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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95화 (95/227)

제 95 화 청옥의 부적

키가 몇 장은 되는 모래 거인이 땅 위에서 일어나 나 사형 일행을 가로막았다.

모래 거인이 나타나 앞길을 가로막자 사방에서 모래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천벌이라도 내리는 양 재빨리 모래거인의 몸을 향해 한 곳에 모여 들자 모래거인은 한 겹 한 겹 더해져 점점 덩치가 커졌다.

엽운과 소령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두 사람도 모래거인에게서 비할 곳 없는 기세를 느꼈다.

열 장 높이까지 천천히 커지고 있는 모래거인을 보고 있자니 엽운의 손에 식은땀이 찼다.

방금 소령과 함께 나갔다면 모래거인에게 길을 막힌 것은 두 사람이었을 것이다.

소령의 두 눈에 의혹이 가득했다.

그녀는 엽운을 바라보았다.

도무지 이 녀석이 어떻게 이런 직감을 보인건지 알 수 없었다.

만약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면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꼭꼭 숨어서 절대 얼굴을 비추면 안돼. 만약 나 사형조차 해결하지 못할 일이면 우리가 나서봤자 목숨만 내놓는 꼴이야.”

엽운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소령의 손을 끌었다.

소령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손을 빼지 않았다.

그저 수줍은 목소리로 작게 설명했다.

“나 사형은 구양 아저씨의 십대 제자중 하나고 수위는 이미 연기경의 7번째 단계에 있으니 길어야 3년이면 축기경에 달하겠지. 절검봉에서 최고로 주목받는 천재야. 그가 들어올 수 있었다는 건, 이곳의 수많은 금제가 깨졌다는 말이고, 불리한 영기가 전부 밖으로 새어나와 더 이상 연기경에 달한 제자들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구양 아저씨라면 절검봉의 구양문천 말이야?”

엽운이 얼떨결에 물었다.

그 역시 외문 제자가 되고 나서 사람들로부터 사대봉주의 명호를 주워들었다.

“맞아. 들어봐. 글쎄, 구양 아저씨의 수위는 이미 축기의 여섯번째 단계인 천인경에 달했다니까. 그 분이야 말로 천검종의 다음 종주의 강력한 경쟁자라고 할 수 있지.”

소령은 향긋한 숨을 내쉬며 엽운의 귓가에 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의 마음속에서 말로 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통제를 잃고 솟아올랐다.

모래거인은 세 사람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일렁이는 모래가 거인의 옆을 오가며 마치 모래로 만든 의복처럼 바람에 흩날렸다.

나 사형의 이름은 나문성이었다.

수위는 이미 연기경의 일곱번째 단계인 진화경에 달했다.

체내에서 바람을 만들고, 그 바람으로 불을 만들어 하늘에 닿을 만한 수위였다.

하지만 모래거인을 마주하고 있는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심지어 다소 창백하기까지 했다.

눈앞에 이 열 장 높이의 모래거인이 주는 위압감은 그의 수위가 진화경에 달해 영혼을 단련하는 경지라 해도 당해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분명 이 모래거인의 실력은 그보다 위에 있을 것이다.

“나 사형, 어찌해야 합니까?”

나문성의 옆에 있던 흰 옷의 젊은 두 제자는 몸을 살짝 떨었다.

그들의 수위로는 이 모래거인의 위압을 오래 버티기 어려웠다.

“절검삼재진을, 마침내 시험해 보겠구나.”

나문성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았다.

흰 옷을 입은 두 내문 제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곧 움직였다.

세 사람은 품(品) 자 모양의 대형으로 모래거인을 애워 쌌다.

바로 그때, 차가운 빛이 번쩍이는 세 자루의 장검이 나타나 몇 장 높이의 빛을 쏟으며 살기를 뿜었다.

