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2 화 사라진 산
대묘에 령이 있다고?
몸에 별안간 식은땀이 흘렀다.
대묘에 진짜 금단수사의 후인이 있거나 그가 아직 죽지 않았다면, 이토록 많은 진법과 금제를 통해 도대체 무얼 하려 하는 것인가?
금단 수사에게 연체경의 수준은 개미나 다름없었다.
“하하, 내 것이다..”
곡일평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손에 연녹색의 칼이 쥐어져 있는데 희미한 녹색의 안개가 검신에 맴돌았다.
사람들이 일제히 돌아보자, 곡일평은 손에 쥔 녹색 칼을 휘두르며 미친 듯이 기뻐했다.
“곡사형, 그건 무슨 칼이죠? 그것도 하품 영기 인가요?”
여명홍이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곡일평은 그를 보고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품영기? 맞다. 이것은 분명 하품영기다. 하지만 하품영기 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의 보물인 칠절마도다.”
‘칠절마도?’
여명홍, 엽운과 나머지 사람들은 넋을 놓았다.
저 칼이 과연 하품 영기중 최고 등급의 보물이란 말인가?
의혹을 갖던 찰나, 별안간 차갑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단진풍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 칼이 오백년 전 칠절대마의 그 칠절마도라고?”
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다.
평소에 곡일평과 말 섞기를 꺼려하니 그의 마음이 얼마나 떨려오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칠절마도의 내력을 아는 것을 보아하니 네 놈도 보는 눈이 나쁘지 않구나.”
곡일평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 순간만큼 어떤 꿍꿍이도 없이 그저 기쁨이 얼굴에 만연했다.
“칠절대마는 또 뭡니까?”
여명홍이 궁금한 듯 물었다.
“오백 년전, 연기경의 정점에 달한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 정도 경지라면 물론 제법 나쁘지 않은 실력이지만 문파의 진수를 전수받은 제자들의 눈엔 별 것도 아니었지. 그러나 그가 어디선가 칼을 한 자루 발견했고, 그 칼로부터 믿을 수 없는 공법을 얻게 되었지. 이 칼은 공법을 시전함과 동시에 기쁨, 분노, 슬픔, 두려움, 사랑, 악, 한 을 내뿜는데, 이 칠정을 다스리는 칼날은 한 번 걸리면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되지. 고수들끼리 붙을 때는 늘 종이 한 장 차이로 승패가 갈리곤 하는데, 마음을 건드리면 감정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고, 그럼 생사를 어찌 장담하겠어?”
사람들은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세상에 이런 공법과 칼이 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물론, 이 세상에 모든 공법과 영기에는 옳고 그름의 구분이 없으니, 그것을 가지고 바른 일을 하면 그것이 바른 길이고, 반대로 나쁜 일을 하면 그것이 나쁜 길이겠지. 이 젊은이는 그 칼과 공법을 얻고 난 후, 정사파 양 쪽의 제자들을 셀 수 없이 죽이고 보물을 빼앗는 악행을 일삼으며 살생계를 벌여왔다. 게다가 이 검은 상대의 칠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촉기경의 초기에 달한 고수들마저 그를 만나면 이길 방도가 없었고 또 그는 빼앗은 자원으로 촉기경에 도달하는데 성공했으니 막을 자가 아무도 없었어, 악마가 나타났다며 진나라가 술렁거렸다. 그리하여 그는 칠절대마 라고 불리게 되었고 따라서 이 칼은 칠절마도가 되었지.”
단진풍이 숨을 깊이 들이 마시며 얘기했다.
곡일평의 손에 쥔 칼에서 초록빛의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만약 저것이 정말로 칠절마도라면, 곡일평의 실력은 크게 성장하여 이 자리에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단진풍, 네가 말한 칠절대마가 사실이라면, 촉기경에 달한 자에게 어찌 칠절마도가 고작 하품명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
소령의 의문 가득한 목소리가 은방울처럼 울려퍼졌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단진풍의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이 바로 이것이었다.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이 칠절마도는 하품 영기가 맞다. 특별한 조건을 걸어두고 만든 것인지, 손 가는대로 만들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들어간 재료가 극히 평범한 것이어 인지 나로써는 잘 모르겠다만, 칠절마도는 하품영기임이 틀림없다.”
