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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88화 (88/227)

제 88 화 천인의 경지

“두건명, 손문주, 두 분의 원한은 제가 관여할 바가 아니지만 일단 내려놓으시지요. 누구라도 비장의 개방을 방해한다면 이 구양문천의 신검이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겁니다.”

구양문천은 빛의 기둥이 하늘로 돌진하는 것을 보곤 크게 기뻐하더니 즉시 고개를 돌려 두건명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구양문천, 감히 내게 명령을 해?”

두건명은 미친개처럼 휙 돌아섰다.

구양문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몸에서 보라색 빛이 하늘로 솟구쳐 오를 뿐이었다.

보라색 빛은 하늘에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위세를 이루며 거대한 신검의 모습을 어렴풋이 비추었다.

형언할 수 없는 위압감이 순식간에 사방을 채웠다.

근방 수천 길 밖에서도 신검이 칼집에서 뽑아져 나와 사람을 죽여 피를 볼 것만 같은 엄청난 살의를 느낄 수 있었다.

두건명의 동공이 움츠러들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천인, 이것은 천인의 경지다. 구양문천은 과연 인간의 수준을 넘어서 천인의 경지에 도달했다. 게다가 이 모습을 보니, 천인의 경지에서도 정점에 달하였구나.”

손일도와 은파파는 찬 숨을 들이마시며 기다렸다.

천인의 경지란 무엇인가?

바로 축기경의 여섯번째 단계이다.

한 발짝 차이로 체내의 단규(丹窍)속의 단액을 극한까지 응집시켜 반대로 단규를 자양시킨다.

그리고 천천히 금단과 흡사한 단원으로 굳어지게 되는데 이를 잘 다듬으면 가짜 단이 떨어져 버리고 금단의 경지가 되는 것이다.

은파파의 수위는 십여년 전에 벌써 삼재구난을 넘어 이미 촉기경의 5중인 인겁경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년동안 천지의 진리를 깨닫지 못해 천인의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다.

천인, 천인, 인간과 하늘의 차이였다.

인겁경과 천인경, 둘은 한 단계의 차이이지만 실질적인 수위의 차이는 열배가 넘었다.

구양문천의 눈빛이 차갑게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그에게 의젓한 자태는 없고, 윗분의 기세가 절로 솟았다.

천검종 절검봉 주인의 수위가 전부 드러났다.

진나라 제일의 대종파인 천검종은, 종주와 태상장로등의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중 수위가 높은 이들은 사대봉주뿐이다.

서로의 수위는 비슷했는데 그들 역시 차기 종주의 경쟁자였다.

그러나 오년 전 모용무정이라는 자가 나타나더니 스무살의 나이에 축기경에 달하고, 천검종 수천 년 역사에서 제일가는 1인이 되었다.

따라서 수많은 차기 종주의 경쟁자들 가운데에는 사대봉주 다음으로 모용무정이 유력했다.

게다가 근래에 들어 천검종은 줄곧 모용무정을 차기 종주로 키우고 수련 자원은 아무리 써도 없어지지 않을 정도였으니 그는 하루 빨리 금단을 만들어내어 금단의 경지에 오르려 했다.

그러나 결국 모용무정은 어리기에, 지금 그의 수위는 사대봉주에게 비교하자면 부족함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 대열을 이끌고 있는 것은 절검봉의 주인인 구양문천으로, 수위가 이미 축기경 여섯번째 단계인 천인경에 달하여 진나라 전체를 통틀어서 제일가는 고수였다.

구양문천은 위세를 전개시켰다.

순식간에 두건명은 감히 말도 하지 못했다.

축기경의 다섯번째 단계인 인겁경에 이르렀음에도 사람과 하늘의 차이는 매우 커 구양문천의 노여움을 산다거나 싸운다거나 하는 일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손일도, 구양문천이 나섰으니 오늘은 너를 놓아주마. 훗날 반드시 패도문으로 가서 종파 전체를 깨끗이 도살해 버리겠다.”

두건명은 쥐고 있던 금창을 거두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손일도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거꾸로 서더니 분을 이기지 못하고 말했다.

“노친네가 어떻게 우리 종파를 도륙 낼지 두고 보도록 하지.”

두건명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려다 차가운 장검처럼 찔러대는 구양문천의 따가운 눈초리에 입을 닫았다.

“2층의 통로가 이미 열렸으니, 어떻게 들어갈지 여러분들께서 방법을 상의해 보십시오.”

구양문천의 목소리가 공중에서 맴돌며 오래도록 끊이지 않았다.

“옛 약속에 따르자면, 천검종의 제자가 2층의 문을 연 이상 천검종이 먼저 들어가고 우리가 따라가야지요.”

손일도가 멀리서 공수하며 문하의 제자들을 데리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맞습니다. 이 늙은이도 같은 생각이오.”

구양문천은 사람들을 한 번 쳐다보곤 웃으며 말했다.

