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69화 (69/227)

제 69 화 진안의 말

감히 반항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누구라도 이 흰색 도포 제자들의 눈에서 살기를 느낄 수 있었다.

대다수의 제자들은 간담이 서늘해져 그저 최대한 천천히 걸으며 앞장서지 않으려 애쓸 뿐이었다.

하지만 엽운은 눈에서 빛을 번쩍이며 발걸음을 재촉해 맨 앞자리 양청봉의 바로 뒤 까지 다가갔다.

“양사형, 저는 엽운이라고 합니다. 질문이 있는데, 몇가지 여쭈어도 괜찮겠습니까.”

엽운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양청봉은 엄격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엽운이라는 말를 듣고 푹 꺼진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질문?”

“구양봉주의 말씀을 들어보니 이 화운비장은 엄청나게 거대하고, 네 문파가 합심해야만 열 수 있는 모양입니다. 그럼 이 비장은 보통 비장이 아니란 말인데, 그렇다면 종문에서는 고수들을 보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어찌 저희 같이 연기경에 도달하지도 못한 제자들을 참가시키는 겁니까?”

엽운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칠 장로님을 믿고 이러는 것인가. 내가 칠 장로님의 체면을 보고 널 난처하게 만들지 않을걸 알기 때문이겠지. 아마 너라면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올 확률이 있긴 할 것 같구나.”

양청봉은 의도를 간파한 듯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헌데 이미 화운비장이 열렸으니 알아도 소용없다. 이 비장은 금단대수사 한 분의 무덤으로, 안에는 온갖 진귀한 보물과 수선비법이 숨겨져 있다고 하지. 진정 보물이라 부를만한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이 화운비장은 한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층이 있는데, 가장 바깥층인 1층은 수위가 연기경 이상인 제자들이 그 안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되어있다.”

엽운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째서죠?”

“1층에는 신비로운 금제가 걸려있어 연기경 이하의 수위를 가진 제자들만 들어갈 수 있고, 연기경에 달한 자들은 들어갈 수도 없다. 만약 억지로 들어가려 하거든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다. 이런 이유가 아니라면 어째서 너희들을 보냈겠느냐? 똑같은 외문 제자라도 자포 제자들과 흑포 제자들의 수위나 잠재력은 너네보다 훨씬 높다. 그러니 당연히 너희보다 소중하겠지.”

양청봉은 사실 허세가 없는 편이다.

연기 6중 진강경에 달한 내문의 고수임에도 엽운의 질문에 짜증 내지 않았다.

“그렇군요. 설명 감사드립니다 사형.”

엽운은 몸을 굽혀 인사를 올렸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렴풋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사안은 원래 우리가 너희에게 설명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너희가 묻지 않았어도 입구에 도착하면 알려줄 생각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히 전달해야겠지.”

양청봉은 그를 한 번 바라보고 몸을 돌렸다.

천촉봉 제자 백명은 잠시 주춤하더니 발걸음을 멈췄다.

양청봉은 좀 전에 했던 말을 반복하면서 천천히 바라봤다.

“이번에 화운비장에 들어가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은 1층의 진안을 찾아내 파괴하는 것이다. 1층만 뚫을 수 있다면, 연기경 이상의 수위를 가진 제자들이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번에 너희가 맡은 임무는 아주 중요하고, 우리 종문의 영광과 이익에 직결된다. 진안의 금제를 파훼하기만 하면, 너희들은 돌아와 우리 천검종의 중점적인 양성을 받는 제자가 되어 탄탄한 앞길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의 눈에서는 빛이 번뜩였다.

마음속에서 느껴지던 한기가 사라졌고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뜨겁게 타올랐다.

양청봉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엽운과 단진풍은 서로를 바라보며 걸음을 늦추어 대열의 맨 뒤로 움직였다.

“1층의 보물은 우리가 다 갖고, 금제를 깨면 어마어마한 포상까지 준다니, 이게 가능한 일이라 생각해?”

단진풍은 이제껏 보여왔던 머저리 같은 모습을 벗어던지고 작은 목소리로 냉소했다.

“포상이 두둑한 만큼 우리 목숨은 더 위험해질 거야.”

엽운은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한 발짝씩 나아가 보는 수 밖에 없어.”

“우리 둘이 백의 제자 한 명을 상대할 수 있을까?”

단진풍은 흐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엽운의 눈빛이 격렬히 흔들렸다.

단진풍을 한 번 보곤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양청봉의 안내에 따라 천촉봉의 제자들은 바로 화운비장의 앞에 도착했다.

엽운은 그때서야 화운비장이 얼마나 거대한지 체감이 되었다.

아래에 서 있는 군중은 마치 개미때처럼 같았다.

금방 십 리 너머에서 보았을 때는 허공에서 단지 거대한 묘지가 튀어나왔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본 금단대수사의 대묘는 상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화운비장의 외벽은 투명한 순백색 옥석으로 조각되어 어렴풋이 보랏빛 안개가 아른거리는 것 같고, 가까이에 서서 보니 더 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백장 높이는 돼 보였는데, 마치 거대한 반투명의 수정 덮개를 덮어둔 것처럼 근방 수십 리의 땅을 전부 뒤덮었다.

엽운은 대묘의 외벽에서 통로 하나를 발견했다.

온통 검은 색이라 끝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 같은 통로가 열두 개나 있었다.

천촉봉의 제자들이 들어가게 될 통로 위에는 보라색 장검 한 자루가 조각되어 있었다.

제자들은 투명하게 빛나는 대묘 아래에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위압이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란 장로나 다른 장로들이 보여준 것처럼 억압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마치 봄바람처럼 어딘가 온화하고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평화로운 위압 아래에는 놀랍게도 진법 금제가 수 없이 설치되 있었다.

“너희들을 이 통로를 따라 들어가게 될 것이다. 안에 공간은 일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보는 것만큼 어둡지 않다.”

양청봉은 새카만 통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몇몇 제자들을 제외한 외문 제자들은 오히려 빨리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듯 기대에 가득 찬 표정을 했다.

“들어간 뒤로는 자신의 몸을 반드시 잘 보호해라. 겁먹을 것 없고, 서두를 것도 없다. 협력하고 서로를 도와 진안을 찾고 그것을 파괴하면 나올 수 있다. 사실 그렇게까지 어려운 임무는 아닐 것이다. 그저 저 안에는 위험한 장치들이 조금 있는데, 너희가 조금만 조심하면 되는 일이다.”

양청봉은 담담하게 건성으로 말했다.

“주의 감사합니다 양사형.”

제자들은 일제히 몸을 굽혔고, 마음속은 감격에 겨웠다.

만약 양청봉의 말대로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은 임무라면, 어째서 이렇게 까지 많은 병력을 끌어 모으고, 다급히 오백명의 제자를 선발해 진안을 부수라고 보냈겠는가.

단지 위험한 기관이 몇 개 있는 게 전부라면 이 금단대수사는 어째서 연기경 이상의 제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해둔 것일까.

더군다나 그 진안이라는 것을 어떻게 파훼해야 하는지 방법조차 알지 못했고, 천검종은 이같은 진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엽운은 사람들을 따라 인사를 올렸지만, 그의 눈 깊은 곳에서는 음침한 기운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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