단진풍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영기들은 본체가 원래 약한 편이라 품계가 낮게 책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적을 상대할 시에 강한 충격을 피할 뿐 위력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같은 등급의 영기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만약 이 마도가 그런 물건이라면, 같은 유형의 영기들 중에서는 아마 최상품일 것이다.
곡일표는 손에 쥔 칼을 휘둘렀다.
녹색 빛의 그림자 아래 그의 얼굴은 흉악하기 짝이 없었고, 통제할 수 없는 광기와 기쁨이 그에게서 새어나왔다.
“엽운, 저 놈이 영기에 익숙해지기 전에 우리가 먼저 놈을 죽이자.”
그 모습을 본 단진풍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장난기 하나 없는 목소리로 엽운에게 말했다.
“네 이놈들!”
곡일평의 안색이 변하더니 무의식중에 몸을 뒤로 뺐다.
이 때, 산봉우리가 별안간 “탁탁” 소리를 내더니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위 쪽 봉우리 절반이 폭발하여 무수히 많은 반투명의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하늘 가득 흩날리는 재가 천지를 뒤덮고 모든 것을 혼돈 속으로 몰아넣었다.
엽운은 무의식중에 소령의 손을 쥐고 바싹 붙여 끌어안았다.
세상은 온통 어두웠고 먼지가 자욱한 와중에 육식마저 아무 효과가 없었다.
숨을 죽이고 있던 엽운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유일하게 느껴지는 것은 품속의 소녀의 떨림뿐이었다.
마침내 먼지가 흩어지고 다시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자신과 소령의 몸에 두툼한 먼지가 쌓여있고, 앞에는 높은 제대가 하나 나타났다.
제대 위엔 푸른색과 흰색 그리고 보라색의 세가지 빛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건.....”
마침내 정신을 차린 소령은 약간의 비명과 함께 먼지를 들이 마시곤 기침을 했다.
엽운은 소령이 아무리 비범한 신분이라곤 해도 좀 전과 같은 이변이 생겼을 땐 평범한 소녀들과 다를 바 없음을 느꼈다.
소령은 엽운의 목소리를 듣곤 안색이 조금 밝아졌다.
엽운의 표정은 되려 어두워졌다.
사방을 둘러보니 나머지 사람들의 모습은 온데 간데없이 사라져 보이지를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소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엽운은 고개를 젓고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
“대묘의 진법이 워낙 기괴하니까,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보내졌을 수도 있어. 아니면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이 아까 그 푸른 산이 아닐 수도 있고.”
소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눈앞의 제단을 살펴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껏 진법 금제에 대해 연구해 왔지만 눈앞의 이 제단은 보면 볼수록 알 수가 없었다.
한참을 살펴본 후 마침내 줄곧 붙잡고 있던 엽운의 팔을 놓곤 제단의 앞으로 걸어가려 했다.
“왜, 뭐라도 알아냈어?”
엽운은 곧 바로 소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갔다.
“잘 모르겠어. 가까이 가서 봐야겠는데.”
소령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먼저 볼게.”
눈을 반짝이며 소령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 계단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엽운!”
소령은 발을 동동 굴렀다.
화를 내고 싶었는데 화를 낼 수조차 없었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여 앞장 선 것을 알고 있었다.
엽운은 그녀의 말엔 대답도 하지 않고 수십 개의 계단을 올라갔다.
제단 위에는 푸른색과 백색 그리고 보라색의 세 가지 빛이 천천히 회전하며 떠있었다.
한 줄기 빛은 사람 정도의 크기에 실제와 환각 사이의 느낌이었는데, 아리송한 빛을 내뿜었다.
엽운은 꼭대기에 도달해 세 줄기 빛을 마주했다.
곧이어 소령이 옆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