“이래선 안됩니다. 역시 다같이 방법을 논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짝을 지어 들어가도 어찌됐든 최후의 수익은 알맞게 배분 될 것인데, 저희가 다 같이 들어간다면 설사 누군가가 빼돌릴 생각이어도 감히 손을 쓰지 못하겠지요. 특정 종파만 먼저 들여보낸다면 몇몇 제자들이 욕심을 품고 보물을 빼돌리려 할지도 모릅니다.”

“구양봉주도 참 무슨 말씀을 그리 하십니까. 천검종이야말로 진나라 제일의 세력이고 구양봉주께서는 천인의 경지에 오른 고수이신데, 우리가 어찌 천검종의 정예 제자들을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손일도가 은색의 군도를 등에 매고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은파파도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지만 구양문천은 웃음을 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세 사람은 모두 늙은 여우들이고, 통로가 열렸다고는 하나 누군들 이 통로가 죽음으로 향하는 문이 아닌 이층으로 연결된 통로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만약 무턱대고 손아래의 정예 제자를 들여보냈다가 문제라도 생긴다면 누가 이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

금단대수사의 비장이 그리도 쉬웠다면 이토록 큰 공을 들일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천검종은 집안도 크고 일도 많은데다 제자의 수도 많고 고수도 구름처럼 많음에도 이토록 조심하니 손일도와 은파파는 당연히 더욱 조심스럽게 굴며 감히 제자를 먼저 보내려 하지 않았다.

“질질 끌기나 하고. 당신네들도 호걸이자 종파의 주인이다. 아무도 먼저 들어가려 하지 않으니 우리 두가가 먼저 나서겠다. 허니 보물이 몇 개 모자라다고 해서 내 탓을 하진 말거라.”

두건명은 유유히 다가와 세 사람이 서로 겸손을 떨며 책임을 미루는 모습을 보곤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구양문천과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가에서 어찌 이런 머저리를 보냈을까?

만약 이 통로가 2층으로 향하는 문이 아니라 말살의 땅으로 가는 문이라면, 두가의 정예 제자들을 이곳에서 모조리 씨를 말릴 생각인가?

그러나 앞장을 서겠다하면 당연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래선 안됩니다. 아무래도 다 같이 짝을 지어 들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구양문천이 미끼를 던지곤 일부러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가 보기엔 역시 천검종이 먼저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진나라 제일의 종파 아닙니까.”

손일도가 잠시 망설이다 느릿느릿 말을 꺼냈다.

“손문주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은파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일부러 천검종의 지위를 부각시키면 자연히 두가를 폄하할 수 있었다.

두건명이 크게 노했다.

“당신네들이 먼저 들어가려 하지 않으니, 우리 두가가 선봉에 서겠다. 혹여 너희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막는다면, 훗날 우리 두가가 너희를 찾을 것이다.”

“이건.....”

구양문천과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들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지만 마음속에선 웃음꽃이 피었다.

“그러고 보니 두삼족장께서 이미 계획이 있는 듯하네요. 그렇다면 먼저 수고 좀 해주시지요. 저와 손문주 그리고 은파파는 뒤따라가겠습니다.”

“두삼족장께서는 저희끼리의 약속을 꼭 기억해주십시오. 제자들을 잘 통제하여 보물을 탐하지 못 하게하는 것 말입니다.”

지팡이를 짚고 서있던 은파파가 세차게 기침을 하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손일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냉정하게 “흥” 하는 소리를 한 번 내었다.

영 못마땅한 눈빛이었다.

두건명은 소리를 내어 크게 웃더니 제자 몇 명을 데리고 파도처럼 일렁이는 문을 향해 나아갔다.

큰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이 연기경에 달한 제자들 가운데에는 축기경의 초기에 달한 장로가 둘 있는데, 묵묵히 그 속으로 걸어갔다.

물결이 일렁이더니 수십 명의 제자들이 삼켜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구양문천과 세사람의 입가에 미소가 퍼졌다,

그리곤 각자 제자들을 데리고 통로로 다가가 차례대로 들어갔다.

....

화운비장, 대묘의 한 가운데. 엽운과 소령은 손을 잡고 깍지를 끼고 있었다.

두 사람의 마음엔 긴장이 가득했고 서로의 손바닥에 흥건한 땀이 느껴졌다.

눈앞이 캄캄해지니 꼭 시간이 멈춘 듯 도무지 계산을 할 수가 없었다.

엽운은 마음속으로 수를 외웠다.

도대체 얼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이 어두운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계산하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는 네다섯번 수를 세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순간만큼은 지능이 극히 낮아져 숫자도 제대로 셀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이미 이 느낌을 말로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그저 이 시공의 시간에 통제되어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느낌뿐이었다.

알 수 없는 시간이 흘렀고, 어둠이 걷히고 눈부시게 빛나는 광채가 나타났다.

두 눈에 초점이 돌아오고 엽운의 눈에 먼저 보인 것은 두개의 커다란 해였다.

틀림없다.

두개의 태양이었다.

하늘 높은 곳에 매달려 뜨거운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흡사 공간마저 불태워 왜곡 시킬 것 같았다.

형언할 수 없는 열기가 얼굴을 덮쳐와 불타는 듯 아파왔다.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니 황사가 굽이치고 먼지가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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