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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73화 (73/227)

제 73 화 말썽

잠시 후 검은 안개가 조금도 남김없이 전부 사라졌다.

“쨍그랑!”

가벼운 울림과 동시에 몇개의 돌담이 빛의 그림자를 비추고 온 석실을 뒤덮었다.

눈이 부셔 앞을 볼 수가 없었다.

빛이 사라졌을 무렵 상상도 못했던 광경이 펼쳐졌다.

푸른 하늘, 산과 맑은 물, 저 멀리엔 두 마리 사슴이 주의를 경계하며 고개를 숙여 먹이를 찾고 있었다.

엽운과 소령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두 사람은 묘지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공간진법?”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말했다.

금단대수사의 방식은 너무도 대단했다.

공간 진법이 하나 둘 꼬리를 무는데 만약 이것마저 1층이라면 다음 2층 3층은 어떻게 만들어 놓았을까?

기경을 연마하는 제자들은 고사하고 이미 기반을 잘 다져둔 고수들에게도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바로 좀 전의 검은 안개에서도 아마 대다수의 수사들이 통과하지 못하고 산 채로 갇혀 죽을 것이다.

“이 무덤의 배열은 정말 말도 안되게 배치돼 있어. 점점 분명해지는데 여기엔 반드시 굉장한 보물이 숨겨져 있을 거야. 엽운, 우리는 꼭 그 보물을 찾아서 떠나야해. 그렇지 않으면 구양 사수만 좋은 일 시켜주는 꼴이라구.”

소령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손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빛이 들어 그녀는 이내 감격에 겨워 팔짝팔짝 뛰며 손뼉을 쳤다.

엽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레 무언가 깨달음이 느껴졌다.

그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얼핏 보니 위쪽의 공기 중에 별안간 투명한 파도가 일더니 훅 하는 소리와 함께 그림자 몇 가닥이 떨어져 내려왔다.

엽운과 소령은 급히 옆으로 피하고 경각심을 불태웠다.

영력의 흐름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했다.

“죽을때 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었냐!”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고, 떨어져 내려온 그림자 가운데 하나는 단진풍이었다.

곧 그림자 몇 개가 바닥에서 일어섰는데, 엽운의 오랜 지인들이었다.

곡일평, 여명홍, 양운송, 그리고 엽운의 눈에 익는 소년 한 명.

“엽운? 죽은 게 아니었어?”

단진풍은 몸을 일으켜 엽운과 소령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엽운은 무미건조하게 한 번 쳐다보곤 여명홍을 향해 물었다.

“여사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여기서 다 같이 나오는거야?”

여명홍은 그가 엽운 임을 확인하곤 매우 기뻐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식은땀을 훔친 뒤 말했다.

“엽 사형, 무사하시다니 다행입니다. 저와 단선배는 한 석실에서 만나 함께 금제를 깨고 이곳으로 떨어졌습니다.”

“같이? 이 많은 사람이 함께 석실에 들어갔다는 말이야?”

엽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안색들이 심상치 않음을 보아 끔찍한 일을 당한 것 같았다.

여명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통로로 들어가보니 스무명도 넘게 모여 있더군요.”

“그 다음엔?”

이어서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죽었다. 우리 다섯명만 살아남고.”

단진풍의 싸늘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라고?”

소령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엽운의 눈동자도 움츠러 들었다.

어렴풋이 짐작했던 대답이지만 단진풍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 여자애는 또 누구야?”

단진풍이 소령을 한번 보더니 살벌한 표정을 지었다.

엽운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무영봉의 제자야. 전에 나를 한 번 구해준 적이 있어.”

“무영봉의 제자?”

여명홍은 깜짝 놀라더니 소령을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너희들 도대체 무얼 만났길래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거야?”

엽운이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물었다.

“엽 사형, 우리가 통로에 들어서자 거대하고 화려한 대전으로 보내졌습니다. 그 대전은 알 수 없는 수정으로 지어졌구요, 그 사이에 높은 대가 하나있었는데 질이 좋고 커다란 영석을 깎아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대전 안에는 영기가 넘쳤는데, 만약 여기서 수련할 수 있다면 십년 후엔 영기가 부족할까 걱정할 일은 없을 듯 했습니다.”

