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7 화 기를 얻고 피를 토하다
“그럼 우린 다 죽는 거 아니야?”
여명홍의 몸이 참을 수 없이 떨려왔다.
“우리가 금단 대수사의 공간진법에 빠진 거라면 무슨 수를 써도 빠져나올 수 없어.”
“금단 대수사의 공간진법을 파훼하기란 불가능하지. 하지만 어떤 진법이라도 분명히 일정한 규칙이 존재해. 이 공간진법의 규칙을 찾을 수 있는가를 실험해 볼 수 있겠지. 그리고 여기서 나갈거야.”
소령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퍼졌다.
“규칙?”
엽운의 눈썹이 씰룩였다.
그것은 말로 하긴 쉬우나 행동으로 옮기긴 어려운 일이었다.
소령은 다시 득의양양해 엽운을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물론 아무렇게나 해서 진법의 규칙을 찾아낼 수는 없겠지.”
엽운은 그녀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알아차리곤, 마음이 움직였다.
“소령, 너 공간진법을 연구한 적이 있는 거야?”
소령은 엽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엽운 너 또 반말하고 있잖아.”
엽운은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령 사저, 그럼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그 정도면 그럭저럭 됐네. 생각해 볼테니 기다려.”
소령은 싱글벙글 웃으며 턱을 괴고 도저히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지는 않은 모양새였으나 그녀가 이 곳을 벗어나게 해줄 유일한 희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단진풍마저 미간을 찌푸리며 꾹 참았다.
엽운은 조용히 기다렸다.
그는 오히려 조급해하지 않았다.
“아. 있는 것 같네.”
소령은 갑자기 턱을 움켜쥐며 엽운을 향해 말했다.
“어떤 방법이지?”
곡일평이 제일 먼저 다가와 다급히 물었다.
소령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진법의 규칙을 발견해내려면, 가장 먼저 법진을 발동시켜야겠지. 차라리 네가 여기저기 공격해서 법진을 발동시킬 방법을 생각해봐. 너 정도 수준이면 분명 법진을 파괴하진 못하겠지만, 일단 발동시키기만 한다면 법진의 파동을 이용해 내가 규칙을 찾아내볼게.”
“뭐라고? 지금 무슨 장난을 치는거야!”
곡일평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별안간 성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렇게 차원이 다른 법진을 그가 어찌 함부로 공격하겠는가, 실수로 법진의 위력을 꺾어버리면 그는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
소령이 흥 하고 말했다.
“내가 장난치는 것 같아?”
“만약 마구 공격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위험하지 않겠어?”
곡일평이 입을 벌렸지만 아직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 새 단진풍이 싸늘하게 끼어들었다.
“그건 모르지. 그래도 확률이 아주 낮아. 그의 힘은 법진에 비하면 너무 미비해서 이 공간진법의 본체가 이미 붕괴직전까지 간게 아니라면 약간의 파동정도만 끌어낼 수 있을거야.”
소령이 입가를 삐쭉이며 단진풍을 쳐다보곤 말했다.
“너 무서운 거야? 어쨌든 난 안 무서운데.”
“한 번 걸어볼 만하겠군.”
단진풍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곡일평, 어서 가라!”
곡일평의 표정이 별안간 험악해졌다.
“단진풍, 무슨 소리야?”
“설명이 부족했나?”
단진풍의 눈에서 차가운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장님이 아니고서야 나와 엽운의 관계가 너보다 훨씬 좋단 걸 알텐데, 당장 소령은 엽운과 한패이니 네가 이제와서 거절한다 해도 도망칠 곳도 없어.”
잠시 멈추더니 단진풍이 음침하게 한 마디 덧붙였다.
“이 정도는 연심전의 시련에 비할 바가 못 되고, 너를 죽이는건 우리한테 너무도 쉬운 일이지. 네 실력으로 우리를 해하려 해도 그럴 수 없을 것이고.”
곡일평은 그 말을 듣고 몹시 화가 났다.
하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는 엽운을 보고 그저 이를 악물고 있을 뿐 감히 대꾸 하지 못했다.
“사실 너 정도 실력으론 약간의 파동을 이끌어 내는 게 최선이야. 그다지 위험하지 않을거야.”
소령은 눈을 깜빡이며 진지한 말투로 되려 그를 격려했다.
“오늘 이 일은 절대 잊지 않으마!”
곡일평의 안색이 수차례 변했다.
이를 악물고 차가운 목소리로 한 마디 던졌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곧 숨을 깊이 들이마시곤 자신의 옆에 있던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가격했다.
그는 진법이 뒤집히더라도 차라리 그냥 이 자들을 모두 끌어들였으면 좋겠다는 심산이었다.
커다란 나무가 심하게 떨리더니 나뭇잎들이 콸콸 소리를 내며 비오 듯 떨어졌다.
“엽운, 우리는 좀 떨어져있자.”
곡일평이 더욱 피를 토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건 소령이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 채고는, 손바닥으로 나무를 치는 순간 엽운을 끌고 저 뒤로 빠져나가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로 부터 멀리 좀 떨어져.”
단진풍도 몸을 움직여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랑 직접 한 판 붙고 싶은게 아니라면 말이야.”
여명홍과 나머지 사람들도 서로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역시 물러났다.
곡일평은 이들을 모두 토막내 버릴 수 없는 것이 한이었으나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슴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한 줄기의 영력을 주위를 향해 발산했다.
“펑 펑 펑!”
공격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초목과 자갈이 사방으로 튀었다.
