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4 화 오기경
새하얀 기운이 만들어낸 해골은 바람을 타고 수 장 높이까지 올라갔고, 커다란 입을 다물자 “우지직” 하는 소리가 울렸다.
엽운은 이 기운이 이상한 영기에 담겨있는 괴이한 기운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영기가 거대한 해골이 될 줄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새하얀 해골은 뛰어올라 엽운의 정수리를 벗어났고, 구멍이 뚫린 안와 안에서 두 줄기 빛이 번쩍였다.
한 쪽 에서는 화염이 이글 거렸고 한 쪽 에서는 얼음이 눈부신 빛을 발했다.
엽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화염의 영기와 얼음의 영기에 담긴 위력이라면 그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열염폭운과 빙백쇄혼 두 가지 영기를 어떻게 제어하는지가 관건인데, 만약 이 두 영기의 힘을 촉진시킬 수 있다면 놀라운 위력을 발휘할 수 있고, 적어도 지금 엽운의 수위로는 두 영기의 공격을 절대로 버텨낼 수 없다.
하지만 표정에는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평화롭기까지 했다.
새하얀 해골은 철커덕 소리를 내며 입을 우물거렸다.
두 개의 영기로 장식 되어 있지 않았다면 훨씬 더 섬뜩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엽운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가 두려운 것은 다가오는 해골의 공격이 아니라 ‘미지’ 였다.
이 영기를 찾아내지도 못했는데, 이것에 맞서는 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엽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빛을 번쩍였다.
곧 그의 눈에서 흑백의 두 빛이 빛나는 것이 보였다.
흑백이 한데 섞인 빛이 미간에서 반짝였다.
놀랍게도 선마지심이 엽운의 통제 하에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처음으로 조종하여 이동시킨 것이며, 이 전까지는 그저 이것을 느끼고 불러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보일 듯 말듯한 흑백의 빛이 엽운의 미간 사이에 스치자, 눈 속에서 얼음과 불이 타오르던 백색의 해골이 무언가를 감지한 듯 뒤로 물러났다.
“내 영기를 훔치고 도망갈 셈이냐?
엽운은 냉소했다.
번개의 영기는 전기 뱀이 되었고, 우르릉 소리를 내며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와 해골을 뒤덮었다.
해골의 벌어진 입에서 “우우”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엽운의 공격에 분노를 느낀 것 같았다.
불꽃이 번쩍이더니 얼음이 사라졌고 곧 얼음과 불이 뒤섞여 기이한 광채의 빛을 만들며 돌진해왔다.
엽운은 냉소하며 낮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잘 왔다, 선마지심. 빨아들여.”
미간에 자리한 흑백 빛이 번쩍이더니 이내 사방의 공기를 빠르게 회전시켜 마침내 흑백 빛의 조종 아래 하나의 소용돌이가 되어 얼음과 불의 공격에 맞섰다.
얼음과 불, 두 종류의 영기로 이루어진 공격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만약 이 공격이 엽운을 때렸다면 그의 수위로는 죽거나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얼음과 불, 두 종류의 영기는 그의 선마지심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었고,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순식간에 소용돌이에 사로잡혔다.
그리고는 조금씩 엽운의 미간으로 흡수되어 선마지심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번개의 영기가 만들어낸 뇌운전광검이 폭발음을 냈고, 번쩍이는 번개가 해골을 쪼갤 듯 떨어져 내려왔다.
비록 해골을 반으로 쪼개지는 못했지만 푸른 불빛이 번쩍이며 몹시 화려한 자태를 뽐냈다.
얼음과 불, 이 두 영기는 원래 엽운의 몸에서 빼앗아 온 것이었는데, 선마지심이 이를 탈환해 오자 엽운의 몸에서 다시 얼음, 불, 번개, 이 세 원소가 뒤섞였다.
엽운은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원래 3 종류의 영기는 몸에 공평하게 자리를 잡아 서로를 배척하지 않았지만, 화합을 이루진 못했고 분명히 구분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3가지 영기가 몸에서 흐름과 동시에 천천히 융합 되었다.
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는 네가 있었다.
번개 속에서는 화염이 있었고 화염 속에서는 얼음이 있었으며 얼음은 전기로 휩싸여 있었다.
문득, 온 몸의 혈자리가 일제히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마치 고동을 부는 것 같은 우렁찬 소리였다.
엽운은 영기에 대해 완벽히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전까지 그는 천지의 영기가 수련에 쓸 수 있는 한 가지 힘이라 생각했다.
소령을 만난 뒤로는 천지간에 비록 많은 종류의 영기가 있지만 모든 종류가 전부 수련에 도움이 되진 않으며 몇 가지는 그것을 통해 수련하는 순간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각기 다른 영기는 서로를 배척하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곳에 섞여 더 높은 수준의 영기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천지의 영기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인식은, 단일에서 다양, 그리고 다양에서 융합으로 변했다.
영기는 수도 없이 많기에, 적합한 방법으로 수행한다면 흡수하고 연화시켜 최고의 영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순식간에 엽운은 천지의 영기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마치 커다란 대문을 열고 본 적 없던 풍경을 본 것만 같았다.
오기경!
이것이 바로 연체경 7중인 오기경이었다!
체내의 영력은 자연스레 한 층 더 정련되기 시작했고, 더욱 선명해져 마치 실체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엽운은 체내의 영력이 극도로 선명해지면 진기가 만들어 지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일단 진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신체를 갈고닦게 되고, 종국에는 진기가 모여 마치 거대한 물줄기처럼 하늘을 찌르게 된다.
그것이 바로 수선의 두번째 걸음인 연기경이다.
이 과정은 보기엔 너무도 길어 보이지만, 사실은 한 순간이었다.
