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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선공-70화 (70/227)

제 70 화 불 속의 수정

투명하게 빛나는 외벽은 살짝 보라색 안개를 뿜었는데, 안쪽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빛조차 집어 삼킬 듯한 칠흙같은 어둠이었고, 반 척 앞의 길도 보이지 않았다.

“좋아. 가거라! 기억하도록, 너희들의 어깨에는 종문이 하사한 중대한 임무를 짊어지고 있고, 등에는 종문의 영광을 짊어지고 있다.”

양청봉은 손을 휘저으며 새카만 통로를 보고 있었다.

얼굴에는 온통 숙연함 뿐이었다.

외문 제자들은 일제히 통로를 바라보았다.

가슴이 벅차올랐고 피가 들끓었다.

입구를 향해 돌진했다.

엽운과 단진풍,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대열 뒷쪽에 섞여 통로를 향해 움직였다.

어두운 통로는 마치 거대한 입처럼 줄지어 들어오는 천촉봉 제자들 하나하나를 흔적도 없이 삼켰다.

엽운은 대열의 중간보다 조금 뒤쳐진 지점에서 영력을 회전시켰고,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며 경계하고 있었다.

만약 화운비장의 1층에서 갑작스러운 위험이 닥쳐오더라도 제일 먼저 반응할 수 있었다.

새카만 통로는 마치 거대한 공간 전송문 같았다.

발을 들이자 몸 전체가 뒤틀리는 느낌이 들고 즉시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앞이 환해졌다.

거대한 신전 한 채가 별안간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은 평생동안 본 대전 가운데 가장 화려했다.

대전의 안쪽은 수십 개의 기둥으로 받쳐져 있는데 각각의 기둥은 거대한 상품영석으로 만든 것이었다.

기둥이 내뿜는 방대한 영기는 너무도 짙어 마치 물안개처럼 보였다.

영석 기둥에는 용이 조각되어 있고 봉황이 그려져 있었는데, 아름답고 수려한데다 생동감이 넘쳐 언제라도 기둥에서 날아가 버릴 듯 했다.

대전의 사방에는 이름 모를 수정으로 만든 벽이 있는데 은은한 빛을 뿜고 있었다.

그 빛 속에는 수 척 간격으로 상자가 하나씩 끼워져 있어 아무래도 어떤 보물을 숨겨둔 것 같았다.

중앙에는 두 장 높이쯤 되는 높은 제대가 우뚝 솟아 있는데, 전체가 새하얀 빛으로 뒤덮여 있어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호화로운 대전의 모든 것이 한 눈에 환히 보였다.

그러나 엽운은 조금씩 미간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말하던 진안 따위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또 상상처럼 위험천만 하지도 않았다.

설마 양청봉이 말한 것처럼 1층에는 그다지 위험한 게 없고 그저 진안을 찾아서 파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일이 너무 쉬워지는데, 종문이 이렇게까지 절실하고 은밀하게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여기 어딘가에 분명 무언가 수상한 것이 있을 것이다.

안전하게 보이는 곳일수록 더 위험한 곳일 가능성이 높다.

엽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자신의 옆에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을 발견했다.

족히 100명은 되던 천촉봉 제자들 가운데 같은 공간으로 들어온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단 말인가?

어떻게 된 일일까?

설마 제자 한 명 한 명이 전부 각기 다른 대전으로 보내지는 것인가?

그렇다면 통로의 뒤에는 족히 백개가 넘는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대전이 있다는 뜻이다.

별안간 도무지 믿고 싶지 않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백개의 대전 속 진안을 모두 파훼해야 1층이 열리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제자들을 내보낸 이유가 설명 된다.

하지만 백명의 제자들이 모두 진안을 찾아내 파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뒤를 이어 들어올, 연기경에 달하지 못한 제자들이 아직 한참 더 있다는 뜻인가?

엽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첫번째로 진안을 파괴하는 일에는 시간제한이 있어 계속 이 안에 남아있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고, 두번째로는 이 텅텅 비어있는 듯 한 대전에 사실은 엄청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두 가지 다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보기엔, 종문이 이렇게 까지 다급해하고 심지어 풍부한 자원을 포상으로 주기까지 한다니, 분명 두번째일 가능성이 더 컸다.

호화로운 대전을 보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두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온 정신을 집중하며 촉각을 곤두 세웠다.

대전의 사방에는 투명한 벽이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허나 이런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오직 새하얀 빛으로 뒤덮인 제단만이 진안을 깨는 열쇠일 것이다.

엽운은 영력을 뿜어 온 몸으로 퍼뜨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순식간에 반응 할 준비를 했다.

제단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제단까지의 거리는 열댓 장 밖에 되지 않지만 한 걸음씩 가까워질 때마다 죽음의 칼끝으로 다가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순간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제대 위에 올라갈 때 까지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은은한 흰색 빛은 마치 수증기처럼 솟아올라 시야를 가렸다.

어떤 감각도 그 속으로 침투할 수 없었다.

흑요검을 쥐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살펴보기 시작했다.

