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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08화 (108/227)

제 108 화 흑암해마

화일성이 말한 것처럼 엽운이 검을 내지르자 번개가 번쩍이더니 곧 사라졌고, 곧 앞쪽의 벽안정수에게 새카만 흑요검 닿았다.

하지만 상상했던 비명이나 폭발은 전혀 없고, 두개의 벽록색 눈은 여전히 한 장 거리에서 희미한 빛을 뿜고 있었다.

“응? 그럼 방금 흑요검이 맞춘건 뭐지?”

엽운은 의구심이 들었다.

바로 그때, 화일성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퍼졌다.

“엽사형,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고 계속 합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끝없는 어둠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될 겁니다.”

이제 엽운의 마음에는 의구심이 충만했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끝도 없는 어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만약 이 안에 갇히게 되면 다시는 나갈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영력이 손바닥에서 솟구쳐 몽땅 흑요검에 주입되었다.

찰나의 순간, 모든 빛을 삼켜버린 어둠 속에서 번개가 번쩍이더니 전기뱀 한마리가 춤을 추듯 날아갔다.

극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번개는 주위 열장 너머의 공간을 밝게 비추었다.

엽운은 이 거대한 괴물을 보았다.

열장은 우습게 넘는 거대한 덩치에, 심지어 두 줄기 벽록색의 빛은 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고, 빛이 마치 눈처럼 허공에 떠있는 것이었다.

순간, 엽운은 이 괴물을 보고 온 몸이 새하얗게 질렸다.

거대한 발톱을 들어 올리며 뿜어대는 날카로운 한기는 분명 지금의 수위로는 결코 당해낼 수 없었다.

이것은 벽안정수 따위가 아니였고, 엽운이 태어나서 본 적도 없는 괴물이었다.

아마도 이미 요수의 범주를 넘어서 갓 영지를 깨우치기 시작한 영수일 것이다.

가장 약한 영수도 수위가 연기경에 버금가는데, 이 녀석은 분명 그 이상일 것이다.

화일성이 의도한 것이 분명하다!

엽운은 순간적으로 반응했다.

모든 것은 화일성이 꾸민 것이다.

처음 마주친 순간부터 이 녀석은 모든 것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엽운은 제양종에서 왔다는 이 녀석이 어떻게 화운비장 3층의 바다에 이리도 익숙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눈앞의 이 영수와 화일성을 상대할 것인가이다.

”화형. 정말 별의 별 계획을 다 짜시는군요.”

엽운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울려 퍼져 어둠속에서 메아리쳤다.

”뭐라구요? 엽형 어찌 그런 말을 하십니까?

화일성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은 차갑게 대답했다.

“화형께서 계획대로 저를 데리고 바다를 건너 이 끝없는 암흑 속으로 끌고 들어온 것이겠죠. 설마 이 모든 게 우연이란 말입니까?”

화일성은 잠시 머뭇거리다 느릿느릿 말했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겁니까?”

”그 커다란 물구슬 앞에서 입니다. 도착 했다 라고 하셨죠.”

엽운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착했다!

이 간단한 네 글자는 화일성이 이미 이 곳을 알고 있음을 설명한다.

그렇지 않으면 엽운과 마찬가지로 크게 놀라며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아주 평온하게 한마디 했을 뿐이다. 도착했다라고.

”제가 너무 급했다 보군요.”

화일성은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그리고 이 끝없는 어둠 속에 들어와 야명주를 꺼낸 것 부터, 어둠 속에서 갑자기 방향을 바꾼 것까지, 이 모든 것은 공간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 영수도 보아하니 벽안정수 따위가 아니겠죠.”

엽운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말했다.

”엽운, 역시 천검종의 제자입니다. 방금 전 단칼에 어둠을 깨뜨린 그 선기, 정말 굉장했어요. 맞습니다. 이 녀석은 벽안정수 따위가 아닌 9급 영수 흑암해마입니다. 어둠에서 태어나 어둠에서 자란 녀석이죠.”

화일성은 놀란 목소리로 하하 웃기 시작했다.

9급 영수란 어떤 개념인가?

9급 영수의 실력은 연기경의 정점에 맞먹는다.

화일성이나 엽운의 수위는 한 입 거리도 안된다.

”화형께서는 이 화운비장을 잘 알고계신 모양입니다. 들어와 본 적이 있으신가요?”

엽운은 예상 외로 격분하지 않았고 오히려 목소리가 점점 더 냉랭해졌다.

화일성은 웃으며 말했다.

“엽형을 속여 정말이지 미안하게 됐습니다. 저는 제양종의 제자 따위가 아닙니다. 이 화운비장은 저희 선배 대능의 묘지이지요. 이번에 들어와 마침 엽형을 만나게 되었으니, 저를 한 번 도와주셔야 되겠습니다.”

엽운은 냉소하며 말했다.

“당신을 돕는다는 게 이 9급 영수에게 죽어주는 것입니까?”

화일송이 말했다.

“죽어 주다뇨? 엽사제가 수위를 숨겼거나 어떤 진귀한 보물을 아직 꺼내지 않은 것이라면, 이 9급 영수인 흑암해마의 발톱으로 부터 살아남을 지도 모르지요.”

엽운은 화내지 않고 오히려 웃었다.

“그 말인 즉슨, 이 모든 것은 화형의 계획 아래에 있고, 꼭 오늘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제가 죽게 된다는 말이군요.”

화일성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했다.

“살고 죽는 것은 엽형의 능력에 달려있지요. 만약 9급 영수도 해치우지 못한다면 이르던 늦던 언젠가는 죽게 될텐데, 무슨 상관입니까.”