순간 마치 광산이라도 된 듯 돌맹이와 자욱한 먼지만이 보였다.
“쾅!”
별안간 큰 소리가 울렸고 아무도 반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곡일평이 짧게 신음하며 먼지를 가르고 날아가 바닥에 나자빠지더니 입에서 새빨간 피를 토하는 모습만이 보였다.
“발동됐어!”
소령이 놀라며 기쁜 표정으로 소리쳤다.
엽운은 그녀를 한 번 바라보곤 별안간 눈썹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소령의 모습을 보아하니 사실은 이 진법을 발동시키는 방법에 대해 전혀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공간진법의 균형을 잡아주는 힘이 흔들리기 시작했어. 다 함께 여기 서서 최대한 떨어지지마. 지금부턴 너도 손대면 안돼.”
순간 소령이 그의 팔을 붙잡더니 엽운의 몸에 더 가까이 기대어 왔다.
엽운은 좋은 향기가 콧속을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마음속에 있던 약간의 노여움이 곧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소령의 목소리를 들은 곡일평은 견디지 못하고 피를 토했다.
방금 전에 이미 내장이 움직일 정도의 충격을 받았으니 부상이 가볍지 않았다.
그의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면 더 이상 손을 뻗지 않을 것이다.
단진풍과 나머지 사람들은 가지런히 서로의 등을 기대며 최대한 빙 둘러섰다.
공간 진법이 발동됐고 무슨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약 소령이 장담한대로 공간의 단면에서 규칙적으로 공격해 온다면, 그것의 강함은 여기 있는 사람들의 열 곱절은 될 것이니 그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까 두려울 따름이었다.
먼지가 천천히 걷히자 공간이 다시 맑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간속에 빛이 한줄기 생긴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마치 왔다갔다 종적을 감추는 뱀장어처럼 높아졌다 낮아졌다 를 반복했다.
소령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한 줄기 차가운 빛을 내던졌다.
“쨍그랑!”
낭랑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청색 장검 한 자루가 두 동강이 나 공중에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모두들 조심해. 전기뱀같은 빛은 영기를 잘라버릴 수 있으니까.”
소령이 눈살을 찌푸리며 주의를 주었다.
한 무더기 사람들이 하마터면 땅바닥에 쳐박힐 뻔했는데, 심지어 단진풍마저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 장검이 하급 영기인가?
소령이 전기뱀의 위력의 시험해보고자 내던져 두 동강 내버렸단 말이야?
곡일평의 안색이 더 안좋아졌다.
“어서 나를 따라와.”
소령은 아무도 보지 않고 그저 잔뜩 굳은 안색으로 엽운의 팔을 붙잡은 채 쏜살같이 앞으로 향했다.
희망을 직감한 엽운은 소령의 팔을 부여잡고 앞으로 내달렸다.
줄곧 가다보니, 사람들이 주위를 어마어마한 영력이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음을 느끼곤 머리털이 곤두섰지만, 마치 거대한 칼날같은 그 영력의 파동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좀처럼 그들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엽운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소령을 보는 눈빛이 완전히 달라졌다.
소령이 놀라운 배경을 갖고 있음은 분명했다.
아까 전에 멋대로 응기단 하나를 줘버린 일도 그렇고, 지금도 공간 진법에 대한 이해가 여느 집안의 자제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공간진법은 금단대수사가 쓴 책에서나 볼 수 있고, 거기다 금단대수사가 쓴 책은 무영봉 장경누각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빨라!”
여명홍이 놀랍고도 기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들은 쉬지 않고 빠르게 걸어 차 한잔 채 못 내릴 시간 정도를 움직였는데 좀 전에 그렇게나 멀던 푸른 산봉우리가 이미 눈앞에 가까이 있었다.
“늦었어.”
엽운의 팔을 붙잡고 있던 소령이 갑자기 멈춰서서는 얼굴 한 가득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엽운은 눈을 번쩍이며 물었다.
“어째서?”
“공간진법의 파동이 이미 지나가서 원래대로 돌아왔어. 이제 부터 절대 움직이면 안돼. 그랬다간 더 먼곳에 떨어질 수도 있어.”
소령이 그를 바라보곤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곡일평이 별안간 울긋불긋 얼굴을 붉혔다.
그가 아는 가장 악랄한 단어들로 소령을 저주했다.
이곳을 나가 훗날 소령을 상대할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릴 것이라 다짐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부상을 입은 상태라 단진풍 한 명 상대하기도 벅찼다.
이를 악물고 소령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머리를 싸매고 주위를 향해 미친듯이 영력을 쏟아냈다.
쾅 쾅 쾅!
순간 사방에서 폭발음이 들려오더니 먼지와 연기가 거세게 일었다.
“너 뭐하는 거야!?”
소령의 놀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내가 무얼 하느냐고?”
곡일평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소령이 백치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만 보였다.
그는 잠시 멍해졌다.
“파동이 이미 지나갔으니까 다시 공격해서 파동을 끌어내야 하는 거 아냐?”
“내가 그러라고 했어?”
소령은 어이없는 모습을 하곤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공간진법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보통 한 번 파동을 이끌어낸 후에는 진안의 힘이 진동하기 시작해. 그러니까 방호력이 몇 곱절은 강해졌다는 말이지, 파동을 일으키려거든 지금 네 정도 수준으론 택도 없어. 이미 부상까지 입었는데, 괜히 힘 낭비하지 마.”
“뭐라고!?”
단진풍은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또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