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9 화 불타는 햇빛
“또 공간진법이야?”
이 광경을 본 엽운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사나운 얼굴로 말했다.
손이 엽운에게 꽉 잡힌 소령은 눈살을 찌푸리고 주위를 살피더니 얼굴을 덮쳐오는 고온에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떨궜다.
대묘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보다는 이 이상한 곳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딱히 위험에 처한 일은 없었다.
석실에 갇혔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러나 지금, 줄곧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위험을 마주했다.
자칫하면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이 될 수도 있었다.
특히 소령은 공간진법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데도 가는 곳마다 공간진법이 걸려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여기가 틀림없이 2층이군.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이곳으로 와버린 이상, 마음을 가다듬고 열심히 한 바탕 뒤져봐야겠어.”
엽운은 수위와 식견이 소령에 비해 떨어졌으나, 속은 그녀보다 성숙해 피할 수 없으면 즐긴다는 이치를 그래도 알고 있었다.
화운비장에는 촉기경의 고수들마저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리게 만드는 보물이 셀 수도 없이 숨겨져 있었다.
떠나지 못하게 된 이상 당연히 보물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곳의 공간진법의 힘은 이미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이야. 아주 혼란스러워.”
소령이 두개의 태양을 바라보며 예쁜 얼굴에 쓴웃음을 지었다.
“아주 혼란스럽다는 게 무슨 뜻이지?’
무의식적으로 물어왔다.
“그러니까, 이곳의 공간진법엔 규칙이 없어서 언제 충돌할지 모른다는 말이야. 난진일 수도 있고 살진일 수도 있어. 어쨌든 너랑 나 정도의 수위로는 막아낼 수 없을 만큼 위험천만해.”
엽운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눈은 사방을 훑으며 천천히 둘러보고 있었다.
바로 왼쪽 앞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황사의 한 가운데에서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곤 갑자기 검처럼 곧게 세웠다.
두검음 녀석은 다른 곳으로 전송된 것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 있었던 것이다.
두검음이 예리한 검처럼 몸을 돌려 두사람을 발견하곤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보아하니, 적어도 이번 도박은 이긴 모양이지만, 이 황사는 뼈를 묻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군. 이곳에서 소득이 있다면 여기에다 네놈을 황토로 만드는 일이겠군.”
엽운의 눈썹이 씰룩거렸다.
역시나 두검음과 말싸움을 하려하지는 않았다.
두검음은 오히려 그를 보지 않고 분에 가득 차 하늘 위 두개의 태양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태양이 두개라 더워 죽을 것 같구나. 하나를 베어버리면 되겠군.”
‘하나를 베어버린다고?’
멀리서 들린 두검음의 목소리는 엽운이 하늘을 보게 만들었다.
하늘에는 두개의 붉은 태양이 뜨거운 불길을 넘실거리며 빛을 흩뿌리며 대지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그 어떤 생물도 이런 고온에는 오랜 시간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다.
수위가 엽운과 소령쯤 되어도 간신이 생존할 뿐, 열흘 이상을 이곳에서 머무른다면 살아 남을 지 장담할 수 없었다.
헌데 해를 하나 베어버린다면, 온 세상이 정상이 될지도 모른다.
하늘을 가득 메운 황사가 점점 물러가고 녹색의 식물이 황사의 아래에서 자라나 강한 생명력을 가진 숲이 될 것이다.
“소령, 이것도 아마 공간 진법일텐데, 그럼 이 두개의 태양이 진안의 소재가 아닐까?”
잠시 마음이 움직인 엽운은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소령은 약간의 열기가 귓속으로 뿜어져 오는 것 밖에는 느낄 수 없었고 예쁜 얼굴은 터무니없이 붉어졌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두개의 태양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두 개의 태양은 이곳의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규칙과는 달라. 아무래도 정상인 것 같아. 하지만 저기에 진안이 있다 한들 어떻게 파괴할건데?”
고개를 돌린 소령의 얼굴에는 의혹이 가득했다.
“공간진법이 맞다면, 저 두개의 태양은 아마 바깥세상처럼 몇천 몇만 리인지도 모를 우주에 걸려있지는 않겠지. 아마 우리와의 거리가 멀지 않은 것 같아.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파괴할 수 있어.”
엽운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네 말이 틀리지는 않다만, 보아하니 공간진법을 이해를 못하는 것 같네. 진법의 규칙과 진안의 소재지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저 두개의 태양은 바깥세상과 다를 것이 없어. 우리로부터 수만리는 떨어져 있어서 영원히 닿을 수 없다고.”
