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105화 (105/227)

제 105 화 황작재후. 참새는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

검날이 백장 너머에서 날아오며 옥처럼 찬란한 빛을 뿜었다.

커다란 검에 올라탄 남자는 눈처럼 새하얀 옷을 입고 옷깃을 펄럭였다.

”구양문천, 날 너무 깔보지 말아라. 정녕 내가 너를 무서워하는 것 같으냐?”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검을 본 두건명은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두삼족장의 수위가 설마 이 몸을 넘어선 것인가?”

구양문천은 검을 거두어들이며 공중에서 내려와 파도를 밟고 뛰어 올랐다.

”인겁경을 뛰어넘고 천인경을 깨우친 게 너 뿐인 줄 알았더냐?”

두건명은 싸늘한 목소리로 온 몸에서 파도와 같은 위세를 뿜어냈다.

촉기경 6단계 천인경이었다!

은파파와 손일도는 숨을 들이 쉬었다.

두건명이 천인경을 돌파했다는 소문은 어렴풋이 들었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인겁과 천인은 한 걸음 거리라고들 하지만, 막상 뛰어넘으려고 하면 쉽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구양문천이 촉기 6단계인 천인경의 절정에 달한 수위를 보여주었을 때 다들 경악하며 감히 말도 꺼내지 못하고 명령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두건명이 정말 인겁을 돌파하여 천인경의 수위에 도달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너도 인겁을 뛰어 넘고 천인을 깨우쳤구나. 그러니 그렇게 날뛴 거겠지. 헌데 천인의 경지에 달하면 본좌와 겨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느냐?”

언뜻 놀란 것 같던 구양문천은 곧 시큰둥하게 말했다.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겠나.”

두건명은 밀리지 않고 한 걸음을 내딛었다.

순간 분위기는 일촉즉발이 되었다.

촉기경 6중에 달한 두 고수는 당장 맞붙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두삼족장, 그리고 구양봉주,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닙니다. 이 수운전 안에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는지 아직 모르지 않습니까. 제대로 확인해보고 싸워도 늦지 않습니다.”

은파파는 용머리 지팡이를 들고 천천히 왔다.

”맞습니다. 수운전을 여는 것이 급선무 입니다.”

두건명의 수위를 본 손일도는 순식간에 경쟁심이 싹 사라졌다.

구양문천은 싸늘한 눈빛으로 두건명을 보았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죽이는 수 밖에 없었다.

두건명은 세 사람을 보았다.

두 눈에 살의를 품고 뒤로 물러나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은파파께서 이렇게까지 말리시니 체면 한 번 세워드려야겠군. 구양문천에게 며칠 더 살게 해줘야겠구만.”

두건명은 불리한 상황에 처했음에도 입심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구양문천은 오히려 개의치 않았다.

절대적으로 자신이 있고, 싸움이 벌어졌다면 두건명은 결코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두건명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분명 중상을 입힐 수 있었다.

”과연 그렇군, 그럼 우선 약속대로 하지. 함께 수운전에 들어가 보물을 찾은 뒤 분배하는걸로.”

구양문천은 물줄기에 받쳐진 수운전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지당하십니다.”

은파파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의 약속대로 천검종과 두가가 각 4할씩 가져가고, 남은 2할은 저희와 은파파가 나누어 갖겠습니다.”

손일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누군가가 번복이라도 한다면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은 분명 그였다.

”흥. 너희 패도문의 수위와 공적으로 보물을 1할씩이나 먹을 자격이 된다 생각하나? 아무거나 두어개 쯤 던져주면 딱 되겠구만. 남은 것은 우리 두가와 천검종이 나누어 갖겠다.”

두건명은 곁눈질로 그를 보더니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너.....”

손일도는 화가나 얼굴이 벌게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좀 전의 손일도 였다면 두건명과 겨루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건명이 수위를 선보이고 난 뒤로 감히 말대꾸도 할 수 없었다.

수위 차이가 너무도 큰데다 두가는 진나라 최고의 세력중 하나이기 때문에, 두건명이 그를 죽이려 한다면 그는 곧 죽게 될 것이고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는 너희 두가의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다. 우리 천검종의 말대로 한다.”

두건명에 의해 심기가 불편해진 구양문천이 차갑게 호통쳤다.

두건명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럼 한 번 해보는 수밖에.”

”두삼족장, 화운비장은 우리 네 문파가 힘을 합쳐야만 열 수 있고, 어느 문파라도 빠지면 이 화운비장을 열 수 없을 겁니다. 두삼족장도 꼭 이랬다 저랬다 하셔야겠습니까?.”

은파파의 고아한 목소리가 천천히 울렸다.

”맞습니다. 그 말 대로 입니다.”

손일도도 용기 있게 한 마디 했다.

두건명은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비록 오만방자 하긴 해도 우둔하기 짝이 없는 머저리는 아니었다.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도 오로지 두가와 자신의 조금이라도 더 큰 이익을 위해서였다.

어찌됐든 손해를 볼 일은 없다.

여차하면 좀 전의 약속대로 4할을 가져가면 되는 것이다.

”흥, 그렇다면 뭐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손일도 녀석 또 다시 내게 결례를 범한다면, 그때는 용서치 않겠다.”

손일도는 숨이 다 가빠졌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수위가 미치지 못하면 달리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이다.

열여덟개의 물기둥에 받쳐진 수운신전은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었다.

멀리서 보자니 드높은 기세를 뽐냈다.

