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96화 (96/227)

제 96 화 봉주의 딸

엽운과 소령은 나문성이 이런 계획을 세울 것이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이전에 대묘에 들어왔을 때 외문제자들은 살아나올 수만 있다면 그 안에서 얻은 보물은 종파에게 상납할 필요 없이 가지고 돌아가 중점적으로 훈련하라는 양정봉의 말을 똑똑히 들었다.

하지만 이 나문성이라는 자는 살심을 품고 사람을 죽여 보물을 얻으려 하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혹시 구양문천의 뜻인가?

엽운은 소령을 보았다.

눈에는 분노와 의혹이 가득했다.

소령은 의문을 눈치 채기라도 한 듯 놀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구양 아저씨의 뜻은 아닐거야. 분명 나문성이 청옥신부를 잃고 스스로 내린 결정일거야.”

“청옥신부? 방금 전 그 푸른빛을 말하는 거야?”

엽운은 목소리를 낮추며 소령의 귓가에 대고 물었다.

소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구양 아저씨는 자신의 십대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청옥신부를 하나씩 주셨어. 이 부적은 구양 아저씨께서 직접 만드신 건데, 천인의 힘이 담겨있어 위력이 아주 강력하지. 한 번 꺼내면 축기경 세번째 단계인 고원경의 힘을 낼 수 있어. 나문성에게는 목숨이 하나 더 생긴것과 마찬가지인데, 이 모래거인에게 낭비하게 될 줄은 몰랐겠지.”

“그래서 우리 외문 제자들에게 화풀이 삼아 목숨을 빼앗고 보물을 얻어가겠다는 거야?”

엽운은 화가 치밀어 올라 되려 웃음이 나왔다.

“그건.....그런 일을 벌이게 두지는 않을 거야.”

소령은 어쩔 줄 몰라하며 대답하곤,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말했다.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무슨 일이 있어도 소령에게 화풀이를 할 수는 없었다.

“갑시다!”

나문성을 포함한 세 사람은 조심스럽게 나가며 사방을 둘러보았고, 엽운은 소령의 손을 잡아끌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나와 나 사형은 몇 번 만난 적이 있으니,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하진 않을거야.”

소령이 망설이며 말했다.

엽운은 고개를 저으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심성을 가진 인간이 무슨 인정 같은걸 따지진 않을 것 같네. 게다가 우리 두 사람은 좋은 물건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잖아.”

소령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방금 전에 모래거인한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것 같진 않던데, 이해가 안돼. 왜 나 사형이 청옥신불을 꺼냈을까.”

“우리는 모래거인의 공격범위 내에 있지 않았고 그저 녀석이 내뿜는, 저항하기 힘든 위압감을 멀리서 느꼈을 뿐이야. 그 중심에 있던 나문성은 정말로 모래거인의 공격을 막거나 피할 방도가 없어 마지못해 청옥신부를 꺼냈을거야.”

엽운은 견문으론 소령을 따라가지 못했지만 결투에 임하는 것과 같은 실전 경험은 소령을 훨씬 능가했기에 조금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그 요지를 명백히 깨달았다.

실제로 나문성은 모래거인의 공격을 피할 방법이 없었고, 손바닥을 받아낼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었다.

만약 청옥신부를 꺼내지 않았다면 손바닥 한방에 죽거나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게다가 타고난 자질이 모두 훼손될만한 중상을 입는다면, 훗날 수행을 하는 데에 있어 아주 큰 걸림돌이 되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는 아쉬워도 청옥신부를 꺼내 모래거인을 가루로 만들어 살아 남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이 공간은 곧 붕괴될 것이라 공간의 규칙이 아주 불안정하다. 너희 둘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보물이 있는지 잘 살펴보거라. 기억해라. 만약 사람의 흔적이 보인다면 반드시 찾아내라. 분명 보물을 적지않게 지니고 있을 것이다. 이곳은 화운비장의 2층이고, 역시나 그 자의 무덤인데, 어찌 평범한 물건을 남겨두었겠는가.”

나문성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형형한 눈빛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 했다.

전혀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광활한 사막 멀리 퍼져나가 엽운과 소령의 귀에 들렸다.

엽운은 앞으로 가던 소령을 잡아 바닥에 엎드렸다.

손가락을 입에 대고 소령에게 가능한 숨을 죽이고 소리를 내지 말라고 주의했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이 엎드린 뒤 나문성의 눈빛이 마치 번개처럼 사방을 훑었고, 곧바로 야명주 하나를 꺼내더니 따뜻한 흰색의 빛을 뿜어 백 장 반경을 밝혔다.

나문성은 방금 전 일부러 큰 소리를 내어 말했다.

이 대묘 안에 있을 다른 이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이다.

만약 가까운 곳에 사람이 있다면 그의 말을 듣고 두 가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첫번째 반응은 도망일 것이다.

일층의 금제를 깨고 이곳에 들어온 외문 제자들이 그럴 것이다.

다른 한 가지 반응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다른 종파에서 온 고수라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고 반경 수십 장 거리를 죄다 뒤져보고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정말로 아무도 없을 줄은 몰랐군. 이 커다란 사막에서 보물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청옥신부를 써버린 손해를 어떻게 메울 수 있는가?”

