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2 화 빙봉성
공기 중에서 별안간 수십 개의 별이 나타나 항성도를 만들어냈다.
엽운이 자세히 수를 세어보니 항성도에는 총 마흔아홉 개의 별이 있고, 그것들이 각각 7개씩 뭉쳐져서 항성도를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7폭의 항성도는 옅은 빛을 띄고 규칙적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엽운은 눈살을 세게 찌푸렸다.
주위의 석벽이 합쳐지기 전에 항성도를 파악해 윗층으로 가는 계단을 열지 못하면 그는 석벽에 짓눌리고 말 것이다.
7폭의 항성도에서는 별빛이 첫번째 그림부터 마지막 그림까지 아주 약간의 시간 간격을 두고 반짝였다.
“이 7개의 항성도는 어떻게 파훼 하는 거지? 확실히 불을 들어오게 만들어야 하는 건가, 아니면 불을 꺼지게 만들어야 하는 건가? 그게 아니면 다른 무언가 인가?”
엽운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온갖 가능성을 생각해봤다.
시간, 지금 부족한 것은 시간이다.
만약 엽운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설령 그가 공간 진법에 대해 잘 모른다 하여도 결국에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지금 이 항성도는 환각을 일으키는 환진이 아니니, 그 속에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될 일은 없었다.
이 순간 다른 무엇도 신경 쓸 수 없었다.
손을 들어 영력을 뿜으며 첫번째 항성도를 가리켰다.
찰나의 순간, 첫번째 항성도에서 빛이 번쩍였다.
영력이 주입됨에 따라 빛은 점점 더 밝아졌다.
그러나 엽운이 영력의 주입을 멈추자 항성도는 다시 처음과 같이 어두워졌다.
손가락은 구슬을 꿰듯 7개의 항성도를 모두 찔러 보았고, 각 각의 성도는 마찬가지로 밝게 빛났다.
영력을 주입시키는 것은 분명 효과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항성도를 바라보던 엽운의 눈에서 별안간 빛이 반짝였다.
좀 전에 대문을 열때 두 종류 이상의 원소를 사용하여 문을 열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어쩌면 이 7개의 항성도 역시 원소의 힘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닐까?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시간은 이미 부족했다.
손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번개가 뿜어져 나왔다.
번개가 번쩍이는 손이 가볍게 첫번째 항성도를 건드렸다.
순간, 첫번 째 항성도에서 낮은 천둥소리가 울렸고, 7개의 도형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번개가 되며 쏘아져 나가 앞쪽의 벽을 천천히 밀어냈다.
고개를 돌려 벽을 바라보니 석벽 위에는 7개의 작은 구멍이 생겼다.
놀랍게도 번개가 벽을 뚫어버린 것이다.
좀 전에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 벽은 아주 튼튼해 그의 수위로는 부수기는 커녕 작은 흠집도 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토록 단단한 벽이 항성도가 뿜어낸 번개에 의해 7개의 구멍이 뚫렸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안절부절 못하며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만약 번개의 원소가 끊긴 뒤에 이 항성도가 좀 전과 같은 모습이라면, 원소의 힘은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황급히 손바닥을 거두고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첫번째 항성도에는 여전히 빛이 나고 있었고, 천둥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울리고 있었으며 조금도 어두워지지 않았다.
크게 기뻐하며 다시금 번개의 원소를 뿜어 두 번 째 항성도를 건드렸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항성도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번개 원소의 힘은 첫번째 항성도에만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엽운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불의 원소로 손바닥을 뒤덮으며 가볍게 두번째 항성도를 건드렸다.
이글거리는 불꽃이 하늘을 찌르며 나타나 하마터면 머리카락마저 불사를 뻔했다.
화염을 손바닥을 떠나서도 그대로였다.
두번째 항성도는 불길에 휩싸인 별처럼 빛을 뿜으며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세번째 항성도 역시 마찬가지로 7개의 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엽운은 고개를 돌려 두 장이 조금 안되는 거리에 위치한 석벽을 보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손바닥에서 마치 파도같은 얼음의 원소를 뿜었고, 차가운 한기가 솟아오르자 손바닥을 가볍게 댔다.
“찰칵!”
세번째 항성도 전체가 꽁꽁 얼어버려 빛조차 얼음 속에 가둔 것 같았는데, 푸른색 바늘 같은 불빛이 얼음 속에 갇혀있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엽운이 손을 떼자 세번째 항성도는 앞서 천둥이 울리고 불길이 솟던 두 폭의 항성도와는 달리, 차가운 한기가 점점 퍼져나가 두번째 항성도의 화염을 가두었다.
차가운 기운은 확산되어 화염을 봉인하고 첫번째 항성도까지 옮겨갔다.
순간 천둥소리가 사라졌고, 항성도에서 왔다갔다 움직이던 불빛마저 얼어붙었다.
보라색 번개는 마치 뒤엉킨 거미줄처럼 선명하게 눈에 보였다.
3개의 항성도가 모두 얼어붙었다.
엽운의 예상을 완벽히 빚나간 일이었다.
차가운 한기는 더 이상 퍼지지 않았는데 꼭 네번째 항성도의 경계선이 그들을 분리시키는 것 같았다.
엽운은 네번째 항성도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그에겐 3종류의 원소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얼어붙은 3개의 항성도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사방에서 석벽이 밀려와 일장이 조금 되지 않는 거리 밖에 남지 않았다.
