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84화 (84/227)

제 84 화 번개의 몸

알에 변화가 생긴 것을 알아차린 엽운은 심장이 덜컹했다.

그전에 소령이 깜짝 놀라 말했다.

“엽운, 이 푸른 알 속의 영기가 더 강해지고 생명의 기운이 짙어졌어.”

소령의 손 안에 푸른 알은 언제든 부화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안에서 어떤 녀석이 부화되건 간에 방금 그 푸른 빛은 오히려 알을 단련시킨 것 같았다. 마치 원래 푸른빛이 알에서 뽑아낸 일부 같았다.

그 느낌은 엽운 정도의 수사에겐 너무도 기이한 일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쉬곤 보라색 빛을 향해 눈길을 보냈다.

“너희 둘은 누구냐? 어느 문파의 제자더냐?”

갑자기 한 목소리가 제단 아래에서 들려왔다.

엽운과 소령은 급히 몸을 돌렸고 그제서야 제단 아래에 사람이 더 있다는 걸 알았다.

백색 검삼을 입고 있는 열네댓 쯤 된 소년이 두 사람을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두 눈에는 날카로운 빛이 은은하게 빛났다.

엽운은 그가 사람이 아닌 검 한 자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형. 저희는 천검종의 외문 제자 입니다. 제 이름은 엽운이고 여기 계신 분은 저의 사저 소령이라 합니다.”

엽운은 넋을 놓고 있다 별안간 정신을 차리더니 공수를 올리며 말했다.

“헌데 사형은 어느 문파의 제자이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천검종의 제자더냐? 어쩐지 여기까지 들어왔다 했는데, 보아하니 천검종과 우리 두가(杜家)야 말로 진나라의 양대 수선의 땅인 모양이구나. 다른 놈들은 언급할 가치도 없지.”

흰 옷의 소년은 거만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엽운은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투로 말했다.

“두가의 두 사형이셨군요. 여긴 저희 천검종이 들어오는 통로가 아닙니까? 어찌 여기 계시는지요?”

흰 옷을 입은 두가의 소년이 차가운 눈빛으로 힐끔 쳐다보곤 말했다.

“나 두검음이 어딘가에 가고 싶다면 그곳에 가는 것이지, 그게 언제부터 너희들 천검종 제자 따위가 관여할 바가 되었느냐?”

엽운의 눈빛이 조금 무거워졌다.

이 두가의 제자는 분명 선한 부류가 아니었다.

“좋은 말로 묻는데 그리도 악담을 하시니, 두가 사람들은 교양이라고는 없나봐?”

소령이 별안간 화를 내더니 두검음을 바라보며 노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제법 괜찮게 생겼구나. 훗날 분명 아름다워질 터. 헌데 아깝구나. 이 몸에게 대드는 걸 보아 훗날이 없을테니 말이다.”

두검음은 소령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두 눈의 살기가 실체가 될 지경이었다.

“마침 너희에게 새로 얻은 영기를 시험해보려던 참이었다!”

엽운은 무표정하게 두검음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곳에서 어떻게 나가는지 모르는 거지?”

말을 들은 두검음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뭐, 너희는 아느냐?”

“진안 금제를 풀고 싶으면, 우리랑 손을 잡아야 할거야.”

엽운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뒤를 가리키며 느릿느릿 말했다.

“저기에 원래 세 줄기 빛이 있었는데, 하나는 우리가 해결했어. 진법을 풀기 위해선 전에 우리가 찾아낸 영기가 필요해.”

엽운은 두검음의 손에 쥐어진 백색의 장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못 믿겠으면 직접 자세히 느껴보던지, 한 번 시험해봐.”

두검음은 몸을 날려 제단 위에 섰다.

차가운 눈빛으로 두 줄기 빛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손을 튕기더니 흰색 빛에 가져다 댔다.

찰나의 순간에 그의 몸이 통째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 눈에선 어마어마한 공포가 뿜어져 나왔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리고 영혼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포가 몸을 지배했다.

순간, 한 자루 검 같던 그의 기세가 무너져 부러진 검이 된 듯, 조금도 매섭지 않았다.

하얀 빛이 그를 뒤덮었고, 천지도 하얀 빛에 덮혔다.

엽운과 소령은 멀리 물러났다.

하늘을 가득 메운 하얀 빛 속에서 그가 들고 있던 흰색의 장검이 빛 속에서 변하는 모습만이 보였다.

무궁무진한 백색 빛이 미친 듯이 장검에 주입되고 있었다.

이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이 금제를 깨려면 저 세 줄기 빛이 각각 선택한 사람과 보물에 부합해야 하는데, 마지막으로 남은 저 보라색 빛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쏜살같이 시간이 흘러 두검음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온몸의 영력이 전부 빨려 없어진 듯 했다.

