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109화 (109/227)

제 109 화 화운대전

흑암해마가 뛰어올랐다.

거대한 몸뚱이는 작은 산처럼 세차게 떨어져 이어서 다시 수십 장 위로 뛰었다.

끝없는 어둠 속에서 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지진이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엽운, 흑암해마가 분노가 끝날 때가 녀석이 가장 약할 때다. 내가 놈을 죽여 복수 해주지.”

화일성의 목소리는 득의양양했다.

오랜 시간 계획한 끝에 4대 세력을 이용하여 화운비장의 3층을 연 뒤 그들을 속여 수운전에 들어가게 만들었고, 이제야 수확을 할 때가 온 것이다.

흑암해마는 미친 듯이 사방의 어둠을 때렸다.

벽록색의 빛이 번쩍여 끝없는 어둠 위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연기경 정점의 수위, 심지어는 촉기경에 달하는 힘도 이 어둠을 부술 수 없을 것이다.

금단대수사가 만들어낸 진법은 그만큼 견고했다.

하지만 흑암해마의 능력이 화가의 전적에 기록 되어있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고작 9급 요수 한 마리가 어둠의 진법을 깰 수 있음을 몰랐을 것이다.

“쾅!”

어둠 위에 생긴 균열이 마침내 흑암해마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소리를 내며 터져버렸다.

빛이 순식간에 새어 들어와 눈을 부시게 만들었다.

흑암해마는 별안간 빛을 향해 달려갔고, 쇠바늘 같은 회백색 털이 가닥가닥 끊어지며 몽땅 빠졌다.

새카만 피부가 드러나고 그 위에 빛이 비추자 눈에 띄는 속도로 쪼그라들어 마치 빛에 잘려나간 듯 떨어져 나갔다.

흑암해마는 고통에 가득 차 울부짖으며 못 참고 못 이리저리 뛰어 올랐다.

바닥이 쿵쿵 울리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점점 어둠속으로 들어가려 발버둥 치는 듯 했지만, 거대한 고통에 이미 지성을 잃어 어둠이 있는 방향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점점 멀어졌다.

화일성은 몸을 움직여 빛 아래에 섰다.

이 빛은 마치 혼돈처럼 아무런 풍경도 비추지 않았다.

천지가 온통 빛으로 가득했고 거대한 공처럼 보였다.

화일성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며 가족 기록에서 어둠이 무너지고 신전 장려가 나오는 부분을 찾았다.

그의 가족 기록에 따르면 암흑이 일단 파괴되면 거대한 힘이 방출되고, 허공을 가르며 신전 장려를 소환한다고 하는데, 화운비장의 가장 진귀한 보물은 이 신전에 숨겨져 있다고 했다.

화일성은 신전을 찾는 일에 모든 주의력을 쏟았다.

심지어 미친 듯이 쏟아지는 빛 속에서 흑암해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고, 엽운 조차 그의 머릿속에선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흑암해마는 쉴새없이 날뛰며 사방을 두드렸고 쾅쾅대는 소리가 빛 속에서 한참을 울렸다.

마침내 흑암해마의 힘은 모두 소모되고 털도 전부 벗겨졌다.

검은 피부는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흑암해마는 일생의 마지막 발걸음을 내딛으며 바닥 위로 쓰러졌고, 한참 동안 경기를 일으키다 이내 소리 없이 조용해졌다.

화일성은 흑암해마의 기척이 마침내 사라지자 고개를 돌려 한 번 보고는 다급히 일어났다.

얼굴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어둠이 부서진 곳에서 무시무시한 힘이 끊임없이 쏟아져 강을 이루며 곧장 뻗어 나갔다.

마치 혼돈 같던 빛의 윗부분이 새카만 빛과 뒤엉켰다.

그리고 빛 속에서 족히 백장 높이는 되는 거대한 문 하나가 나타났다.

곧 빛의 문 속에서 금색의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점점 더 선명해졌고, 마침내 문 안에서 하늘의 끝을 향하는 금색 다리가 나타났다.

