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9 화 막다른 길
은천행은 어리둥절해 하더니 곧 안색이 변했다.
“은천행, 네가 감히 눈을 멀게 하다니, 죽어라.”
분노가 극에 달한 나문성의 목소리가 공간에 울렸다.
나문성은 온 몸에서 빛을 뿜어 화염에 휩싸인 듯 한 모습으로 은천행을 향해 달려갔다.
은천행은 나문성을 3년 조금 넘게 따라다녔고,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문성이 화염에 휩싸인 모습은 처음 봤다.
훨훨 타오르는 화염이 순식간에 하늘을 향해 솟구치더니 은천행을 뒤덮었다.
“으악!”
은천행은 비명을 질러댔다.
그의 수위라면 평범한 화염은 닿지 못하겠지만 나문성이 뿜어낸 화염은 몹시 기이한 것이라, 놀라운 열기가 몸을 보호하고 있던 영력을 뚫고 몸을 불태웠다.
“어떠냐? 화안기린(麒麟)의 진화(真火)다. 맛이 괜찮지.”
나문성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렸다.
음산한 목소리에 살기가 충만했다.
“화안기린 이라고?”
은천행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불가능해. 화안기린은 영지를 깨우친 오품영수인데, 어떻게 네가 길들여 진화를 가져온 거냐.”
화안기린은 절검봉에서 키워낸 오품영수 중 한 마리였다.
힘은 축기경 초기에 필적했다.
진화는 화안기린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인데, 만약 진화를 빼앗는다면 곧 힘이 크게 떨어져 평범한 영수가 된다.
축기경 초기의 힘에 달하는 영수는 천검종에서도 많지 않고 절검봉에서는 더욱이 수가 적었다.
이와 같은 영수는 한 마리 한 마리가 전부 보배라 할 수 있는데, 어찌하다 나문성에게 진화를 빼앗겼을까?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영혼까지 불태우는 고통은 적어도 이 화염이 화안기린의 진화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려주었다.
나문성은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놀라운 위압감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예상보다도 훨씬 강력한 위압감이었다.
“송자림, 평소에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나문성은 순식간에 반응했다.
크게 소리치고 몸을 돌리며 손에 노란 빛을 번쩍이자 구리거울 하나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떙!”
거대한 힘이 거울을 맞추자 하늘이 흔들리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나문성은 답답한 마음에 끙끙거렸고 구리 거울은 통제를 잃은 채 부서져나갔다.
주홍색의 대검 한 자루가 겹겹의 방어를 뚫고 그의 앞에 나타나 세차게 베어버렸다.
검의 위력은 이미 나문성의 상상을 초월했다.
분명히 연기경의 6단계인 진강경을 뛰어넘는 힘이었고 어렴풋이 진화경의 느낌마저 났다.
같은 연기경의 두 경지는 글자 하나 차이라고는 해도 그 거리는 적어도 열 곱절은 되었다.
이것이 나문성이 네 사람에게 포위가 되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던 이유였다.
그에게는 은천행, 송자림과 엽운을 포함한 네 사람이 전부 연기경 6단계인 진강경에 달했다 해도 전혀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진화와 진강, 한 글자 차이이지만 운명적으로 정해진 승패이기에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문성의 예상과는 달리 송자림의 검은 그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나문성은 급히 공격을 막아냈다.
구리 거울이 떨어져 내려오면서 그의 몸도 공중에서 별안간 뒤집히더니 거꾸로 날아갔고, 거울을 방패삼아 공격을 간신히 막았다.
“송자림, 좋은 계략이구나. 뜻밖에도 이미 진화경을 깨우쳤군.”
나문성은 공중에서 떨어져 송자림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찔린 눈에서 피가 “콸콸” 흐르는 모습은 놀라기에 충분했다.
송자림은 눈에 차가운 빛을 번득이며 쓸데없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손에 쥔 장검이 떨려오더니 그가 빠르게 다가왔다.
기왕 손을 뻗은 이상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이니, 무슨 말을 해도 쓸데없는 소리였다.
좀 전의 나문성은 황급히 응전하느라 허둥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송자림과 정면으로 상대할 때는 조금도 당황하는 모습이 없었다.
우선 그의 수위는 이미 진화경의 후기에 도달해 머지않아 축기경에 닿을 수 있음을 알아야 했다.
“이왕 말을 아끼는 김에, 영원히 하지 말거라.”
나문성은 날아올라 두 손을 허공에 띄우자 손끝에서 별들이 쏟아져 수 장 크기의 성도(星圖)가 머리 위에 나타났다.
“구성검도!”
나문성이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수장 크기의 성도 위에 난데없이 아홉 자루의 신검이 나타나 눈부신 빛을 뿜어댔다.
