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지존선공-66화 (66/227)

제 66 화 어찌 시험뿐이겠는가

“김 집사. 시험을 통과한 백 명의 제자가 도착하였으니, 받아주시게.”

란 장로는 전송 영진 아래에서 걸어오는 흰 옷의 중년 남자를 맞이했다.

배가 볼록 나왔고 온 몸에 살이 뒤룩뒤룩 쪄있었다.

“란 장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종문의 시험이 끝나면 우리끼리 한 번 모이지요.”

포동포동한 김 집사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걸어와 란 장로의 어깨를 토닥였다.

란 장로는 똑같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물론입니다. 나중에 김 집사가 안 나오실까봐 걱정입니다만.”

“어찌 그러겠습니다. 저희는 형제 아닙니까. 매년 몇 번은 만나야지요.”

김 집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그럼 더 할 나위 없이 좋지요!”

란 장로의 얼굴에 웃음기가 점점 짙어졌다.

바로 고개를 돌려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분은 내봉 시련전의 김 집사이시다. 나는 너희들을 여기까지만 데려다 줄 것이고, 그 뒤로는 김 집사께서 너희를 데리고 전송진으로 들어갈 것이다.”

김 집사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백명의 제자를 바라보았는데, 그 눈은 마치 영성 더미를 보는 듯 반짝였다.

인계는 빠르게 끝나고 백명의 제자는 김 집사와 나머지 사람들의 지도 아래 푸른 별빛이 빛나는 전송진 안으로 들어갔다.

제자들을 바라보는 란 장로의 눈에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이 스쳤다.

마치 참을 수 없다는 듯한 기색이었는데, 순식간에 평소대로 돌아왔다.

“너희들은 모두 우리 천검종 외문의 정예 제자들이며,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는 건 모두들 지혜롭고 잠재력이 크며 수위도 높다는 뜻이다. 잠시 후 전송 되어 종문의 임무에 참가할 때, 다들 마음속에 천검종을 새기거라. 어디에서든 경쟁하고, 종문을 위해 영광을 쟁취해라. 만약 그 누구라도 몸을 사리며 천촉봉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짓을 한다면,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후 내 일일히 따져 엄벌에 처할 것이다.”

란 장로는 잠시 망설이더니, 위풍당당한 눈빛으로 다시 한 번 제자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종문의 시험 속에서 너희들은 성심껏 협력하고 단결하여 서로를 도와야 한다. 부디 자신의 사리사욕 때문에 동문을 해치는 짓은 하지 말거라. 종문에서는 너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지켜보고 있으니, 만약 종문의 법규를 어기는 자가 나온다면 마찬가지로 죄를 물을 것이다. 너희가 이것들만 기억한다면, 살아 돌아온 이들 모두를 종문에서 중점적으로 양성하여 훗날 내문 제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알아 들었는가!”

“알겠습니다!”

제자들이 일제히 소리치자 사방이 울렸다.

엽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움직였다.

어째서인지 마음속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보기에 란 장로가 한 말들은 다 헛소리였다.

종문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이다.

살아남을 수 없다면 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

천촉봉의 영광이 죽은 사람과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란 장로가 저렇게 말할수록 마음속에서는 이번 종문 시험에서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김 집사와 란 장로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송 영진, 작동!”

그의 말이 떨어지자 다섯개의 기둥 위에서 별안간 다섯 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는 엽운과 제자들의 발아래 푸른빛이 커지더니 순식간에 모든 제자들을 뒤덮었다.

전송 영진이 작동하는 순간, 엽운은 주위의 공간이 갑자기 뒤틀리는 것을 느꼈다.

옆에 서있던 동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심지어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으며 모든 감각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오직 뒤틀린 허공과 알 수 없는 길뿐이었다.

엽운은 마음속으로 시간이 지나는 것을 세고 있었다.

족히 한 주향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뒤틀린 공간이 천천히 정상적으로 돌아왔고, 푸른 별빛은 다시 앞에서 반짝였다.

순식간에 동료 한명한명이 옆에 나타났지만 사실 그들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았고 그대로 제자리에 서있었다.

그런데, 소문에 의하면 천검종 전체에 금단대수사가 있는지 없는지도 불확실 하다는데, 그렇다면 이 전송 영진과 장무각의 공간 진법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 만든 것인가?