“쿵!”

화일성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엽운의 앞쪽에 있는 두개의 벽록색 빛이 터져나와 사방 백장을 밝히며 모든 것을 비추었다.

엽운은 처음으로 흑암해마의 모습을 보았다.

족히 열댓 장이 넘는 키에 굵직한 팔다리를 가졌고, 커다란 앞발에는 장검처럼 날카로운 손톱이 차가운 한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거대한 몸은 회백색의 털로 뒤덮여 있었는데, 살짝 떨리는 모습이 보였고, 한 가닥 한 가닥 털이 모두 날카로운 바늘처럼 곤두서 공포를 자아냈다.

또 왼쪽 수십 장 거리에는 화일성의 모습이 보였는데, 얼굴 가득 웃음을 띄고 있었다.

별안간 그의 손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엽운의 머리 위에서 터졌다.

순간 거대한 흑암해마는 미친 듯이 발을 구르며 엽운을 향해 곧장 돌진해왔다.

9급 영수는 연기경 정점의 수위에 맞먹으니, 결코 당해낼 수 없었다.

한기를 머금은 앞발에 스치기만 해도 죽거나 중상을 입을 것이었다.

화일성이 엽운의 머리 위에 쏜 붉은 빛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흑암해마는 미친 듯이 엽운을 향해서 달려왔다.

작은 산만한 9급 영수가 우르르 떨어져 내려왔다.

엽운은 일찍이 대비를 했다.

비록 흑암해마가 빠른 속도와 파도같은 위세를 가지고 있지만 그는 진작에 회피 동작을 취하며 제자리에서 사라지더니 열장 너머에서 나타났다.

“쾅!”

커다란 소리가 울렸다.

산만한 덩치는 땅바닥 위로 거세게 떨어졌다.

근방 백장 거리가 전부 흔들렸다.

엽운은 어렴풋이 검은 먼지가 날리는 것을 보았지만 곧 종적을 감추었다.

흑암해마는 자신의 일격이 빗나가자 거대한 몸을 순식간에 돌렸다.

이번에는 앞쪽에 떠있던 눈처럼 생긴 벽록색 빛이 번쩍였다.

하지만 그것의 진짜 두 눈을 보았다.

수박만한 크기의 외눈이 그의 이마에 박혀 있었는데, 순식간에 붉은빛으로 변했다.

엽운은 흑암해마의 외눈이 어째서 붉게 변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저항할 수 없는 살기를 느껴 저도 모르게 몸을 옆으로 피했다.

붉은 눈에서 새빨간 빛이 쏘아져 조금 전 까지 엽운이 서있던 곳을 때렸다.

순간, 새카만 바닥에서 빛의 안개가 피어오르며 새빨간 빛을 집어 삼켰다.

하지만 어둠은 너무도 거대한 힘을 받아들일 수 없어 찢어지는 듯 했고, 빨간 빛을 전부 집어 삼키지 못했다.

이를 옆에서 보던 엽운은 공포에 질렸다.

방금 전 붉은 빛에 담긴 힘은 나문성 정도 수위에 도달한 연기경 후기의 고수도 쉽게 막아낼 수 없는 것이었는데, 엽운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엽운은 한 줄기 희망이 생겼다.

그는 빛을 발견한 것 같았다.

만약 흑암해마가 정말로 9급 영수라면 연기경의 정점에 달하는 실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렇다면 엽운이 아무리 훌륭한 직감을 가졌어도 그 공격을 두 번 이나 피할 수는 없다.

연기경 정점의 실력이라면 지금 회피할 수 없는 수준일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가능성만이 남는다.

이 흑암해마가 9급 영수가 아니거나, 그것의 힘이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방금 전의 붉은 빛에 담긴 힘은 나문성의 공격과 별 차이가 없었고, 심지어 조금 부족했다.

그 말은 흑암해마는 9급 영수의 힘을 쓸 수 있지만 공격의 속도는 생각만큼 빠르지 않다는 뜻이고, 더불어 이 두 번의 공격 모두 움직임이 시작되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원래대로라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흑암해마의 힘에 제약이 걸려있는 것이다.

어째서 제약이 걸린 것인지 모르지만 엽운에게는 좋은 소식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알았다. 이 흑암마수는 그렇게 무서운 녀석이 아니군.”

화일성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고, 그의 그림자가 요동쳤다.

엽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흑암해마는 두 번째 공격이 맞지 않아 몹시 화가 나 있고,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벌떡 일어나 뛰어 오르더니 작은 산만한 몸뚱이가 어둠에 완전히 집어삼켜져 사라졌다.

끝없는 어둠 속에는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는 두 개의 벽록색 빛만이 흡수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엽운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흑암해마는 9급 영수이고 눈에 보여도 싸워 이길 방법이 없는데, 지금은 어둠속에 숨어 있었다.

만약 습격을 당하게 되면 절대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엽운은 숨을 죽이고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흑암해마 뿐만 아니라 화일성도 사라졌다.

그런데 마음속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마치 천지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 그를 묻어버린 것 같았다.

순간, 끝도 없는 어둠 속에서 별안간 새카만 천막이 나타나 사면팔방을 뒤덮었고, 엽운도 그 속에 둘러싸였다.

다음 순간, 엽운은 코를 찌르는 불쾌한 냄새에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어떻게 된거야? 화일성, 어서 나와라.”

엽운은 분노에 가득 차 소리치며 손에 쥔 흑요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는 곧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그의 앞을 뒤덮은 어둠이 쇠처럼 단단한 실체가 되었고, 흑요검이 그 위를 베자 불똥이 튀었다.

어둠이 우리가 되어 엽운을 가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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