아왔다.
그는 손을 들어 중생전혼탑에서 벗어났다.
엽운은 화운이 어떤 수작을 부릴까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어차피 화운은 영혼의 잔재만이 조금 남았을 뿐이니, 육체를 완전히 빼앗기 전까지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중생전혼탑에서 영혼을 보충하는 것밖엔 없었다.
단지 조금 아쉬웠던 것은, 이 중생전혼탑 역시 엄청난 보물인 것 같은데, 가져갈 수 없음이 너무도 아쉬웠다.
그러나, 이번에 대묘에 들어와 온갖 역경을 겪고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큰 수확을 올렸으니, 중생전혼탑을 가져가지 못해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엽운의 손이 중생전혼탑에서 벗어나자, 별안간 한 줄기 빛이 탑에서 쏘아져 나오더니 곧 보라색 장과 하나가 그의 얼굴 앞에 나타나 공중에 떠 있었다.
이 장과는 몹시 특이했다.
표면은 반들반들 거렸는데, 마치 큰 새의 허상이 껍질 위에서 보이는 것 같았다.
“이것은 자금영과다. 금치대붕족 휘하의 자금대조족에 전해지는 영과로, 촉기경을 돌파할 때 심신을 다지고 수위를 견고하게 만들어 준다.”
화운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엽운은 자금영과를 손에 들고 자세히 살펴봤다.
시원한 향기가 은은하게 코를 파고들어 속이 후련해졌다.
그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며 자금영과를 뇌운화룡계에 던져 넣었다.
그의 시선이 중생전혼탑에 멈췄다.
이 광탑은 영혼을 보충해줄 뿐 아니라, 저물의 효과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안에는 독자적인 공간이 있을텐데, 보아하니 화운이 말하는 진정한 비장이란 그 안에 있는 것 같았다.
“화운 어르신, 하나씩 꺼내실 필요 없이 한 번에 다 꺼내시지요.”
“저는 보물 전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숨길 생각은 마십시오.”
화운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곧 중생전혼탑에서 열댓 개의 빛이 쏘아져 나와 전부 바닥 위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엽운이 손을 들자 보물들이 전부 그의 앞에 떠올랐다.
도합 열네 개의 빛은 전부 이상하게 생긴 과일이었는데, 찬란한 빛깔과 코를 찌르는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내가 부활에 성공한 뒤 수련하려고 모아둔 것이다. 돌아가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면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있을 거다.”
화운의 목소리가 중생전혼탑에서 들려왔는데, 약간의 절망이 느껴졌다.
엽운은 이것들을 전부 뇌운화룡계에 집어넣은 뒤 눈썹을 씰룩이며 말했다.
“화운 어르신, 제게 주실 쓸만한 영기 하나가 없단 말입니까?”
“내가 영기를 가지고 무얼 하겠느냐? 수선의 길은 수위에 의존하는 법, 실력만 충분하다면 그 어떤 영기도 네게 당해낼 수 없다.”
화운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호통쳤다.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줄곧 품질이 뛰어난 보물을 사용할 생각만 하며 수선의 진리는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다.
절대적인 힘 앞에는 그 어떤 영기도 산산조각이 날 뿐이다.
“일리 있는 말씀이시군요, 그런데 화운 어르신, 보물이 이게 다는 아니겠지요?”
엽운이 웃으며 말했다.
“이미 자영과 뇌운화룡계 까지 손에 넣은 듯한데, 이 두 영기의 품질이 어떻다고 생각하느냐? 게다가 네 몸에서 얼음과 화염의 영기가 느껴지는 것을 보아하니 빙백쇄혼과 열염폭운까지 지니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많은 영기를 가지고 아직도 만족을 못한 것이냐? 욕심도 많구나.”
화운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제가 말씀드렸듯, 전부를 내놓으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도 어쩔 수 없지요.”
엽운은 냉소하며 오른손을 들어 천천히 갖다댔다.
“애송이, 그렇게 탈탈 털어갈 필요가 있겠느냐.”
화운의 목소리가 별안간 높아지며 두려운 기색이 느껴졌다.
엽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른손을 다시 중생전혼탑에 갖다댔다.
순간 강력한 흡입력이 중생전혼탑에서 전해져오며 그의 오른손을 빨아들였다.
“애송이, 드디어 걸려들었구나.”
화운은 큰 소리로 웃었다.
음모가 드디어 성공했다는 생각에 그의 웃음소리는 흥분으로 가득찼다.
엽운은 냉소하며 손바닥을 통해 몸 속에서 맴돌고 있던 흑백 빛을 뿜어 중생전혼탑 속으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흑백 빛이 놀랍게도 막힌 것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흑백 빛의 진입을 막는 것 같았다.
동시에, 엄청난 흡입력이 다시 몰려와 금방 회복 된 엽운의 영력과 생명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엽운은 크게 놀랐다.
그는 조금 전 부터 줄곧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제서야 어째서 화운이 그리도 협조적으로 굴었는지, 어째서 한 번에 수 십개의 열매를 내놓고 또 분개하였는지 전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를 속여 다시 한 번 중생전혼탑에 손을 대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화운은 분명 흑백 빛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했는데, 어째서 지금은 막아낼 수 있는 것인가?
머지않아 엽운은 모든 것을 이해했다.
분명 화운이 열매를 내놓을 때에 공간 진법을 배치해 흑백 빛의 진입을 막은 것이다.
좀 전의 모든 것은 그저 시간을 벌기 위함 이었던 것이다.
엽운의 가슴속에 한이 서렸다.
그는 잡역 외원에서 3년을 구르고 난 뒤 자신이 모든 음모와 계략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화운 같은 천년 묵은 여우와 비교하자면 아직 한참 멀었 던 것이다.
수선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가,
고작 영석 하나를 위해, 그리고 약간의 자원을 위해 대판 싸움을 벌이고 피로 강을 이루며, 사람 사이에 신뢰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엽운은 그제야 자신이 아직 너무도 무르고 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3년간 잡역 외원 생활을 거쳐 독한 마음을 품지는 않았어도, 그저 착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틀렸다. 완전히 틀린 것이다!
“애송이, 넌 아직 너무 어리다. 하늘께서 너를 이 대묘에 들여보내고 수많은 시험을 거쳐 내 앞에 오게 만들었는데, 어찌 쉽게 벗어날 수 있겠느냐? 만약 나가게 된다면, 그건 내가 네 몸을 가지고 나가는 것이겠지.”
화운은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순조롭게 시간을 벌어 공간 진법을 배치하였고, 흑백 빛이 알 수 없는 공간으로 전송되게 만들어 중생전혼탑으로 들어올 수 없게끔 만들었다.
그런데, 엽운이 별안간 냉소하기 시작했다!
“화운 어르신, 흑백 빛의 위력이 고작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줄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