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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74화 (74/227)

제 74 화 남빙초

엽운의 눈썹이 살짝 씰룩거렸다.

단진풍이 일부러 시비를 거는 듯 느껴졌으나, 이는 본래 성격이 이러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의도가 있는 듯 했다.

“엉? 넌 내가 아는 녀석인데, 엽운이잖아.”

그 중 금씨라는 황포 제자가 엽운을 알아봤다

“김 사형, 어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엽운이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금 사형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통로로 들어가 보니 큰 대전 한 가운데이더군. 홍수가 났을 뿐 아니라 알 수 없는 독극물까지 들이닥쳐 나머지는 거의 다 죽었고 우리 둘만 금제를 풀어내 여기까지 왔네.”

“연 사형과 나머지 분들 모두...”

여명홍이 겁에 질려 벌벌 떨며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형과 나머지 분들까지 도합 몇명 쯤 있었습니까?”

금 사형이 숨을 깊이 들이마시곤 이를 악 물고 말했다.

“확실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육칠십명은 됐네.”

“뭐라고요!?”

여명홍은 별안간 소리를 질렀고, 엽운의 안색 또 어두워졌다.

만약 금 사형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에 천촉봉에서 뽑은 백여명의 제자가 몇시진 만에 전부 목숨을 잃었고 여기 모인 몇 명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이제 소령까지 포함해도 고작 아홉명 밖에 남지 않았다!

단진풍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00명이 넘던 대열에 겨우 여덟 명 뿐이 남지 않았다.

화운비장의 1층이 이리도 위험한데 다음에 죽게 될 사람이 자신일지 누가 알겠는가.

이를 바라보는 소령의 두 눈엔 놀라움이 가득했다.

금방 들은 이야기가 도무지 믿기질 않아 엽운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엽운, 이게 다 무슨 말이야? 이번에 뽑은 천촉봉의 제자는 백명 아니었어? 설마 다 죽고 너희 여덟 사람만 남았단 거야?”

‘다 봤잖아요? 우리 같은 외문제자들의 결말이 이래요. 종파 어르신들의 결정이지.’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는 엽운의 마음속에서 이런 소리가 울렸다.

아무 상관없는데도 이 순간만큼은 마음속에 분노가 가득 차 하마터면 소령에게 화풀이를 할 뻔 했다.

소령이 분명 천검종 어느 거물의 딸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왜 이러는거야?”

엽운을 보고 있던 소령은 한 동안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도 미천한 것들인가 보지!”

금 사형이 “허허” 하며 큰소리를 내 웃었는데 그 웃음소리에 가득 찬 것은 다름 아닌 비참함이었다.

비록 평소엔 옥신각신 하며 고작 영석 한 조각 때문에 서로 재기만 하는 모습이어도 어쨌든 동문의 사형제들인 제자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가는 건 못내 씁쓸하고 절망적인 일이었다.

“금 사형, 일단 우리가 함께 똘똘 뭉쳐서 이 곳 1층의 진안을 찾아 파훼하는 것이 급선무 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모두 살아서 이곳을 나갈지도 모릅니다.”

여명홍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간신히 진정하며 말했다.

“그래? 여기 계신 이 사매는 천촉봉에서 뵌 적이 없는데, 어찌 이곳에 들어왔습니까?”

금 사형은 별안간 소령을 향해 한 발짝 다가섰다.

손에는 차가운 빛을 뿜어내는 시퍼런 비수를 꺼내들고 있었다.

“뭐하는 녀석이냐!”

소령이 잠시 어리둥절해 했다.

그녀는 자신의 밝혀지지 않은 신분이 이 황포 제자들에게 어떤 위협을 느끼게 하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금 사형.”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엽운이 그녀의 앞으로 가더니, 금 사형을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여자는 아무런 문제없습니다. 천촉봉에서 저를 한 번 구해준 일이 있거든요. 제가 장담하지요.”

“그래? 그렇다면 저 여자는 네가 책임지거라.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의 비정함을 탓하지 말고.”

금 사형은 엽운을 껄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말투가 조금은 온화해졌다.

“네가 장담까지 해줄 필요가 있겠니?”

소령이 성난 목소리로 대답해왔다.