화일성의 눈에는 흥분이 가득했다.

거대한 문 속에 나타난 금색의 다리는 분명 화운비장 최후의 신전이 있는 곳으로 연결 되어있을 것이다.

그는 무수히 많은 보물이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 같고, 금단대로가 눈앞에 보였다. ”하하하! 화운비장 천년 간의 기록이다. 화가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유산은 다름 아닌 비장을 찾아 그것을 열고, 보물을 손에 넣어 화가의 천년 전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다. 오늘. 모든 영예가 내게 강림할 것이다. 나는 화가의 두 번째 금단 대수사가 될 것이다!”

화일성은 미친 듯이 웃으며 눈물까지 흘렸고,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여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댔다.

빛은 천천히 어두워졌고, 백장 높이의 문 속 금색 다리만이 금빛을 뿜어대며 가슴을 울렸다.

화일성은 높이 뛰어올라 허공에 떠있는 문을 향해 돌진했다.

금색의 다리가 있는 그곳은 화운비장의 진정한 보물이 숨겨져 있는 곳일 것이다.

금색의 다리를 밟고 고개를 돌려 혼돈이 가득한 공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웃으며 몸을 돌려 재빨리 앞을 향해 나갔다.

화일성의 모습이 사라진 뒤 천백 장 밖에서 쿵하고 쓰러졌던 흑암해마의 찢겨진 가슴에서 별안간 보라색 번개가 나타나더니 하늘로 치솟았다.

번개가 휙하며 지나가자 흑암해마의 가슴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고, 이어서 한 사람이 그 안에서 비집고 나왔다.

”흑암해마의 약점이 빛일 줄은 몰랐군, 다행히 녀석이 죽고 나서 모든 힘이 사라져 뇌운전광검으로 녀석의 가슴을 뚫고 나올 수 있었어. 그렇지 않았더라면 화일성의 말대로 죽고 말았겠는데.”

엽운은 흑암해마의 가슴을 뚫고 나왔는데, 얼굴에는 생존의 기쁨이 가득했다.

허공의 문 속의 금색 빛이 천천히 사라지고, 금색 다리는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엽운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흑암해마의 몸속에서 화일성의 고함 소리를 들었고, 금색의 다리를 보고 있었는데, 곧바로 이것이 마지막 신전으로 향하는 통로임을 깨달았다.

엽운은 망설임 없이 뛰어 올라 금색 다리를 밟았다.

순간 마음속으로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이곳에서 기다리거나 혹은 물러나야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퇴로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끝도 없는 어둠이 붕괴되고 난 후 남은 것은 혼돈의 빛 밖에 없었다.

엽운은 금색 다리를 밟았다.

이제 한 걸음 내딛었을 뿐인데, 다리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이 느껴졌다.

눈 깜짝할 사이 발밑의 금색 다리는 끝자락에 다달았고 이내 모든 금색 빛이 사라져 조금도 남지 않았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순백색의 대전이었는데, 대전이라고 부르자니 과장된 감이 있었다.

대전은 고작해야 두 장 정도의 높이에 네 장 정도의 너비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수운전과 비교하자면 그저 작은 집에 불과했고 전혀 비교가 되질 않았다.

대전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대문 윗쪽에 웅장한 네 글자가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화운대전!

숨을 죽이고 한참을 살펴봤지만 화일성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어쩌면 이미 화운대전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화운대전의 아랫쪽으로 걸어가 새하얀 옥 대문을 바라보았다.

문 위에는 사자의 몸과 용의 얼굴을 한 괴수 조각상 4개가 있었는데, 각각의 조각상은 매우 생생하여 금방이라도 살아나 내려올 것만 같았다.

네 마리 괴수 조각상의 이마에는 눈이 한개씩 있었는데, 동공이 없어 생기가 없어보였다.

