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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20화 (120/227)

제 120 화 탈사

흡입력!

강력한 흡입력이다!

엽운은 거대한 흡입력이 오른손을 꽉 붙들고 있는 것을 느꼈다.

몸속의 영력은 전혀 말을 듣지 않았고, 오른손의 손바닥을 통해 미친 듯이 빠져 나가 광탑에 주입되었다.

깜짝 놀란 엽운은 영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멈추기 위해 손을 때려다 영력은 제어가 되질 않았고, 파도처럼 요동치며 빠져나갔다.

잠깐 사이에 엽운 몸속의 영력이 거의 다 빠져나갔다.

하지만 광탑은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고, 그의 피와 살까지 전부 집어삼키려는 듯 했다.

영력은 이미 바닥났고, 그의 생명력까지 광탑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반 주향의 시간도 안되서 엽운은 말라 죽게 될 것이다.

“드디어 누가 왔군!”

바로 그때, 중후한 노인의 목소리가 석실 안에서 울려 퍼졌다.

엽운은 손바닥에서 흡입력이 조금 약해지는 것을 느끼고, 힘을 주어 다급히 벗어나려 해봤지만 여전히 그럴 수 없었다.

“누구십니까?”

엽운의 목소리가 이미 많이 허약해졌다.

“이 녀석이, 네가 나의 묘지에 들어와 놓고 내가 누구냐고 묻는다고? 웃기지 않느냐?”

늙은 목소리가 광탑에서 들려왔다.

엽운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광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화운비장의 주인이신 금단 대능 이라니.

“어떻게 이럴 수가? 이미 돌아가신지 천년이 넘지 않았습니까?”

“이 몸이 죽은 지 천 년 이나 되었다고 소문이 나지 않았더라면 너희가 어찌 그 많은 금제를 뚫고 여기 7층까지 올라왔겠느냐? 7층에 올라와 나의 중생전혼탑 앞에 서 있다는 말은, 재능도 운도 제법 좋고, 남들보다 뛰어난 모양이구나. 게다가 너의 수위는 아직 연기경에 닿지도 못했는데, 이미 연기경 3중의 수사들에 못지않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 아주 훌륭한 향로가 되겠구나.”

“당신 말씀은, 이 화운비장 자체가 함정이고, 우리를 속여서 이곳에 들어오게 만든 뒤 새로운 육신을 찾아 부활하려 하신다는 뜻입니까?”

잠시 넋이 나가있던 엽운은 즉시 노인이 한 말의 뜻을 이해했다.

“똑똑하구나. 정확하다.”

노인의 목소리에는 기대가 잔뜩 섞여 있었다.

엽운은 분노했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체내의 생명력이 곧 남김없이 흡수될 것 같았고, 간신히 버틸 만큼의 생기만이 남았다.

지금은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이미 사라졌지만, 오른손은 여전히 광탑에 착 달라붙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화운비장은 전부 사기극이었다.

그저 젊은 수사들을 이 7층까지 오게 만들어 그들의 영혼을 흡수해 환생을 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내가 각 층마다 배치해둔 금제를 전부 깨고 내 앞까지 올 수 있다면 분명 적합한 향로가 될 것이다. 애송이, 슬퍼할 것도 없고, 기분 나쁠 것도 없다. 네 몸을 빼앗고 나면, 너의 기억을 모두 읽고, 네 마음속의 숙원도 모두 이루어 줄 터이니, 어쩌면 네 육신에게는 상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화운비장 주인의 목소리가 광탑에서 들려왔다.

엽운은 이를 악물며 냉소했고,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나 화운은 천년 전 근방 10만리의 땅을 종횡무진 누볐지만, 적수가 될 상대는 없었다. 하지만 눈이 너무 높아져 버렸고, 천하에 적수가 없다 생각했거늘, 세상이 이리도 넓을 줄은 몰랐던 나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금단 수사가 뭐 어쨌단 말이냐? 원영 수사라 한들 그 역시 한낮 버러지 같은 존재이니라.”

화운비장의 주인은 별안간 감개하기 시작했다.

천년 간의 이야기를 다 말하지 못해 한스러운 듯 했다.

“원영이 버러지 같은 존재라고?”

엽운은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화운이 말했다.