찰나의 순간에, 대전 전체의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온 하늘 가득 불꽃이 춤을 추고 불타는 돌 조각이 떨어져 폭발하면서 열기가 하늘을 찔렀다.

도저히 상상도 못한 변화였다.

일찍이 위험에 대비하고 있긴 했지만 이 정도로 큰 변화가 생길 줄은 몰랐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력을 움직여 온 몸을 감쌌다.

순간, 머리만 한 크기의 불타는 돌덩이가 떨어졌다.

일격에 바위를 베자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돌멩이가 부서졌고, 무수히 많은 불똥이 되어 더 빠른 속도로 덮쳤다.

부서져버린 수천 개의 불바위 조각은 엄청난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이 불똥에 맞게 되면, 지금 그의 육신으론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엽운의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다른 것들은 살필 겨를이 없었다.

곧바로 몸을 웅크리며 아래를 향해 즉시 굴러 떨어졌다.

수많은 불빛이 옆을 지나갔고, 그 중 두개가 등을 스쳤는데 바로 그을린 상처 두개가 생겼다.

육신은 이미 흑백 빛을 통해 변했고, 또 오랜 시간 힘을 축적한 만큼 더 강건해졌다.

그런데 영력으로 방어했음에도 불꽃 하나가 스치는 것조차 막지 못하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 정신을 집중해 사방의 변화를 살펴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1층의 금제란 말인가? 말도 안되게 위험하다.’

만약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미 불꽃에 맞아 순식간에 죽어버렸을 것이다.

어쩐지, 란 장로와 나머지 장로들이 비록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말을 통해 이번 임무가 그야말로 ‘십사무생’에 가까움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그랬다.

백명의 천촉봉 외문 제자들이 1층에 들어왔고 분명 모든 이들이 금제를 맞닥뜨릴텐데 그 중 이리도 위험한 금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 순간, 마치 아주 처참한 광경을 본 것 같았다.

하늘을 가득 메운 불꽃 속에서 천촉봉 외문 제자 한 명 한 명이 죽어 나가고 이 세계에서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수선의 길은 과연 잔혹하구나. 올바른 길, 정도의 종문이라는 천검종 같은 곳마저 문하 제자들의 목숨 따윈 안중에도 없다니.”

엽운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끝없는 불꽃과 타오르는 돌덩이들을 피했다.

마음속으로 감개하였다.

두 눈을 부릅뜨고 사방을 둘러본 끝에 드디어 무언가를 발견했다.

비록 이 곳이 화염의 세계로 변하긴 했지만 전체적인 구조는 그대로였고, 여전히 똑같은 대전의 안이었다.

그저 사방에 있던 수정 벽이 타오르는 불길에 그을려 붉어졌고, 쉴 새 없이 화염을 뿜어댈 뿐이었다.

그리고 대전의 중앙에 있던 제대는 마치 화산의 분화구처럼 불덩이를 뱉어내 사방으로 흩뿌리고 있었다.

“진안은 분명 저 분화구 속에 있겠지.”

엽운은 눈살을 찌푸렸고 순식간에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1층의 금제가 위험하긴 하지만 당해내지 못할 수준은 아니라고 느꼈다.

분명 화운비장의 주인인 금단대수사가 연기경 이하의 수위를 가진 제자들도 진안을 부술 수 있게끔 기회를 만들어 둔 것이라 생각했다.

흑요검을 꽉 쥐고 불덩이를 뱉어내는 분화구를 향해 걸어갔다.

몇 걸음 가기도 전에 엽운은 곤경에 처했다.

앞으로 한 발짝씩 다가가려면 엄청난 양의 정신력과 영력을 소모했다.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튀어나온 불꽃과 바위에 맞을 수도 있다.

처음엔 한 걸음을 나갈려면 시간을 잘 계산하고 빈틈까지 찾아야 했다.

또 적당한 힘을 이용해 돌을 쳐내고 가능한 돌을 부수지 않아야 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시간이 흘렀고 열댓 장 남짓한 거리를 가는데 두 시진이나 걸렸다.

땀이 옷을 적셨고 곧바로 열기에 말라 버렸다.

수위가 통규경을 돌파하지 못했더라면 체내의 영력은 이렇게까지 오래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생각했다.

만약 화산의 분화구가 진안이 숨겨진 곳이 아니고, 따라서 진안을 파괴하지 못하게 된다면, 엽운은 그 안으로 떨어질 확률이 높았다.

영력이 모두 소진되고 나면 다시 빠른 속도로 보충하기 어려운데, 심지어는 청목단병에 담긴 영약으로 보충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영약을 복용할 때 느껴지는 영혼을 찢어버릴 듯한 고통은 정신을 잃게 만들 것인데, 평소였다면 별 일 없었겠지만 온 하늘에서 불이 비처럼 내리는 대전에서는 잠깐만 정신을 잃어도 죽음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씩 내딛으며 마침내 제대 위에 올랐고, 작은 화산 분화구의 윗쪽까지 다가갔다.

분화구 속에는 허공에 떠있는 투명한 붉은 수정을 엄청난 화염이 둘러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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