어쩌면 눈동자가 빛나게 되면 저것들이 정말로 살아나 옛말처럼 화룡점정이 될 수도 있을것 같았다.

대문 전체에는 어떤 열쇠 구멍도 없었고 닫혀있는 틈도 없었다.

손을 들어 가볍게 두드리자 둔탁한 소리가 손가락을 타고 전해졌다.

”설마 이 네 개의 외눈에 동공을 그려야 하는 건가?”

엽운은 네개의 괴수 조각상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화일성이 신전을 열기 위해선 원소의 힘이 두 가지 이상 필요하다고 얘기한 것을 어렴풋이 기억했다.

녀석은 수년간의 수위를 낭비해 줄곧 연기경 중기의 경지에 멈춰서 있었다.

두 가지 원소의 힘이라고?

엽운은 문 위 사자 몸과 용의 얼굴을 한 조각상을 바라보다가 별안간 웃기 시작했다.

만약 두 종류 원소만으로 문을 열 수 있는 게 맞다면 그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문 위에는 분명 네 개의 눈이 있었다.

만약 네 개의 눈을 모두 밝혀야 문이 열린다면, 엽운에게는 원소 하나가 부족했다.

곧바로 원소의 힘을 주입하려 하지 않았고, 조심스럽게 대전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다른 곳에 대문이 있는지 보려는 것이다.

어쩌면 사자 몸과 용머리를 한 조각상의 눈이 이곳과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바퀴 둘러봐도 다른 대문은 보이지 않았다.

이 대전에는 문이 하나 뿐인 것이 분명했다.

조각상을 바라보던 엽운의 눈에 빛이 번뜩였다.

번개 속성 원소의 힘을 그곳에 주입시켰다.

바로 그때, 하늘에 나타난 변화를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머리 위 도대체 몇 천 장인지 가늠도 안되는 하늘 위에 별안간 열여덟 개의 빛이 나타나 은은한 푸른빛을 뿜었다.

빛은 눈으로 볼 수 있을만큼 빠르게 커졌고, 눈 깜짝할 사이 달걀 한알 만한 크기가 되었다.

엽운은 이 열 여덟개의 빛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장 조각상의 눈을 밝히고 문을 연 뒤 안에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선택임을 알고 있었다.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몸속의 번개 원소를 증폭시키고 손가락으로 조각상의 눈에 점을 찍었다.

순간, 조각상의 외눈에 보라색 동공이 나타나 은은한 불빛을 뿜었다.

“탁!”

다시 한 번 손가락으로 화염의 원소를 담아 나머지 한 마리의 동공에 주입시키자 화염이 순식간에 동공이 되더니 조금씩 요동쳤다.

차가운 한기가 몸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마치 두개의 얼음 구슬처럼 그의 눈에 응집되었고, 얼음의 기운이 눈에서 뿜어져 나와 세 번째 조각상의 외눈을 향했다.

푸른색의 얼음 구슬은 투명하게 비치며 매서운 한기를 뿜어댔다.

하늘 위에서는 열여덟 개의 빛이 이미 물통만한 굵기로 두꺼워져 그대로 떨어져 내려왔다.

엽운은 은연중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속도로 보아하니 순식간에 땅으로 떨어져 문 앞에 내려올 것 같았다.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손바닥을 들어 네 개의 석상을 세차게 때렸다.

“쾅!”

우르릉 소리와 함께 굳게 닫힌 문이 열렸고, 캐캐묵은 냄새가 풍겨왔는데, 오랜 세월을 풍파를 겪은 것 같았다.

문이 완전히 열리기도 전에 엽운은 안으로 들어가 대문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대문은 다시 굳게 닫혔고, 다시금 조금의 틈새도 없는 모양으로 돌아갔다.

하늘 위 열여덟 개의 빛은 모두 내려와 화운대전의 사방에 떨어져 대전을 둘러쌓았다

곧이어 지름이 1장이 넘는 통로의 가운데에 사람 하나가 나타났다.

구양문천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