“물론이다. 원영이 뭐 어쨌다는 것이냐? 원영을 뛰어 넘으면 바로 신선이 되고, 신선이 되어야만, 지선경에 오르게 되어 수사들이 진정으로 원하던 영원불멸의 꿈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당시에 나는 온 세상을 누비고 다니다가 지선경에 이른 수사를 한 명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단지 저 멀리에서 나를 바라보기만 했을 뿐인데, 사흘 후에 내 육신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내가 진법 금제에 정통하고, 또 일찍이 이 대묘를 준비해 놓지 않았다면, 이 중생전혼탑에서 천년 동안 영혼으로 요양할 수도 없었겠지.”

‘한 번 쳐다보는 것만으로 금단 수사의 육신을 파괴시켰다고? 대체 어떤 신통력을 가졌길래? 정말이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엽운은 손이 중생전혼탑에 붙어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 년 동안 연구에 몰두한 끝에, 나는 마침내 내 수행이 잘못된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너의 몸을 빌어 부활하게 되면 수위를 전부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럼 백 년도 되지 않아 나는 원영의 경지에 오르고, 하루 만에 천 리를 달려 천 년 안에 지선경에 도달하여 위대한 존재가 될 것이다.”

화운의 목소리에는 동경이 가득했다.

마치 자신이 부활하여 지선경에 도달하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엽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두려움에 빠진 것인지, 저항하기를 포기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천 년 동안 누구와도 이야기 하지 못했는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빨리 물어 보거라. 네 영혼이 소멸하기 전에 너의 마지막 요구를 들어주마.”

화운은 그래도 조금은 인간적인 면이 있는지, 웃으며 말했다.

엽운은 별안간 두 눈을 뜨며 물었다.

“천 년간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면 완벽히 연기경을 돌파할 수 있는지, 그리고 공간 법칙에 대해서도 좀 말해주시지요.”

“연기경?”

화운은 어리둥절했다.

곧 그가 이어서 말했다:

“보아하니 연체경 후기에서 막힌 지도 좀 된 것 같구나. 연기경은 사실 아주 간단하다. 천지의 영기를 깨우치고 진기를 연화해내면 되는 것이지. 내가 천지의 영기를 더 빠르게 진기로 바꿀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응기술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진기의 수량만 채우면, 자연스럽게 연기경에 도달하게 된다. 연기경 1중을 깨닫는 것은, 사실상 연체경 7중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응기단? 그런 신기한 술법이 다 있군요.”

엽운은 이같은 술법을 들어본 적도, 눈으로 본 적도 없었다.

연체경에서 연기경까지, 얼마나 많은 수사들이 그 단계에 멈추어 있는데, 이제 응기술이라는 것만 있으면 천지의 영기를 진기로 바꾸어 준다고?

이 응기술이 세상에 알려지면 얼마나 많은 연기경의 수사가 생기게 될까?

“그것은 상고 시대의 기술 중 하나인데. 정도라고 할 수는 없고 그저 보조 법문이라고 봐야지.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 죽기 전에 조금 알려줘도 상관없겠지.”

화운이 살짝 웃으며 말하자. 그 즉시 광탑이 두번 깜빡였다.

엽운은 알 수 없는 기운이 그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순간, 머릿속에 정보 하나가 떠올랐는데, 놀랍게도 응기술의 기록이었다.

과연 지극히 간단한 법문이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수행하기만 하면 영기를 연화시킬 수 있게 되고, 충만한 진기를 얻어 연기경으로 자연스레 올라가게 된다.

“그럼, 공간법칙은요?”

엽운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애송이, 만약 다른 사람을 고를 수 있다면 너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싶구나. 죽음을 앞두고도 배움을 원하는 경지라니, 그야말로 훌륭한 수선자의 마음가짐이다.”

화운은 감격하며 한숨을 두어번 쉬고 말했다.

“공간 법칙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딱 네 글자만 기억하면 된다.”

“뭐죠?”

엽운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시공일체!”

“무슨 뜻 입니까?”

엽운은 어리둥절해 하며 이어서 물었다.

“공간과 시간은 하나라는 말이다. 공간의 법칙을 제대로 깨우치려면, 시간의 법칙을 이해해야 한다. 이 둘이 서로를 보완하고, 또 서로를 완성시켜야만 가장 무서운 공간 진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극한까지 수련을 하게 되면, 시공을 횡행하고, 고금을 넘나들게 되어 불가능한 것이 없지.”

