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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104화 (104/227)

제 104 화 수중거궁

빛이 부서지며 3층으로 가는 통로가 완전히 열렸다.

엽운과 나머지 사람들이 빛 속으로 들어간지 오래 지나지 않아 족히 수십 명의 사람들이 2번째 대묘에 나타나 빛을 향해 질주했다.

그 중 한 사람은 구양문천 이었다.

3 층의 문이 열리자 구양문천 마저 친히 부대를 꾸려 온 것이다.

뒤에는 천검종 내문 제자 수십 명이 따라왔다.

”이번 애송이들은 제법 발분하는군, 1차 시험을 통과했을 뿐만 아니라 3층으로 가는 문까지 열다니, 훌륭하다.”

구양문천은 부서진 빛을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사형,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예정대로라면 곧 두가의 머저리들이 따라오게 됩니다.”

구양문천의 옆, 나이가 한참 더 많아 보이는 백발의 노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악문이었다.

촉기경 4중의 수위를 지녔고 나이는 족히 여든은 되었는데, 고작 40대 초반인 구양문천에게 사제를 자처했다.

”걱정 말거라, 이 3층은 무조건 일찍 들어간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결국엔 실력을 따라 가는 것이다.”

구양문천은 자신만만한 태도로 손사레를 쳤다.

구양문천이 손을 들어 한번 훑자 옥 부적 하나가 솟아올랐다.

옥 부적은 빛을 내며 화면을 만들었다.

소령이 진인과 양현동을 데리고 들어와 나문성과 겨루는 모습이 보였다.

만약 엽운이 이 모습을 본다면 크게 놀랐을 것이다.

구양문천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을 줄이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3층은 제법 재미있겠군, 내 관찰을 차단하다니.”

구양문천은 화면 속에서 진인과 나머지가 손을 잡는 것을 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어서 가시지요, 두가의 머저리 놈들이 먼저 올라가게 두어선 안됩니다.”

장악문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몹시 절박한 눈치였다.

구양문천은 고개를 끄덕이곤 뒤를 보았다.

그러자 뒤에 있던 수십 명의 절검봉 내문 제자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부서진 빛을 향해 달려가더니 순식간에 빛 속으로 들어갔다.

구양문천과 장악문은 서로를 한 번 쳐다보곤, 고개를 끄덕인 뒤 일제히 발을 들였다.

엽운은 혼돈만이 느껴졌다.

모든 감각이 기능을 상실했고 그 어떤 빛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소리도, 냄새도, 촉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이 마치 하늘에서 유유히 떨어지는 낙엽처럼 느껴졌다.

바람에 따라 흩날릴 뿐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윽고 빛이 나타났고, 시각이 돌아오자 커다란 바다가 보였다.

광활한 바다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또 공간진법이군, 이 금단대수사는 도대체 공간 금제를 얼마나 좋아 하는거야.”

엽운의 표정이 어두졌다.

거대한 힘에 의해 소령과 다른 이들까지 모두 흩어졌다.

당장 그의 시선에는 소령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공간 금제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데..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안색이 어두웠던 엽운은 고개를 들었다.

앞에 펼쳐진 바다에서 별안간 거대한 물기둥 하나가 솟아올라 하늘을 찔렀다.

물기둥은 매우 굵었고, 윗쪽에는 영롱한 수룡이 솟구쳐 나와 각기 다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멀리서 보자니 더할 나위 없이 신비로웠다.

“쾅! 쾅! 쾅!”

거대한 물줄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해저에서 솟아올라 하늘을 뚫고 올라갔는데 그 길이가 족히 열길은 넘었다.

충격적인 장면을 보던 엽운은 별안간 물기둥의 끄트머리에 커다란 대전 한 채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전은 온통 투명하고 물길이 세차게 일었는데, 놀랍게도 전부 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은은한 일곱 빛깔을 뿜어대는 대전은 멀리서 봐도 충격적이었다.

”하하하! 드디어 3층에 들어왔다.”

놀라고 있는 동안, 뒷쪽으로부터 미친 듯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엽운은 몸을 돌려 바라봤다.

검은 도포를 입은 청년이 구름에 닿을 듯한 대전을 바라보며 감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나보다 한 발 먼저 3층에 들어온 사람이 있잖아. 이건 예상 밖인걸.”

검은 옷에 청년은 엽운을 훑더니 잠시 멍해졌다.

엽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바라봤다.

표정에는 조금의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선 약간의 한기가 느껴졌다.

눈앞의 검은 옷에 청년으로 부터 그 어떤 영력의 파동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평생 수련이라곤 해본 적 없는 보통 사람 같았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어찌 이 수많은 시험을 통과하고 화운비장의 3층까지 올라왔겠는가?

검은 옷에 청년은 지극히 높은 수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적어도 연기경 중기는 될 것이다.

지금 엽운의 경지와 안목이라면, 연기경 1에서 3중까지의 제자는 분명 알아볼 수 있을 것이었다.

이 자가 친구인지 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위만으로도 엽운을 놀라게 하기엔 충분했다.

3층에 올라오면 연기경에 달한 제자들을 잔뜩 만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오자마자 처음으로 맞닥뜨린것이 이 정도로 높은 수위를 지닌 사람일 것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누구신지요? 복장을 보아하니 천검종의 제자인 모양인데.”

검은 옷에 청년은 엽운을 보곤 호기심에 물어왔다.

