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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07화 (107/227)

제 107 화 벽안정수

거대한 구슬 속의 빛은 계속 움직였는데, 한 줄기 한 줄기의 빛은 때로는 약하고 때로는 강했다.

그런데 그 빛들 중 어떤 것도 산호 더미 가운데에 난 구멍에 드리우지 못했고, 모든 빛이 집어 삼켜지는 것 같았다.

화일성은 구슬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검은 구멍을 응시했다.

”화형, 뭔가 알아낸 게 있습니까?”

엽운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딱히 없습니다만, 그저 보물이 있다면 반드시 저 구멍 안에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헌데 저렇게 새카맣게 빛도 안드는걸 보니,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화일성은 심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들어가서 살펴보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화형, 혹시 여기서 물러날 생각은 아니겠지요.”

엽운은 웃으며 말했다.

화일성은 대답했다.

“물론 아닙니다. 엽형은 제 뒤를 따라오십시오. 서로 지켜주도록 합시다.”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자신에게 먼저 들어가라 하고 뒤를 봐주겠다 할 줄로만 알았는데, 뜻밖에도 화일성이 스스로 앞장서겠다고 한 것이다.

‘설마 제양종에서 온 저 녀석이, 정말로 의리를 아는 놈인 것인가?’

수선의 길은 너무도 험난하기에, 대다수의 수사들은 약간의 수행 자원을 위해서도 목숨을 걸고 싸우다 결국 죽기 일쑤였다.

이 화운비장에 들어온 수사 한명 한명은 다들 약간의 자원과 보물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닌가.

이런 곳에서 나에게 진심을 다하여 의리를 지키는 형제, 그리고 진정한 남자를 만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특히나 잡역 외원 생활을 거친 엽운은 사람을 더더욱 믿지 못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화운비장에서 소령을 제외한 그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단지 소령은 천검종 4대봉주 중 하나인 무영봉 소호의 딸이라는 존귀한 신분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배경을 가진 그녀가 어떤 보물이나 자원이 필요하겠는가?

더불어 두 사람 사이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에, 소령이라면 당장은 신뢰할 수 있었다.

엽운은 자신의 앞에 있는 제양종의 화일성은 전혀 믿지 않았다.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좀 전에 그는 ‘제가 앞으로 갈테니 화형은 뒤에서 저를 지켜주십시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내려갔다.

화일성이 먼저 가겠다는 말이 그저 해본 말일까봐 두려워서였다.

만약 앞으로 먼저 갈테니 뒤따라오라 했으면 그는 바로 받아들이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것도 좋습니다. 그럼 엽형이 앞장 서시지요, 수고 많으십니다’

”안심하십시오 화형. 비록 우리가 만난지는 하루 밖에 안되지만, 성격이 제법 잘 맞아 꼭 오래된 친구 같이 느껴집니다. 더구나 저희는 보물을 찾아 수위를 올리기 위해 이 화운비장에 들어온 것 아닙니까. 한 배를 탔으니 서로를 돕는 것이 당연합니다. 화형께서는 안심하시고 제게 뒤를 맡겨주십시오. 큰 위험에 처하더라도 제가 형제로써 돕겠습니다.”

엽운은 맑고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간절함이 서려있었다.

”그렇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 게다가 이 안은 우리 생각만큼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보물을 찾는 이들이 모두 수운전에 들어갔다고 해서 이곳에 반드시 좋은 보물이 숨겨져 있으리란 법도 없으니까요.”

화일성은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아끼며 새카만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엽운도 망설임 없이 체내의 영력을 움직이며 조심스럽게 따라 들어갔다.

두 사람이 동굴에 들어서자 찰나의 순간에 앞이 온통 새카매졌다.

손을 뻗어도 다섯 손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쏴” 하는 소리와 함께 불빛이 번쩍이더니 엽운의 손에서 옅은 불꽃이 뿜어져 나와 사방을 환하게 밝혔다.

하지만 불꽃은 잠깐 반짝이더니 다시 어두워졌고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이상한 힘이 불빛을 막아내고 깨끗이 흡수해버린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 구역은 아마도 특수한 무화석으로 지어져 모든 빛을 흡수할 수 있는 것 같네요.”

화일성의 목소리가 옆에서 울렸고, 이어서 그가 말했다.

“미광결을 사용하면 약간은 효과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엽운은 어째서 화일성이 앞장서겠다 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이 안에는 아무런 빛도 존재하지 않는데다 길이 한 갈래 뿐인 것도 아니었다.

구멍을 넘어선 후 이곳이 얼마나 큰지 아직까지 가늠할 수도 없었으며 벽 하나 마주한 적이 없었다.

그러니 누가 앞장서고 뒤따라오는지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무화석이요?”

엽운은 호기심에 물었다.

”네. 이 천지 간에는 그런 특별한 돌이 있습니다. 더 할 나위 없이 단단하고, 모든 빛을 흡수하죠. 아주 희귀한데, 이곳을 무화석으로 만들어 놓았을 줄은 몰랐네요.”

화일성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엽운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는 별 신기한 물건이 다 있다고 생각했다.

무화석이라는 것도 들어본 적조차 없었는데, 빛을 흡수한다니 믿을 수 없었다.

예전에 잡역에 있던 시절, 엽운은 미광결을 수련한 적이 있었지만 외문 제자가 된 이후로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았는데, 지금 이 순간 은은하고 부드러운 빛이 그의 머리 위에서 나타났다.

미광결이 만들어낸 빛은 일반적인 빛과는 다르다.

사실 이것은 빛이 아니라 영력의 덩어리이다.