엽운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곤 아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하나라도 더 하는 게 낫죠. 이런 상황에선 일단 살아남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없지 않겠어요?”

엽운의 말을 듣고는 소령이 시큰둥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이 근방은 우리가 이미 수색했다. 딱히 함정 같은 건 없었어. 보아하니 저 쪽으로 가봐야 할 것 같군.”

금 사형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푸른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햇빛이 몸 위로 따사롭게 내리쬐어 아주 상쾌한 기분이었다.

저 푸르른 산에서 강한 영기가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이 기운은 가히 화액에 가깝구나. 우리 천촉봉 수행지 가운데 가장 강한 기운을 뿜는 곳이라 해도 이 정도는 아니지.”

금 사형이 느릿느릿 다가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축축한 천지의 영기마저 은은하게 느껴졌다.

떠나지 않고 여기 남아 수련을 해도 썩 나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엽운은 영력을 깊이 한 가득 들이마셨다.

촉촉한 기운이 몸으로 들어와 상쾌한 느낌을 주었다.

다만 수준이 6단계인 통규경에 그쳐 온 몸의 혈이 열려있어도 천지의 영기를 직접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연화시키지는 못하였다.

“여기 이 천지의 영기는 사실 흡수시켜 연화시킬 수 없는 것이거든. 기경을 연마중인 제자가 들어와서 자칫 잘못했다가는 자신의 혈에 흡수시킨 기운을 연화시키지 못해 몸이 터져 죽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들어오질 못 하는거야.”

소령이 냉소하며 말했다.

“연화를 시키지 못한다니? 몸이 터져 죽는다니? 이건 분명 천지의 영기인데,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거지??”

엽운과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설마 모르는거야? 천지엔 다양한 영기가 있어. 모든 영기가 전부 연화가 가능한건 아니지. 이곳의 영기는 연화가 불가능한 종류의 것이고.”

소령은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그저 엽운만 쳐다보며 얘기 했다.

엽운의 눈에 이상한 기색이 스쳐지나갔다.

잡역 제자에서 외문 제자가 되었고, 삼년간 수도에 관한 지식을 많이 접하지는 못했다.

지금껏 천지의 영기가 한 종류뿐이고 전부 연화가 가능한 줄로만 알았다.

몇일 전 소성의 비법을 접하고 난 후에야 영기에도 각기 다른 종류가 있고 흡수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건 알고 있었는데, 이곳의 영기가 이런 것일 줄은 몰랐어.”

“그러니까, 기경을 연마중인 제자가 호흡하는 동안 바깥 세계의 영기가 자연스레 혈자리에 들어차게 되고, 그 후 호흡을 멈추지 않는 한 영기가 끊임없이 혈에 차올라 결국 몸이 터져서 죽을 수 밖에 없는 거지.”

소령은 이미 화가 풀린 듯 엽운의 옆에 딱 붙어서 걸어갔다.

그녀의 팔이 엽운과 부딪혀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엽운 또한 아랑곳 하지 않고 그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설마 그게 우리같이 연기경에 미치지 못한 제자들이 이곳에 들어 온 진짜 이유인가?”

“여기?”

바로 그 순간, 맨 앞에서 걷던 금 사형이 별안간 발걸음을 멈추었다.

얼굴엔 놀랍고도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몸을 낮추고 쭈그려 앉고는 근처에 있는 하늘색의 풀을 뽑기 시작했다.

“이곳에 이리도 많은 남빙초가 있다니, 불가사의로다.”

“남빙초? 그러니까 금형 사형의 말은 이게 지금 남빙초라는 것입니까? 응기단을 만드는 주 재료중 하나인 그 남빙초?”

진씨 성을 가진 제자는 깜짝 놀라 크게 기뻐했다.

금 사형의 이름은 금형이고 연체경의 정점에 도달한 인물이었다.

천촉봉에서 평일에는 채집 하는 임무를 자주 맡기도 하여서 공교롭게도 파란 약초를 알아보았다.

“맞아. 응기단을 만드는 재료 중 하나지. 여기엔 백송이도 넘게 있는데 이걸 다 가지고 나갈 수 있다면 그 값어치가 얼마나 될지 상상도 못해.”

금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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