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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94화 (94/227)

제 94 화 모래의 거인

엽운은 화운비장의 모험이 이제야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온통 고생뿐이었고 대부분의 제자들은 그 속에서 몰락하고 말았다.

설사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다지 좋을 건 없었다.

하지만 1층의 진법을 파훼하고 난 뒤로는 좋은 것도 많이 얻었다.

기묘한 산에서 번개의 힘을 얻고 뇌운전광검의 제대로 된 힘을 개방하여 절륜한 위력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소령은 영지력을 가지고 있는 듯한 푸른 알을 얻었고 그 속엔 영수가 잠들어 있었다.

또 제단에서는 다시 한 번 번개를 흡수해 그의 신체는 번개의 힘을 띄게 되었고, 생각만으로 온 몸에서 번개를 뿜어댈 수 있었다.

게다가 산봉우리가 무너진 후 들어온 이 모래의 세계에서는 두검음의 도움아래 태양을 격추시켰고, 소령이 말한 훌륭한 품질의 중품영기 열염폭운환을 얻게 되었다.

이 보물은 엽운을 다시 한 번 기묘한 경계에 몰아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금갑의 신병에게 쫓기던 두 남녀의 모습을 보았고 그의 체내의 흑백 빛이 선마지심이라는 패기 넘치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엽운은 나머지 하나의 태양마저 격추시켰고, 이는 얼음의 고리가 되어 뼈에 사무치는 한기를 뿜어대 선마지심과 번개의 힘으로 개조된 육신으로도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선마지심이 얼음과 불의 힘을 흡수해 연화시키지 않았다면, 엽운은 지금쯤 이미 목숨을 잃고 연기가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엽운은 반짝이는 푸른 얼음의 고리를 손에 거두었다.

영력이 천천히 주입됐다.

기쁘게도 얼음의 고리에서 느껴지는 얼음의 원소는 아직 완벽히 흡수되지 않고 일부분만 흡수되었다.

그럼에도 엽운의 영력이 주입되자 차가운 기운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엽운의 영력에 얼음의 힘이 서려있지 않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영력이 주입됨에 따라 순조롭게 영력의 기록이 남았다.

얼음의 고리를 거두자 열염폭운환과 마찬가지로 머릿속에 한 줄의 정보가 들어왔다.

빙백쇄혼환!

이 고리는 만년 얼음 결정의 정수를 제련한 뒤 여러 진귀한 재료들을 더해 만들었다.

얼음을 뿜어대며 상대의 영혼마저 얼려버린다.

열염폭운, 빙백쇄혼!

이 두 영기의 성질과 능력은 완전히 다른 것임에도 완벽히 하나로 연결되었다.

두 손으로 공방을 펼친다니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엽운은 크게 기뻐했다.

화운비장에 들어온 이래 큰 이득을 보았다.

아직 연체경 7단계인 오기경의 경지를 돌파하지 못했지만, 번개의 힘, 화염의 힘과 얼음의 힘을 얻었고, 거기다 선마지심의 도움으로 이것들을 완벽히 융합시키기까지 했다.

그는 지금의 실력으로 어디에서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연기경 이하에서는 누구도 그를 당해낼 자가 없었다.

오기경의 정점에 달한 무인이라 해도 뇌운전광검과 두개의 중품영기를 당해내긴 어려울 것이다.

엽운은 태어나 한 번도 이처럼 강렬한 욕망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하루 빨리 연기경에 도달해야 한다.

수위가 연기경에 이르러야만 구품선기와 중품영기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엽운, 제법 이득을 본 것같네.”

엽운이 눈을 뜨는 것을 본 소령은 기뻐하며 말했다.

“고마워.”

엽운은 더 할 나위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너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런 좋은 일은 없었을 거야. 살아남지도 못했겠지.”

소령의 예쁜 얼굴이 난데없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손가락을 마주대고 투덜거렸다.

“예전엔 말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이젠 예쁜 말로 비위도 맞출 줄 아네?”

엽운은 웃어주고 싶었지만 가슴이 벅차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화운비장의 탐색을 여기서 그만둔다 해도, 대묘에 들어온 제자 중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일 것이다.

중품영기는 본디 지극히 진귀한데, 뛰어난 품질의 중품영기라니.

게다가 엽운은 잘 모르고 있지만 선마지심의 도움으로 번개와 화염, 얼음 세 원소의 힘을 융합시켰으니 훗날 그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사막의 두 태양은 이미 파괴했으니, 공간진법의 균열이 점점 커져 곧 나갈 수 있게 되겠지?”

엽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커다란 태양의 빛이 사라지자, 사막은 음침하고 어두워졌으며 광풍이 불고 모래먼지가 기승을 부렸다.

소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이 공간은 곧 붕괴 될거야. 하지만 진법의 금제는 이미 깨져서 살상력이 없으니 우린 조용히 기다리기만 하면 돼.”

소령은 감개무량했다.