엽운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공간 진법과 전송 영진 같은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저 전송 영진에서 잠깐 스쳐지나간 생각이었을 뿐이었고, 순식간에 머릿속을 떠났다.

마침내 공간이 안정되고 더 이상 뒤틀리지 않게 되자 모든 감각이 되돌아왔다.

다섯 개의 기둥은 똑같이 각양각색이었고, 발밑의 별빛은 넘쳐흘러 마치 물안개 같았다.

“도착했다!”

“이 전송 영진이라는 물건 진짜 기묘하네.”

“여기는 어디지?”

“설마 이곳이 천검종 본부인가?”

온갖 말소리가 들려왔는데, 흥분에 겨워하며 호기심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엽운은 인파를 따라 천천히 전송 영진에서 빠져나왔다.

먼 곳을 보니 끝없이 광활한 평원이 보였는데, 무성히 펼쳐진 초원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이곳은 절대 천검종이 아니다.

천검종은 진나라 동쪽 근처에 끝없이 펼쳐진 바다위로 솟은 산이기에, 이렇게 펼쳐진 평원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한눈에 봐도 지평선이 보였고, 온 대지가 평평했다.

이곳에서 천검종까지의 거리는 적어도 수천 리는 될 것이다.

전송 영진은 놀랍게도 백명이나 되는 제자들을 이토록 멀리까지 전송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순간 마음속에서 전송 영진과 공간 진법에 대한 의혹이 다시금 피어올랐다.

분명 이곳의 전송 영진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만약 전송 영진이 있었다면 종문이 자리를 잡고 거점으로 삼아, 그 위에 도시를 세운 뒤 전송 영진을 이용해 간단히 세력을 이곳으로 보내어 막대한 지반을 확보했을 것이다.

엽운은 자세히 둘러보았다.

앞의 전송 영진은 척 보기에 천촉봉의 그것과 다른 게 없어 보였지만, 사용된 재료는 분명 한참 모자란 듯 했다.

다섯 개의 빛나는 기둥에 조각도 없고, 전혀 부적 같은 모양새도 아니었다.

게다가 발밑의 푸른 별빛이 빛나는 갑판도 확실히 재질이 천촉봉의 그것만큼 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 전송 영진은 이번 종문 시험을 위해 임시로 설치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전송 영진은 공간 법칙을 이용해 설치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공간 법칙은 금단대수사가 있어야만 다룰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천검종 내에 금단대수사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금단대수사만큼 존귀한 존재가 또 어찌 손을 써 전송 영진을 설치하였는가?

딱 한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종문 시험이 금단대수사가 나서야할 정도로 중요하고, 촉기경에 달한 수제자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또 그보다 떨어지는 정예 제자들과 내문 제자들까지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엽운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외문 제자들이 살아 돌아가기가 너무도 힘들 것이라는 것만큼은 알았다.

이번 시험은 구사일생 이라는 말로도 설명하기 부족할 것이며, 십사무생이라는 말장난으로나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엽운, 이번엔 좀 힘들게 됐군.”

단진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상 외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오직 금단대수사만이 이런 곳에 전송 영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정도로 특별한 존재까지 나서야 할 정도인데, 이게 무슨 종문의 시험이라는 거야?”

엽운은 눈을 번쩍이며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임기응변이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숨을 수 있으면 숨어야지. 종문의 임무 따위를 완수한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야.”

단진풍의 입술을 살짝 떨며 냉소하였다.

“저 앞에 봤지. 저 흰색 옷을 입은 제자들 말이야. 우리보다 여서 일곱살은 많아 보이는데, 아마 내문 제자일거야. 근데 고작 우리를 맞이하는데 20명이 넘게 나왔지. 우리를 마중 나온 게 맞는 것 같아?”

앞쪽 멀지 않은 곳에는 전송된 외문 제자들이 줄을 지어 나아가고 있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문 제자의 검문을 거쳐야 지나갈 수 있었다.

흰 옷을 입은 내문 제자들의 표정에는 전혀 웃음기도 없었고, 마치 칼날처럼 차가웠다.

일찍이 단진풍이 보이는 것만큼 멍청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말을 듣고 흰 옷을 입은 제자들을 훑어보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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