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3 화 다시 보물을 얻다
뜨거운 불꽃이 활활 타오르며 둥근 고리를 감싸자 고리는 달궈져 반짝이는 빛을 내며 온통 붉게 변했다.
짙은 푸른색의 얼음이 조용히 허공에 뜬 채 한기를 뿜고 있었는데, 손을 대기도 전에 뼈가 다 얼어버릴 듯 했다.
두개의 고리는 분명 달랐다.
불을 품고 있는 고리는 열염폭운환이고, 나머지 푸른 얼음 고리는 다른 태양에서 나온 것이 분명했다.
분명 똑같이 불을 뿜는 태양이었는데, 어째서 얼음의 고리가 된 것일까?
엽운과 소령은 두개의 보물을 바라보았다.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두개의 고리에서 강대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전부 해방시키면 연기경 이하의 어떤 제자가 와도 순식간에 연기로 만들어 없애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놀라게 만든 것은 열염폭운환과 얼음의 고리가 상극의 힘에 따라 떨어져 있지 않고 오히려 한 가운데에 희미하고 얇은 광선을 통해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 광선의 한쪽 단은 붉은 색이었고 그 반대쪽은 얼음처럼 투명했다.
“이 두개의 보물은 원래 한 쌍일거야.”
소령은 명문가의 자제인 만큼 식견이 넓었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다시 거둘 수 있는지 시험해볼게, 나와의 연결이 약해지고 있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걸음 나아갔다.
손에서 하얀 빛을 번쩍이며 열염폭운환을 잡았다.
예상외로 뜨거운 열이 느껴지긴 커녕 뼈에 사무치는 한기가 손바닥의 혈을 타고 몸 안으로 들어와 하마터면 열염폭운환을 떨어트릴 뻔했다.
얼굴을 굳히며 열염폭운환을 더욱 쥐었다.
그리곤 힘껏 잡아 당겨 다시 가져가려고 했다.
이 짧은 두 호흡 사이 오른손이 얇은 서리에 뒤덮혔다.
시간이 좀만 더 길었다면 팔 전체가 꽁꽁 얼었을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소령의 얼굴엔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녀의 식견으로도 이 열염폭운환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슴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격렬히 요동 쳐, 열염폭운환에서 짙은 푸른색의 화염이 솟아오르더니 원래의 고온이. 열기에서 느껴지는 따끔한 고통이 엽운의 손바닥에 다시 돌아왔다.
“얼음 고리 말인데, 그것도 같이 넣어둬. 두 개의 영기는 분명 한쌍이야.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완성시켜야만 최대의 힘을 발휘할거야.”
소령이 푸른색의 얼음 고리를 바라보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도 지금 만큼은 두개의 영기가 한 쌍 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연화시킬 수만 있다면, 적을 상대할 때 동시에 사용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연기경 제자라 해도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보아하니 소령 집에 몇 개인지도 모를 영기가 그녀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아마 상품영기도 적지 않게 있을 것이다.
엽운은 숨을 들이쉬고 왼손을 잽싸게 뻗어 푸른색의 얼음고리를 거두었다..
뼈에 사무치는 차가운 느낌이 순식간에 손바닥에 전해지더니 몸을 타고 들어왔다.
푸른 얼음고리는 연화되지 않았고, 열염폭운환처럼 그의 통제 하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기는 경맥을 타고 빠르게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엽운은 형언할 수 없는 한기가 몸속을 돌아다녀도 도무지 다스릴 수가 없었다.
한기가 지나는 곳은 마치 경맥의 혈액이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두었다간 얼음의 고리에 의해 꽁꽁 얼지 않더라도 경맥이 다치게 될 것이다.
엽운은 영기를 움직였다.
오른손의 열염폭운환에서 순식간에 뜨거운 고온이 전해지더니 경맥을 타고 들어와 재빨리 움직이며 회전했다.
완전히 다른 두개의 힘이 마침내 부딪혔다.
뜨거운 온도와 차가운 한기!
몸을 살짝 떨었다.
몸의 반은 화염이 되고, 반은 얼음이 됨을 느꼈다.
두 힘은 팽팽히 부딪히며 어느 한 쪽도 물러나거나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좋지?”
눈살을 찌푸리며 두개의 보물을 손에 쥔 채 몸을 조금씩 떨었다.
소령은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엽운이 두 개의 힘을 끌어들여 얼음과 화염이 부딪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빨리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변을 당할지도 모른다.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해. 기를 끌어내고 골짜기에 들어가.”
소령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통 이 말은 그녀가 수행할 때 언니인 소음설이 해주곤 하던 말이다.
순간 어찌 할 바를 몰랐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이 말에는 별 뜻이 없었다.
수행을 할 때는 주의가 분산되면 안되고, 당연히 온 정신을 집중하여 단전에 영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그러나, 이 한마디에 엽운은 무엇을 깨닫기라도 한 듯 밝아졌다.
두 개의 다른 힘을 횡경막의 혈로 이끌었다.
동시에 정신을 집중하고 흑백이 엇갈리는 선마지심을 조종했다.
이 흑백의 빛의 이름이 “선마지심” 이라는 것을 알고 난 뒤로 엽운은 급히 열염폭운환을 찾느라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연구하지 않았다.
이때 소령의 ‘숨을 죽이고 정신을 집중해. 기를 끌어내고 골짜기에 들어가’ 라는 말을 듣고 별안간 마음속이 탁 트였다.
