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67화 (67/227)

제 67 화 비장

흰색 도포를 입은 스무 명의 제자들 중에 열 명은 검문을 맡고 나머지는 보초를 섰는데, 하나같이 냉엄한 표정이었다.

검문을 받는 동안, 엽운은 이들에게서 먹잇감을 보는듯한 살기를 느꼈다.

“보아하니 숨거나 피하는 것도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제자들이 자신의 곁을 지나가자 엽운은 옆에 있던 단진풍에게 말했다.

장로들조차 몸속 흑백 빛의 비밀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이 흰색도포를 입은 제자들이 검문을 해봐야 별 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단진풍이 냉소하며 말했다.

“네 말이 맞다. 이 자들은 아무래도 우리를 감시하러 온 것 같은데, 만약 저들의 뜻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온정도 기대할 수 없겠어.”

잠시 후 흰색 도포의 제자들이 검문을 모두 마쳤다.

“양사형, 여기까지가 마지막 외문 제자입니다. 전부 합격입니다.”

흰색 도포 제자 한명이 공수하며 말했다.

양사형 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이름은 양청봉으로, 내문 제자 무리의 우두머리인 듯 했다.

수위는 이미 연기경 6중인 진강경에 달하여 온 몸의 진기가 10배가 넘게 압축되어 강원을 이루고 있었다.

양청봉은 천천히 엽운과 나머지 백 명의 제자들을 훑어보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모두 도착했으면 가자. 마침 내일 딱 쓸모가 있겠군.”

나머지 흰색 도포 제자들은 일제히 대답하곤 몸을 돌려 엽운과 나머지 제자들이 바라보고 있던 평원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엽운과 단진풍,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대열에 섞여 소리없이 따라갔다.

이 광활한 평원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도대체 양청봉은 이들을 어디로 데려가는 것일까?

엽운의 마음 속 의문이 더 커지기도 전에, 양청봉의 안내를 따라온 120명의 사람들이 평원을 지나오자, 앞의 광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울창한 평원은 사라지고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고목은 노랗게 물들었고 낙엽이 바닥에 잔뜩 쌓여있었다.

봄에서 가을로 변한 것이다.

또 대략 열장 너비의 강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는데, 혼탁한 강물에 노르스름한 진흙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의 옆쪽에는 족히 수백 명은 되는 제자들이 빼곡히 서 있었는데, 모두들 황색 도포와 청색 도포를 입고 있었다.

외문제자 였다.

천검종과 다른 곳의 외문 제자 들이 이곳에 전부 모인 것이다.

“저곳이 오늘 너희들의 휴식처다. 몸을 잘 가다듬어 두거라. 내일 너희들은 종문을 위해 시험을 진행하게 된다.”

흰색 도포 제자 한 명이 엽운과 나머지 제자들을 그곳으로 데리고 가며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그때 곡일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사형. 이번 종문 시험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혹시 알려주실 수 있는지요?”

양청봉은 수십 장 너머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었는데, 곡일평의 말을 듣고는 몸을 돌렸다.

“너희들은 고작 외문 제자인데, 무얼 알고 싶다는 말이냐?”

목소리는 차가웠고,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았다.

“저희가 이 종문 임무에 참가한 이상, 다른 사형 분들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한 일찍 내용을 알 수 있으면 성심껏 준비하여 종문의 임무를 위해 힘을 보태겠습니다.”

곡일평이 말을 이어나갔다.

양청봉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종문 시험의 내용은 기밀이고, 너희가 알 필요 없다. 내일 명령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곡일평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아 감히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 알려주자면, 이번 종문의 시험에는 우리 천검종만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몇몇 수선 대파들도 참가한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천검종의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이고, 절대로 종문의 명성에 먹칠을 하면 안된다. 기억하거라. 적을 만나거든 종문의 영광을 우선으로 생각해라. 하지만 시험 중 얻게 되는 보물들은 상납할 필요 없이 너희가 알아서 처리하면 된다.”

엽운과 나머지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번 종문의 시험이 다른 종문과의 대결이란 말인가?

만약 대결이라면 어째서 이런 장소를 선택한 것인가?

보물은 또 무슨 말인가?

만약 종문간의 대결이라면, 이 만큼의 외문 제자들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외문 제자들 간의 시합은 볼거리조차 안되고 그 어떤 효과도 없다.

한 종문의 실력을 알아보려면 최고의 무력을 가진 수제자들의 수위를 보는 것이 낫다.

어떤 관점에서 보아도 이번 시험은 너무나 이상했다.

밤새 말 한마디 없이, 제자들 마음속에는 의문만이 가득했다.

저마다 계획을 짰고, 시험을 기다리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침 햇살이 대지 위로 빛을 뿌리자 다급한 목소리가 제자들의 머리 위로 울려 퍼졌다.

“모든 외문 제자들은 명령에 따라 잠시 후 출발한다. 명령을 어기는 자는 죽는다.”

차가운 목소리가 마치 우뢰 같이 귓가에 맴돌았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자 모든 외문 제자들이 재빨리 움직였다.

숨을 세 번 쉬는 사이, 모든 이들은 각 대열에 맞춰 곧바로 출발했다.

앞쪽에서 양청봉의 모습이 보였다.

흰색 도포를 입고 뒷짐을 진 채 서있는 그의 옆에서 열댓명의 흰색 도포 제자들이 무표정으로 오백 명의 외문 제자들을 이끌고 나갔다.

낮은 봄이고 밤은 가을이었다.

울창한 숲을 지나자 광활한 평원이 다시 펼쳐졌다.

대략 반 시진 정도를 더 걷더니 발걸음을 멈추었다.

평원은 여전히 드넓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엽운은 조용히 서있었다.

이번 종문 실험은 너무도 신비롭다.

어디로 가는 것이며, 이 제자들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별안간 하늘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고, 곧이어 수십 명의 그림자가 나타나 허공에 떠 있었다.

동시에 저 먼 곳의 하늘 위 세 방향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찬란한 빛이 뿜어져 하늘을 밝히며 사람들의 그림자가 흔들리더니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있던 듯 수십 명의 모습이 나타났다.

엽운은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머리 위 허공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안개에 뒤덮인 채 신선처럼 조용히 떠 있었다.

가운데 사람은 흰 두루마기를 입고 나이는 삼사십은 되어 보였으며, 훤칠한 풍채에 별처럼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어렴풋이 있었다.

그 모습은 엽운으로 하여금 중년 남자가 공중 수십 장위에 떠 있는 것이 아닌 그저 먼 곳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하지만 정신을 집중하며 다시 살펴보자,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머리 뒤에서 그의 호흡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살펴보았는데, 단진풍 역시 크게 놀란 눈빛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아마 단진풍도 똑같이 느낀 것 같은데,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분명 수십 장 너머에 있는데, 가까이 붙어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구양봉주, 친히 대열을 이끌고 여기까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노쇠한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지더니 공간 구석구석에 맴돌았다.

“손문주, 놀랍게도 패도문에서도 친히 대열을 이끌고 오셨군.”

머리 위에 떠 있던 흰 옷의 중년 남자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구양봉주, 우리 패도문과 제양문은 그쪽 천검종과 비교가 안되지요. 우리같은 작은 종문이 이런 비장에 병력을 끌고 와봤자 뭐 좋은걸 얻겠습니까.”

멀리서 검은 옷을 입은 노인이 이쪽을 향해 공수를 올리며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비장?”

이 사람들의 신분만으로도 엽운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데, 두 글자를 듣자 옆에 있던 단진풍은 몸서리치게 놀라 잠시 호흡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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