엽운은 구석에 숨은 채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엽운은 수위가 아직 부족한데다 만약 외문 제자 한 놈이 3층에 나타나 활개를 치고 다닌다면 주위의 의심을 살 수 밖에 없고, 지금 몸에 보물도 지니기 있기 때문에 발각 된다면 곧바로 보물을 빼앗기거나 죽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화일성은 제양종의 제자를 자처하는데다, 심지어 수위는 오기를 깨우치고 연기경에 도달했으면서 어째서 제양종의 사람들에게 합류하지 않는 것일까?

마음속으로 의혹을 품는 순간, 화일성은 그를 보고 웃음을 지었다.

”저는 기껏해야 연기경 4중의 수위입니다. 이번에 제양종에서 이곳에 들어온 제자들 중에는 저보다 수위가 높은 자가 수두룩합니다. 대열에 섞여 있으면 어디 좋은 물건을 손에 넣을 수나 있겠습니까?”

화일성은 놀랍게도 숨김없이 자신의 야망을 털어놓았다.

잠시 멍해진 엽운은 곧 참지 못하고 웃었다.

그 역시 다를 바 없었다.

단지 수위가 너무 낮아 종문의 대열에 낄 자격조차 없을 뿐이다.

이렇게 된 이상 혼란스러운 틈을 타 얼마가 됐던 가능한 많은 보물을 손에 넣어야 한다.

”엽형, 저 사람들이 수운전에 들어가고 나서는 따라 들어가면 안됩니다.”

화일성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왜죠? 이 곳은 망망대해 위인데 수운전 말고 어디에 보물이 있겠습니까. 수운전 말고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화일성이 미심쩍게 웃어 보이며 손을 한 번 뒤집자, 손바닥위에 검은 가죽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보였다.

”누가 수운전에만 보물이 있답니까? 이 망망대해 어딘가에 진귀한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지요.”

어리둥절하던 엽운은 곧 정신이 돌아왔다.

확실히 그는 이 끝도 없는 바다 한 가운데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 둘 다 혼란을 틈 타 한몫 챙기려는 생각 아닙니까. 저들을 따라서 수운전에 들어가 봤자 우리 정도의 수위로는 금방 발각되고 말 것이니, 차라리 바다를 먼저 탐색하여 뜻밖의 수확을 노리는 게 낫지요.”

화일성은 엽운을 잡아 끌며 뒤로 물러나 최대한 몸을 숨겼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화일성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두 사람 정도의 수위로 사람들 틈에 섞였다간 금방 이목을 끌 것이다.

그들의 수위는 턱없이 낮기 때문에 수운전에 들어갈 자격조차 없었다.

따라 들어가 봤자 금방 발각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비참한 결말뿐이었다.

”받으십시오. 이것은 8품 요수인 비안정수의 가죽으로 만든 물건으로, 물을 피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화일성은 들고 있던 검은색 물건을 그의 손에 찔러 넣었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건내 받으며 순간 그의 행동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만약 바닷 속에 보물이 있는지 탐색해 보려는 것이라면, 어째서 자신을 끌고 가려는 것인가?

혼자 가는 게 보물을 얻을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은가?

”엽형,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 망망대해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아무래도 두 사람이 서로를 살피는 편이 훨씬 나을 겁니다. 우선 듣기 싫은 말부터 먼저 하자면, 일단 보물을 얻게 되면 반드시 제가 먼저 보물을 고른 뒤, 한 사람당 하나씩 공평하게 나누어 갖는 것으로 해야 합니다.”

엽운의 마음 속 의혹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지금의 그는, 3년간의 잡역 외원의 시련을 거쳐 사람을 쉽게 믿지 않게 되었다.

화일성이 저렇게 말해봤자 믿지 않았다.

만난 지 반시진도 되지 않은 사람에게 등을 보인다는 것은 우둔하기 짝이 없는 백치 중의 백치라는 것이다.

하지만 화일성의 말에 동의했다.

이 위험천만한 망망대해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살펴준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것이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조용히 기다렸다가 저들이 수운전에 들어가고 나서 물속으로 들어갑시다.”

화일성의 눈에 이상한 빛이 번쩍이더니 곧 평소처럼 웃으며 말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먼 하늘로 눈을 돌렸다.

높이 솟은 수운전에서는 수백 명의 사대종문 정예 제자들이 조용히 서서 주먹을 문지르며 한바탕 해보려는 듯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운전의 아래에서는 구양문천의 모습이 스쳐지나가더니 대전의 앞으로 떨어져 내려왔다.

드높은 대전에선 파도가 일렁이고 안개가 피어올랐다.

마치 물줄기로 이루어진 듯 한 수운전 세 글자는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모두들 잘 들어라. 안에 들어가서 얻게 되는 모든 물건은 크고 작건, 귀하건 보잘것없건 관계없이 대전에서 나온 후 전부 다 상납한 뒤 우리가 일괄적으로 분배하겠다. 만약 누구라도 감히 숨기려 했다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일 것이다.”

구양문천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울렸다.

”알겠습니다!”

수백 명의 제자들이 동시에 대답하는 소리에 하늘이 흔들렸다.

구양문천과 나머지 사람들은 서로를 한 번 쳐다보곤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제자들은 두개의 열로 나뉘어 대전을 향해 돌진했다.

찰나의 순간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죄다 수운전으로 들어가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었다.

엽운과 화일성은 먼 곳에 숨어 반주향 정도의 시간을 기다리다가 수운전 바깥에 한 사람도 남지 않은 것을 보고는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엽사형, 갑시다.”

화일성의 눈에는 기대와 흥분이 가득했다.

두 사람은 벽안정수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외투를 몸에 걸치고 몸을 날려 끝없는 바다 한 가운데에 떨어졌다.

두 사람이 바다에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운전 아래에서 공기 방울 몇개가 떠올랐고, 곧 그림자 몇 개가 천천히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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