“저것이 절검봉의 합격기법. 절검삼재진이야. 세 사람의 공격을 하나로 연결하여 매 공격이 세 사람분의 합동 공격에 해당하는 절륜한 위력을 내지만, 방어는 할 수 없어.”

엽운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의 마음에 경외가 차올랐다.

이와 같은 합동 공격법은 결코 범상치 않은 것이다.

세 사람이 품자 대열을 전개하여 상대를 둘러싸면, 상대가 어떻게 움직이던 반드시 한 사람은 맞닥뜨리게 된다.

한 사람씩이라면 몰라도 매 한 명 한 명의 공격이 세 사람의 합동 공격이 되니, 수위가 아주 높지 않고서야 어찌 당해내겠는가?

두 사람이 말을 건내자 나문성의 손에서 칼날이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검을 내질렀다.

마치 번개가 밤하늘을 가르듯 근방 수천 장이 전부 밝아져 미세한 것들 마저 전부 모습을 비추었고 드높은 검기가 굽이치며 모래거인을 찔렀다.

나머지 두 사람은 거인을 가리키며 칼날을 치켜들어 모래거인의 머리 꼭대기에 화개(華蓋)를 만들어, 곧 칼날은 빛이 되어 늘어졌다.

그 가운데 몇 줄기의 빛이 나문성이 내지른 검에 떨어졌다.

찰나의 순간, 검격의 기세가 다시금 드높이 솟구치더니 파도처럼 솟아올라 칼날이 내뿜는 빛 사이로 한마리 용처럼 울부짖으며 지나갔다.

엽운은 난생처음 연기경 후기 고수들의 공격을 봤다.

그 칼날은 그의 상식을 간단히 벗어난 것이었다.

이 전까지 그는 검격 한 번의 위력이 이정도로 강할 수 있는지 몰랐다.

엽운의 눈에 흥분이 가득했다.

훗날 자신이 연기경 후기에 달하게 되었을 때 저들처럼 검을 내지르면 얼마나 멋진 광경이 펼쳐질지 어렴풋이 떠올렸다.

강한 자신감이 생겼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수위는 연기경의 정점에 올라 축기경에 달할 것이다.

천검종의 천재들은 압도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 수행의 속도가 몹시 빨라 심묵 과도 같았고, 같은 잡역 제자일 때에도 그들의 수행 속도는 엽운의 열배, 심지어 수십배는 빨랐다.

이런 천재 제자들은 종파에서 발굴되어 그들의 재능과 더불어 끝없는 수행 자원을 얻게 되어 수위를 급속도로 끌어올렸다.

이전까지 엽운은 이런 천재들에게 어쩔 도리 없이 당했지만, 지금의 그는, 상대의 수행 속도가 얼마나 빠르던 개의치 않았다.

선마지심이란 믿을 수 없는 보물을 얻었기 때문이다.

충분한 영기의 호흡만 가능하다면, 선마지심은 끊임없이 순수한 영기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기는 연화가 필요하지 않아 바로 흡수하고 수행하면 된다.

영기의 순도가 부족해 정련할 때 위험한 상황이 올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엽운은 이 불가사의한 검격을 바라보았다.

얼굴에 놀란 기색은 없고, 그저 흥분과 희망으로 가득했다.

칼날은 한 필의 명주처럼 허공을 가르고 모래거인의 가슴을 찔렀고, 몇 장은 되는 두꺼운 몸을 곧장 뚫고 등에서 튀어나왔다.

하지만 모래거인이 와르르 무너져 먼지가 될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꿰뚫린 구멍은 굽이치는 모래로 재빨리 채워지며 멀쩡히 회복되었다.

검은 모래거인에게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한 것이다.

잔뜩 굳은 나문성의 얼굴이 조금씩 하얗게 질렸다.

나머지 두 내문제자들의 눈도 공포로 가득 차 떨리고 있었다.

세 사람이 꾸민 절검삼재진의 공격력은 연기경 정점의 고수도 쉽게 상대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검이 한 번 스치면, 죽지 않더라도 중상을 입게 된다.