화운은 천천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더 무거워졌다.

당시에 화운이 전력을 다 해 공간 법칙을 깨우치려 하지 않았다면, 수위는 고작 금단경에 머물지 않았을 것이며, 그의 자질이라면 적어도 지선경을 노려 볼만은 했을 것이다.

오직 공간 법칙을 깨닫는데 너무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수위가 전부 사라질 뻔했다.

이제 그는 공간 법칙을 깨우쳤으니, 만약 환생에 성공한다면 분명 가볍게 원영경을 뛰어넘을 것이고, 심지어는 지선경에 도달할 수도 있다.

“시공일체! 시공일체!”

엽운은 무언가 깨달은 듯 중얼거렸다.

“아침에 배움을 얻었으면 저녁에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건가. 애송이 너는 확실히 남들보다 뛰어나구나. 육신도 이렇게나 강력하게 연마해 두었으니 부활하기엔 최고로 좋은 선택이다. 좋다. 저항을 포기 하거라. 내가 천천히 너의 영혼을 멸 할테니.”

화운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한 줄기 청량한 기운이 마치 바늘처럼 엽운의 손을 뚫고 천천히 몸속으로 들어왔다.

청량한 기운은 아주 이상했는데, 기운이 몸속에 들어와 가는 곳 마다 엽운이 감지할 수 없게 되었다.

마치 이미 더 이상 그의 몸이 아닌 것처럼 기운은 먼저 그의 두 팔을 빼앗은 뒤 그의 두 다리를 빼앗았고, 이어서 그의 오장육부와 몸의 절반가량을 빼앗았다.

이 시원한 기운은 덩어리가 되어 천천히 그의 머리를 향해 흘렀다.

엽운의 마음속에서 절망이 솟아올랐다.

이런 힘에는 저항할 수도 없었다.

그는 선마지심을 불러내기 위해 무수히 많은 시도를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천신만고를 다 겪고, 이 경지에 도달하기 까지 그 고생을 했는데, 설마 수선의 길이 여기서 끊기는 것인가?

싫다. 절대로 싫다!

분노에 가득 차 소리 질렀다.

하지만 머리 꼭대기 밖에 남지 않은 그는 그저 입을 벙긋 거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고,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청량한 기운이 조금씩 그의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엽운은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금방이라도 소멸할 것 같았다.

흐리멍덩한 의식 속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와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아버지를 본 것 같았다.

또 큰 산을 타고 가시에 찔려가며 온갖 고생 끝에 천검종에 들어와 3년간의 개돼지만도 못한 잡역 제자 생활을 견디고, 마침내 선마지심을 얻어 단박에 외문 제자가 된 자신도 보았다.

“선마지심,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엽운의 마지막 의식이 분노에 가득 차 울부짖었다.

순간, 미간의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요동치는 것을 느꼈고, 빛이 번쩍이며 익숙한 장면이 보였다.

하늘을 가득 메운 금색 빛이 천지를 밝혔고, 황금색 갑옷을 입은 신병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왔다.

신병들은 마치 파도처럼 먼 곳에서부터 위풍당당하게 밀려들어왔다.

엄청난 살기가 실체를 이루어 가는 곳 마다 산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졌으며, 강이 증발하고 풀과 나무가 불에 탔다.

엽운은 심지어 그 구양문천에게서도 이 금갑신병들과 견줄 수 있는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그에 비하면 이들의 기세는 백배도 넘게 강했다.

하지만, 물밀 듯 쏟아지는 금갑신병 앞에 흑백의 옷을 입은 남녀는 품위있는 모습으로 손을 잡은 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저들의 수위는 어느 정도 일까? 지선경?

그렇다. 화운이 말한 지선경만이 이런 신통력을 부릴 수 있다.

선마지심! 네 주인은 이렇게 신과 같은 힘을 지녔는데, 설마 나를 이 재앙에서 구해줄 방법이 없겠느냐?

그 순간, 엽운의 정신이 별안간 맑아졌고, 곧 흑백의 빛이 머릿속 깊은 곳으로 돌진하며 마치 태양이 강림하듯 어둠을 말끔히 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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