그녀는 엽운에게 이토록 기막힌 우연이 많이 일어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그저 괴롭힘 당하던 잡역 제자에 지나지 않았는데 몇 개월이 지나자 벌써 외문제자가 되었다.

게다가 화운비장을 탐색하는 정예 외문제자에도 차출되었으니 이미 불가사의였다.

하지만 불가사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녀보다 몇 살 많은 이 소년이 화운비장에서 맞닥뜨린 우연은 그에게 크나큰 혜택을 주었고, 수위는 곧 오기경을 돌파하게 될 것이다.

두개의 중품영기를 가진 이 소년은 위풍당당한 기세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여기서 나갈 수만 있다면, 금새 외문제자가 될텐데. 심지어 몇 년 안에 정예당에도 들어가게 되겠지.”

소령은 엽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고 황사가 하늘을 가득 메워 수 장 밖의 세상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엽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몸을 돌려 소령의 앞에 서더니 그녀를 끌어안고 황사를 등으로 받아냈다.

“엽운....”

엽운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소령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지금 말하면 모래가 입에 다 들어가.”

엽운은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곤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의를 줬다.

멍하니 있던 소령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고개를 숙였다.

하늘을 가득 메운 황사 소리 속에서도 엽운의 가슴에서 힘차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이렇게 서로에게 기댄 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서있었다.

폭풍이 마침내 천천히 멈추더니 흩날리던 황사가 힘을 잃고 땅에 흩뿌려져 내려왔다.

어두워진 하늘에 곧 한 줄기 빛이 나타났다.

하늘은 마치 거대한 칼날에 벤 듯 빛이 밀려들어왔다.

투명한 수정벽이 황사의 세계 한 가운데를 갈라 버린 것 같았다.

소령은 고개를 들어 떨어져 내리는 빛을 보며 입가에 보기좋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나갈 수 있는 건가!”

엽운의 눈에는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온 빛보다도 밝은 빛이 번뜩였다.

소령은 별안간 얼굴을 붉히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라구?”

엽운이 호기심에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소령은 고개를 저으며 붉게 물든 얼굴을 조금 숙였다.

“하늘이 완전히 갈라지면 그때 나가. 이 대묘를 떠나는 게 좋을 것 같아.”

엽운은 만족스러웠다.

더 이상 탐색을 이어나가며 다른 이득을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수선계에는 ‘탐욕이 과하면, 수선의 길은 가시밭길이 될 것이다’ 라는 잠언이 있었다.

소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그녀의 안색이 변하더니 이내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대묘 1층의 금제가 깨졌어. 그들이 들어오고 있어.”

어리둥절해 하던 엽운이 곧 기뻐하며 말했다.

“들어올 수 있다는 건, 우리가 나갈 수도 있다는 말이네!”

잠시 후, 하늘에서 맑은 소리가 퍼지더니 이내 하늘이 완전히 터졌다.

수정 벽의 파편이 흩날리며 불빛 아래에서 눈부시게 빛났다.

하늘 바깥에서 어렴풋이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목소리에도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곧 하늘의 바깥에서 몇 개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절검봉의 나 사형이다.”

소령은 시력이 아주 좋아 부서진 하늘 사이에서 나타난 사람의 모습을 한 눈에 알아봤다.

예쁜 얼굴로 기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곧 그를 부르려 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엽운이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 내지 마!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소령은 그의 손을 때어내곤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뭐가 잘못돼? 나 사형과 일행이 들어왔다는 건 1층의 금제가 확실히 깨졌다는 이야기니까 우리도 나갈 수 있다는 건데!”

“모르겠어. 뭔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드는 게 더 위험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 저 사람들이 이쪽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봐. 아주 조심스럽고 영기까지 꺼내들고 있잖아.”

엽운은 소령을 모래더미 옆으로 잡아 끌고는 몸을 낮추며 말했다.

소령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저 사람들은 대묘에 들어와 본 적이 없으니까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고, 그러니 당연히 조심해야겠지.”

엽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령의 말에는 완전히 동의한다.

하지만 왜인지 그의 심장이 마구 뛰었다.

게다가 좀처럼 스스로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던 선마지심 마저 튀어나와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좀만 기다려봐. 만약 위험한 일이 생기더라도 저 사람들은 우리보다 수위가 한참 높으니까 알아서 해결하게 내버려 둬. 어차피 우리는 갇혀있었으니까 급할 것도 없잖아.”

소령을 자신의 옆으로 잡아당기고 자연스럽게 팔로 그녀의 왼쪽 어깨를 감싸 안았다.

소령은 살짝 몸을 떨더니 말을 아꼈다.

빛 속에서 세 사람이 하늘의 균열 바깥쪽으로부터 들어왔다.

그들은 몹시 조심하는 모양새였다.

한 걸음 한 걸음 마다 몇 번 씩 확인하고 천천히 나갔다.

나 사형을 포함한 세 사람이 사막으로 들어오는 짧은 순간, 별안간 그들의 앞에 모래 언덕이 벌떡 일어나더니 몇 장 높이쯤 되는 모래의 거인이 되어 그들의 앞길을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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