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6 화 정령
엽운은 자영검을 이리도 쉽게 거두게 될 줄은 몰랐다.
보아하니 검에는 어떤 방해 요소도 없는 것 같고,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해봐야 4층에서 얻은 열쇠와 5층의 안개. 그리고 이상한 영기를 격파하는 일 정도였다.
가볍게 몸을 떨며 보라색 빛을 파도처럼 쏟아냈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엽운, 이 망할 놈. 죽여 버릴테다. 이제는 네가 자영을 포기한다 해도 널 토막 내 버릴테다.”
화일성은 눈이 새빨개져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
엽운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화형, 평소에 화가 참 많으신가 봐. 화운비장을 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헛소리를 하는 거야. 자영검을 내려놓아도 나를 토막 내겠다는데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어.”
화일성은 분노가 극해 달해 더 이상 말조차 하지 않았다.
줄곧 말을 아끼던 애송이가 이렇게 입을 놀릴 줄은 몰랐다.
“아 맞다. 그렇게 성내지 마시게 화형, 누가 보면 나를 두려워하는 줄 알겠어. 이렇게 하지, 가지고 있는 보물을 다 내놓으면 나도 너를 토막내주마. 공평하게 말이야.”
엽운은 계속해서 조롱하며 장검에서 빛을 뿜었다.
화일성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펄쩍 뛰어올랐다.
왼손에서 별안간 물건 하나가 튀어 나왔는데, 꼭 거울처럼 생긴 영기였다.
“구유정령!!”
나지막이 소리치자 왼손에 들린 거울 같은 영기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엽운을 향했다.
엽운이 손을 올리자 왼쪽에 떠있던 빙백쇄혼이 즉시 맞받아치며 차가운 한기를 뿜어내 공간 전체를 얼리려 했다.
하지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화일성의 손에 쥔 거울 모양의 영기에서 뿜어져 나온 광선은 사물을 느리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듯 했다.
빙백쇄혼이 금방 맞받아쳤는데, 그 빛과 부딪히더니 천천히 느려진 것이다.
오히려 빙백쇄혼이 얼어 붙은것 같았다.
엽운은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통해 얼음 영기를 빙백쇄혼에 주입 시켰다.
하지만 영기는 마치 바닷물에 빠진 진흙처럼 어떤 응답도 없었고 마치 엽운과 연결이 끊어진 것 같았다.
순간, 엽운은 빙백쇄혼이 천천히 통제를 잃고 그 속에 담긴 영기가 흐를 수 없을 정도로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엽운은 그제서야 화일성이 말한 구유정령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이리도 신비로운 보물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빙백쇄혼 같은 훌륭한 품질의 중품영기 마저 순식간에 봉쇄해버려 영력이 흐르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연기경에도 도달하지 못한 수사가 감히 빙백쇄혼의 진정한 위력을 뽑아내겠다는 욕심을 부리다니, 황당무계하군.”
화일성이 냉랭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구유정령의 거울은 그의 머리 위에 뜬 채 빛을 뿜어 빙백쇄혼을 가두고 있었다.
화일성은 뛰어오르더니 장검을 휘두르며 곧장 날아왔다.
잠시 놀라 어쩔 줄을 모르던 엽운은 다시 냉정을 되찾았다.
비록 빙백쇄혼은 봉인됐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으며 날아오는 검을 마주하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뇌운초현!”
보라색 빛이 흩날리며 순식간에 천둥이 치고 번개의 뱀이 날아올라 소리를 냈다.
공간 전체가 막혀있었는데, 별안간 번개가 나타나 석실 전체에 굉음을 울렸다.
자영은 번개를 두른 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화일성의 공격에 거세게 부딪히며 맞섰다.
“쾅!”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사방으로 빛이 쏘아졌다.
엄청난 힘이 마치 공간을 쪼개 버릴듯 온 천지가 아수라장이었다.
엽운은 거대한 반동을 느꼈다.
손에 쥔 자영은 “웅웅” 소리를 내며 걷잡을 수 없는 느낌을 주었다.
더 이상 무리하지 않고 뒤로 후퇴하며 거대한 힘을 흘려보내 부상을 면했다.
빛이 번쩍이는 아래, 화일성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엽운의 앞에 서서 냉랭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화일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엽운이 자신의 일격에 죽기살기로 맞서는 것을 보고 단칼에 죽일 수 있던 지 아님 적어도 중상은 입힐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자영검에서 결코 자신보다 약하지 않은 엄청난 힘이 전해져 즉시 반응하지 않았다면 손에 쥔 장검이 날아갈 뻔했다.
고작 연체 7중 오기경에 지나지 않는 애송이가 어떻게 이리도 강한 영력을 가질 수 있는가?
믿을 수 없었다. 불가사의 그 자체였다.
화일성은 싸늘하게 노려봤다.
은연중에 오늘 엽운을 제거하지 않으면 훗날 큰 적수가 될 것이라 느꼈다.
화일성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방금 엽운의 수는 분명 영력을 뿜어냈을 뿐, 결코 연기경 제자들이 사용하는 진기 따위가 아니었다.
진기를 영력으로 전환시켜 공격을 진행할 수는 있었지만 왜 굳이 그런 짓을 하겠는가?
진기가 영력으로 변하면 질이 한참 떨어지게 되며 공격력도 많이 약해진다.
만약 추측대로 엽운이 수위를 숨기고 있는 것이 맞다면, 진기를 이용해 좀 전의 뇌운초현을 시전 한다면 도대체 어느 정도 위력을 보여준단 말인가?