여명홍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눈빛을 번득였다.

“그러곤 저희가 살펴보았죠, 이렇게 큰 영석으로 높은 대를 만들다니 참으로 사치스럽더군요, 이 금단대수사가 정말 손이 큰가 봅니다.”

여명홍은 한숨을 쉬며 이어서 말했다:

“누가 알았겠어요. 커다란 대를 하나 마주쳤는데, 대전 전체가 완전히 변해버리더니 독이 가득 찬 그림자가 난데없이 나타나 그 틈에서 수많은 화살비가 내려 올 줄은, 화살마다 맹독이 발라져있어 일단 맞으면 살아날 가망이 없었습니다.”

엽운이 눈썹을 씰룩거렸다,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가 겪었던 불바다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단지 화염이 독의 그림자가 되고 불바위가 맹독 화살로 바뀌었을 뿐. 엽운의 실력과 육신으로도 이런 상황에서는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데, 여명홍이 말한 20명의 외문 제자들과 어찌 비교하겠는가?

게다가 20명이 한데 뒤엉켜 있으니 명중할 가능성도 더 높아지고 허둥지둥 하는 사이 몇명이 죽어버렸겠지.

“대전이 갑자기 변해버려 눈 깜짝할 사이에 여섯명이 죽었습니다.”

곡일평이 다소 날카로운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장면을 떠올리자니 몸이 조금씩 떨려왔다.

곡일평은 마음이 깊은 자였으나, 지금은 떨고 있으며 마음 한 구석의 두려움이 드러나 그 장면이 도대체 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의 문파 임무는 상상했던 대로 목숨과 맞바꾸는 일이었어.”

단진풍이 냉소하며 눈빛이 어두워졌다.’

“너희는 결국 어떻게 금제를 푼 거야?”

엽운은 미간을 약간 찡그리며 단진풍에게 물었다.

단진풍은 그를 한번 쳐다보곤 엽운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말했다.

“높은 대 위에 청색 수정이 있었는데 내가 그 수정을 제거해 해결했다.”

이내 엽운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자신이 불바다에서 적홍색 수정을 거두어 마침내 여기까지 왔고 그 붉은 수정부터 상자안의 보랏빛 수정까지, 거기다 좀 전의 안개 속 명주까지 연구해볼 틈이 없었다.

대관절 무슨 효용이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

단진풍은 그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너는 어떻게 여기에 온거야? 이 무영봉의 여 제자는 또 어떻게 여기 있구?”

“난 불바다에서 붉은 정석을 제거해서 여기 왔고 이 무영봉의 여제자는 뭐, 깊이 생각할 것도 없어. 백의 도포 제자들이랑은 달리 우리를 감독하러 온건 아니야.”

엽운은 말을 아끼며 되는 데로 몇 마디 뱉어냈다.

그러자 단진풍의 눈썹이 크게 씰룩였다.

“만사를 다 망치는 진안도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건가?”

바로 그 순간 눈앞의 산청수수 가운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단진풍? 이런 오만하고 무지한 인물이 여기까지 살아서 올 줄은 몰랐군.”

단진풍과 엽운은 눈을 번득이며 몸을 돌렸다.

나지막한 관목림에서 두 사람이 나타났다.

“금 사형, 강 사형.”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노란 옷의 외제자가 두 사람을 보곤 놀란 표정으로 달려갔다.

“오, 진사제로구나. 어찌 이 사람들과 섞여 있느냐?”

똑같이 노란 옷을 입은 그는 제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저희는 같이 들어왔는데...”

제자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폭음이 그의 말을 끊었다.

“누군가 했더니 황포 제자였구나!”

단진풍이 두 사람을 보곤 조롱하는 표정을 지었다.

“단진풍, 여기는 종파안도 아니니 죽고 싶다면 내 거들어주지.”

한 발짝 다가서는 금 사형의 눈에 살의가 가득했다.

단진풍은 차갑게 웃어보이곤 실눈을 뜨며 말했다

“그리 해준다면 정말로 더 바랄게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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