소령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공간진법을 연구해왔고, 공간의 법칙을 이용할 방법이 없을지언정 진법의 원리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엽운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공간 진법에 대한 이해가 없긴 하지만, 소령의 말 한마디에 이 공간의 법칙이 오묘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어휴, 칠 장로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소령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삐쭉 내밀고 말했다.
“칠 장로?”
엽운은 어리둥절했다.
소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칠 장로는 우리 천검종에서 공간진법에 대해 가장 많이 연구하신 분이야. 종주나 강 할아버지도 그 노인네한테는 안됐지.”
“지금 영전을 관리하는 정신 나간 칠 장로 말하는 거 맞아?”
엽운이 호기심에 물었다.
“그렇다니까. 그런데 칠 장로도 예전엔 미치지 않았어. 어떤 자극을 받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그렇게 됐데. 그러더니 스스로 영전을 관리를 자처하셨어.”
소령의 눈에 의구심이 들었다.
이 칠 장로에 대한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온 전설이었다.
엽운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허나 지금은 칠 장로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이.상황을 어찌 타개할 수 있을까?
여기가 2층이 맞다고치고, 이치대로 말하자면 이곳은 황사대묘와 금오양륜이 아닌가.
분명 진귀한 보물이 있다.
1층과 마찬가지로 몹시 위험하지만 얻을 수 있는 보물이 있을 것이다.
눈길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사가 밀려들고 먼 곳에선 모래먼지가 파도처럼 일렁였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나는 하나만 생각하지. 직접 검을 휘둘러 벨 것이다.”
바로 이때 두검음의 목소리가 한쪽에서 들려왔다.
엽운은 별안간 몸을 떨며 고개를 돌려 두검음을 향했다.
두검음이 두개의 태양을 죽어라 쳐다보고 있었는데 금제고 뭐고 베어 죽일듯한 모습이었다.
하나만 생각한다고?
그는 다시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지만 도무지 거리를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일종의 허황된 느낌마저 드는 두개의 태양, 그리고 목표물을 이미 정한 듯한 두검음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왜 그래?”
소령이 먼저 엽운의 변화를 눈치채고 다급하게 물었다.
엽운은 조용히 하늘 위 두개의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의 모든 정신은 그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근처에 있는 대묘의 황사나 옥구슬 같은 소녀 같은건 모두 깨끗이 잊어버리고 두 눈에 두개의 태양만을 남겨둔 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태양이 내뿜는 뜨거운 불길은 눈에 어떠한 영양도 끼치지 않는 듯 꼿꼿이 쳐다보았다.
순간 온 몸이 떠다니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커다란 태양이 두 눈에 점점 더 크게 보였다.
뜨거운 불빛은 변함없이 그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얼마인지 모를 시간이 흐르고 눈에 비친 커다란 태양은 그의 몸 가까이에 와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그저 검을 한번 휘두르면 태양을 베어버리고 완전히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령의 예쁜 얼굴에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
순식간에 사람이 바뀐 것처럼 보였다.
아무리 귓가에 대고 높고 낮은 소리로 읊조리고 소리쳐도 아무 효과가 없고 마치 기묘한 경지에 들어선 것 같았다.
소령이 평범한 소녀였다면 진작에 엽운의 몸을 세차게 흔들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명문 출신이었고 식견이 넓었다.
지금 엽운은 기묘한 경지에 들어서 천지의 법칙을 깨우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만약 이를 섣불리 끊어버린다면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먹통이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소령은 그의 옆을 지키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온 정신을 엽운에 집중시켜 저 너머에 있던 두검음의 존재는 이미 깨끗이 잊어버렸다.
고개를 한 번 돌렸다면 두검음 역시 엽운과 다름없이 기묘한 경지에 들어선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나란히 태양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너무 시간이 지나 불꽃이 두 눈을 다치게 할까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얼굴에는 어떤 기묘함만이 보였고, 마치 무언가를 깨달은 듯 했다.
엽운은 체내의 영력이 끊임없이 나뒹구는 것을 느꼈다.
뜨거운 영기가 몸으로 들어와 천천히 영력과 융합되어 그를 뜨겁게 달구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전에 엽운의 영력은 뇌운전광의 세례를 받았고, 경맥이 확장되고 영력이 번개의 힘을 내포하게 되어 곧바로 번개를 불러와 뇌운전광검을 시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순간 그의 영력에 화염의 힘이 합쳐진 듯 영력이 더욱 위력적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