“네가 수위를 숨기고 있을 줄이야.”
화일성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위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니고선 고작 연체경 7중의 수위로 자신의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지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었다.
엽운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참 늦게도 알았네 화형.”
화일성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검종 제자놈들은 하나같이 꾀만 부릴 줄 아는 것이냐?”
엽운이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화형 당신에 비하면 한참 멀었지.”
화일성은 숙연한 표정을 지었고, 얼굴이 조금씩 반짝이기 시작했다.
머리 꼭대기에서는 구유정령이 빛났고, 하얀 빛이 석실 전체를 집어 삼킬 듯 번쩍였다.
“영기를 죄다 봉인해버리면 무슨 수를 쓸지 두고 보자고.”
화일성은 흉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구유정령이 빛을 비추자 천지의 영기가 모두 굳어지며 느려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봉인되어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엽운은 체내의 영력이 무거워져 더 이상 끌어낼 수 없음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만약 영력이 모두 봉쇄 된다면 무슨 수로 화일성에게 맞설 것인가?
문득 화일성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입가에서 피가 흘러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화형, 힘을 크게 소모하는 것 같은데, 뭐하러 몸을 상하게 하면서 까지 이 공간의 영기를 봉인하려는 거야?”
엽운은 일부러 미간을 씰룩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화일성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놈이 빙백쇄혼과 열염폭운으로 내게 대적하려 하는데다, 괘씸하게도 수위까지 숨기고 있으니, 이렇게 된 이상 네놈의 진기를 모두 봉인한 뒤 육신으로 맞서게 만들려는 것이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상의가 별안간 찢어졌다.
몸이 한층 커지며 근육이 솟아올랐고, 힘이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엽운은 인상을 찡그렸고, 표정은 더 할 나위 없이 어두워졌다.
“내가 수위를 억제하고 있었던 게 고작 두 개의 원소 영기를 다루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나? 틀렸다! 수선의 기본은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것. 강한 육신을 지닌 자만이 더 훌륭한 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법이지. 진기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 내 육신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마.”
화일성은 냉소하며 손에 장검을 옆에 던져버리고 두 주먹을 망치처럼 쥔 채 한 걸음씩 다가왔다.
엽운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다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우습지?”
어리둥절해진 화일성은 조롱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
“방금 전 네놈이 필사적으로 나를 상대했다면 구유정령의 힘을 파훼할 수도 있었겠지, 그러나 이젠 늦었다. 얌전히 내 철권의 강림을 기다리거라.”
엽운은 코를 한 번 만지고 두 손을 비비며 말했다.
“화형, 우리가 인연이 있긴 한가 봐. 내가 비밀 하나 말해줄게. 사실 내 최고의 무기는 수위가 아니라 육신이거든!”
순간 멍해진 화일성은 큰 소리를 내며 웃었다.
“육신? 이제와 큰소리를 치는구나. 육신을 강력하게 단련시키려면 얼마나 큰 고통을 견뎌야 하며, 또 얼마나 많은 보물들로 몸을 자양해야 하는지 알기나 하느냐? 고작 천검종의 외문 제자 따위가 내 앞에서 감히 육신을 논하다니, 정말이지 재미있구나.”
엽운은 웃으며 말했다.
“화형, 못 믿겠으면 덤벼봐. 그럼 알게 될거야.”
화일성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높이 뛰어 올랐다.
마치 커다란 소처럼 곧장 달려들었다.
엽운은 그 자리에 서서 주먹을 쥐고 앞쪽을 막았다.
철권이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더니 순식간에 앞에 나타났다.
철권에 맞게 되면 엽운의 머리는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화일성의 철권이 멈춰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했다.
철권의 앞에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흰 주먹이 그를 막아서고 있었다.
“화형, 주먹도 별거 아니네.”
엽운의 목소리엔 조롱이 가득했다.
천검종의 책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강한 육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단련을 거쳐야 하며 그 고통은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화일성 역시 그래봐야 연기경 중기에 지나지 않는데, 육체가 강하다 한들 얼마나 강하겠는가?
엽운은 자신의 육체에 대해 충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선마지심의 힘은 그의 육체를 송두리째 바꿔놓았고, 육신을 담금질 하였으며, 경맥을 다듬었다.
몸에 흐르는 피 한 방울 한 방울과 피부 한 조각마저 모두 엄청난 힘을 담고 있었다.
엽운이 연체경 7중의 수위로 연기경 중기인 화일성을 상대하면서 뒤지지 않는 것은, 모두 강력한 육체를 가졌기 때문이다.
지금 화일성은 자신의 무공을 포기하면서까지 영기를 봉인하고 그 어떤 영력이나 진기도 뽑아낼 수 없게 만들어 육체로 맞서려 해 엽운은 하마터면 소리를 내어 웃을 뻔했다.
“어떻게 이럴 수가?”
화일성은 자신이 가볍게 막힌 것을 보고 눈을 믿을 수 없는 눈치였다.
뒤로 몇 걸음 물러나더니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며 엽운을 향해 다시 돌진해왔다.
철권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공간을 갈랐고, 바람이 모든 것을 찢어버릴 듯 불어왔다.
엽운은 냉소했다.
“아무래도 깨닫지 못한 모양이군. 그럼 알려주마, 진정으로 강력한 육신이 얼마나 무서운지 말이다.”
엽운은 두 손을 맞잡고 머리 위로 들어 올리더니 화일성의 철권을 향해 내리쳤다.
“쾅!!!”
엄청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가더니 석실 벽에 세차게 부딪혀 땅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화형, 내 육신은 어떤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