”맞습니다. 저는 천검종의 제자 엽운이라고 합니다. 사형께서는 어디에서 오셨는지요.”

조심스럽게 대답하며 몸속의 영력을 쉴새없이 회전시켰다.

”과연, 정말 천검종의 제자일 줄이야. 저는 제양종의 화일성입니다.”

검은 옷의 청년은 공수를 올렸고, 전혀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화도형 이시군요. 안녕하십니까!”

엽운도 마찬가지로 공수를 하며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화일성은 엽운이 얼버무리는 것을 듣지 못한 듯 했다.

고개를 들어 열 여덟개의 물줄기가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대전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마찬가지로 놀라움이 가득했다.

”아무래도 이 대전은 물줄기로 이루어진 것 같은데, 화려하고 또 아름답군요. 저 수룡도 비할 데 없이 정교한 것이 정말 생동감이 넘칩니다. 이렇게 놀라운 광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니 정말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화일성은 물줄기로 이루어진 대전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화형, 같이 올라가실 겁니까?”

엽운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광활한 바다 위엔 이 대전을 제외하고 그 어떤 건물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의 흔적 역시 보이지 않았다.

화일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분명 이 3층의 보물은 저 절묘한 물의 대전 안에 숨겨져 있을텐데, 이왕 들어온 이상 헛걸음을 할 수는 없지요. 엽형, 함께 가서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화일성은 어떠한 적개심도 보이지 않고, 딱히 친절하게 인사를 나누지도 않았다.

그저 우연히 맞닥뜨려 담담하게 초대를 받았을 뿐이고,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 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화일성은 아직까지는 정상으로 보이고, 적개심도 내비치지 않는데다 음모를 꾸미는 것 같지도 않았다.

두 사람은 줄지어 뛰어올라 열여덟개의 물기둥이 받치고 있는 대전을 향해 날아갔다.

쏴아아!

빛이 번쩍였다.

엽운과 화일성 두 사람이 대전 앞에 도착하기 바로 직전, 공중에서 별안간 수십 개의 그림자가 수도 없이 떨어졌다.

엽운과 화일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제법 빨리 들어왔다 생각했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명이 나타난 것이다.

엽운이 놀라고 있는 사이, 멀리서 또 다시 수십 명이 순식간에 날아왔다.

”은파파, 나이도 지긋하신 분이 움직임이 이리도 빠르실 줄은 몰랐습니다.”

멀리에서 “우르릉”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지평선 위에 십수 개의 빛이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공중에서 몇 사람이 떨어져 내려와 대전의 바로 앞에 도달했다.

바로 패도문의 손일도였다.

”나이가 많다보니 영 느리지요. 좀 전에 간신히 도착했습니다.”

좀 전에 나타난 수십 명의 사람들 사이에서 은파파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그녀는 앞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저 나이에 위험한 줄도 모르고 맨 앞에서 달리시다니, 나중에 어떻게 죽은지도 모르고 돌아가시겠어.”

멀리서 차가운 말투로 비아냥대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빠르게 가까워졌다.

이윽고 수십 개의 빛은 일제히 공중에서 떨어져 내려왔는데, 맨 앞에 선 것은 다름 아닌 두가 삼족장인 두건명 이었다.

두건명의 뒤에는 수십 명의 두가 정예 제자들이 따라왔는데, 눈에 살기를 품고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수은전이라! 아주 좋군. 보아하니 이 신전은 화운비장 진인이 보물을 숨겨놓은 곳 같군. 우리 두가가 먼저 들어가 살펴 볼테니 당신들은 그 다음에 들어오시오.”

”두삼족장, 우리끼리 좀 전에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설마 잊으신 겁니까?”

은파파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두건명, 두가를 대표하는 자라면, 내뱉은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전부 기억해야 하지 않겠나.”

손일도의 수염이 바람도 없이 스스로 움직였다.

담담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두건명은 차가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은파파, 손일도, 두 사람에게 먼저 수운전에 들어가라하면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은파파와 손일도의 눈에는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엄두가 안 난다면 뒤에서 얌전히 기다리시오. 우리 두가가 배를 채우고 나서 부스레기 정도는 남겨 드릴테니까.”

두건명은 두 사람을 보곤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수운전이 몹시 화려하고 웅장해 보이니, 당연히 그 안에 숨겨진 보물은 극히 진귀할 것이다.

만약 먼저 들어갈 수 있다면, 늦게 들어온 자들 보다 얻을 수 있는 보물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은파파와 손일도는 선뜻 들어가지 못했는데, 금단대수사의 진정한 살수는 그들이라도 쉽게 막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제양종과 패도문은 두가나 천검종 만큼 규모가 크지 않았다.

정예 제자 몇 명쯤 죽어봤자 다시 빠른 시일 내에 키워내면 그만이지만 그들은 그럴 수가 없기에 정예 제자 한 명 한 명이 보배와 같았다.

한 사람을 잃으면 엄청난 노력과 자원을 써야 하기에 손해가 막심한 것이다.

두건명은 두 사람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사람들을 이끌고 수운전으로 들어갔다.

”두건명, 내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들어가? 더 이상 살기 싫은 모양이구나.”

목소리 하나가 하늘에서 부터 들려오더니 곧 칼날이 번쩍였다.

지평선 끝자락에서 한 사람이 검을 밟고 날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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