반장만 더 다가오면 벽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계단 위에 부딪혀 강력한 힘으로 계단을 부숴 버릴 것 같았다.
엽운은 심호흡을 하며 얼어붙은 3개의 항성도 한 가운데를 주먹으로 세게 쳤다.
“쾅!”
거대한 힘이 반사되며 가슴을 세차게 때려 그를 석벽으로 날려버렸다.
엽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반동에 약간의 내상을 입혔으나, 실망한 기색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조금씩 웃음기를 띠고 있었다.
엽운은 주먹이 항성도에 닿는 순간 약간의 균열이 생긴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항성도가 큰 힘을 버틸 수 없다는 뜻이기에, 멈추지 않고 공격하면 머지않아 부숴져 계단을 올라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엽운은 번개처럼 움직여 다시 한 번 똑같은 곳을 매섭게 때렸다.
“철컥!”
항성도에서 맑은 소리가 나며 균열이 더 커졌다.
엽운은 더 강한 힘에 공격을 받고, 거꾸로 날아가 석벽위에 거세게 부딪혔다.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바닥에 뿌려졌다.
하지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벌떡 일어나 다시 한 번 얼어붙은 항성도를 때렸다.
“쾅!”
한 방, 두 방, 세 방!
반사되는 힘으로 입은 부상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매섭게 3번의 주먹을 내질렀다.
결국 그는 다시 한 번 석벽 위에 부딪혔고, 곧바로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석벽은 이미 반 장도 안되는 거리까지 다가왔고, 곧 계단에 부딪힐 것 같았다.
자칫하면 계단이 부숴져 버리는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청목단병을 꺼내 뚜껑을 열고 투명한 영약을 두 방울 털어 넣었다.
이것은 칠 장로가 만든 시원한 영주의 잔액이 목을 타고 몸으로 들어가더니 별안간 터져 나와 일렁이는 영기가 되어 솟구치기 시작했다.
수차례 영혼을 단련한 엽운은 이미 영주의 잔액이 영혼에 가져다주는 충격과 고통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었고, 심지어 크게 신경 거슬리지도 않았다.
미친듯이 몸을 날려 항성도를 향해 끊임없이 한 방, 또 한 방을 날렸다.
“쾅!”
엽운이 9번째 주먹을 내지르자, 얼어붙은 항성도의 균열은 계속되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 났다.
7폭의 항성도로 이루어진 금제 위에 사람 한명이 지나갈 수 있을만한 통로를 만들어낸 것이다.
크게 기뻐하며 창백해진 얼굴로 감동을 표했다.
몸이 찢겨지는 고통은 전혀 개의치 않고, 몸을 일으켜 항성도 위에 생긴 통로를 지나 계단 위에 떨어졌다.
두 발은 확실히 계단 위를 밟고 서 있었다.
엽운은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느낌까지 받았다.
3가지 원소로 항성도의 금제를 깨고 계단을 밟게 될 수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이 7개의 항성도는 그 속에 원소의 힘을 주입시킨 뒤, 하나로 연결하여 통로를 여는 구조였을 것이다.
분명 항성도의 금제가 처음 배치될 무렵에는 한 사람이 열게 만든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 원소의 힘을 주입시키며 통로를 열고 계단을 밟게끔 만들어 두었을 것이다.
이번 금제를 파훼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이지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번개와 불, 두 가지 원소만을 갖고 있었다면 분명 항성도를 얼릴 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강제로 부수어 통로를 만드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세 가지 원소들 가운데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됐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지금보다 방어력이 몇배는 높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의 힘으로는 칠 장로의 영주를 마셔도 절대 파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모든 것이 행운이며, 동시에 필연이라는 뜻이다.
그는 용감하게 전진했다.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점점 심한 부상을 입어가는 와중에도 금제를 파괴하고 통로를 연 것이다.
석벽은 아직도 다가오고 있었는데, 이미 계단에 부딪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엽운은 감격을 느낄 틈도 없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온 몸에서 느껴지는 격렬한 고통을 꾹 참고 계단을 따라 빠르게 올라갔다.
계단은 상상했던 것처럼 한번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참을 올라가서야 계단의 끝자락에서 은은히 빛나는 빛을 볼 수 있었다.
윗층에 발을 들이는 그 순간 아래의 계단에서 우직 하는 소리가 들렸고, 곧바로 석벽에 짓눌려 산산조각이 났다.
등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생각해보니 조금만 늦었더라면 석벽에 짓눌려 고기덩어리가 될 뻔했다.
화운비장 새로운 층을 밟은 엽운은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봤다.
앞쪽의 공간에는 은은한 하얀 안개가 시선을 가리고 있었고, 하얀 안개 속에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 같았는데 보일 듯 말듯 잘 보이지 않았다.
엽운은 조용히 서 있었다.
섣불리 하얀 안개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부상에서 회복하는 것이다.
몸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만전의 상태일 때에 안개 속으로 들어가 살펴보는 것이 최선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몸속에서 영력이 회전하며 상처를 빠르게 회복시키고 있었다.
대략 한 시진 정도가 흐른 뒤 눈에서 빛을 번쩍였고, 몸속의 상처는 거의 다 나았다.
앞에 있는 안개가 자욱한 공간을 바라보며 뇌운화룡계를 한 번 만지고는 흰색 안개 속에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