곧 회전하며 수많은 별똥별 사이에 뒤섞인 칼날이 쏟아져 송자림을 향해 날아갔다.
송자림의 표정이 변했다.
나문성이 구성검도를 시전하는 모습은 지금껏 본 적이 없지만 그의 수위도 이미 진화경에 도달했기에 검에 담긴 위력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이미 하품 영기의 범주를 완벽하게 벗어난, 훌륭한 품질의 중품 영기였다.
“천검요일!”
송자림이 분노가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장검이 하늘로 솟아오르며 공중에서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부서지며 한자루의 천검이 되어 노을이 만 갈래로 비추었다.
천검요일은 송자림이 수행한 팔품 신기중 하나로, 절륜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순간 그는 모든 진기를 이 한 수에 전부 불어넣었다.
구성검도를 부수지는 못하더라도 한두 번 쯤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노을을 수만 갈래로 가르던 천검이 수많은 별빛과 부딪힌 순간 사라지기 시작했다.
두어 번의 호흡 사이에 검은 완벽히 조각 나 부서져 버렸다.
수천 수백 개의 별똥별은 빽빽한 검의 비처럼 그를 뒤덮었다.
송자림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진화경 정점에 오른 자의 손에 중품영기가 있으니, 위력이 실로 어마어마했다.
마찬가지로 진화경의 수위에 올랐지만 도무지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송자림은 이를 악물자 머리 위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마치 물결처럼 그를 감쌌다.
셀 수 없이 많은 별빛의 검기가 내려와 푸른 물결을 매섭게 공격했다.
푸른 물결은 놀랍게도 금방 부서지지 않고 마치 파도처럼 위아래로 출렁이며 끊임없이 별의 검기를 막아냈다.
하지만 별의 검기는 너무도 많았고, 푸른 물결은 다섯 호흡 가량의 시간을 버텨내다가 곧 부서지기 시작해 무수히 많은 수정 조각이 되어 땅에 떨어졌다.
아직 남아있는 수십 개의 칼날이 송자림을 뚫고 지나가 그를 모래위에 쳐 박았다.
같은 진화경이지만 실력은 크게 차이 났다.
게다가 중품영기의 우월함은 송자림을 도무지 저항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송자림의 눈에 절망이 가득했고 체내의 진기는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그을 꿰뚫은 칼날은 구성검도의 아홉 자루 신검이 되어 무자비하게 그를 잡아두었기에 도무지 진기를 운용하여 치유할 수 없었다.
그저 눈을 뜬 채로 생기가 모두 사라지는 것을 느껴야 했고 머지않아 죽어 없어질 것이었다.
한 편에서는 은천행이 아직도 버티고 있었다.
다만 축기경에 버금가는 화염이 어찌나 무서운지 이 때 그의 하반신은 이미 연화되어 사라지고 상반신만이 남아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나문성, 귀신이 되어도 가만두지 않겠다.”
목소리는 처참하고 분에 가득 차 있었다.
어쩌면 일말의 후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왜 엽운과 두 사람의 말에 넘어가 나문성을 배신했을까.
“나를 배신하기로 한 순간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어야지. 편히 가거라. 이 사막은 확실히 뼈를 묻기에는 좋은 곳 같으니.”
나문성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돌려 멀리 출구로 도망치는 둘을 보며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은천행은 불길 너머로 나문성을 바라보며 분노에 차 소리쳤다.
“나문성. 네놈은 음험하고 악독해 지금껏 단 한 번도 우릴 사람 취급하지 않았지. 오늘은 살아남았을지 몰라도 언젠가 다른 누군가의 손에 죽을 것이다..”
나문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남은 한 쪽 눈에서 살기를 번뜩이며 순식간에 수백 장을 이동해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의 뒤에서 나타났다.
“소령 사매, 지금 가려하는데, 좀 늦지 않았는지요?”
살기로 가득한 차가운 목소리가 나문성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엽운의 표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백장 너머가 바로 출구였는데 나문성의 수위가 너무도 높아 금방 따라잡히고 말았다.
나문성의 속도라면 두 사람이 절대로 지나가게 둘 리 없었다.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한숨을 쉬더니 곧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먼저 가.”
소령에게 차갑게 말했다.
소령은 놀라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게 아니면, 가서 원군을 데려와!”
별안간 엽운의 몸에서 강대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소령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영력이 마치 조수처럼 솟구쳐 앞으로 날려버렸다.
보고 있던 나문성은 마음속에서 한기가 솟았다.
“날 죽이기 전에는 이곳을 지나가지 못한다.”
엽운은 나문성을 바라보았다.
순간, 얼음과 화염이 마치 두개의 막처럼 생겨나더니 순식간에 앞을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