선마지심의 효능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온갖 것들로부터 영기와 힘을 집어삼킬 수 있었다.
선마지심을 불러낼 수 있다면 이 얼음과 불의 힘을 쉽게 집어삼킬 수 있을 것이다.
진작부터 꿈틀꿈틀 요동치며 부름을 기다린 듯 엽운이 그저 생각을 조금 움직이자 선마의 마음이 횡경막의 혈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영원히 배부르지 않을 고대의 황폐한 짐승처럼 회전하여 기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더니 두 개의 힘을 끝도 없이 집어 삼켰다.
체내의 압력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차가운 힘에 자극을 받아 아파오던 경맥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한 줄기 영력이 돌아다니며 경맥에 힘을 공급했다.
이 짧은 찰나에 몸에 들어간 두개의 힘은 깨끗이 흡수되었다.
짙은 푸른색의 고리와 열염폭운환에선 더 이상 조금의 힘도 흡수되지 않았다.
“선마지심이 이 두 보물의 힘을 모조리 빨아들일 줄이야.”
엽운의 머릿속에서 별안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두 영기의 힘을 전부 다 흡수했다면, 대체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는가?
흡수한 영력을 살펴보려던 순간, 선마의 마음에서 별안간 극도로 단순하기 짝이 없고 순수한 영기가 튀어나와 순식간에 안에서 요동쳤다.
엽운은 크게 기뻤다.
선마지심은 일단 발동하면 그 어떤 불순물도 없이 가장 흡수하기 쉬운 영기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기는 수개월의 수행에 필적하는,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큰 효과를 냈다.
엽운은 두개의 보물을 저물대에 집어넣은 뒤 무릎을 꿇고 앉아 이 순수한 영기를 연화시키기 시작했다.
소령은 옆에서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이 녀석 뭐지? 갑자기 영기를 집어넣고 수련을 하기 시작한다?’ 지금이 수련을 할 때인가? 여기가 수련을 할 곳인가?‘
“엽운....”
그러나 그녀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그를 한 번 부르곤 입을 틀어막았다.
엽운에게서 세 종류의 빛이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천둥소리가 몸에서 사방에서 울리는 듯했다.
낮지만 분명히 귀에 들렸다.
보라색의 번개와 푸른색의 차가운 빛, 그리고 뛰어오르는 화염의 빛이었다.
세 빛은 머리 위로 솟아올라 서로 한데 얽혀 있었지만 선명히 분간할 수 있었다.
소령의 아름다운 두 눈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그녀는 곧 엽운이 또 기묘한 경지에 들어선 것을 알았다.
아마 이 세 개의 각기 다른 원소의 힘을 연화 시키고 있을 것이다.
평범한 무인은 한 종류 원소의 힘을 연화 시키는 것 조차 쉽지 않고, 두 종류의 원소를 연화 시키는 것은 보기 드문 천재라 할 수 있었다.
소령은 원소의 힘을 세 개나 연화 시키는 사람 따윈 듣도 보도 못했다.
“엽운, 네 몸에는 정말 많은 비밀이 있구나.”
눈에는 여전히 놀라움이 가득했다.
엽운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영기를 연화하고 흡수하는 일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소령이 옆에서 자신을 지키고 있기에 누군가의 방해를 받지 않을 것임을 확신했고 이내 심신을 편히 내려놓고 서둘러 연화와 흡수를 시작했다.
그러나 영기를 연화하려는 순간 이 순수한 영기가 번개의 힘과 얼음의 힘, 그리고 불의 힘을 띄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세 원소의 힘은 완벽히 맞아 떨어져 서로 융합 되었으나 여전히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세 원소의 힘이 이런 형태를 이루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엽운은 기뻐하지도, 시간을 낭비하려 하지도 않았다.
기초심법은 작은 흡성의 결을 이루어 영기를 흡수하고 연화시켰다.
선마지심이 뱉어낸 영기는 연화하기 매우 쉬웠다.
어떤 힘도 들이지 않고 완벽히 흡수하여 일렁이는 영력으로 만들 수 있었다.
향 하나 피울만한 짧은 시간에 세 원소가 융합 된 영기는 엽운에게 전부 연화되었다.
체내의 영력에 두 개의 힘이 늘어났음을 느꼈다.
번개의 힘을 제외하고도 화염의 힘과 얼음의 기운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에 열염폭운환을 얻었을 때 이미 화염의 힘을 흡수했다.
하지만 흡수만 했을뿐, 진정으로 연화시키지는 못했다.
어떤 원소의 힘도 연화를 시키려면 하루 이틀의 노력으론 부족하기 때문이다.
선마지심이 없었다면 세 원소의 힘이 엽운에게 연화되고 흡수되기까지는 적어도 몇 년,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이때, 세 개의 힘이 완벽히 영력과 융합했다.
내가 너고, 네가 나였다.
더 이상 서로를 구분짓지 않았다.
이제 엽운이 원한다면 이 세 원소가 한데 섞인 힘을 가질 수 있다.
심지어 이 중 한 원소의 힘만 떼어 내 공방을 펼칠 수도 있다.
뇌운전광검은 전기의 힘으로, 열염폭운환은 화염의 힘으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이름을 알 수 없는 푸른 얼음 고리는 자연히 얼음 원소의 힘으로 움직일 것이다.
엽운은 천천히 눈을 뜨며 입가에 웃음을 지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