그에게선 어떠한 기세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검과 같이 날카롭던 기운과 오만함 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오직 허약한 모습만 남았다.

순간 하늘에 드리워진 하얀 빛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옥처럼 새하얀 장검이 두검음의 옆에 떨어져 이름을 알 수 없는 옥석으로 포장된 제단의 바닥에 그대로 꽂혔다.

그가 별안간 바닥에 고꾸라졌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의식이 없는 듯 했다.

엽운과 소령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좀 전의 일은 그들의 예상을 한참 벗어난 일이었다.

좀 전에 소령과 푸른 빛이 교류했을 땐, 마찬가지로 푸른 빛이 하늘을 가득 메웠지만 그녀가 혼수상태가 되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젠 어떻게 해야할까?

엽운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진 두검음을 보았다.

그러곤 범상치 않은 자태를 한 흰 색의 장검을 보았다.

마음이 조금 흔들렸지만 이내 장검을 가져가리란 생각을 거두었다.

남의 위기를 이용하는 것이 껄끄러워서가 아니라 이 대묘는 곳곳에서 온갖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고 영기들은 의도적으로 그들에게 배분 된 것인 듯해 이 백색 장검은 그가 수련한 공법과 체내의 영기와도 맞지 않는 듯 했고 무엇보다 저 장검을 취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리 와. 거기서 멀리 떨어져. 마지막 보라색 빛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돼.”

조용히 소령을 향해 말했다.

소령의 눈에 반짝이며 빛이 스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보라색 빛은 조용히 허공에 떠있었다.

나머지 두 덩이 빛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쉬고 체내의 영기를 회전시켰다.

경맥 하나하나에 희미한 번개가 요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주 미미하지만 아주 사실적인 기운이었다.

보라색 번갯불은 몸이 번개의 속성을 띄게 했다.

어쩌면 앞으로의 수행은 이 부분에 집중해서 해야 할지도 모른다.

순간 엽운은 일종의 쾌감을 느꼈다.

며칠 전 뇌운전광검이라는 신기를 골랐는데, 그때는 그저 이 신기의 위력이 대단하다 생각했고 또 이것이 앞으로 그가 수련하는 데에 큰 도움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을 뿐 다른 것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때까지 화운비장의 1층에서 보랏빛의 번개를 흡수해 체질이 변하게 될 줄 생각지도 못했다.

앞으로 뇌운전광검의 위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 믿었다.

사람의 일이란 참으로 기묘했다.

보라색 빛을 바라보며 손을 들어 빛을 파고들었다.

찰나의 순간에 눈에 거슬리는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와 그를 뒤덮는 것을 느꼈다.

이어서 익숙한 번개의 영력이 팔의 모공 하나하나를 뚫고 경맥과 혈관을 따라 몸속으로 돌진해 영혼 깊숙한 곳에 닿았다.

이전에 보라색 번개를 얻었을 때 영혼 깊은 곳에서 느꼈던 고통에 비하면 지금 느껴지는, 영혼을 부수는 듯한 고통은 그것의 열배, 아니 백배는 되었다.

세상에 이리도 강렬한 아픔이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의 비명 소리가 소령의 귀에는 천둥소리로 들리는 줄 몰랐다.

폭발음은 고막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소령이 일찍이 연체경의 정점에 달하지 못했더라면, 그 순간 정신을 차리고 귀를 틀어막지 않았더라면 엽운의 비명소리는 고막을 터뜨리기에 충분했다.

마치 번개의 세계 같았다.

공간 전체에 번개가 번쩍였고 전기뱀이 마구 춤을 췄다.

엽운은 지금 서있는 이 번개의 세계가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 위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강렬한 충격에 그의 몸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천둥이 아니라 전기뱀이었다.

한 줄기 한줄기 전기 뱀이 공중해서 불규칙적으로 날아다녔다.

열댓 개에서 수십 개에 달하는 전기뱀이 몸에 부딪혀왔다.

별안간 사라지더니 몸속을 파고들었다.

몸속에서 전기뱀이 기승을 부리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가다간 경맥이 송두리째 박살날 것이다.

강대한 영력은 그의 뼈를 부수고 피를 짜내기에 충분했다.

“어찌 이리도 강력한 것이지?”

엽운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대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방금 전 두검음의 상황과 똑같았다.

하얀 빛에 담긴 힘은 두검음이 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끗 차이로 두검음은 하얀 빛 속 방대한 영력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두검음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지만 결국엔 버텨냈다.

엽운은 이 보라색 빛에 담긴 영력이 하얀색 빛의 힘을 넘어선다는 것을 알았다.

파괴력은 믿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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