하지만 모래거인에게는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모래거인은 지금의 공격에 몹시 화가 난 듯 거대한 몸을 마구 흔들었다.

모래로 이루어진 팔을 올리더니 커다란 손을 매섭게 내리쳤다.

끝도없는 모래가 한 곳에 모여 거대한 손바닥을 만들어내 휘익 하는 바람소리를 내며 나문성을 내려쳤다.

아주 빠르지는 않았지만 근방 열 장의 범위를 전부 뒤덮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딱 열 장 뿐이라면 나문성의 수위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엽운 정도만 되도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문성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모래거인이 만들어낸 커다란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곧, 어떻게 피해도 이 열 장의 범위에서 도망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공간에 어떤 기묘한 법칙에 의해 고정된 듯 외부와 단절되었다.

“공간진법!”

나문성쯤 되는 자의 식견으론 곧바로 이 공간이 아주 정교한 공간법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에 곧바로 안색이 변한 것이다.

그는 구양문천의 제자인 만큼 어렸을때부터 진법에 대해 공부했는데, 이 공간진법은 그 중 하나였다.

소령만큼 정밀히 연구해 보지는 않았지만 이를 이해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들였다.

공간진법은 사실 상대적으로 말하자면 살진이라고 할 수 없고, 살상력은 나머지 공격진법과 크게 차이가 났다.

공간법칙의 기묘함을 이용해 상대를 가두는 것은, 살진을 포함하고 있기는 해도 주된 것은 아니었다.

나문성의 수위는 머지않아 연기경 일곱째 단계의 정점에 올라 축기경해 달할 수도 있는데, 만약 공간진법 그 자체가 살진이라 해도 그를 쉽게 베어 죽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공간진법은 그를 열 장 범위의 공간 안에 가두었다.

진짜 살수는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모래로 된 커다란 손바닥이었다.

나문성은 손바닥의 위력이 얼마나 방대한지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수위로도 쉽게 막을 수 없었다.

손바닥이 내려치면, 죽거나 중상이었다.

눈에 한 가닥의 망설임이 스쳤고, 곧 결정했다.

푸른 빛 하나가 손에서 나타나 이내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나 사형, 안됩니다.”

흰 옷의 제자 한 명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다른 한 명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장검에 진기를 불어넣고 모래거인을 향해 찔러 넣었다.

푸른 빛이 하늘로 솟아올라 모래 손바닥을 향했다.

“팟!”

맑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푸른빛이 돌연히 부서져 내려오더니 끝없는 청색의 날이 되어 모래의 손바닥을 뒤덮으며 빠르게 퍼져나가 순식간에 모래거인의 온몸을 덮었다

“죽어라!”

나문성은 눈에 살기를 가득 머금고 손을 세차게 휘둘렀다.

푸른빛에 뒤덮인 거인이 별안간 움츠러들더니 푸른빛이 급속도로 줄어들며 기어코 모래거인을 빻아 가루로 만들었다.

모래거인은 다시 모래가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푸른빛은 더없이 어두워지더니 바람에 날려 사라져버렸다.

나문성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고 눈에는 한이 서려있었다.

이 푸른빛이 그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또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었다.

“나 사형......”

두 명의 내문 제자가 다가와 잠시 머뭇거리며 낮게 말했다.

“얘기할 필요 없다. 스승님께서 주신 청옥신부(青玉神符)가 망가진 것은 망가진 것이고, 우리가 2층의 대묘에서 좋은걸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나문성이 손사례를 쳤다.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다.

“그리고, 일전에 대묘에 들어온 외문제자들 가운데에 운좋게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면, 그들의 손에 반드시 쓸만한 보물이 있을 것이다.”

내문제자는 서로를 한 번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엽운과 소령은 모래더미 뒤에 숨어 이 말을 듣고 온 몸이 굳었다.

두 사람 모두 나문성의 말투에 서린 살기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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