엽운의 실력은 족히 몇 배나 좋아졌다.
몸에서 마치 실체를 이루고 있는 것 같은 영기가 미친듯이 뿜어져 나왔으며, 세 가지 영기가 한데 어우러져 독특한 영령을 만들어 냈고 위력 또한 크게 증가했다.
엽운이 두 눈을 뜨자 빛이 번쩍였다.
하얀 해골은 갑자기 그를 향해 달려들어 “철커덕”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벌려 물었다.
엽운은 빙긋 웃었다.
수위가 오기경에 달한 그는 앞에 있는 해골의 힘이 상상하던 것만큼 강하지 않다는 것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빙백쇄혼과 화염을 잃고 나서는 더욱 약해진 것 같았다.
물론, 해골이 보여주는 힘은 여전히 연기경의 수위에 필적한다.
하지만 조금도 두렵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속에서 전의가 불타오르며 정면으로 맞서길 갈망했다.
엽운은 주먹을 꽉 쥐고 새하얀 해골을 향해 매섭게 내질렀다.
주먹에는 번개가 번쩍이고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으며 어렴풋이 얼음의 한기마저 느껴졌다.
이 한방에는 그가 낼 수 있는 최강의 공격력이 담겨 있었고, 3가지 영기가 일제히 뿜어져 나왔다.
“쾅!”
철권은 마치 유성처럼 공중에서 해골과 충돌했다.
귀가 먹먹해질 듯이 격렬한 폭발음이 울렸고, 엄청난 기력이 거꾸로 휘몰아쳐 근방 열 장 안의 흰 안개를 모두 날려버렸다.
엽운은 엄청난 힘이 반사되는 것을 느꼈지만, 조금도 당황하지 않으며 두 주먹을 동시에 내질러 반사되어 날아오는 힘을 막아냈고, 몸을 날려 뒷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엽운의 철권을 맞은 해골은 하얀 안개 속에서 거꾸로 날아갔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지더니 “우지직” 하는 소리를 내며 금이 갔다.
해골의 힘은 연기경 중기의 수위와 비견 될 정도였는데, 놀랍게도 엽운에게 한 방에 나가 떨어진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완벽히 적응하여 모두 연화시킨다면, 수위는 적어도 열곱절이 높아질 것이다.
그의 주먹은 그 정도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엽운은 커다란 새처럼 바닥으로 내려오더니 해골이 떨어진 자리를 향해 급히 날아갔다.
은은한 백색 안개는 더 이상 그의 시선을 막지 못했다.
수십 장 반경이 한 눈에 선명히 보였다.
해골은 바닥에 넘어지더니 턱을 철거덕 거리며 소리를 냈다.
몹시 못마땅해 했다.
곧바로 손바닥을 칼처럼 만들어 매섭게 해골을 베었다.
“우지직!”
영력이 가득 담긴 손날이 정확히 벌어진 입을 베었고, 그대로 해골을 반으로 쪼갰다.
다음 순간 은은한 백색의 빛이 해골의 두개골에서 피어오르더니 한 쪽 방향을 향해 날아가려 했다.
“그냥 그렇게 가면 되겠어?”
엽운은 냉소하였다.
순식간에 빙백쇄혼이 나타나더니 백색의 빛이 날아가는 방향을 막아섰다.
“훅!”
하얀 빛은 가벼운 소리와 함께 곧바로 얼음에 부딪혔고, 놀랍게도 엄청난 속도로 얼음을 뚫고 계속해서 도망쳤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백색 빛 덩어리가 가볍게 빙혼을 뚫을 줄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저도 모르게 왼손을 들어 막았다.
별안간 하얀 빛이 그대로 뇌운화룡계에 부딪히더니 잠시 후 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엽운은 크게 놀랐다.
저물 영기는 살아있는 생물을 담을 수 없고, 영기를 봉인시킬 수도 없다.
하지만 이 흰색의 빛은 분명 영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대로 뇌운화룡계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엽운은 정신을 집중하여 이 영기를 찾아내려고 했다.
새하얀 빛이 뇌운화룡계 속을 헤집고 다니던 중, 어떤 압력을 받아 천천히 멈추더니 결국 어떤 빛도 나지 않는 새하얀 구슬이 되는 것을 보았다.
한참 생각해보다 하얀 구슬을 꺼낸 뒤 손바닥 위에 올려두었다.
구슬은 어슴푸레한 빛깔에 빛도 나지 않았고, 구슬을 받친 손에서는 차가운 기운 만이 느껴졌다.
마치 평범한 옥구슬 같았고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고 옥구슬을 놔운화룡계 속에 집어넣은 뒤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봤다.
주위의 하얀 안개가 점점 옅어지더니 공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잠시 후, 엽운의 두 눈은 수십 장 너머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먼 곳을 보니 백 장 이내에는 아무런 방해물이 없었다.
또 하나의 석실이 있었는데, 너비가 10장이 조금 안되는 석실이었다.
석실의 중앙에는 새하얀 옥기둥이 석실을 떠받친 채 윗층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석실의 주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상상했던 옥 탁자 같은 것도 없었으며 바라던 보물도 없었다.
엽운은 눈을 가늘게 뜨며 천천히 왼쪽에 있는 석벽으로 향했다.
아랫층에서는 진귀한 보물을 3개와 열쇠를 하나 얻었는데, 공간 진법이 배치되어 있는 이번 층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엽운은 돌아다니며 눈에 불을켜고 샅샅이 뒤졌다.
자세히 살펴보아도 보물이 숨길 수 있을만한 방 같은 건 없었다.
엽운의 시선이 중앙에 위치한 새하얀 옥기둥을 향했다.
그가 옥기둥 위에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열쇠 구멍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엽운은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