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 화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전기뱀이 기승을 부려 경맥 하나하나가 다 파괴되었다.
피 한방울 한방울이 전부 번개의 힘을 머금고 뼈가 꿰뚫려 박살 났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 변화가 없었지만 체내는 이미 말이 아니었다.
이것은 보라색 빛이 만들어낸 결과물이고 빛 속의 힘을 얻으려면 반드시 끝도 없는 고통을 견뎌내야 하며, 무엇보다 몸이 버텨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파이후립! (破而后立)
엽운의 머릿속엔 이 네 글자가 떠올랐다.
부서지고 다시 일어난다니, 멋진 문장이다.
성공한다면 큰 이득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 파이후립(破而后立) 네 글자는 듣기엔 좋아도, 중요한 것은 일단 무너지고 난 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버티지 못하면 파이후립이 아니라 그냥 죽어버리는 것이다.
엽운은 이미 한계에 도달하여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의 보라색 빛이 이토록 강력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설마, 진짜로 죽는 건가?
경맥 하나하나가 다 파괴되는 것을 느끼며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스쳤다.
소령은 제단 중앙의 엽운을 보았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하고 두 눈의 불씨가 사그라 들어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소스라치게 놀라 제단 위로 몸을 날렸다.
제단은 끝없는 번개에 뒤덮혀 있었다.
엽운이 아직 버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엽운! 안될 것 같으면 포기해!”
소령이 소리쳤다.
이를 악물고 손을 뻗어 엽운을 번개에서 끌어내려고 했다.
순간 엽운의 몸에서 거대한 힘이 튕겨 나오는 것을 느꼈다.
저항할 수 없는 천둥번개가 한 데 얽혀 그녀의 가슴을 매섭게 때렸다.
소령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앵두같은 입술이 벌어지더니 피가 뿜어져 나와 허공에 촘촘히 흩뿌려져 바닥에 떨어졌다.
엽운은 전혀 알지 못했다.
단지 그의 몸을 부숴 버릴듯 한 영력이 조금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아주 잠깐 동안이었다.
이어서 더 강력한 번개의 뱀이 속에서 솟구쳤다.
몸이 터져 죽는다면, 육신은 죽고 영혼은 소멸하여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흑백의 빛은 아직도 이 번개의 영력을 흡수하지 않는 건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정신을 한 데 집중해 횡경막의 혈로, 움직이질 않는 흑백의 빛을 불러냈다.
순간 거대한 흡입력이 생기더니 흑백의 빛이 빠르게 회전하며 하나의 소용돌이가 되었다.
솟구치는 번개의 뱀은 순식간에 배수구를 찾은 홍수처럼 흑백의 소용돌이를 향해 돌진했다.
엽운은 순간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격렬하던 고통은 순식간에 경미해져 끝도 없던 번개의 영력이 한데 모여 장사진을 이루어 흑백의 빛이 만들어낸 소용돌이 속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갔다.
흑백의 빛은 끝없는 동굴 같았다.
제 아무리 거대한 영력이라 해도 완벽하게 흡수할 수 있었다.
제단 밖에선 소령이 가슴을 부여잡은 채 선혈로 옷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모든 주의를 엽운에게 집중했다.
제단을 뒤덮은 번개가 천천히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하늘에 가득하던 번개가 수백 줄기의 빛이 되어 빠르게 엽운의 몸으로 파고 드는 것을 봤다.
셀 수 없던 보라색 번개가 전부 엽운의 몸에 흡수되자, 제단 위의 보라색 빛은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져 종적을 감추었다.
엽운은 조용히 제단 위에 서있었다.
안색은 창백했고 핏기 하나 없는 몸은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의 몸에 허약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하늘을 찌르는 듯한 기세가 퍼져 나와 멀리에서 보아도 도저히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헉!”
제단의 다른 쪽에선 두검음이 정신을 차렸다.
“헉” 하는 소리를 두어번 내곤 제단으로 눈길을 돌렸다.
눈엔 온통 두려움 뿐이었다.
제단 위에 조용히 서있는 엽운을 보았다.
마찬가지로 저항할 수 없는 기세를 느꼈다.
창백했던 얼굴은 점점 더 하얗게 질려갔다.
곧 이전의 검과 같던 기세가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기세가 오히려 전보다 강해진 것 같았다.
제단 위에선 엽운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두 눈을 천천히 뜨자 또렷한 두 줄의 번개 빛이 뿜어져 나와 앞의 벽을 때리며 “탁탁” 소리를 냈다.
전기 뱀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스쳐지나갔다.
두검음의 동공이 움츠러 들더니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보아하니 놀라운 힘을 얻은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이제 죽을 차례군, 내 검에 죽어라!”
엽운은 눈살을 조금 찌푸렸다.
정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소령의 거침없는 목소리가 반대쪽에서 울렸다.
곧 그림자가 번쩍이더니 엽운의 곁에 내려앉았다.
엽운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과 부드러운 기색이 동시에 보였다.
“엽운, 괜찮은 거야?”
엽운의 딱딱했던 심장이 조금 부드러워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별 일 아냐.”
이때 앞에 있던 제단의 번개는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푸른 기운이 솟아오르더니 천천히 푸른 빛의 원형 돌문으로 변했다.
그러나 돌문을 자세히 보기도 전에 두검음의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둘 다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내 검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네가 죽으라면 죽을 것 같으냐? 대체 네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야? 넌 그저 두가놈일 뿐이야. 우리 천검종이 진심으로 상대하려거든, 두가놈들 따위는 열 명이 와도 소용없어”
소령이 분통을 터뜨렸다.
“유치하구나. 천검종이 열곱절이나 강하다 한들, 두가 사람들이 열번 멸한다 한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더냐?”
두검음은 가슴에 검을 품고 살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녀석은 이 몸을 모욕했으니, 반드시 죽는다.”
소령은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경우인가?
무엇보다, 두검음이 이 말을 하면서 보인 너무도 당연한 듯한 모습이 도무지 억지스러워 보이지가 않았다.
“내가 좀 전에 금제를 깰 때는 전혀 다치지 않았는데, 네 말대로면 나도 죽여야 되는 거 아니야?”
정신을 차린 소령이 참다못해 말했다.
“뭐라, 다치지도 않았다고?”
두검음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다면 너도 죽어야지.”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듯 한 엽운이 이 말을 듣더니 얼굴에 한기가 서렸다.
손을 뻗어 제단 중앙에 나타난 청색 돌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금 이 곳의 금제는 우리 세 사람에 의해 풀렸다. 그러나 이 청색 돌문이 어디를 향하는지는 알 수 없지. 어쩌면 이 다음에도 우리 세 사람이 힘을 합쳐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몰라. 어찌됐든 우리 세 사람 모두 이 푸른 돌문을 자세히 살펴보고, 또 이 문을 통과한 다음 상황을 지켜보고 얘기하는 게 최선인 것 같은데?”
“모욕을 당했는데 나가고 못나가고 그게 뭐가 중요해!?”
어이없는 논리에 엽운의 눈살이 찌푸러지기 시작했다.
“그 말은, 오늘 너와 한 판 붙지 않는다면 절대로 멈출 생각이 없다는 거지?”
“틀렸다.”
두검음이 엽운을 바라보며 느릿느릿 말했다.
“승부를 가린다는 것이 아니라, 네놈들이 전부 내 손에 죽는다는 얘기다!”
“정말로 그럴 생각이라면 별 수 없지. 나 역시 널 죽이는 수밖에.”
엽운이 냉소를 지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