“나 사형, 이 사막에는 아무것도 없는것 같습니다. 온통 모래뿐입니다.”

“그런가, 이 모래사막이 2층이렸다? 그렇지 않을텐데.”

나문성은 두 사람을 한 번 바라보곤 시선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렁이는 모래를 빼곤 무엇 하나 그의 주의를 끄는 물건이 없었다.

“그럴 리가 없다. 이곳은 분명히 2층이 맞다. 너희들 모두 호흡을 통해 이곳의 영기를 느껴보아라. 흡수와 연화가 어렵던, 아니 심지어는 연화가 불가능한 지경에, 흡수를 강행하면 몸이 터져버릴 것 같던 1층의 영기와 비교하자면 이곳의 영기는 그보다도 더 방대한데다 마음대로 흡수 연화가 가능하다. 심지어 우리 절검봉의 삼성취기진과 비교해도 한참 더 강하다. 그런고로 이곳은 반드시 2층일 것이다.”

나문성은 고개를 저으며 꼿꼿이 눈을 떴다.

내문 제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좀 전의 모래거인에게 겁을 먹었다.

만약 이 2층의 가는 곳 마다 이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면, 이 두 명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문성도 마찬가지로 청옥신부 같은 걸 꺼내 목숨을 건지려 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뱉은 말은 은연중에 나문성에게도 영향을 주어 곧바로 이곳을 떠나 복명할 수 있게끔 하였다.

하지만 나문성은 청옥신부를 잃었는데 어찌 곧바로 떠날 수 있겠는가.

그는 손에 장검을 꽉 쥐고 조심조심 앞장서서 걸어갔다.

내문 제자들은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묵묵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엽운과 소령은 모래위에 엎드려 있었다.

모래 바람이 불어와 두 사람을 점점 뒤덮어 가렸다.

두 사람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실수로 조금이라도 소리를 내면 나문성에게 발각될 것이다.

드디어 나문성의 뒷모습이 천 장 너머로 멀어지고 가득 메운 황사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소령은 엽운을 당기며 일어섰다.

“가자. 지금이 기회야.”

공간의 변화를 본 소령은 엽운을 잡아끌며 빛에 의해 잘린 공간을 향해 갔다.

공간진법에 대한 이해라면 엽운은 죽어도 소령을 따라가지 못하니, 소녀가 그렇게 말하면 그저 따라갈 뿐이었다.

두 사람 정도의 수위로는 수십 리 길쯤이야 눈 깜짝할 새에 갈 수 있기에 머지않아 둘은 공간이 부서진 곳에 도착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두 사람 앞에 나문성과 나머지 내문 제자가 옆에서 튀어나오더니 앞을 막아섰다.

엽운과 소령은 크게 놀라 급히 발걸음을 멈췄다.

믿을 수 없는 눈치였다.

“내가 말했지. 어떻게 이 공간에 사람이 없을 수 있겠느냐? 아무도 없었더라면 어찌 진안이 파괴되고 공간의 규칙이 무너져 우리에게 갈라질 수 있었겠나.”

나문성은 두 사람을 바라보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 사형 대재. 기가 막힌 계략이옵니다,”

“맞습니다. 좀 전 까지만 해도 어찌 이곳을 빙빙 돌며 지키고 있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과연 나 사형께서 이런 신통한 계략으로 모든 것을 장악하고 계셨군요.”

내문제자들은 의기양양하게 웃어보였다.

입에선 아첨이 쏟아져 나왔다.

엽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심계를 비교하자면 엽운은 나문성처럼 천검종에서 20년을 구른 인간에 비해 조금 떨어졌다.

“나 사형, 저는 소령이에요. 저희를 놓아주세요.”

소령이 엽운의 등 뒤에서 나오더니 나문성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말했다.

나문성은 어리둥절해 하며 시선을 옮기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소령? 그럴리가, 네가 어찌 대묘에 와 있느냐? 이번에 대묘에 들어온 제자들은 천촉봉에서 온 자들인데, 너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소령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호기심에 들어와 보았을 뿐이에요.”

나문성은 한 동안 난감해했다.

그는 눈썹을 씰룩이며 소령을 바라보더니 물었다.

“소령. 그렇다면 넌 이 대묘에서 무슨 보물을 얻었느냐?”

그는 뜻밖에도 솔직히 물었다.

조금도 상대방의 기분은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소령은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그것이 나 사형과 무슨 관계가 있죠?”

나문성은 콧방귀를 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엽운을 향해 고개를 돌리곤 물었다.

“네놈은? 물건을 내놓으면 보내줄지 고민은 해보겠다.”

엽운은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소령의 대답은 상대에게 자신이 이곳에서 보물을 얻었다고 알려주는 셈이었다.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기습할 준비를 했다.

“나문성, 설마 진짜로 동문을 죽이려는거야?”

그런데 바로 그때, 소령이 다급히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문성은 웃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죽은 동문이 그리도 많은데, 어찌 죽었는지 누가 알겠느냐.”

“네가 감히!”

소령은 역시 냉소를 지어보이며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무영봉 소호의 딸인데, 감히 나를 죽일 셈이냐?”

“뭐야!”

나문성의 뒤에 있던 은천행이라는 내문 제자가 놀라며 입을 열었다.

“무영봉주 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