혹은 영력이 뿜어내는 빛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영력으로 감싸져 있기 때문에 밖으로 비치지 않는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미광결은 영력으로 막혀있기에 무화석에 흡수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광결은 그저 한 번 반짝이더니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깨져버렸고 모든 빛이 허공에 흡수되어 버렸다.

모든 것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미광결로도 무화석을 비출 수 없을 줄이야, 성가시게 됐군요. 천검종의 미광결이라면 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화일성은 나지막이 불평했다.

엽운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화일성이 한 말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설마 이 무화석의 존재를 진작에 알고 천검종의 미광결이라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가?

“솨아!”

마음속에 의혹이 피어오를 무렵, 왼쪽에서 한 줄기 빛이 흘러나오더니 곧 화일성의 손 위에 야명주 하나가 나타나 따뜻한 불빛으로 주위를 밝게 비추는 것이 보였다.

다음 순간, 엽운은 기이한 광경을 보았다.

밥그릇 만한 야명주가 뿜어내는 따뜻한 빛이 마치 거대한 흡입력에 빨려들어가 듯 폭포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가더니 1장 너머로 쏘아져 나갔는데, 어둠속에 잠기지 않았다.

한 가닥 한 가닥의 폭포같은 빛은 화일성의 손으로 부터 쏘아져 나갔는데, 마치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다웠다.

”빨리 출구를 찾읍시다. 이 명주는 오래 버티지 못 할겁니다.”

화일성은 멍하니 서있는 엽운을 보고 나지막이 말했다.

두 사람은 곧바로 방향을 잡고 앞을 향해 질주했다.

화일성의 손에 들린 야명주는 가장 아름다운 불꽃이 터져나가듯, 눈에 띄는 속도로 작아졌다.

이 야명주에 담긴 따듯한 빛이 소멸 되면 사방이 온통 어둠에 잠겨 두 번 다시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은 빠르게 움직여 순식간에 백장을 왔다.

하지만 눈앞의 어둠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궁무진 했다.

화일성의 야명주는 점점 어두워졌고, 밥그릇만한 크기에서 계란만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길어야 반주향 정도 시간이면 사라질 것이다.

”날 따라오세요!”

화일성은 나지막이 소리쳤다.

순간 그의 발걸음이 이상해졌는데, 똑바로 걷는 것이 아니라 왼쪽으로 백장을 갔다가 다시 방향을 틀어 열장 정도를 갔고, 그제서야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갔다.

엽운은 무슨 까닭으로 이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를 따라했다.

생각을 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했고, 엽운은 앞쪽의 어둠에서부터 어둑어둑한 빛 몇 개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서둘러요. 앞으로 쭉 달리기만 하면 됩니다.”

화일성은 다시 한 번 속도를 올렸다.

야명주는 이제 손톱만한 크기 밖에 남지 않았고,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모든 영력을 다리에 집중시켜 앞으로 날아갔다.

이윽고 마지막 남은 빛이 사라질 때쯤, 엽운과 화일성은 어두운 빛 앞에 도착했다.

헌데, 이게 어찌 빛인가?

엽운이 본 것은 차가운 한기를 내뿜으며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4개의 눈이었다.

”이게 뭐지?”

엽운은 다급히 발걸음을 멈췄다.

하마터면 부딪힐 뻔했다.

”움직이지 마세요. 이건 벽안정수 입니다. 우리가 몸에 걸친 옷은 녀석들의 가죽으로 만든겁니다.”

화일성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을 예상한 것처럼 말이다.

벽안정수는 8급 요수로, 수위는 연체경의 정점에 맞먹는데, 지금의 두 사람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화일성이 말한 벽안정수는 암흑 속에 잠겨 벽록색의 눈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눈 바로 아래의 입이나 코도 보이지 않았다.

네개의 눈은 마치 그윽한 불꽃처럼 싸늘하게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엽운은 화일성을 쳐다보았다.

마음속엔 온통 의혹뿐이었다.

입가가 씰룩였지만 도무지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이 벽안정수 두 마리를 죽인 뒤, 이놈들의 눈알을 뽑으면 이 암흑에서 나갈 수 있을 겁니다.”

화일성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손에서 창 한자루가 나와 가볍게 흔들리며 날아갔다.

엽운은 미간을 찌푸렸다.

흑요검이 손에서 나오며 천둥소리가 울려퍼졌고 뇌운전광검이 전개 되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나머지 한 마리 벽안정수를 죽이고 두 눈을 뽑을 샘이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엽운은 깜짝 놀랄 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뇌운전광검의 첫번째 번개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그저 허공을 몇 번 찔렀을 뿐 벽안정수에게 전혀 닿지 않았다.

이 검은 한 번 내지르면 수십 장을 나가는데다 네 개의 눈은 손에 닿을 듯 가까이에 있었다.

”어떻게 된거지?’

엽운이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쭉 앞으로. 멈추지 마세요. 우리가 보는 이 네개의 눈은 가까이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공간 진법에 의해 거리가 변해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입니다.”

화일성 망설임 없이 즉시 대답했다.

화일성의 손에 쥐어진 창은 빠르게 날아가 벽안정수의 두 눈 아래에 닿았다.

그의 창에서 은색 빛이 번쩍이더니 사라졌고, 이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마음속에는 온통 의구심이었다.

화일성은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듯 했고, 이곳에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

그러나 화운비장은 4대 세력이 모여야만 열 수 있는데다, 1층의 진법이 이제서야 파훼되었는데, 화일성에게 어찌 이곳이 익숙하겠는가?

마음속에는 의혹이 가득했지만 엽운의 손은 느리지 않았다.

그는 속도를 열배 더 올려 흑요검의 번개를 번쩍이며 앞쪽의 두 눈을 향해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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